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너에게 사직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건설업의 공무 관리직으로 16년의 직장을 그만두는 이야기를 어렵게 운을 땠으나, 뒤끝 없이 쉽게 결론을 냈다. 새로운 직원을 대타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현장 직원 중 공무직으로 변경하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으니 부담도 덜었다. 몇 달간 고민한 것치고는 결론내기까지 10분도 안 걸렸으니 아무래도 내가 더 이상 있기에는 부담스러워하는 직원이었을 것이고, 그렇다고 여기서 계속 근무하면서 직급을 더 높이고 급여를 더 줄 수도 없는 현실이라는 것에서 상호 간에 이해와 공감이 되었던 셈이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계속 근무하는 것에 대한 매너리즘은 함정에 빠지는 기분도 들었으니 이 업무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기도 하고, 오래전부터 뭔가 새로운 모색이 필요했다. 여기 근무를 마치고 다시 새로운 공부와 좀 더 전문적으로 파고들 수 있는 일을 가지기까지 의지를 세운지 몇 해가 지났다. 그동안 분위기 조성되는 시간까지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현재까지 왔었다.
회사는 비슷한 위치였으나 기존의 회사 간판을 내리고 새로 올릴 때(처음 입사했던 회사가 재정이 어려워져서 매각하는 등에 대한 그간의 복합한 사정은 여기서 다 밝히긴 어렵다. 워낙 사연이 많아서 다 못쓴다.) 딸아이 고삼 시절 옆에서 같이 공부하자는 심정으로 자격증도 따놓았으니 언젠가는 써먹을 수 있겠거니 하며 학습했던 안전 업무를 하고 싶었고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전문성을 갖추는 경험을 쌓아서 기술사 공부라도 해볼까라는 의지였다. 그렇다고 뭐 반드시 합격이라는 공부가 아니더라도, 이는 둘째치고 새로운 업역으로 바꿔 보고 싶었다. 사실 그대로 있기에 나이가 너무 많다는 것도 눈치 정도는 간파하고도 남았다.
현재 회사는 법인을 설립하고 건설업 면허등록을 내고 기술자를 이관 하는 등 지금까지 전 과정에서 내가 손대지 않는 게 없었다. 마침 회사 설립 시에 추진했던 주택 사업도 전부 판매되어 이전과 입주까지 완료했고, 다른 현장도 거의 마무리 준공 서류까지 넣은 상태이다 보니 새로운 일은 거의 없는 시간이었다. 이제 업무에 손을 놓기 아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직장이란 들어가는 것도 무척 어려우나 퇴직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16년간의 노하우를 직원에게 전달하는 것도 만만찮은 일이고 현재의 현황과 업무 내용들 그리고 앞으로 남은 업무들을 디테일하게 인계하는 것도 벅찬 일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새로운 직원이 아니라서 한편으로는 그나마 마음의 부담감이 적은 편이었다. 아무리 디테일하게 전달한다 해도 스스로 현황 파악이나 업무 관련 지식에 대한 공부는 필수라서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하기야 내가 처음 직장에 들어와서 인계받은 업무도 없이 헤매면서 스스로 일을 찾아가고 업무에 맞도록 구축하는 것을 누구에게 배운 적도 없었다. 생소한 무경험이 차츰 연차가 쌓이고 배우면서 알아가는 일들이 대부분이었으니까 이에 비하면 누가 가르쳐 줄 사람이라도 있다는 측면에서는 인수받는 직원으로써는 훨씬 나은 편에 속한다.
