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Art & Classic 시리즈
루이스 캐럴 지음, 퍼엉 그림, 박혜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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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는 도대체 어떻게 다시 빠져나올 건지는생각조차 하지 않고 시계 토끼를 쫓아 굴로 뛰어들었다.

21페이지

"신기하다! 신기해"
앨리스가 소리 질렀다. (순간 너무 놀라서 말도 제나왔다.)
"세상에서 제일 기다란 망원경처럼 몸이 쭉쭉 늘어나자,
내 발들아, 잘 있어!"
(위에서 내려다보니 발은 점점 더 멀어져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34페이지

퓨어리가생쥐에게 말했네.
둘은 집에서만났지.
"우리 둘 모두법정으로가자. 나는너를고소할 거야.
자, 거절은 받아들이지않을 테야.
우리는 반드시재판을받아야 해,
등 안침 나는하나도없어.
생쥐가똥개에게말했네. 그런재판이라니요.
존경하는 선생님.
배심원도 없고,
판사도 없는데,
말해봐야입만 아파요."
"내가 배심원을할 거야."
교활하고 늙은 퓨어리가말했다..
"내가근거라는 근거는다 동원할거야.
그래서사형 선고를받게할
거야."

60페이지

아버지 윌리엄, 당신은 늙었습니다. 젊은이니다. 젊은이가 말했네.
머리도 하얗게 세었어요.
그런데 물구나무를 계속 서다니아버지 연세에, 괜찮으세요??

다신은 늙었습니다. 젊은이가 말했네.
이제 눈도 예전 같지 않으세요.
그런데 뱀장어를 코끝에 놓고 균형을 잡으시다니어떻게 그렇게 재주가 좋으세요?
질문을 세 개나 받아줬으니 그걸로 충분하다.
아버지 윌리엄이 말했네. 잔소리는 그만해라!
내가 종일 그런 이야기를 참고 들어야 하니??
저리 가라. 안 그러면 계단 밑으로 걷어차 굴려버릴 테다!!

9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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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의 말들 - 안 쓰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기적을 위하여 문장 시리즈
은유 지음 / 유유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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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사랑을 하면서 되돌아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키지못한다면, 다시 말해서 사랑으로서의 그대의 사랑이되돌아오는 사랑을 생산하지 못한다면, 그대가 사랑하는인간으로서의 그대의 생활 표현을 통해서 그대를 사랑받는인간으로서 만들지 못한다면 그대의 사랑은 무력한 것이요, 하나의 불행이다."

마르크스가 스물다섯살에 쓴 (경제학 -철학수고)중에서

글쓰기는 나쁜 언어를 좋은 언어로 바꿀 가능성을 대변한다.

살다 보니 때를 놓친 것, 사라져 버린 것, 엉망이 되어 버린 것,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이 쌓여 갔다. 자주 숨이 찼다. 참을 인 자로 가슴이 가득 찰수록 입이 꾹 다물어졌다. 토사물 같은말을 쏟아 내긴 싫었던 것 같다.

내 식대로 수영을 글쓰기로 번역해 본다. 수영장 가기(책상앉기)가 우선이다. 그다음엔 입수하기(첫문장 쓰기), 락스 섞인 물을 1.5리터쯤 먹을 각오하기(엉망인 글 토해 내기).
물에 빠졌을 때 구해 줄 수영하는 친구 옆에 두기(글 같이읽고 다듬기). 다음 날도 반복하기

글쓰기의 최전선』을 내고 독자를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기존의 오염된 말로는 내 생각과삶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글을 쓰면서작가님 삶에서 폐기된 언어는 무엇이고, 새롭게 태어난언어는 무엇인가요?" 난이도가 높았다. 나는 오 초쯤망설이다가 답했다. ‘애가 공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말이사라진 것 같다고,

