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72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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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규 채용을 하지 않고있다. ‘나는 헛일인 줄 알면서 무라이 설계사무소에서 일하고싶다는 자기소개서와 졸업 작품으로 만든, 휠체어 타는 식구가있는 가족을 위한 집 설계 플랜을 동봉해서 우편으로 보낸다. 간단한 면접 후 예상외로 ‘나‘는 채용된다. 알고 보니 무라이 슌스케는 오랜 지인인 문부장관의 내밀한 부탁으로 국립현대도서관설계 경합에 참여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도쿄의 아오야마에 있는 본사와 여름이면 온 사무실이 다 옮겨가는 가루이자와의 여름 별장에서 무라이 슌스케 선생하고 보낸 일 년 남짓한 세월과 삼십 년 뒤에 나가 첨부한 현황에 대한 짤막한 설명으로 이루어져 있다. 큰 기복도 드라마틱한 전개도 없이, 노년의 한 건축가와 그의 건축에 대한 철학과 열정을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공감하는 젊은 건축가의 일상을 담담하게 그린 이 소설은 건축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이 뒷받침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곤충, 조류, 식물, 음식, 역사, 자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세밀한 묘사가 소설의 풍미를 더한다.
길지 않은 세월을 다루지만 소설 속 시간은 유구하고 느리게 흐르는 대하같이 느껴진다. 거기에 탄탄한 구성과 아름다운 언어가 소설에 매력을 더한다. - P423

가와카미 히로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매력은 첫째, 명석하고 막힘없는 언어 구사에 있다. 다양한 건축과 다양한 장소소설 속 가공의 것이 아닌, 우리의 현실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한다. 그 묘사하는 언어는 결코 설명을 위한 언어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 언어들은 그 자체로소설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 되고 결과가 된다. 묘사라는 작업에 불필요한 부분도 모자라는 부분도 전혀 없는 문장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숨결은, 주인공이 선생의 일에 대해 현시욕과는 인연이 없는, 실질적이고 시대에 좌우되지 않는 아름다움‘ ‘디테일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고 모든 것이 최대한 합리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라고 표현한 것이 그대로 작가 자신의 지향점이 되고있음을 일러준다. 사용된 언어는 하나하나 우리 눈에 익숙한 것들인데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가 조합해서 쓰면 마치 부드러운애무 같은 독서감을 선사한다." - P424

담백해 보이는 이 작품은 놀랄 만큼 풍요로운 색채와 향기, 아름다움에 차 있다. 무엇보다도 의식주 중 하나인 건축이 우리의삶과 직결된 것이라는 사실을 재인식시킨다. 가구 하나하나, 가전제품……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건축도 일상의 삶을 풍요롭고 편하게 해주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집이 집주인에게 영혼의 안식과 육체적 평안, 즉 기능과 편리를 동시에 제공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생각하고 연구하는 건축가의삶의 자세에 직결된다. - P422

건축은 준공되고 나서 비로소 생명이 부여된다. 나는 어느새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건축은 이용객과 그 시대에 의해 숨결이 부여되고 살아난다. 그렇게 악취미로 생각되던 니시하라 캐티드럴 성 베드로 대성당도 지금은 주변 풍경의 중심이 되고 조용한 침착함을 느끼게 하고 있다. 사람과 시간이 그 대성당을 키운 것이다. 선생님의 국립현대도서관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대로 흘러, 지나간 세월은 이 모형에 사소한 숨결조차 부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님플랜의 가치가 훼손된 것은 아니다. 선생님 플랜에 생명이 불어넣어지지 않았을 뿐이다. - P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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