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 - 감각의 독서가 정혜윤의 황홀한 고전 읽기
정혜윤 지음 / 민음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제목을 되뇌어 읽다가, 유명한 CD 박웅현씨가 문안을 짰던 광고가 생각났다. 음악은 세 번 태어납니다! 라는 문구이다. 베토벤이 작곡을 했을 때 처음, 음악이 태어나고, 그 곡을 연주가가 연주했을 때, 음악은 두 번째로 태어나고, 마지막으로 스피커에서 소리가 재생되었을 때, 음악은 세 번째로 태어난다는 스피커에 관한 광고에 씌인 글귀이다. 작곡가의 손에서 연주가로, 그리고 재생기기로의 과정을 잘 포착한 광고기획자의 눈썰미가 돋보이는 광고이다.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의 제목은 보이는 현재와 다른 현재를 해석(과거), 미래를 꿈꾸는 새로운 세계를 진행시키는 일을 통해 인간은 조금 더 나아진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내가 좀 더 나아지기를 원한다면, 미래는 좀 다르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뭔가 읽고 써야 하고, 그 과정에 고전이 등장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자신이 감동받았던 글을 타인에게 소개할 때 글은 가장 큰 설득력을 지닌다. 저자 역시, 자신의 마음을 움직여, 독자들도 한 번 귀기울여 들어보았으면 하는 작품 15편을 골라, 책 속에 좋아하는 마음의 순간들을 사진의 한 장 처럼 찰칵 포착해서, 책을 읽기전의 자신과 책을 읽은 후의 자신, 그리고 변화된 시대를 바라보며 떠오르는 생각까지 글에 남긴다.
  
 
#  고전을 통해 시대의 풍경을 바라보다.
 
  고전을 열심히 읽다보면, 현대사회의 풍경도 함께 보이는 걸까. 오랜시간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작품에는 시대를 넘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거나, 고민하게 만드는 요소가 내재되어있음을 저자의 매끄러운 설명을 통해 확인했다. 위대한 개츠비를 읽으며, 자신의 깊은 내면을 드러내기 보다는, 사람들이 떠받드는 세련된 거짓 모습을 구축하며, 사랑을 구했던 개츠비의 모습과 성공의 끝자락을 붙들기 위해 대학시절부터 취업 스펙을 맞추려는 모습이 겹쳐진다. 『보바리 부인』에서는 권태를 이기지 못한 채, 더 나쁜 선택을 계속해가는 모습이,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는 선과 악이 빚어내는 틈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의 모습이, 『1984』에서는 미국과 한국사회에서 전쟁의 위협이 만들어낸 자발적인 통제와 강압과 위협의 풍경이 보인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에서 더 젊어지려, 동안의 모습, 젊음의 모습을 지키려 노력하는 모습은 성형과  젊음의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 매여있는 현대에 더욱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든다.
 
  고전이 퀘퀘먹은 옛날 책이 아닌, 지금 다시 읽어도 충분히 가치 있는 내용이라는 사실과 함께, 찰칵, 찰칵, 저자가 느꼈던 가장 감동받았던 순간들이 책에 가득하다. 줄거리소개와 함께, 저자가 책을 통해 어떻게 성장하고, 세상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듣다보면, 저자의 글에 소개된 것처럼 새벽 3시 매혹적인 이성의 달콤한 키스처럼, 고전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된다.
 
  그냥 내용만 알고 있고, 아무도 읽지 않기에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누군가의 따스한 눈빛과 손길을 통해, 다시 한 번 꺼내어 읽고 싶은 현재형의 책으로 변한다. 저자만의 특징인 길고 긴 인용과 릴레이 인용이 마음에 불쾌감을 주지 않는 이에게는 또 다른 책을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한다. 저자는 자신의 언어로 새롭게 이야기한다고 믿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책이다.
 
 
#  하루에도 몇 번 씩...
  
 
  하루에도 몇 번 씩, 마음이 변한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변하던 생각이 누군가와 만남을 통해 단단한 생각으로 변한다. 고전은 자신의 마음에 하나의 보석을 새겨넣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이라 생각한다. 예전에도 등장인물들이 고민했고, 지금도 여전히 문제를 지니고 있는 상황들을 고전이라는 장치를 통해, 재체험함으로써, 다음에 같은 상황이 되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에 대한 답을 미리 얻을 수 있다.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놓쳐가는 마음의 풍경을 그린 작품들도 있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이건 나와 맞지 않는 책이 있을 수도 있다 생각한다.
 
  좋은 사회는 어제보다 오늘, 좀 더 다양한 삶을 선택한 사람이 사회의 틀에 구애받아 불편함을 느끼지 않는 사회라 생각한다. 역사가 흘러오면서,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여성의 인권, 장애인의 인권, 소수자의 인권이 백년 전, 이백년 전 보다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내 머리가 꿈꾸는 세상과 비교하면 아직도 수천 년 뒤쳐진 시대에 사는 느낌이지만, 모두가 함께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머리를 맞댄다면, 급격한 변화로 인한 충격을 얻지 않고서도, 충분히 어제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한 문제제기로 토론해 볼 가치가 있는 책들이 고전이라 생각한다.
 
  '사랑'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취향은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다. 다양성이 존중받는 세상이기에 그럴 수 있다 생각한다. 수많은 고전 중에 저자의 선택을 받은 고전들은 한 번 쯤 읽어볼 만한 이야기거리가 하나 이상은 각각 존재했다. 읽지 않은 고전도 있었다. 저자의 책 소개는 잡히면 빠져나오기 힘든 거미줄과 닮았다. 먼저 말을 걸어준 저자에 이어, 다른 고전들을 내 방식대로 말을 걸어보고 싶어졌다. 자신만의 고전읽기가 끊이지 않는다면, 고전은 영원히 우리 사회에 숨쉴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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