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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우딴루 지음, 쩡수치우 옮김, 에드워드 양 시나리오 원작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남편이 좋아하는 영화가 있다. 정우란 배우가 주연인 <바람>이란 영화다.
80년대 남자고등학생들의 모습을 그린 영화로, 까까머리에 교련복을 입고 패거리로 몰려다니며 싸울 듯 말 듯, 그러나 정작 큰 싸움은 없는 영화. 공부 말곤 모든 것이 금지된, 패거리로 몰려다니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량학생이 되던 그 시절, 껄렁한 척 거리를 헤매는 아이들도 그들 곁을 지나는 어른들도 쓸쓸해 보인다. 끌려가고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 한 마디가 무섭던 그 시절의 어른들 곁에, 아이들의 소심한 반항에서 거친 폭력까지 어쩌면 그들 나름의 탈출구가 아니었을까.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을 보면서 <바람>을 떠올렸다. <고령가 살인 사건>은 웃음기도 조금의 여유도 모두 빼버린 <바람>이었다.
대만의 뉴웨이브운동을 주도한 에드워드 양이 영화로 만들었고, 후에 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사실 영화를 먼저 보고, 이 소설을 읽게 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말라버린 듯한 거리와, 비 오는 거리의 느낌,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과 걸어 가는 아이들, 어깨가 쳐진 아버지의 흔들리는 눈동자와 어머니의 힘겨움, 그리고 달라지는 소녀와 소년의 눈빛을 소설이 모두 표현할 순 없을 테니 말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감독인 에드워드 양이 실제 13살이었던 시절, 대만에서 최초로 일어난 미성년자 살인사건을 다룬다. 그 때 나이 14살인 쌰오쓰가 같은 나이의 여학생 샤오밍을 칼로 찔러 사망케 한 사건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아이들이 소공원파와 217파로 나뉘어 잔인하게 싸우고, 혹은 여러 이권에 개입해 돈을 챙기기도 한다. 매미소리 때문에 국어시험을 망쳐 야간 중학교에 다니게 된 샤오쓰도 얼떨결에 소공원파와 어울리게 된다.그 곳엔 의리보단 비열함과 돈이 우선이다. 샤오밍은 동네에서 가장 예쁜 소녀이며 소공원파의 두목 허니의 여자친구다.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살인을 했고 쫓기는 신세이지만, 결국 반대파에 의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샤오쓰 또한 샤오밍을 좋아하게 된다. 그 후 샤오쓰는 불량한 태도로 퇴학을 당하고, 돈 많은 집 아들인 샤오마의 집에 몸을 의탁한 샤오밍을 칼로 찌른다.
그럼 이건 치정에 의한 14살짜리들의 살인이야기인걸까. 그렇지만 샤오쓰는 샤오밍을 찌르고 어쩔 줄을 모른다. 죽을 줄 몰랐다는 듯 일어나라며 울고 있는 샤오쓰는, 칼을 지고 있는 샤오쓰마저 안쓰럽게 만든다. 아픈 엄마를 가진 가난하고 예쁜 소녀 샤오밍, 어찌해야 할지 모를 폭력과 두려움속에서 불안함만 가득한 샤오쓰, 샤오쓰의 살인은 동정받지 못하겠지만, 그가 발 딛고 있던 그 현실의 무게에 대한 아픔은 생각해 볼 문제가 아닐까.
장제스와 함께 대만으로 건너온 이들(외성인이라 불린다)은 제일 먼저 기존에 살고 있던 이들(본성인)을 빨갱이 등으로 몰아 3만 여명을 죽였고 14만 명을 감옥에 보낸다. 그 다음은? 외성인 출신들 중 장제스의 독재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대거 숙청이 시작된다.
샤오쓰의 아버지 또한 청탁을 거절했다가 붙잡혀가 고초를 겪는다. 가난하지만 정도를 걸었던 아버지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샤오쓰는 알 수 없는 마음에 점점 엇나간다.
샤오쓰가 영화촬영장에서 훔친 손전등은 어둠 속에서, 불안한 상황 속 잦은 정전 속에서 작은 빛을 만들어낸다. 샤오쓰가 바라는 작은 희망, 샤오쓰는 그 희망을 내려놓고 샤오밍에게 칼을 겨눈다. 왜 일까. 샤오쓰도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왜?
