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본다, 사진이 나를 자유케 하는 것들
이광수 지음 / 알렙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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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처럼 직장 다니면서 평범한 월급쟁이로 살다가, 무슨 바람 불어 오지랖같이 평범하지 않게 사진을 찍으며 살아온지 햇수로 꽤 지났다. 그동안 밥 먹고 일하며 월급 받으며 주어진 업무와 지시에 어김도 없을 정도로만 살았으나, 이 삶에서 특별히 차별화되는 비범은 전혀! 없었다. 다만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픈 허기와 결핍은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운을 타고난 건지는 모르겠으나 그 부족함을 다른 무언가로 채우려 했던 이유였던 것은 아닌가 싶었다. 삶이란 시작부터 일정 부분의 운과, 이 영향과 놓여진 상황에 따라 선택이 종속된 채로, 시간과 공간은 떠돌고 있는 것만 같았다. 사진은 바로 그 가운데에서 내 삶의 일정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누군 그게 전부가 돈의 목표를 삼았을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적어도 그 대열에서 열외자이거나 낙오자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주류의 낙오이거나 메이저에 끼지 못한 마이너였다.



사진을 시작하고부터 너무나도 잘못 알아버렸다. 이 책에서도 밝혔듯이, 사진의 초보 시절에는 한 번쯤 격는 오류라든가 불합리부터 배우게 되는 게 많았다. 일면 사진이나 일류 사진을 쫓고자 했던 의욕의 과잉과,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들이 기존에 작가들처럼 떠들었던 것이 사진인양, 인문학적 바탕이 미천한 채로 시작된 얄팍한 명성과 칭송에 눈이 돌아갔던 잘못됨이었으며,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사진이 마치 자신의 실력 인양 착각하던 철부지 같은 사진을 찍겠다고 설레발을 쳤던 과오가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참 부끄럽고도 수치스러워진다. 사진은 특히 예술이란 사진은 소위 사진 협회류의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그런 게 사진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 버렸다는 점이다. 늘 오류는 항상 늦게 발견되는구나 싶었다.



예술로서의 사진을 찍겠다는 사람이 서재에 변변한 사진 책이나 사진 작품집 하나 없거나 감성을 쫓는다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시집 한번 보려 하지 않는, 그 인문적인 얇음과 깊이없는 피상적인 것들의 사진에서, 명예욕과 돈독이 잔득 들어간 목적의 사진을 사진 예술인 것처럼 호도하는, 소위 주류들의 사진 추종에 대해 알지 못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일 년에 통틀어 사진 에세이집을 비롯한 사진적 인문학에 대한 책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카메라 회사가 매출을 걱정할 정도로 사진을 찍겠다고 카메라를 소비하지도 않는다. 다 한때의 바람같이 유행가 가사처럼 사라져 버린 사진가들은 카메라를 내려놓았고 사라져 버리고 사진을 버렸다. 사진의 인문적인 심성 발달없이, 소위 일면 사진을 바라던 사람들의 사진은 더 이상 흥미도 없다. 그렇게 많았던 동호회도 폐업했고 유행처럼 번졌던 사진 갤러리 사이트들도 빛바랜 추억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방문객이 없는 빈 사진 갤러리는 그렇게 문을 닫았던 것도 사진이 유행으로 번진 후의 쓸쓸함만 남았다.