사람을 움직이는 힘은 꽤나 물질적이고 구조적이다. 어떤 당위도 돌아오는 끼니 앞에 무색하다. 그리고 몸은 익숙한곳을 좋아한다. 먹고살기 위해 아침저녁 지옥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퇴근 후 매일 글을 쓰기가 어렵다는 걸, 나는 일 년 1 동안 회사를 다니면서 알았다. 아주 체력이 좋다면 모를까, 난 힘에 겨워 결국 직장을 그만두었다. 수입의 불안정보다.
글쓰기의 불안정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글쓰기에 투신할 최소 시간 확보하기. 글을 쓰고 싶다는 이들에게 일상의 구조 조정을 권한다. 회사 다니면서 돈도 벌고 친구 만나서 술도 마시고 드라마도 보고 잠도 푹 자고 글도 쓰기는 웬만해선 어렵다.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그 손으로 다른 것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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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녹나무의 파수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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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꺼내 줄테니 소원하나 들어주세요 "

절도죄로 감옥에 위기에 처한 레이토에게 나타난 변호사, 감옥에서 꺼내 줄테니 시키는대로 할것인가 ? 말것인가 ? 선택하라고 한다.

어릴적 한번 이후로 연락이 없던 이모로 부터 제안은 " 월향 신사 " 있는 녹나무를 지키는 파수꾼이 되라는 것이다.

갈곳도 없는 천애고아 ,무직인 레이토는 동전 던지기로 녹나무 파수꾼을 하기로 한다.

덤불숲을 빠져나가면 문득 시야가 트이고 앞쪽에 거대한 괴물이 나타난다.

정체는 녹나무다. 지름이 5미터는 되겠다 싶은 거목으로, 높이도 20미터는 넘을 것이다. 굵직굵직한 나뭇가지 여러 줄기가 구불구불 물결치며 위쪽으로 뻗어나간 모습은 뱀이 뒤엉켜 있는 같다. 처음 봤을 때는 완전히 압도되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P. 12

녹나무의 거대한 모습처럼 , 소원을 빌면 100% 들어준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것을 믿고 저녁이 되면 그나무에 소원을 빌러 오는 사람들이 있다. 보름과 그믐날에.

특이하게 낮에는 아무런 효과가 없고 , 그믐날 보름날 밤에만 가장 효과가 있다.

녹나무 파수꾼 첫번째 손님으로 남성의 딸이 아버지가 기도하러 장소에서 기웃거리는 것을 발견한다.

여대생 유미 , 그녀는 아버지의 행동이 요즘 이상하다며, 바람을 피우는 것은 아닌지, 녹나무에 안좋은 기도를 올리는것은 아닌지 알아내고 싶다며 레이토에게 부탁을 한다.

아버지를 따라 들어가서 , 기도의 내용을 염탐하고 싶다고 하는데, 1일차 파수꾼 레이토는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어야 하느냐 마느냐에 고민하기 시작한다.

사회파 미스터리에 강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결이 보이는 작품 ,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2탄인 것처럼

스릴러나 미스터리는 양념 정도이고 , 가슴 따뜻한 감동이 주다.

주인공 레이토도 착하고 순진한 주인공이 아닌 , 순간적인 범죄로 인생을 나락으로 떨어질뻔한 청년이고, 레이토를 도와주는 이모도 일흔의 대기업 커리우먼으로 시크하면서 독특한 성격으로 나온다.

천애 고아로 자란 레이토에게 일일이 생활예절이나 상식을 지적하는 이모와 레이토와의 캐미도 읽는 즐거움을 준다.

어떻게든 상관없잖아요, 젓가락은? 나는 전혀 불편하지 않은데요.”

겉보기가 중요한 거예요. 언제 어디서 사람들 앞에서 젓가락을 써야 할지 모르지요. 됐으니까 얼른 고치도록 하세요.” 자아 자아, 라고 젓가락을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또한 녹나무에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사연 곳곳에서 , 히가시노 게이고만의 미스터리가 섞여서 사연을 풀어가는 줄거리속에서 재미와 감동을 적절히 보여준다.

녹나무의 판타지스런 요소에 사연에 담긴 미스터리, 그리고 청년 레이토의 성장 스토리, 가족애 등등이 모두 담겨있다. 나무의 미신적인 요소에 뭐그리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까 싶은데, 히가시노 게이고라면 어쩌면 다른 재미난 이야기를 그릴 것이라는 기대감을 배신하지 않는 내용이다.

믿보배 처럼 책도 믿고 읽게 만드는 작가가 있다 . 나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별점4개는 유지하는 작가이다.

이번 이야기도 별점4개의 배신은 없었다.

