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숭아통조림&원숭이의 의자
사쿠라 모모코, 우리나라에선 <마루코는 아홉 살>로 유명한 작가다.
이 분이 쓰신 에서이 세 권 중 두 권의 이야기.
마루코 이야기는 실제 본인의 이야기에 약간의 상상과 조미료를 친 이야기다. 만화 속 친구인 타마며 주변인들을 허락도 받지 않고 썼으니, 혹여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더라도 놀라지 말란다. 마루코 이야기에서 가장 마루코를 사랑하고 버릇없게 만든 문제의 인물인 할아버지가 실제로는 심술과 거짓의 대가라는 게 참 충격이다. 그의 장례식은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들은 너무나 많지만 그 중 아이와 참 재미있게 봤던 것이 바로, 마루코는 아홉 살, 안녕 자두야 이다.
마루코는 아홉 살의 작가와 안녕 자두야의 작가는 약 9살차이가 나지만. 왠지 동시대의 느낌이 난다. 70년대의 일본과 80년대의 한국이 묘하게 닮았다.
물론 지진이 날까 두려워하거나, 다양한 동네 축제인 마쯔리를 즐기는 모습이나 그 시대에 급식을 먹고,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거나 급식에서 푸딩을 먹고, 그다지 잘 사는 것 같지 않은 마루코네에도 나름 자동차가 있는 걸 보면, 차이가 느껴지긴 하지만.
마루코는 아이들과 닮아 있다. 천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쩌지 못할 악동도 아니다.
화를 내고 떼를 쓰고 울기도 하고, 밉살스런 일을 태연히 저지르고
그러면서 마음엔 죄책감을 가지고
불안하고 두렵기도 했던 어린시절.
그럼에도 엄마가 여전히 나를 사랑함을 확인하곤 안도했던 그 시절.
가족에겐 떼를 써도 친구에겐 너그러웠던 그 때. 언니에게 지기 싫어 이 악물고 대들기도 했고 그럼에도 밤이 되면 서로 의지하며 잠들던 그 시절.
혹여 내일 전쟁이 날까 뜬금없는 두려움에 잠 못 들던 어린 날의 밤도 있었고, 반대로 천재지변이 일어나길 바라던 시험전날의 밤도 있었다.
시끌벅적할 땐 고상해보이던 외동딸의 친구가 부러웠고, 가끔 각자의 일들로 텅 빈 집에서 혼자 있을 때면 외로워서 텔레비전을 켜고 누가 언제 오나 기다리곤 했던 시절.
아무리 싸우고 미워도, 언니 몫의 수박과 과자는 지켜줬던 그러나 언니만 새 옷을 사 입던 그 날엔 너무 화가 나, 언니가 아끼던 인형을 발로 밟으려다 그 인형의 얼굴이 너무 귀여워 미안해하며 서럽게 울던 날들.
마루코의 이야긴엔 그런 아이들이 있다. 천사 같은 아이도 없고 그렇다고 심술 맞기만 한 아이도 없다. 보통의 아이가 있다. 볼이 퉁퉁 입술은 삐죽거리는 숙제도 공부도 싫은 아이, 그러나 누군가를 위해 울 줄 아는 따뜻한 아이.
그렇게 잘 자라 마루코는 무좀에 걸린 사춘기를 지났다. 여전히 귀가 얇아 이상한 물건들을 사 모으고, 남편 될 사람 집에 처음 가선 흔들의자에 앉았다가 뒤로 홀랑 넘어지기도 하지만.
첫 직장에선 업무는 엉망이지만 그 회사의 개그담당이었고 삶은 어수선하고 게으르지만 그럭저럭 행복하고 순탄하게 나아가는 중이다. 이렇게 청소년기와 회사생활의 짧은 이야기들이 복숭아통조림에 담겨 있다면, 원숭이의 의자는 작가로서의 본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라기보단 작가라도 여전한 본인의 모습을 보여준달까.
인도여행, 비틀즈라면 사죽을 못 쓰는 남편, 그런 남편과 만난 이야기, 첫 연재와 TV방영, 그리고 삶.
모모코는 요시모토 바나나와 절친이라고 한다. 인도여행을 떠난다는 소식에 혹시 이젠 영원히 못 볼 수도 있다며 요시모토 바나나가 찾아왔단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엔도 슈샤쿠! 엔도 슈샤쿠 작가가 마루코는 아홉 살을 좋아해서 만나게 된 에피소드도 있다. 소설과의 괴리감이 너무 컸다. 유쾌한 인물같지만, 아재개그에는 조금 실망이다.
엔도슈사큐와의 만남 중~
<선생님이 부르시기에 나는 무슨 일인가. 하고 놀라서 그쪽으로 후다닥 달려갔다.
숨이 차서 헉헉거리며 호흡곤란을 일으키려는 내 귓가에 선생님은 “저 남자 말이지”하고 말하며 남편 쪽을 가리켰다. “앞으로 여자 많이 울릴 거야”라는 말만 남긴 채 휙 등을 돌리더니 히히힛, 하고 악마처럼 웃으며 가버리셨다. 그 자리에 남은 나는 살면서 한 번도 맛본 적이 없는 허탈감에 휩싸였다.
다음날, 아침 10시에 전화하라는 선생님의 말씀 때문에 사실 남편은 의사 소개 따위 관심도 없었지만 지시한 시간에 일어났다. 그리고 엔도 선생님에게 받은 메모로 전화를 걸었더니, 연결된 곳은 다름 아닌 도쿄 가스 영업소였다. >
<복숭아 통조림>과 <원숭이의 의자>는 마루코의 작가인 모모코의 이야기다.
마루코가 모모코의 이야기니 사실 이건 마루코의 사춘기와 성인판 이야기인거다. 여전히 마루코의 마음을 가지고, 모모코는 개그담당으로 잘 살아가고 있다면 좋겠지만, 작가님은 53세란 이른 나이에 돌아가셨다.
어린 시절, 조금은 창피한 사춘기와 여전히 창피한 사춘기를 거쳐 허술한 어른으로 살아가는 이야기. 부담없이 읽으며 키득거릴 수 있는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