왜 이런 책이 이제서야 나왔을까 너무나도 아쉽다. 카메라가 유행처럼 번질 때 너도 나도 큰 D-slr 카메라를 매고 작가들이 된 것처럼, 사진을 찍을 무렵에 이런 사진 인문학적인 책이 나왔더라면 사진의 유행을 사뭇 달랐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이런 책이 나오기까지, 저자도 물론 나조차 사진의 인문적 사색과 존재의 모색에 깊이가 없었던 이유였다. 그런 이유에서 사진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사진을 잘못 배운 탓도 크다. 그래서 살롱에나 걸린 사진이라며 비하하는 식의 사진을 그것도 못 찍어서 안달 내던 구태적이고 진보없이 알려주는 거짓된 정보를 통해 교과서처럼 받아먹었던 탓도 크다. 그래서일까 일러준 대로 그게 다인 줄 알았는데 그런데도 사진을 찍어도 허기지는 이유도 몰랐으며, 사유할 계기를 마련할 책도 부족했다. 사진 책은 나오기 힘드니 누가 책을 낼 엄두도 못 냈을 테고 차라리 지금과 같이 사진 책부터 찾았더라면 아무래도 사진을 대하는 자세가 사뭇 달랐을 것이다. 사진 책이라는 게 겨우 카메라 작동법이라는 사용법의 교과서로 배운 사진은 그저 기계적이고 기술적인 잘 찍은 사진들만 주목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사진도 모르면서 사진을 찍겠다고 몇 백만 원씩 카메라와 사진 장비에 투자하도록 만든 장비 제조업체들과, 장비 제조업체의 스폰서가 된 영업맨의 작가들이 사진의 소비와 생산 방식을 천박하게 만든 원인이었고 깊이 없이 부화뇌동한 호기심의 아마추어 작가들의 사진의 권력의 반론 없는 추동과 설레발이었다. 하루에 500킬로 이상 달리며 전국 방방곡곡의 풍경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니며 자기 자랑과 사진 사랑이 고작 이동 거리와 비례한다고 떠들어 대던 그들은, 대체 지금도 500킬로를 달리며 일면 사진을 찍겠다고 다니지는 않는다. 사진은 어디까지나 심리적인 분야이지 물리적인 스포츠가 아니다. 운동경기와 예술이 특별한 재능을 요구하지만 그 양상과 방식과 대하는 태도는 방법이 다르다. 스포츠처럼 등수를 매기려 했던 많은 사람들의 사진 예술관은 지금 이 책에 나오는 사진인 문과 관해 대비해 보면 얼마나 사진을 터무니없고 어처구니 없이 사진을 호도 시켜 버린 그 책임을 어떻게 질 것인지 두렵다. 그 책임이 바로, 사진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질 따름이고 단순한 흥미의 인구는 언젠가 줄어들기 마련이고, 사진의 소비층을 없애 버린 현상을 만들어 냈던 것이 아닐까 한다. 문학이 아무리 불모지같이 황무지라고는 하나 일 년에 신춘문예에 투고하는 작품 수만 보더라도 사진보다는 낫다. 그런데 사진을 그렇게 찍어 대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야무야 한때의 사진에 대한 추억으로 전락한 사람들이 많았다. 유행은 변했고 다들 카메라를 잡을 때는 카메라 작동법이란 책이 나왔듯이,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게 되니 스마트폰으로 사진 잘 찍는 법이란 책이 나오기까지 한다. 사진이 겨우 작동법같은 사용설명서를 책으로 접한 그런 사진은 과연 잘 찍기야 하겠지만, 그 또한 역시 오래가지는 못하는 걸 너무나도 쉽게 예측되고도 남는다. 남들이 카메라 메고 자구촌 오지를 돌아 나니는 여행작가를 하니 너도나도 배낭에 커다란 카메라를 매고 돌아다니며 스쳐가는 피상적 풍경이 진실인 양 사진을 보여주기 바쁜 것도 유행이었다. 그래서 나온 여행 책이 얼마나 될 것인지 그것도 한때의 광풍처럼 번졌다. 인도를 가니 인도 여행이 유행이 되고 일본을 가니 일본 관광지의 풍경이 일면 사진이 되는 것도 그런 이유와 다를 바는 없었다. 낯선 풍경도 계속되면 익숙에 젖어 들게 되고 흔해 빠지게 되는 것도 인간의 심리적 지루함이 가져다주는 상수이다.  익숙한 것에서 자신의 낯선 시선은 찾기가 어려운 만큼 낯선 풍경의 새로움도 다들 그렇게 찾는다. 사진 한 장을 찍어도 그 한 장에 인문학적인 자신의 고뇌를 담겠다는 사진 철학적인 자세의 확립 없이, 일부 예술가들의 전유물처럼 소수에 국한될 뿐이고 그래서 사진 이력은 단명으로 그쳐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유행병처럼 흘러가버린 사진가들에게 무어라 할 말은 없다. 인간의 사유는 여전히 도도히 흐르는 강물처럼 바다를 향할 뿐이고 멈추지 않는 지긋한 열정은 땅속에서 고요히 흐르는 지하수처럼 단비는 내리는 것이다. 한때의 유행이 지났다고 해서 슬퍼할 일은 아니다. 사람의 기호 식품으로 전락한 것도 수요는 늘 변하기 마련이라 사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다만, 왜 사진으로 자신의 삶에 인문을 결합하고 나아가 자신의 삶에 사진을 통해서 사유의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의 시간을 끊임없이 진행시켜 나가는 것. 사실 인문이란 결국 인간성의 문제로 귀결되는 분야가 아니겠는가. 인간다움의 이 다움이란 결국 자신이 속해버린 이 세계의 시선의 관조를 이루는 작업일 것이다. 사람의 고통과 즐거움과 기쁨과 슬픔의 본질을 추구하는 인간다움의 그 다움이 어떠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시선. 그게 우리는 보려 하는 과정이 사진이 매게가 된다면 도구란 좀 더 이용성을 높인다는 차원에서 접근하고자 하는 것. 이게 사진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게 한다. 삶이란 늘 유한하다. 유한성은 결국 유한적인 변화의 하나하나의 과정의 연결된 끝없는 사슬을 이루는 속에 내가 있다. 무언가 더 특별할 것도 없이 장구한 시간 속에서 일정 부분에 걸친 이 공간에서 잠시나마 머물고 또다시 그 어떤 물질로 분해되고 흩어져 가는 연속성의 과정만 있을 뿐이다. 이 과정이 무위 무상 같은 삶의 유한적 의미를 찾는 것. 그럼으로써 지금 나와 나의 관계된 모든 것들의 정렬과 질서를 찾아가는 것. 진정 이 우주의 카오스가 어떤 작은 우연적 관계에서 필연이란 의미를 가질 때, 나의 존재적 본질을 사색하고 삶을 모색하는 것이라면 더 이상 사진이 사진의 보는 것으로써 그 임무를 다했다 해도 슬퍼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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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01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2 0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유행열반인 2019-12-02 06: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은 전혀 모르지만 사진에 대한 애정과 그 하나 만으로도 긴 마음 생각 풀어놓으실 만큼 인 것 느껴지는 글이었습니다.

yureka01 2019-12-02 08:50   좋아요 1 | URL
애증의 교차라고나 할까요..^^... 감사합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2-02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진에 결이 있어요. ^^ 먹어도 배고픈 결핍과 허기 때문인가봐요. 사진 좋아요.

yureka01 2019-12-02 10:17   좋아요 1 | URL
상황과 맥락이었으면 좋겠습니다.^^..

stella.K 2019-12-02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맨 위 사진 보니까 엊그제 본 영화 <와호장룡>이 생각나네요.
대나무숲에서 주윤발과 장쯔이가 대결을 펼치는데 가히 압권이죠.
사람 같지는 않지만.ㅎ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사진 정말 쥑여요.^^

yureka01 2019-12-02 16:20   좋아요 1 | URL
맨 위 사진은 청송에 유명한 저수지인 주산지입니다.
10년전쯤 되니..이젠 저런 풍경 담기 어렵더군요.
많이 변했어요..
물도 줄어 들었고, 나무들도 줄었고..

세월이 변하는건 시간만이 아닌가 봅니다....^^..

강옥 2019-12-02 16: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침에 읽다 나간 글을 오후에 돌아와 다시 읽네요
컴터 켜놓고 나갔더니 까만 모니터 속에서 이 글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네요
유레카님만큼 사진을 진지하게 철학적으로 깊이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드네요. 저같은 막샷꾼들은 그 심정 모를 겁니다
나름 사진을 배운다고 배웠어도 테크닉 혹은 메카니즘만 알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경우가 많아요.
비싼 카메라로 돈지랄하는 것만 보고 배워서 무엇이 될꼬 하니, 입니다 ㅎㅎ

yureka01 2019-12-02 16:55   좋아요 0 | URL
사람에겐 변해야 하는 것과 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있잖아요..
유열의 노래가 떠 오르더군요.

˝사랑하는 그대
더이상의 말도
더이상의 눈길도
원하지 않아
내겐 필요치 않아

바로 지금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에게 남아주오.