미신이야기가 다그렇고 그렇치 , 라는 뻔한 이야기이상을 넘는 스릴과 추리 그리고 위안과 위로가 있다.

인생에서 실수는 누구나 한다. 실수가 모든 생을 지배하는 사람도 있고 , 실수를 뛰어넘어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아마 히가시노 게이고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

한번의 실수로 너무 자신에게 또는 남에게 가혹한 무게를 던지지 말라고 말이다.

결함 있는 기계는 아무리 수리해도 고장이 난다, 녀석도 마찬가지여서 어차피 결함품, 언젠가 훨씬 나쁜 짓을 저질러서 교도소에 들어갈 것이다, 라고.”

라고 말하는 레이토에게 다시 한번 삶의 기회와 반성의 시간을 레이토의 이모처럼

그리고 망가져가는 아들에게 언제나 그아들의 삶의 회복을 기대하면서 응원하는 어머니의 사연속에서 .

녹나무가 없는 현실의세계에서 녹나무 같은 존재인 주위의 나를 사랑해주는 친구와 가족들이 있음을 , 잊지말라고 말한다. 또한 내가 주위의 사람들에게 녹나무같은 존재가 있음을 ..

고마워요.

하지만 녹나무의 힘은 필요 없어요. 방금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이렇게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해져오는 있다는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미소와 눈빛만으로도 충분하다. 녹나무가 없을 지라도 .

 

"솔직히 말씀드리면 장래에 대해 머릿소없습니다." 마사카즈의 한쪽 뺨이 움찔 흔들리는 1서 레이토는 뒤를 이었다. "기계를 좀 다룰 줄 아는는 배운 것도 없고 특기도 없고, 싸움에 나설 무기는가진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도 항상 그램다. 태어날 때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철이 들었을는 아버지가 안 계셨고 어머니도 일찍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서 살아왔어요. 내 몸은 내가 지켜야했습니다. 오늘까지 그랬으니까 분명 내일부터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잃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에 두렵지도 않습니다. 한 순간 한 순간을 소중하게, 앞에서돌이 날아오면 잽싸게 피하고 강이 있으면 뛰어넘고, 뛰어넘지 못할 때는 뛰어들어 헤엄치고, 경우에 따라서는 흐름에몸을 맡길 겁니다. 그런 식으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죽을 때 뭔가 하나라도 내 것이 있으면 되니까요. 그게 돈이 아니어도 좋고, 집이나 땅 같은 대단한 재산이아니어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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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업 - 나와 세상의 경계를 허무는 9가지 질문
김헌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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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하며 살라고 이야기하면 어떤 사람들은 사사건건 묻고 따지라는 뜻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많은 질문을 던질 필요는 없습니다.
굵직한 질문들을 끝까지 가지고 가는 것이 중요하지요. 반복해서계속 물으며 자신의 답을 검토해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서 ‘질문하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이 많다는 건, 단순히질문의 개수가 아니라 굵직한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반복적으로계속 던진 횟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14페이지

저는 이 책에 존재와 죽음, 자존과 행복, 타인과의 관계 등 아홉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삶에서 중요하다고 할 만한 질문들을 실었습니다. 이는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생생하게 담은 서양 고전이 수천 년간 우리에게 던져온 화두이기도 합니다.
"인간답게 산다는 건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을까?"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페이지15

저는 지금도 어떤 일에 하기에 앞서서 반드시 이렇게 묻습니다.
이 일이 나에게 이득이 되는가? 법에 저촉되거나 일반적인 윤리기준에서 벗어나지 않는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아름다운가? 멋있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추하지는 않은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서배운 질문과 가치 판단의 기술은 21세기를 사는 저에게도 여전히 유용합니다.

페이지 37

소포클레스는 우리에게 묻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당신들은 얼마나 버텨낼 수 있는가?
소포클레스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들이 너무나 크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는 이오카스테의 대사를 통해 반문합니다.
‘자신을 알아야 하는가? 그게 꼭 필요한가?‘

42페이지

‘ 밭과 도로와 집을 보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본 적 있나요?
인간의 무늬들이 모두 타지마할이나 앙코르와트 사원처럼아름답거나 문화적으로 커다란 가치를 지닌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로, 골목길 밭 건물 등 우리 주위에는인간의 무늬들이 저마다 새겨져 있습니다.
이 무늬들은 인류가 지금껏 질문을 던지고
‘나름의 답을 해온 기록이라 할 수 있습니다.