전에도 명예퇴직 수순도 그랬지만 요즘 들어 특히 대기업이나 금융 분야 혹은 제조업에 근무하는 40대 이상 50대가 정년을 넘기지 못하고 명예퇴직 압박이 밀려오는 뉴스가 더 많이 들린다. 건설업도 예외가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들은 나이 많아진 직원에 급을 맞춰 줄 수 없어서 계속 있기를 미안해한다. 비자발적 퇴장을 강요당하기도 하고 자발적 퇴장조차 눈치채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40대나 50대의 라이프 사이클로 따지면 아직 손을 놓을 수 없는 여건에 놓인 분들이 많다. 현실적으로도 아이가 커가면서 가장 돈이 많이 들어가야 할 시기이기도 하다. 아이들이 대부분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생일 테고 아직 여전히 연로하신 부모님도 계신다. 자식에게 평생을 희생하고 살았을 부모를 나 몰라라 할 수가 없는 나이기도 하고, 부모 세대는 자식에게 자신의 노후를 보장받으려 몰빵했을 가능성이 많다. 겨우 마련한 아파트에 아직 대출이 많아 부채율도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그야말로 내적 외적으로 어느 것 하나 녹록하지가 않다. 게다가 자신의 노후는 어떻게?라고 하면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그런데 당장에 현상 유지는 고사하고 퇴장을 염려해야 하는 막다른 고용불안의 골목에 서 있는 신세가 많다. 아직 손을 놓을 때가 아닌 경우 퇴장을 하고 겨우 끌어모은 자본으로 섣부른 자영업에 마지못해 불가피하게 뛰어드는 경우도 많다. 별다른 대처없이 쉽게 접근 가능한 레드오션의 업종을 선택하다 보면 자영업자의 생존율이 5년간 10%도 남아 있지 않는 현실에 부닥치게 된다. 망하면 부채는 더 늘어나고 자산을 까먹고 재기 불능에 빠지기도 한다. 작은 자본으로 쉽게 접근할 업종은 거의가 경쟁이 치열하고 진입장벽도 낮다 보니 창업을 너무 쉽게 한다. 그동안 업무로 쌓은 경력은 무용지물이라면 과연 원하는 바대로 이루어질 수 있는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특히 건설업에 종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안전기술자로써, 늘 가슴 한편에 사고가 너무 부끄러운 일 중에 하나이다. 걸핏하면 사고나고 다치고 죽고 이게 또 연속으로 사람들이 다치고 죽는 과정을 목도하는 자괴감이었다. 사람 목숨이 돈으로 치부되는 사회는 불행하다. 돈으로 사람을 살릴 수가 없음에도 사람 목숨 값이 돈으로 매겨지는 체재는 그 사회가 가진 본질적인 단점이기도 하다. 본질적으로 사고 나지 않아서 안 죽고 안 다치는 것일 텐데 말이다. 그래도 적어도 일하다가 다치거나 죽는 경우는 절대 없어야 함에도 건설 현장은 여전히 사고의 위험성에 노출되어 있다. 제도적인 위험성이나 불완전한 인간의 위험성 등등 따져 봐도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꾸준히 찾고 실천해야 하는 당위성이 돈으로 때우려 하며 게다가 사람 생명 앞에서 허물어지는 사회는 너무 아니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사고 예방하는 업무를 해보고 싶었던 이유이다. 가장이 현장에 일하러 나갔다가 사고 소식을 들은 남은 가족들의 슬픔과, 장차 나아가 가장을 잃은 가족이 살아가야 할 생계는 보상금만으로는 어림없다. 그러나 돈으로 보상했다고 누가 떳떳하게 고개 쳐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현장의 후진성에 대한 저항을 해보고 싶었다. 머리에 빨간 띠 두르고 구호를 외치는 투쟁도 투쟁이겠지만 누군가 안전을 위해 연구하고 기술적 개발과 조언하는 것도 투쟁이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실무 경험과 이론이 겸비되어야 공부하고 시험 칠 자격이 생기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이다. 다음 달부터 당장 안전 컨설턴트 공부를 해야 하는데 막상 도전하려니 잘 해낼 수 있을지 두려움이 없는 것도 아니겠지만, 언제는 뭐 안전의 관계된 일을 처음에 배워서 시작했던 것도 아니라서 접하고 실무를 익히다 보면 습득되는 방법도 다 있을 것이다. 새로움의 신선함과 두려움은 늘 인생에서 이렇게 교차하는 양 방향의 접점이 아니겠는가 한다.