저도 그 사랑에 사진도 포함되었으면 합니다.^^..

지금 그대로의 사진으로 남았으면 하거든요~~~^^..

2019-12-04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6 0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06 22: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레카님, 차가운 날씨 감기 조심하시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yureka01 2019-12-07 08:43   좋아요 0 | URL
추울땐 그저 따습한게 감기예방이죠..
그래도 운동은 꼭 !~^^.ㅎㅎㅎㅎ
 

 

강원도 화천에서  군 복무한 했던 경험으로 눈에 관한 트라우마의 이야기가 많다. 강원도의 눈 이야기는 과장을 좀 섞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그런 눈이었다. 물론 괜찮은 눈도 아니고, 더더구나 "참" 괜찮지도 않다. 지겹고도 지겹게 내렸고 눈을 보고 있으면 우울증에 빠져도 전혀 문제라고 할 것도 없는, 그야말로 하염없어서 괜찮지 않은 눈이었으니까 말이다.

 

눈이란 어느 장소에 따라 어느 위치와 분위기에 따라 눈을 대하는 태도나 생각은 전혀 다르다. 어느 리조트의 스키장의 눈이라면 반가웠을 것이고 게다가 시간 상으로 크리스마스 시즌에 내리는 눈이라면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타이틀로 분위기를 살리는 현상이 일어나곤 하지만 복무한 부대에서의 눈은, 방한모를 땀으로 푹 젖어들도록 만드는 노동의 눈이기도 했다. 특히 춥고 배고픈 시절이라면 눈은 단절과 원망을 투사시키는 기후적 현상으로 전락하고 위급한 상황에 따라 이동이 목적이라면 미끄러운 눈으로 왕래가 끊긴 도로라면 역시나 원망의 눈이 되어 버린다. 배고픈 시절의 눈도, 군 복무 중에 땀띠 나도록 치웠던 눈도 봤지만 역시나 눈은 강원도에서 만난 하염없는 눈이었다. 가끔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첫눈이 내리는 날 어느 장소에서 우리 만나 자라는 이루지 못할 약속은 철 지난 레퍼토리 같아도 여전히 첫눈의 추억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괜찮은 눈일지도 모르는 일인 것처럼, 눈이 내리는 날에 벌어진 일상의 애환이나 슬픔이나 혹은 기쁨이나 즐거움 등은 눈으로써 더 선명하고 분명하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물론 나야 눈이라도 내리는 날에는 당장 카메라를 들쳐 매고 뛰어나가고 싶게 만드는 것 역시 눈이라는 기상 현상의 흔하지 않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특별한 이벤트처럼 확신한다.

 

눈이 내릴 때면 사그락 거리며 고요하게 눈은 주로 밤에도 하염없었다. 보통 아침이 되면 겨울 햇살에 산이 온통 눈이 푹 덮인 반사광은 눈을 못뜰 지경으로 시야를 잃게 만들었다. 눈부심의 휘광, 역광, 그리고 반사광까지 온 천지를 하얗고 환하게 바꿔 버렸다. 그리고 빛은 노란빛으로 염색하기도 했다. 그런데 너무 밝은 빛은 시력을 점점 잃게 만들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에 선 글라스가 지급되지 않는 건 왜? 병사들의 시력쯤이야 뭐 대수냐고 판단했을지도 모르겠다.)

 

다음으로는 눈은 가려움이다. 눈이 왜 가렵냐?라고 반문하겠지만, 맞다. 눈은 피부의 가려움과는 전혀 관련도 없다만은 공간의 조건과 환경이 눈과 추위와 만나면 가려움이 될 수 있다는 특별하기도 하고 평범하기도 한 이중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내가 근무했던 곳은 강원도에서도 오지 중에 오지였고 백암산이 보이고 분단 휴전선 내에 있는 가드 포스트, 즉 GP였는데, 산 등선을 따라 있으니 산 정산에 위치한다. 산 꼭대기의 집이라니 가장 큰 문제는 식수이다. 계곡에서 물 펌프장에서 정상까지 펌핑하는데 겨울철에는 강원도 산의 추위는 땅속까지 얼게 만들고 수도 베관도 얼어 버리니 단수되기 일쑤였다. 눈이 내려 보급로가 끊기고 식수도 나오지 않고, 식수조차 부족해지면 먹을 물이야 눈을 녹여서라도 마련하지만 씻지를 못한다. 일주일 정도 머리를 씻지 못하고 감지 못하면 냄새는 물론이고 가려움이 밀려든다. 빨리 씻어라는 신호인 건 다 알아도 물이 없으니 씻을 수가 없다. 아 가려움. 불쑥불쑥 치밀어 오르는 가려움이란 고통은 어느새 눈에 투사시킨다. 눈을 보면 가렵다. 눈을 보면 가려움의 원인이 되는 일종의 분비물을 연상한다. 땀이다. 눈내리는 날에 왠 땀인가라고 할 것이다. 제설작업이 오로지 삽이나 눈 가래, 싸리비로 치우는 인력이라면 하염없이 내리는 눈은 그야말로 제설작업이라는 노동을 확정 짓는 순간이기도 하다. 요즘은 경운기 한대만 있어도 눈이야 치우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휘리릭 도로가로 뿌려 버리면 되지만 군대에서는 오로지 노동력으로만 가능한 제설작업이니까 말이다. 한 겨울 삭풍이 차라리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질 때의 땀은 씻지 못해서 잔여 분비물은 곧 가려움으로 치환된다. 땀을 진탕 흘리고서도 씻을 수 없는 그 찝찝함은 모두 눈 때문이었고 추위 때문이었다. 때로 고즈넉하게 내리는 눈을 보고 더이상 치우지 않아도 되는, 의무감이 사라진 눈은 그저 소음을 제거한 평화의 고요나 다름없다. 환경이란 어떤 조건에 따라 눈도 대하는 방식은 이렇게 차이를 보인다.

