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벌거벗은 미술관 - 양정무의 미술 에세이
양정무 지음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벌거벗은 미술관 양정무
미술입시생이었던 친구가 사랑에 빠진 인물이 있었다. 바로 줄리앙.
아그리파, 비너스, 그리고 줄리앙은 미술관련 입시생이라면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친구 또한 나중엔 꿈에서 줄리앙이 나오고, 그 주변으로 자신이 최근에 데생한 라면봉지들이 찌그러진 주전자와 함께 흩날리는 꿈을 꿨다며 호들갑을 떨곤 했다. 그러다 영재발굴단이란 프로를 잠깐 보게 됐다. 미술영재로 나온 아이가,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입시미술학원에 가게 되었고, 거기서 매번 석고상만 그리다 보니 오히려 가진 재능이 퇴보했다는 사연이었다. 어찌 그려야 할지 몰라 헤매는 그 아이 앞에서, 한 미술가 분이 과감히 석고상을 던져 깨버렸다. 깨진 파편들을 그려보라며, 저 파편들 또한 석고상이라며 아이에게 환하게 웃어주셨다. 아이는 다시 힘을 찾았고,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신나게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끝이 났다.
빙겔만은 단순하고 고요하며 위대함을 보여주는 그리스미술을 극찬했고, 그의 책들은 대박이 났다. 그리고 그리스는 유럽문명의 모태로서 존경받으며 떠받들어졌다. 그렇지만 그리스미술의 시작은, 그들이 야만인 미개인으로 여기는 메소포타미아와 연결되는 페르시아와 관련이 깊다. 또한 화려하게 채색되었지만, 그저 세월에 의해 탈색되었고,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그리스 예술이 아니라, 로마가 모사한 작품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유럽인들은 자신의 뿌리를 열심히 훔쳐 자신들의 박물관을 미술관을 채웠고, 다양한 변명을 들어 애써 돌려주려 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 프랑스는 자신들이 약탈한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줄리아노 데 메디치의 조각상을 이탈리아에 돌려주게 되면서, 복제를 만드는 권리를 획득한다. 그런 석고상들이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로 들어오게 되고, 프랑스식 이름인 줄리앙이 된 것.
줄리아노 데 메디치, 빼어난 미모로 유명했고, 보티첼 리가 사랑한 시모네타 베스푸치와 연인관계였지만, 25살에 반대파 파치가의 음모로 죽게 된다. 그의 사생아는 형인 로렌초에 의해 양육되고 훗날 교황 클레멘스 7세가 된다.
실제로 이런 서양식 데생교육 등은 일본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달되었고, 우리나라의 최초 서양화가들은 유학 등에서 데생의 어려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붓으로 그림을 그렸던 이들이니 아무래도 연필조차 생소했을 것이다.
아름다움은 모호하다. 보는 이에 따라 다르다. 그럼에도 우린 굳이 순위를 메기고, 혹은 수치화를 통해 아름다움에 대한 잣대를 만들려고 한다. 그 잣대조차도 우리가 만든 것이라기 보단 미에서 우위를 선점한 유럽 등의 잣대다. 이 책에선 그런 예로 황금비율의 허상을 말한다. 실제로 황금비율이란 정확하지 않으며 다 조금씩 다르다. 그럼에도 유럽의 황금비율을 예로 들며, 우상학에까지도 그 범위를 넓혀 타인종보다 나은 근거로 삼는다. 이런 것들이 결국은 전쟁도 다툼도 만드는 것이다라며 비판한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에게도 있다. 금강비, 각종 집터나 무량수전, 석굴암 등의 금강비는 1:1.414로 금강산처럼 아름다운 비율이라 해서 금강비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이런 기술적인 면이 인종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이외에도 웃는 얼굴와 예술에 대한 글도 담겨 있다.
그리스 시대의 아르카익스마일,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도 그런 미소를 발견할 수 있다. 그 후 플라톤식 극도로 이상화된 평온한 얼굴 즉 무표정의 시대, 그리고 알렉산드로대왕 시절의 개성과 개별적인 모습의 표현등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얼굴무늬 수막새”가 떠올랐다.
경주에 들어가는 길목 커다랗게 웃고 있는 깨진 수막새. (기와는 암막새와 수막새가 있다. 암막새는 간단하게 휴지심을 반으로 갈라 놓은 모양이다. 그것을 하나는 위로 하나는 아래로 하면 암막새 모양이 된다. 그런 암막새 기와의 끝을 막는 역할이 수막새, 그래서 동그라미 모양이다. 대부분 연꽃이나 구름등을 그려넣는데 특이하게 이 수막새는 얼굴무늬다. 일제강점기 일본인 다나카 도시노부가 사갔으나. 광복이후 설득 끝에 1972년 보상없이 무상으로 기증받았다. 엘지-엘지는 럭키와 금성을 본 뜬 것, 여기서 럭키는 즐거울 락, 기쁠 희, 락희와 비슷한 발음을 본땄다고 한다.-의 얼굴 로고 또한 이 얼굴무늬 수막새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했다고 한다. )
약간의 깨짐이 오히려 더 신비스런 미소를 생각게 하고, 여유를 느끼게 해 주는 소중한 얼굴무늬 수막새다.
역병이 돌면서 부자들은 교회를 짓고, 혹은 교회 벽화나 그림 속에 자신의 얼굴을 넣어 기증을 하며 자신들의 부가, 자신들의 삶을 유지시켜주길 바랐다. 가난한 이들 또한 작은 돈이나마 기증하며 삶의 평온이 찾아오길 바랐다. 지금 우리도 그런 마음이 아닐까. 과거의 소소했던 행복들을 조금은 희생하며 평온이 찾아오길 바란다. 역사는 페스트 후, 르네상스와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역병을 이겨낸 승리의 원동력에서 왔다고 한다. 현대의 역병이 끝난 후, 역사는 우리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또 얻은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기록할까.
다양한 작품들과 시대상황, 역사적 이야기들을 작가님의 시선으로 풀어나가는 책이다. 작가님의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만. 이렇게 미술 속 반전이라고 해서 고정관념을 깨는 부분들만 모아놓아 나름 재미가 있었다.
앞 부분 작가님의 사인도 좋았다. <마술같은 미술, 양정무. >
지금이 바로 마술이 필요한 시간이 아닐까.
프란스 할스의 <웃는 기사>의 미소를 보며,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 이 그림엔 재미있는 비밀이 있다. 탕자를 감싸는 아버지의 오른손과 왼손이 크기와 형태가 다르다는 것, 많은 이들이 그 두 손이 아버지의 손과 어머니의 손을 의미한다고 해석한다. 탕자를 안은 아버지의 마음 속엔 어머니의 자애로움 또한 가득하다고 본걸까.>앞에서 온화한 모습으로 따뜻하게 감싸는 아버지의 두 손을 보며 그렇게 잠시마나 여유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