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지망생도 아닌,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놈이 왠 시집이냐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간에 제법 읽은 시집은 가급적이면, 아니 대부분 시집을 직접 구매를 했다. 시를 읽음으로써 시적인 상상력으로 사진의 감성에 대해 상당히 도움도 되고, 사진 찍는 놈이 자신의 사진 책을 내면서 하고많은 사진가들 놔두고 오죽했으면 시인에게 부탁도 하고 감상평도 주십사 요청도 드렸겠는가? 특히 몇몇 아는 시인들의 하소연도 한몫했던 것도 있다. 시인들이 어렵고 시를 쓰다가 죽어도 좋다는 그 패기가 좋았다. 그러니 시집 한 권 팔아준다고 얼마나 시인의 생활 형편이 나아질까만은 그래도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심정으로, 나아가 시를 가지고 밥 먹고살기가 척박한 이곳에서 그래도 독자의 한 사람으로 시집이 많이 팔리고 읽게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은 좀 더 시인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순수해질 수 있겠거니라는 마음으로 그렇게 시집을 구입했었다. 어느 유명한 사진가의 사진 한 컷, 어느 화가의 그림 한 장조차 가지지 못했는데 시집만큼은 예외였다. 오즉했으면 시를 다루는 전문 계간 잡지까지 구독하고, 시를 펴내는 출판사가 그래도 밥이라도 먹고살 만해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철저한 독서자이자 감상자이지, 문학 관계자가 아니었다.
그런 몹쓸 시인은 독자를 배신했다. 해시태그로 촉발된 성폭행의 문제가 문단 내에서는 암암리에 소문으로 회자되고 그런 부조리가 드러나지 않는 수도 많다는 폭로가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시인이 무슨 고매한 족속이라고 이슬만 먹고살지 않는다 것쯤 다 안다. 어린 국민학교 시절 때 우리 반 담임선생님은 화장실도 안갈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간파한 지가 몇 년인데 시인도 다 밥 먹고산건 같다. 다만 언어를 다루는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으로 여길 뿐이다. 그러나 일부이긴 하지만 이런 시인의 생존 행태가 반 휴머니즘이라는 것에 대하여, 특히 자성도 없고 자각도 못하며 그간에 독자들을 대상으로 사기나 치는 글을 써왔다는 배신감일 것이다.
어느 누가 병아리 감별사처럼 암수를 구분하듯이 시인들의 삶의 건전성을 담보하는 것도 없다. 안 그래도 세상은 더욱 어렵고, 기가 죽고, 심지어 고위직 공무원들에게 개돼지 소리 나 듣고 살아야 하는 이 비굴한 인생에 있어서 위로가 되어 주지는 못할망정, 고추 가루나 독자들의 눈에 뿌려서 울게 만들어야 속이 시원하냐는 소리이다.
자기들 끼리끼리 누가 무슨 짓을 해도 무마하여 덮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아무개 시인 선생님 따위 놀음이나 하라고 독자들이 돈 써가며 시집 사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아무리 어린 놈이라도 문단에 등해서 나와 시집 서너 편 내고 나면, 이름조차 함부로 부르지도 않는다. 아무개 시인이나 아무개 선생님 호칭으로 불리는 그 쪽 세계는 모르는 바도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뭐야. 왜 독자에게까지 추악한 소문이 들어오고 피해자가 울분과 억울함에 익명의 게시판에서 울어야 하는가 말이다. 세상은 타락해도 그들의 고고한 이상을 꿈꾸는 족속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가 아니었던가. 왜 도매금으로 취급당해서 억울하지나 않겠는가라는 생각에까지 미치는 것이다. 게디가, 그런 시인을 물고 빨고 시평을 남겼을 평론가들 분들이 또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겠는가? 이는 몰랐어도 문제고 알았으면 더 큰 문제이다.
흔히 하는 말로 작품과 사람은 별개라고 하더라만은, 나는 별개로 보지는 않는다. 사람에게서 작품이 나온 거지 작품이 스스로가 튀어나올 수는 없다. 작품은 작품이고 사람은 살람은 사람이라는 식의 이분법적 시각도 난 동의할 수 없다. 작품이 곧 그 사람이고 그 사람이 곧 작품이 되어야 한다. 이때까지 무슨 작품을 발표한 작가나 시인들이 사람으로서 그 존경과 인사도 듣고 대접과 인정까지 받아 놓고, 왜 추문이 나오면 그제야 사람과 작품이 별개 하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모순 따위가 없었으면 한다.
이건 아니더라도 너무 아니지 않는가. 이 모멸감과 배신감은 무엇으로 회복하고 치유가 될 수 있을 것인가. 문단의 시인들의 협회나 모임이 있다면 독자가 받은 상처에 대해 공동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서로가 암묵적으로 누군가에게 성적으로 해꼬지한거 다 까발리는 모습을 보여 주시길 바란다. 독자들에게 석고 대죄라도 해야할 판이다.
너무 아프다. 마치 내가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 같은 기분이 든다. 당신들을 알겠는가? 순실이 게이트가 국정 농단이라고 광분하기 충분하다. 그런데, 시인들의 성적 착취는 시의 정서에 대한 모독이자 학대이며 독자 농단이기 때문이다. 정치에서야 시위라도 하며 울분이라도 삭일 수 있는 수단이라도 있지만, 시에서는 대체 뭘 할 수 있을 것인가? 분노가 쉽게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이다. 그러니 이딴 글로나마 풀어낼 수 밖에.
그나마 조금이나마 안도하는 것은 내가 가진 책장에 저런 쓰레기 놈들의 시집이 하나도 없었다는 게 약간의 안도감이랄까? 아유 그 참....허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