 

어쩌면 눈은 일단정지, 혹은 일단 쉼표를 의미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도시의 길거리에 눈이 내리면 모든게 느리거나 멈추어야 한다. 눈이 내려 미끄러워지며 마찰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상으로 느리거나 멈추게 한다는 역설이 눈에 담겨 있는 셈이고, 마찰력이 낮아지니 속도가 빨라지는 게 아니라 느려지거나 멈추게 하는 모순적 상황이라는 점이다. 브레이크가 먹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멈추게 한다. 눈 내릴 때만큼은 느리거나 잠시 멈추고 강원도에서 만났던 그 하염없던 눈이 그리울 지경이다. 매일 바쁜 일상에 브레이크 없이 달리는 인생에서 한번쯤 멈춤이나 일단 쉼표를 찍는 여유는 왜 가지질 못할까. 가을날이 와도 단풍 구경을 억지로 가는 연례행사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욕구에서 시간을 억지로 내서가 아니라 여유롭게 가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눈이 그리워지는 쉼표나 떠 올리는 걸 보면, 오늘도 쌓여 있는 눈이 아니라 쌓여 있는 서류 더미를 보니 내 눈깔이 빠져 버릴 것만 같다. 이거 언제까지 이래야 하지?라고 자문해봐도, 자식아 아직 멀었어.라고 하는듯한 착각에 빠진다. 착각에서 벗어날 때가 올까.

 

오늘 일기 예보를 보니 벌써 강원도에는 폭설이 내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강원도 눈이 참 괜찮게 내리나 보다. 그나저나 책 이야기 대신에 눈 이야기나 하고 말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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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an 2019-11-29 09: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강원도 원통에서 군생활을 했습니다.
1월군번이라 신교대때부터 눈치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눈쌓인 향로봉으로 자대배치를 받았죠.....

yureka01 2019-11-29 09:12   좋아요 2 | URL
저는 인제 원통 옆 동네 화천이었죠..햐..겨울의 강원도 눈은...땀구멍이 열리는 계절 ^^..

빵굽는건축가 2019-11-29 12: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눈은 가려움이다. ^^ 읽고보니 공감이 가요

yureka01 2019-11-29 14:49   좋아요 1 | URL
이젠 강원도의 눈이 추억이 되었네요..^^..

강옥 2019-11-29 14: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낭만의 대상으로 여겼던 눈이 현실적으로는 온갖 애환의 산물이었군요
눈을 보면 가렵다는 말은 완전 파격인데요 ㅎㅎ
요즘도 군대에서 그 고생을 할까요? 설마! 큰일나겠죠 -
겨우내 눈 한번 오지 않는 남부지방에 살다 보니 눈이 그립기조차 한데
유레카님은 눈이 징그럽기도 하겠습니다 ㅎㅎ
인간은 경험으로 학습하잖아요~~~

yureka01 2019-11-29 15:05   좋아요 0 | URL
남부지방은 제설작업 장비가 변변찮거든요..
어쩌다 눈 한번 내리면 도시는 올 스톱되어 버리거든요.
차라리 그때 쉬어가는 여유가 생기는 건지도 모르니까요..
네 저도 눈이라면 징한 경험.~~~~

2019-12-04 0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4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5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06 08: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술에 대한 발랄한 이야기를 쓴 에세이 책이다. 역시나 술 이야기는 술의 비책을 적은 글이 아니더라도, 술에 얽힌 에피소드가 재미있게 담았다.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이런저런 술에 관한 이야기 정도는 다들 가지고 있다마는, 문제는 그런 술에 대한 경험을 술책처럼 공유하려 했다는 것이 핵심 포인트이다. 자주 술자리를 만들어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술을 자주 접하는 거야 시내 저녁 길거리를 돌아다니면 흔히 만나는 모습이다. 때론 하루의 회포를 풀거나 쌓인 감정의 골짜기의 계곡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우리의 익숙한 일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저자의 술에 대한 경험론에 담긴 술과 삶의 의미를 적절하게 풀어내는 이야기의 묘사가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다시 한번 읽고자 책을 폈는데 잠부터 온다.)처럼 알듯 모를듯한 애매하고 모호하게 보이는 글은 전혀 없다. 역시 술 이야기는 진지와 코믹이 적절하게 배합비율을 따르듯 가볍게 읽었다.

 

술, 즉 알코올은 기본적으로 독이다. 이미 알코올은 발암물질이라고 밝혀졌다. 많이 마시면 반드시 독성의 효과가 나타난다. 어쩌다가 인간이 술을 발견하고 술을 만들려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으나, 알코올의 증상을 좋아했다. 마취제나 최음제나 흥분제로도 쓰였다. 독이라는 것은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약으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세상에 인간이 만든 모든 물질은 약이자 독이라는 이중성인 형태를 가진다. 완전한 독은 있지만 완벽한 약은 없다. 독도 쓰임이 있고 약도 쓰임이 제각각 가진, 일종의 합목적성을 동시에 띈다. 알코올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오늘도 인간 사바세계는 술 때문에 벌어지는 희로애락 오욕 칠정의 바다 한가운데를 허우적거리며 생과 사를 넘나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적당한 취기가 오르면 평소 말수가 없던 사람도 대화에서 무수한 말을 내뱉는다. 술이 말의 생산력이야 비슷한데, 의외로 혼술을 하다 보면 취기로 인한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음주 글을 쓰곤 한다. 물론 음주운전은 절대 금물이지만, 음주 글을 쓰다 보면 말이 많아지듯이 글도 많아진다. 다음날 술을 깨고 진한 숙취로 컨디션이 다운되어 깨보니 전날에 취한 채 내뱉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음주 글은 기록으로 남는다. 웃기는 글에서부터 이상한 너무 터무니없는 말들의 잔치처럼 문자들이 난무한다. 난잡하고 조잡한 글들이 너무 많다. 그런 글처럼 말도 비슷하지 않을까. 그래서 알콜이 얼마나 사람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인지, 감정을 증폭시키는 것인지, 때론 과도하게 웃음으로, 때론 심각한 울음으로 표현되는 일종의 착각의 증폭제와도 같은 역할을 하기도 한다.