고향을 잃고 낯설고 외딴 섬에 유배되어 탈출구 없는 삶을 사는 어른들, 고향이 무엇인지도 어디에 속하는지 정체성을 잃은 체 방황하는 그 다음 세대들에 대한 이야기다. 혼돈 속에 무작정 앨비스 프레슬리에 심취하며 서부영화의 카우보이에 열광하는 뿌리 없는 이들, 그래서 그들은 쉽게 뽑히고 밟혀 버린다.
1960년대
국가가 울리면 멈추는 모습,
패전으로 철수한 일본인 가옥에 살며 일본음악을 듣는 어른들.
군인들, 빼곡이 들어찬 교실의 같은 옷과 같은 머리스타일을 한 아이들, 선생들의 폭력과 아이들의 패싸움.
역사 앞에 개인은 자유로울 수 없는 것.
과거의 우리와 닮은 모습에, 소년이 걸어가는 뒷모습에 눈길이 간다. 친구인 캣이 녹음한 테이프가 샤오쓰에게 닿지 못하고 쓰레기통에 버려지듯,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역사는 개인을 구겨서 던져버린다.
<고령가 소년 살인 사건>은 책보단 영화다. 영화 속 그 모든 감정들을, 그 풍경과 느낌을, 그 소품이 가지는 아련함과 야구배트에 부서지던 학교의 전등을, 하얀 종이위에 무기력하게 이름을 써내려가던 아버지, 아버지와 걷던 거리 그 곁을 지나던 장갑차와 먼지들을 대면해야, 그 해 여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대만의 역사를 조금 알아두는 것이 읽는데 도움이 된다. 대만의 고대왕조인 대두왕조는 꽤나 번성했다고 한다. 그 후 포르투갈 사람들이 대만을 발견하곤 울창한 삼림을 보고 포르모사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 네덜란드인들이 이주하면서 사탕수수등과 같은 플렌테이션 농업이 시작되었다. 노동력 보충을 위해 한족들이 건너왔고, 특히 청에 멸망한 명나라 세력이 대만으로 이주,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새로운 세력을 형성하지만 청의 공격으로 멸망, 청의 지배를 받게 된다. 그 후 한족들이 대거 이주하면서 원주민과 갈등이 생겼고, 한족들은 원주민들을 고산지대로 쫓아내게 된다. 19세기 후반엔 중일전쟁의 패배로 일본에 대만이 넘어가게 되면서 50년간의 일본지배가 시작된다. 일본인은 철저하게 원주민과 일본인, 한족 등을 구분하여 차별했고, 결국 그 차별이 불씨가 되어 우서사건이 발발한다. 우서지역에서 순찰중이던 경관과 원주민부족장의 손주 결혼식 행렬이 만나게 되고, 원주민부족장이 친절히 술을 권했으나, 일본인 장교가 더럽다며 오히려 원주민부족장을 구타했고, 이 일을 계기로 차별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다. 일본인들은 원주민들을 대량학살했고, 그 후 일본인들은 기만적인 유화정책을 펼쳤다. 일본 패망 후, 대만은 장제스의 국민당 지배 하에 놓이게 되었고, 45년 이전부터 와 있던 이들(본성인)과 그 후 들어온 이들(외성인)의 갈등이 커져갔다. 특히 45년 이후 들어온 이들을 외성인이라고 하는데, 이 외성인들의 부정부패와 차별은, 오히려 일본지배가 나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결국 1947년 2월 28일 외성인들의 부패에 대한 항의 등 시위가 일어났고, 수많은 본성인들이 살해당했다. 1949년 공산당에 패한 장제스가 도망쳐 오면서, 대만은 중국을 다시 찾는다는 명분하에 엄격하게 계엄이 유지되었고, 언론과 정치의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후 1988년 본성인 출신의 리덩후이가 총통이 되면서 계엄령이 해제되고, 2.28 사건의 진상조사와 개혁이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지금도 본성인과 외성인, 고산족으로 불리는 원주민등에 대한 차별과 불평등은 나아졌다곤 하지만 다른 이름표를 붙이곤 여전히 서로를 미워하길 바라고 있진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