그나저나 마치 학교를 졸업한 후 초년생 시절 처음 입사 면접을 보고 회사에 취직하던 때가 떠오른다. 낯선 환경, 낯선 사람들과 새롭게 배워야 할 많은 업무들. 타성에 젖어 들 때까지의 많은 시행착오들. 경험 미숙에 따른 방법을 찾아가는 것들에 대한 스트레스들. 그런데 이걸 이 나이에 처음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잘하는 짓인지 도통 모를 일이다. 취직이 어려운 시대라고는 하지만 결국 어디든 사람이 필요한 직종은 다 있으니 다시 새롭게 써나가는 삶의 항로라는 과정에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무엇이든 바꾸는 것에는 진통이 따른다. 뭐 그동안 해왔고 살아왔던 내재된 내적인 다양한 경험을 믿고 이를 토대로 새롭게 적응하는 것뿐이다. 시간에는 두 갈래의 길은 없다.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고 저것도 아니면 이것의 익숙한 길과 낯선 길만 있다. 게다가 변화가 늘 진행 중인 사회의 직업은 특정한 직종(교육직 선생님이나 공무원 등 )에서나 정년까지 종사하겠지만 일반적으로는 정년까지 일하는 곳은 많이 없다. 고용은 늘 불안한 환경에 내몰려 있다.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정년까지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많지가 않다. 이런 여건 속에서 스스로가 전문성을 갖추는 일은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 사항이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준비 없이 조직을 떠났을 때의 풍랑은 몹시도 거칠고 난처하다. 가진 자본도 없고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서라도 부족하더라도 조금씩 잉여를 만들고 적립해가야 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무방비에 대책 없음, 어쩔까라는 나락에 빠지는 형국이다. 세상은 그리 쉬운 게 아니다. 기회는 늘 준비된 자에게만 온다. 기회가 와도 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갈아탈 수 없다.
인생에 있어서 인연이란 그런 거다. 한 번의 만남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언젠가는 반드시 이별은 오기 마련이다. 흔히 이를 회자정리 거자필반이라고 하는 숙어는 삶의 그림자처럼 늘 따라다닌다. 직장 또한 예외가 아니다. 16년 동안 직원들끼리 함께 한솥밥 먹는 식구들처럼 살았던 관계도 이별이 낯설기만 하겠지만 이 또한 영원할 수 없는 기로에 놓였다는 점이다. 비록 대기업처럼 화려한 번쩍이는 직장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그동안 그나마 이 직장에서 월급 주고 일을 만든 대표에게 한편으론 고마울 따름이다. 내가 어디 가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었겠는지. 어쩌면 대표가 잘 했던 못 했던 결과적으로 이 날까지 청춘을 담았던 조직에서 벌어먹고 살 수 있었던 것도, 알게 모르게 노력했던 오너의 덕분이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시간을 더 가지고 이별의 정이라도 더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 또한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결정 내리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어도 떠나는 것은 순간이라는 게 아쉬움이 자리 잡는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언젠가 이별이든, 지금의 이별이든 이 순간은 반드시 오기 마련 아니었던가. 어느 이별이든지 아쉬움이 없는 이별은 없지 않은가 한다. 다들 부족한 사람 일 시킨다고 애썼다는 걸 꼭 전해 주고 싶다.
*** 앞으로 책을 읽어도 글 쓸 시간 날지 모르겠습니다. 내근직처럼 사무실에 꼬박 자리 차지하는 일하는 것도 아니라서 인터넷 근무환경이 아닐 수도 있어서 알라딘 접속도가 굉장히 떨어지지 싶습니다. 새로 해야 할 일의 실무의 공부도 해야 하는 등 과제가 남았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