 

술 먹고 꽐라된 사람을 업고 허우적이며 걸어 본 적이 있는가? 나도 몇 번있다. 반대로 내가 꽐라되어서 고주망태로 업힌 적은 단!~한 번도 없다. 자고로 술에 자기제어력이 없는 사람은 술을 입에 대지는 말아야 한다. 제어력이 작동할 수 없는 사람의 취기이라면 거의 십중팔구는 주사파가 될지도 모른다. 나는 개인적으로 주사파 가족이 몇몇 있어서 어릴 때부터 주사파의 영향을 지대하게 받았다. 주사파는 일단 한 대 쥐어 터져도 잘~ 모른다. 내가 왜 터저있지를 생각해도 기억이 나지 않는 정도의 주사파는 상대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너무 주사파는 어느 누구라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주사파에게서 받은 상처는 내가 나이 먹을 만큼 먹어도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나의 심연에 도사리는 쪽팔림과 부끄러움으로 남아 있는 이유이다. 부끄럽게도 [***]이라고 불렀던 인간이 주사파 중 하나였고 [***]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알코올 중독자로 매일 술이었고 취한 상태의 행폐는 지긋지긋하고 너무너무 오랫동안 지쳤다. 어떻게 가족 중 하나가 알콜 중독이면, 슬픔과 괴로움과 고통을 만들고 증오를 만들고 악의를 만들어 내는지 당사자는 전혀 고쳐지지가 않았다. 고주망태로 취한 상태의 모습에서 화가 나고 짜증을 돋우다가 깨고 나서 미안하다는 그 말을 들었을 때 치밀어 오르는 허탈감과 울분. 그리고 화남 허탈 울분의 반복되는 횟수가 증가할수록 쌓여가는 인간의 환멸과 증오, 그리고 모종의 깊어가는 우울증. 자고로 우리 인생을 법구경을 그렇게 설명하였다. 만나고 싶은 자는 못 만나고 만나고 싶지 않은 자는 항상 만난다는 인연의 고통까지. 술은 어쩌면 여기서 악연의 충동질이었던 셈이다. 역시나 당사자 또한 정상적이지는 못했다. 인생에 멀정하게 취하지 않는 상태에서 성공도 어려운 마당에, 취한 상태로 인생을 잘 살았을 경우가 희박하듯이, 당사자들은 이미 추락하고 외면당하고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술을 감당하지 못한 것도 역시 자신의 인생은 떳떳하게 감당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젠 그 주사파로 해방되었지만 여전히 알코올에 절은 그들에게서 받은 트라우마는 내 평생에 떨칠 수 없는 오점이 되고야 말았으니까 말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술이 취하느냐, 알콜에 오염되었냐 이 차이는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주사파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찌들은 내면의 상태로 이 책을 만났을 때 모종의 기쁨이랄까 술의 미학이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술의 음미하는 감각의 쭈뼛하게 서는 감수성의 깊이를 알게 해준다. 술의 상황의 맛에 따른 그 미묘한 차이를 느낌으로 감각의 감수성으로 느껴 가는 저자의 술에 대한 자기 감성이 참 일반적이지만 글로써 표현됨의 정서를 느끼며 술 한잔하고 싶게 만드는 글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주사파들과는 그 수준과 격을 달리하는 품격의 술에 대한 에피소드가 신선하기까지 한다.

 

얼마 전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느 훗날에 한적하고 고적한 시골 산중으로 내려가면 꼭 만들어 보고 싶은 게 술이다. 특히 한 겨울철에 불을 지핀 따뜻한 아랫목에서 뽀글뽀글 거리며 올라오는 효모의 섭생으로 끓어오르는 기포로 익어가는 술맛을 맛보고 싶다. 천천히 익어가며 화학공장에서 일률적으로 제조한 형편없는 맛이 아니라 시골 땅에서 나는 향신료 맛나는 효소를 넣고 내가 만든 술맛을 맛보고 깊어가는 겨울밤의 밤새 울어 대는 그 소리에 젖어 보는 것도 한 인생 마감하는 기념적 술은 아닐까 한다. 그리고 펜을 들고 서서히 오르는 술기운에 무슨 글이라도 바람같이 쓴다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는 술이 결정할지도 모르는 일일 것이다. 더구나 지인이라도 찾아오는 날이면 근사하지만 소박한 밥상에 올려낸 직접 만든 술맛의 평가도 받아 보고 싶다. 아이야 동동주 내어 와라라고 할만한 아이는 없어도 눈을 해치고 마당에 심어 놓은 독에 차갑게 쿨링 된 청주 몇 잔에 긴긴 겨울밤은 잠들지도 못할 것만 같다. 하기야 환경이 만들어 내는 술맛은 장소에 따라 다르고 누구냐에 따라 다른 결정을 하겠지. 그래 그런 날을 기리는 의미에서 오늘도 소주나 한잔 당기도록 하자.

 

(개인적인 치부를 들어내는 거 같아서 무척 망설이는 글일지라도 글은 솔직해야 한다는 신념이 나의 부끄럼까지 더 태워지니 또 우울해지려고 한다. 이해 좀 해주시리라 믿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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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5 14: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6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얄라알라북사랑 2019-11-15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꽐라˝라는 말을 평생 처음 봐서 더 흥미진진, 읽었습니다. ^^

yureka01 2019-11-16 09:36   좋아요 0 | URL
주사파 중에서도 특히 길바닥이 안방이 되어 누워 버린 걸 꽐라라고 보시면 됩니다.~

빵굽는건축가 2019-11-15 14: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의외로 혼술을 하다 보면 취기로 인한 건지 취기 때문인 건지 음주 글을 쓰곤 한다.는 고백에 마음이 한표 가네요. 저는 집에서 누룩으로 막걸리 바로직전의 쉰다리를 만들어 먹어요. 아주 쉽고 그래요 샘은 담번에 막걸리 담아 드세요. 시골이 아니어도 될 정도로 가볍게 할 수 있으실거에요.

yureka01 2019-11-16 09:38   좋아요 1 | URL
창의력 높은 작가들이 음주글에서는 명문장이 나오거든요..환각이 예술의 매게도 하니까요..
언제 도전 한번 해보겠습니다.막걸리..만들어 봐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11-15 20: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몸에 술이 맞지 않아 안 마시고 있습니다만, 술을 적절하게 즐기시는 분들 보면 많이 부럽습니다^^:)

yureka01 2019-11-16 09:39   좋아요 2 | URL
아예 전혀 못하시나 봐요..아고..이걸 수양적 체질이라고도 합니다..
술 전혀 입에 못대는 체질도 타고 나거든요.
알콜 알러지 반응은 술 먹음 바로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초록별 2019-11-15 21: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싯적엔 주신이었는데~~^^

yureka01 2019-11-16 09:40   좋아요 1 | URL
아 주당은 넘어 주신이셨다니 오!~^^..

