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는 "우리는 모두 시궁창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몇몇은 별빛을 바라볼 줄 안다"고 말한 적이있다. 우리 스스로가 별이 될 수는 없지만, 시선을 시궁창의아래가 아니라 위에다 둘 수는 있다. 이 사회를 무의미한 진창으로부터 건져낼 청사진이 부재한 시기에, 어떤 공부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지옥을 순식간에 천국으로 바꾸어주지는 않겠지만, 탁월함이라는 별빛을 바라볼 수 있게는 해줄 것이다. - P13
여러 가지 질문으로 머리가 복잡했던 기억이 있다. 회전 스시는 과연 스시인가, 고래상어는 상어인가, 무표정도 표정인가. 무의미도 의미인가, 단절된 관계도 관계의 일종인가.. 이 세상 속에서 산다는 것은 이러한 모순, 긴장, 혹은 혼란속에서 사는 것이다. 이 세상을 주제로 논술문을 쓴다는 것은그러한 모순과 긴장과 혼란을 직시하되, 그에 대해 가능한 한, 모순 없는 문장을 사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것이다. 세상에 대해 논술문을 쓰기 위해서는 정교하게 정의한 개념 - P40
과 분석적 논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외부 세계에 대한 충분한 경험적 지식이 필요하다. 현실 사회 속에서 고기와 작은고기가 빚는 혼란, 스시와 회전 스시가 일으키는 모순은 단순히 논리학을 통해 해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그러한 모순에 이르게 된 인간과 세계에 대해 일정한 경험적 지식이 있을때, 비로소 그에 대해 모순 없는 문장을 구사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중국 음식을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스시를 좋아해"라고 말하지 않으려면, 중국 음식과 스시에 대한 경험적지식이 필요하다. - P41
세상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이 쌓일수록, 세상은 모순이나긴장이나 혼란으로 점철되어 있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완벽하게 흠결이 없는 혁명가, 오직 탐욕으로만 이루어진 자본가, 오직 순박함으로만 이루어진 농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실은, 도덕적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러지 못했던 혁명가, 너무 게을러서 탐욕스러워지는 데 실패한 자본가, 섣불리 귀농했다가 야반도주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세상을 자기 희망대로 단순화하지 않았을 때에야 비로소 그전까지는 보이지 않던 문제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누군가를 독립운동가 혹은 친일파로 단정해버렸을 때는 보이지 않던 시대의 문제가, 사실은 그가 독립운동과 친일을 동시에 하던 모순적 인물난을 발견했을때 비로소 드러나기도 하는 것이다 . - P42
영정 사진은 망자를 상기시키기 위해 거기에 있지만, 영정 사진이 곧 망자는 아니다. 즉 재현은 그 어떤 대상을 상기시키지만 그 대상 자체는 아니다. 어떤 풍경화도 그것이 표현하는 풍경 자체는 아니다. 어떤 나라의 지도도 그것이 가리키는 나라 자체는 아니다. 어떤 지구본도 지구 자체는 아니다. 호르헤 보르헤스는 이 점을 혼동하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일이 벌어지는지 일종의 사고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누군가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궁극의 지도를 만들겠다고 꿈꾼다. 그는 실제의 풍경과 모든 점에서 일대일로 정확하게 대응하는 지도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의 작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 될수록 그 지도는 점점 더 커져간다. 그래서마침내 지도가 현실과 완벽하게 조응하게 되었을 때, 그 지도의 크기는 현실과 똑같은 크기가 된다. 문제는 그렇게 큰 지도는 들고 다닐 수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현실과 똑같다면그냥 현실을 들여다보면 되는데, 무엇 하러 똑같은 크기의 지도를 들여다보겠는가? - P61
이처럼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은 독자의 관심을 환기하고, 일견 모호하고 불투명한 책 내용을 선명히 해줄 수 있고, 다면, 적인 글 내용에 일정한 방향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제목으로 인해 비로소 글이 완성되는 멋진 경우도있다. 미국의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시를 한 편 읽어보자. 아래의 시는 그 제목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다.
"믿기지 않겠지만/갈등이나/고통없이 평탄하게/살아가는 사람들이/정말 있다./그들은 잘 차려입고/잘 먹고 잘 잔다./그리고 가정생활에 만족한다./슬픔에 잠길 때도/있지만대체로 마음이 평안하고/가끔은 끝내주게/행복하기까지 하다./죽을 때도 마찬가지라 대개 자다가 죽는 것으로 수월하게 세상을 마감한다./믿기지 않겠지만 그런 사람들이 정말존재한다."
찰스 부코스키가 지은 이 시의 제목은 외계인들>이다. - P69
대학에 들어가기 전에 운전, 요리, 각종 수리의 달인이 되고 싶다. 생활의 편의도 편의지만, 연애하는 데 아주 쓸모 있을 것 같다. 운이 좋아 대학생이 되고 나면, 의무적인 인성 교육 따위는 받고 싶지 않다. 참고 받는 인성 교육이라면, 인성은 나아지지 않고 인성 교육이라는 미션을 하나 클리어했다. 는 느낌만 남을 것 같다. 남을 착취하는 것이 나쁘다는 것을자연스럽게 습득할 수 있는 환경에놓이고 싶다. 왕자가 되지못했다는 이유로 흑화되고 싶지 않다. - P91
환자를중년이 되면, 차라리 결핍을 받아들이는 게 낫다. 결핍이오히려 가능성을 만들기도 하는 법이다. 청장년 시절의 어떤결핍이 오히려 자원이 되어 있기를, 그래서 결핍으로 고통받기는 했지만, 결핍이라는 것을 아예 모르고 사는 인생이고 싶지는 않았다고 나직하게 중얼거릴 수 있기를 바란다.
노년이 되면 체력이 현격히 저하된다. 그때 가서 새삼 구해야 할 나라 같은 게 있으면 너무 피곤할 것 같다. 꾸준히 공부해왔다면, 공부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을 것이다. 공부를 하기 위해 매번 결단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결단에 필요한에너지를 절약하여, 나보다 어린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배우는 거다. 수중에 돈이 있으면 기꺼이 지불하면서 - P95
하고 대답했다. "나쓰메 소세키가 좋습니다. 두 사람은 차원이다릅니다." 나쓰메 소세키의 《쿠사마쿠라(草t, 풀베개)》는 다음과 같은문장으로 시작한다. "산길을 오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치를 따지면 모가 나고, 정에 치우치면 휩쓸리고, 고집을 피우면옹색해진다. 이래저래, 사람의 세상은 살기 어렵다. 사람의세상은 이처럼 살기 어렵다니, 《쿠사마쿠라》의 첫 부분은 웬지 단테의 《신곡》 첫 부분을 연상시킨다. "인생을 절반쯤 살았을 무렵, 길을 잃고 어두운 숲에 서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그 거칠고, 가혹하고, 준엄한 숲이 어떠했는지는 입에 담는 것조차 괴롭고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죽음도 그보다는 덜쓸 것이다."
그래서 80대의 우스키 상에게 물었다, 산다는 것은 좋지않은 일입니까? 우스키 상이 대답했다, 좋은 일도 있습니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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