초록별 2019-11-16 09: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생님처럼 술을 전혀 못 마시는 친구가 한명있어요~~^^ 술은 참 좋은데~~ㅎㅎㅎ

yureka01 2019-11-16 20:14   좋아요 1 | URL
독처럼 마시느냐 약처럼 마시느냐...이 차이겠지요..
술은 장소에 따라, 누구와 마시느냐에 따라 차이도 크더군요...
특히 책 좋아하고..사진 좋아하는 분과 마시는 술은 약이더군요..

강옥 2019-11-16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술술 넘어간다고 술이라면서요? ㅎㅎ
친정 아버지가 애주가셨지요. 도에 넘칠 정도로 ㅎ
길바닥에서 주무시기도 했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길바닥에 누운 아버지를 보고 피해 달아났던 아픈 기억이 있네요

오늘 오후엔 가까운 도서관에 가서 몇 시간 보내고 왔네요
문학사상 11월호, 보보담 가을호, 펜문학... 서너시간 금방 가버렸네요

yureka01 2019-11-16 20:16   좋아요 0 | URL
아고 지우당님 부친께서 애주가 셨다니요...
아무래도 술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으셨지 싶습니다...

책 읽으면요..시간 순삭이더라구요,.~~~~
개인적으로..심심하다는 사람 이해가 안되더군요.
책보면 시간 금방이거든요..

2019-11-22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3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5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5 15: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10년전쯤에 찍었던 사진들입니다.

그간 사진 참 많이도 찍었더군요.

지나간 시간이 정말 빠르네요.

천천히 감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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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0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0 19: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9-11-10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좋은 사진 잘 봤습니다. ^^:) 저 순간을 잡기 위해서 유레카님께서 흘리신 땀이 느껴집니다.

yureka01 2019-11-11 08:47   좋아요 2 | URL
넝마같은 카메라인듯해요..돌아다니지 않으면 사진을 못찍으니까요..많이 다녔습니다..

강옥 2019-11-11 1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햐~~~
이런 서비스를 ㅎㅎㅎ
처녀시절 입사한 회사에 사보가 생겨서 멋모르고 니콘 필카를 잡았지요
행사사진, 인터뷰사진, 인증샷.... 되는대로 찍다보니 카메라가 익숙해졌고 -
어제 누군가 그러더라구요. 제 사진이 너무 틀에 박혀있다고.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더니, 처음 사진이 지금까지 굳어버린 게 아닌가 싶네요 ㅎ

yureka01 2019-11-11 15:05   좋아요 0 | URL
사진에 틀이 어디있겠습니까요..자기만의 틀이 중요하잖아요..^^..
지금도 글쓰고 사진 올라오는 사진에 감성은 살아 있는걸요..
저도 늘 잘 보고 있습니다..~~~

페크(pek0501) 2019-11-13 1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런 서비스 정신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제 눈이 호강하고 갑니다.

yureka01 2019-11-13 20:57   좋아요 1 | URL
수능한파라고 시험치는날은 왜 추워질까요..ㅎㅎㅎ
늘 건강하시고요..^^..

초록별 2019-11-23 08: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진들을 보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감사드려요 ~~^^

yureka01 2019-11-23 14:03   좋아요 1 | URL
사진도 언어의 일종이죠..글만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사진이 보충해주는 매체라 좋아요..
즐거운 주말 되시길..^^
 
청춘의 독서 (Gift Edition) (유시민 친필 인쇄 문구가 담긴 청춘의 노트 포함)
유시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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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청춘이 이미 지나갔거나 지나고 있거나 지나갈 예정이다. 흔히, 흘러간 유행가 가사처럼 "청춘은 봄"이라고 노래 부르는 그 청춘. 젊음의 순간. 푸픈 봄이라서 청춘이라 은유했던가 싶다. 그런데 지금의 청춘은 과연 봄처럼 푸르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간혹 꼰대들이 하는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자신의 청춘에 비해 요즘의 청춘을 비교하며, 자신의 청춘이 지금의 청춘보다 한결 더 힘들었고 어려웠으며 고난의 과정을 뚫고 오늘날의 토대가 되었음을 자랑하는 것도 한때의 "나 때가 말하는 그 청춘"일 것이다. 나도 50을 넘어가는 나이지만, 그 어떤 청춘을 대하면서 한사코, 절대, 무조건적으로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게 있다면, "나 때는 말이야, 어쩌고저쩌고~"를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한다. 반대로 나보다 선배급인 사람에게서 "나 때는 말이야"라고 떠들면 다신 뵙고 싶어지지 않는다. 그 어떤 청춘이든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각자마다의 고유한 현실적 시대상의 십자가는 다 있기 마련이다. 그게 저마다의 차이에 있어서 경중을 논해서 "나 때는 말이야. 요즘 젊은 것들 어쩌고"하는 것만큼 못나 보이는 것도 없다. 그래서 그때의 청춘으로 지금의 결과는 어떤가 되물어야 할 시기이지, 한때의 청춘을 비참에 떨어뜨리거나 자랑삼아 "나 때는 말이야"라고 주장할 일은 아니라는 거다.

 

간혹 그런 상상을 한다. 오래된 빛 바랜 낡은 서류 상자에서 나오는 각종 문서들, 혹은 아버지가 남긴 것 같은 그런 상자에서 나오는 각종 증명서나 임명장, 혹은 발령장이나 졸업한 학교에서 받은 상장이나, 다니던 회사에서 수령은 월급 명세서 봉투, 은행의 거래 기록과 일상을 기록한 일기장 등등등. 혹은 어디 무슨 학교 입학 허가서라든가 기사 자격증 등 무슨 시험을 치고받은 합격증. 아니면 어느 기능사 1급, 2급 자격증이나 좀 더 나아가 무슨 면허증. 아니면 국가고시 응시 원서, 수험표. 그래 다들 그렇게 청춘을 준비했던 모든 이력과 경력들이 모인 그 상자가, 바로 그 사람의 과거의 "한때 내가 말이야"를 대신 말해준다. 사람의 입은 때로는 진실보다 가공적 허풍이나 비약이 늘 숨어 있는 것에 능하다. 따라서 그런 각종 증명서와 협격증이나 응시원서나 연구 성과물인 학위증이나 혹은 무슨 과정의 논문이나 저서. 낡은 사진 첩에서 만나는 과거의 행위들이 객관적으로 나 때를 더 증명하는 사실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서를 생산하고 글을 지어내고 자격의 증명이 있음을 문서화 시켜낸다. 고작 주민등록증 하나만으로 "나 때는 말이야"를 증명하려면 얼마나 많은 구라를 쳐야 할지는 자신만이 알 것이 뻔하지 않을까 한다. 무슨 운전기능사를 딸려고 경력을 쌓고 기능을 익혀 어디서 합격증으로 받았던 그 과정을 이야기하는 편에 오히려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오는 것도 서류가 말해주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타자가 증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무슨 증명서이기 때문이다. 소주 한 잔만 걸치면 울분에 차서 "한때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왕년의 자신의 레퍼토리는 어찌 그리 수준이 형편없는 것인지에 대한 자기변명이거나 혹은 자기 자랑의 오지랖은 늘 비슷하다. 그래서 요즘 젊은 친구들이 꼰대스러움에 대한 반응은 "지겹다~(좀! 그만해)"로 강조되는 결과적인 이유의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다. 하다못해 저작물이나 증명서를 대신해서 사진이라도 몇 장 보여주시라. 그러면 "지겹다가 오히려 흥미롭다"로 바뀐다. 열사의 사막에 도로를 내고 댐을 지으면서 중장비 앞에서 근사한 포즈로 "V"자를 그렸을 아버지는 얼마나 고생하셨을까라는 반응하는 건 감동이 직결 스위치처럼 나오는 것도 다 이와 같은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그 시절에 읽었던 인상 깊은 책은 어떠했을까? 역시 기록으로 독후감을 남기듯 글을 쓴 리뷰가 바로 독서의 증명서일 것이다.

 

"그래서 그 때 청춘에 가장 인상 깊었던 지침이 되는 책이라도 한 권 권해 주세요? "나 때는 말이야. 이 책 정도 안 읽으면 청춘이 아니었어."라며 그 시대의 청춘 필독서는 무엇이었는지를, 시대의 지성과 지식을 이야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 다!~. 그래서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가 그 시대의 젊은이들의 고민이 담긴 책을 보게 되는 이유도 된다. 무슨 책을 인상 깊게 읽었고 그렇게 다가온 생각들을 글로 풀어낸 책이다. 어쩌면 이 책은 저자 유시민이 한때 젊은 시절의 고뇌를 모은 책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증명서처럼 쓴 글이다. "한때 내가 이 책을 읽었는데 말이야" 시작하다 보면 그 청춘의 시기에 겪은 삶이 증명서와 같이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은 당연하다. 아무것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 한때 내가 말이야"로 시작하는 꼰대와는 상당히 차이가 나는 현학의 추구와 고민에 대한 시대상의 충돌이 그래서 더 납득이 가고도 남는다. 지금의 삶은 과거에 살았던 삶의 결과적 책이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유의 증명서와도 같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자. 이 책은 각 챕터마다 언급한 책(아래에 적어 두겠다. 참조 바람)의 리뷰의 성격을 포함하였다. 저자 유시민의 개인적 감상문 내지 독후감으로서, 감상의 논지와 견해를 피력한 책이기도 하다. 보통은 책을 읽기만 하고 리뷰를 쓰지 않는 것도 많았으나 다행히 알라딘 온라인 서재 블로그는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다양한 책에 대한 리뷰나 페이퍼 글을 생산하고 있는 온라인 공간이기에 읽은 후기에 적합하고, 읽은 책으로 사유하고 문장으로 나타냄으로써 개인적인 생각을 통해 피력한다는 점에서 청춘의 독서라는 책의 성격과 크게 다르지 않는다. 그간 책을 읽고서 쓴다는 점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내가 책을 읽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온라인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 의미가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책의 읽기와 쓰기도 나름의 자기 증명 방식중 하나라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는 의미가 제일 크다.

 

일반적인 수준으로 웬만큼 책을 읽었으나, 나는 유시민 저자가 다루고 언급한 책을 거의 읽은 적이 없다. 사실 다 읽기도 벅차기도 하다. 특별히 읽을 계기도 없었거니와 책을 읽을 동기나 책을 읽을만한 영향력을 받은 적도 거의 없다. 유시민은 부친이 학교 선생님이었던 탓에 책을 자주 접했고 책에 대한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나는 주변에 책의 동기나 욕구를 자극할 만한 영향력은 거의 없었다. 책을 읽고 리뷰를 쓰게 된 동기나 혹은 영향은 없이 대부분 자발적이었다. 마치 내가 사진을 찍고 사진에 대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로 자발적이었다. 분명 어디엔가 내재된 그 어떤 것이 책과 사진을 좋아하게 될 줄은 나도 나를 모른다. 하여간 이런저런 이유를 따지지 않고 자신의 존재적 증명처럼 사진을 찍었고 책을 가까이하는 원인에 대한 것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내가 직접 읽지는 않았지만 저자의 생각과 감상으로 내가 읽은 듯하게 핵심을 짚어내고 요약하여 축약시켜 책의 속을 설명해준다는 점이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다. 단점은 읽지 않아도 읽은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는 점이다. 굳이 다 읽을 필요는 없다. 하고자 하는 맥락을 설명하고 저자의 핵심 생각을 알아 가는 것도 다 읽지 않고도 가능하다는 것이 무엇보다 시간 절약에는 장점이기도 하다. 언제 그 책을 다 읽겠나. 시간도 빠듯하게 사는 처지에서는 유시민의 책은 그래서 더 유익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나는 어떤 책이든 문장에서 나타나는 분위기를 매우 중시하는 편이라서 유시민의 문장체는 아주 편안하게 읽힌다. 싫어하는 책이라면 대부분 번역서들이다. 번역서는 외국어를 우리나라 글로 번역한 책인데 나는 번역서의 문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읽기에 너무 불편하고 잘 읽히지도 않는다. 아마도 외국어의 문장은 우리나라 국어 문장하고는 언어의 본질적인 차이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번역체의 문장이 나오기는 할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번역서라도 유시민 스타일의 번역서라면 얼마든지 읽어낼 수 있을 텐데 많은 번역서들이 원문에 충실한 번역을 하려다 보니 문장이 이상하게 읽히지 않아서 가독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기야 국내에서 나오는 책조차 다 못 읽을 판에 외국서적의 번역서까지 읽기란 참 난감하다. 차라리 요약본이나 해설본으로 설명한 유시민의 리뷰 성격의 책이 나에겐 더 잘 맞는다는 느낌이 강하게 일어난다.

 

청춘시절에 읽은 책들은 그 사람의 관념의 뼈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젊은 시절에 읽은 책의 영향으로 한 평생을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흔히 청춘시절에 유행하며 들었던 노래나 음악이 평생토록 즐기는 그 사람의 시간적 스펙트럼을 이루는 경우와 비슷하다. 책은 그래서 위대한 저작물인 까닭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평생에 걸친 사고의 방향을 결정하는 원인이자 동기가 되기도 한다. 과연 나는 청춘 시절에 무슨 책을 읽었던가 한번쯤 글을 쓰며 반추해보고 그런 생각으로 지금껏 어떻게 살아왔는지 되물어도 좋은 계기가 되는 책이기도 하다.

 

-참고. 청춘의 독서에서 다루었던 리뷰 책 리스트.

 

1.표토르 토스트옙스키, 죄와벌

2.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3.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4. 토머스 멜서스, 인구론

5. 알렉산드르 푸시킨, 대위의 딸

6. 맹자, 맹자

7. 최인훈, 광장

8. 사마천, 사기

9.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찰스 다윈, 종의 기원

11.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12, 핸지 조지, 진보와 빈곤

13. 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롬의 잃어비린 명예

14.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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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굽는건축가 2019-11-09 12: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 시대가 안고 있는 각자마다의 고유한 현실적 시대상의 십자가는 다 있기 마련이다. 라는 샘의 글에 공감이 가요.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글 ㅋㅋ

yureka01 2019-11-09 17:22   좋아요 1 | URL
나이든 살들은 청춘을 지나봐서 알거든요..
젊은 어린 후배들은 아직 지나보지 못했거든요..
결국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이를 이해해야 하니까요..
지나보지도 못한 젊은이보고 경험도 없었는데 이해하라고 요구하기가 어렵지요..
네 꼰대되지 않도록 항상 각성으로 ~^^.

북프리쿠키 2019-11-09 13: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정한 충고마저 귀담아듣지 않으려는 모습이 진정한 꼰대 아닐까합니다.
청춘의 독서 재미있게 읽었고 유레카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yureka01 2019-11-09 17:23   좋아요 0 | URL
저도 책에 대한 리뷰라는 개념으로 재미나고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나이들면 석고처럼 굳어가는 관념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한 사유가 꼭 필요하지요..^^.

stella.K 2019-11-09 15:3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게 좀 아쉬워요. 젊은 사람과 나이든 사람이 함께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게.
우리도 젊었을 때 기성 세대들 꼰대아고 안 좋아 했잖아요.
그런데 막상 나이들고 보니 나이든 사람과만 어울려야 하고 그마저도 쉽지 않으니.
아무래도 젊었을 때 꼰대들을 너무 싫어해 벌 받는가 봅니다.ㅠㅠㅋㅋ

yureka01 2019-11-09 17:25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스스로가 꼰대가 되어가지 않으려고 얼리 아탑터처럼 새로운 것에
더 더가가려고 하는 이유겠지요..
아마 정보의 습득이나 시대적 민감도는 젊은 친구들이 훨씬 앞서거든요..
이젠 과거의 시대와 현재 또는 미래의 시대의 변화에서
공유될 수 있는게 점점 줄어드니까요..^^.뭐든 새로 나온건 해보고 찾아봐야하거든요..그럼요,

반유행열반인 2019-11-09 15: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제 그런 소리들을 곧이 곧대로 안 듣고 “라떼는 말이야~” 하고 비꼬는 젊은이들이 있어서 재미있는 시대 같아요.

yureka01 2019-11-09 17:26   좋아요 1 | URL
고구마 라떼가 맛나는데말이죠 ㅎㅎㅎㅎ^^.

2019-11-10 1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10 19: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강옥 2019-11-11 0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필독서, 라는 부제를 붙여주고 싶은데
과연 요즘 젊은이들이 저런 책을 제대로 읽어낼까 하는 의문이 드네요
인생관이 형성될 시기에 저런 책들을 읽으면 올곧은 인격을 갖추게 되겠죠.
저는 청춘시절 ‘법구경‘ ‘노자‘ 같은 책을 멋도 모르고 읽어서 그런지
어린 나이에도 늙은이같은 생각을 많이 했던것 같아요.
‘끓지도 않고 넘친다‘는 속담이 있지요. 어설픈 독서로 제가 끓지도 않고 넘쳤던 것 같아요 ㅎㅎ

‘너는 늙어봤냐? 나는 젊어봤다‘라는 말이 문득 생각나네요
세대차이는 쉽게 뚸어넘을 수 없는 관념의 벽 같아요.
아들이 그러더군요.
엄마, 나는 엄마와 다른 세상을 살고 있어요. 엄마 식대로 생각하지 마세요.....

yureka01 2019-11-11 15:08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요즘은 젊은 친구들이 책 볼 시간을 낼 틈없이,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큰 고민이거든요..
사실 책이란 것도 ....시간적인 여유가 되어서 읽는 것이 좋거든요..
막막한 미래에 수험서나 자격증등등 고도의 스펙이 필요하니 교양서적 볼 생각하기도 어렵거든요..

집에 딸아이도 아빠가 사주는 책조차 읽기 어려워 하더군요.
게다가 새로운거 알아가는 것도 벅찬데 이미 지난거 읽기는 더더욱 어렵지 싶습니다...

그럼요..우리 세대의 교양과 지금 젊은 친구들의 교양은 차이가 날 뿐이죠.
틀린건 아니니까요..

딸아이도 올해 학기 마감하고 공시준비하겠다고 하니...수험책 볼 시간에 다른 책은 기대하기 어렵지 싶습니다.

2019-11-25 13: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1-25 15: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