77페이지

인간적인 삶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십시오. 지금까지 내가 만들어온 발자국의 궤적을 돌아보고, 얼마나 인간적인 삶을 살았나를물어보십시오. 만족스럽지 않다며 지난 날을 후회하고 과거를 지 우려고 하기보다는, 앞으로 어떤 길을 만들며 어떤 자취를 남기고갈 것인지를 꿈꿀 수 있는 힘으로 바꿔보십시오. 그것을 고민할 때비로소 우리는 더욱 인간다워질 것입니다.

수천 수백 년간 이 땅에 자신의 무늬를 새겨온 사람들의 삶을 헤아려보는 일은 세상에 태어나 언 일은 세상에 태어나 언젠가 마감할 나의 생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되기도 합니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다.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을 어떻게 보내고신가요? 이 땅에 새길 나의 무늬는 어떤 빛깔, 어떻면 빛깔,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의 기억 속에 어떤 무늬로 남게요? 그리고 나 자신은 다될까요? 떠올리기만 해도낙서처럼 남는다면, 그 삶에 이만 해도 고통스런 낙인처럼, 지우고 싶은 흉한면, 그 삶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103페이지

제가 『오뒷세이아』에서 찾은 것은
‘죽음이 있는 삶‘에 대한 긍정이었습니다.
오뒷세우스를 보면서 비로소 죽음의 가치,
정확히 말하자면 죽음으로 인해분명해지는 삶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불멸의 삶이 아닌 죽음이 있는 삶을기꺼이 선택하실 건가요?

10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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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그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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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간다.
달리 말해, 내 모든 것이 나와 더불어 간다.
내가 가진 것은 모두 가지고 갔다. 사실 내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애초의 용도와는 거리가 멀거나 누군가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돼지가죽 트렁크는 원래 축음기 상자였다. 먼지막이 외투는 아버지의것이었다. 우단 깃이 달린 도회풍 외투는 할아버지 것. 니커보커 바지는 에드빈 삼촌 것. 가죽각반은 이웃 카르프 씨가 준 것. 초록색 양모장갑은 피니 고모의 것, 지난 크리스마스에 선물받은 붉은 포도주색)실크스카프와 세면도구 가방만 내 것이었다.
아직 전쟁중인 1945년 1월이었다. 한겨울에 러시아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사실에 경악해 사람들은 뭔가를 주고자 했다.

짐 싸기에 대하여 9페이지

내게 일은 이미 일어났었다. 그것은 금지된 무엇이었다. 특별하고,
더럽고, 수치스럽고, 아름다운. 오리나무 공원의 제일 은밀한 곳, 짧게 자란 잔디 언덕 뒤편에서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공원 한가운데 있는 둥근 정자로 갔다. 공휴일이면 오케스트라가 연주를 하는 곳이었다. 한동안 정자에 앉아 있었다. 섬세하게 조각된 나무의 틈을 빛이 뚫고 들어왔다. 나는 갈퀴 달린 하얀 덩굴손을 따라 이어지는 텅빈 동그라미, 네모, 사다리꼴의 두려움을 보았다. 그것은 내 혼돈의무늬였고, 어머니의 얼굴에 나타날 혐오의 무늬였다. 정자에서 결심했다. 다시는 이 공원에 오지 않으리라. 1 멀리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 자주 - 이틀을 못 넘기고 그곳으로 갔다. 랑데부하러, 공원에서는 그렇게들 말했다.
나는 처음 만났던 남자와 두번째 랑데부를 가졌다. 그는 제비라고

10 페이지

마지막 여름 랑데부가 있던 날, 나는 오리나무 공원에서 곧장 집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환상(環狀)도로에 자리 잡은 성삼위일체교회로 들어갔다. 이 우연이 운명을 만들었다. 나는 다가오는 시간을 보았다. 제단 옆 기둥에 잿빛 외투를 입은 성자(聖 者)가 서 있었다. 그는 목에 외투 깃 대신 양을 두르고 있었다. 목덜미에 두른 양은 침묵이었다. 세상에는 사람들이 말하지 않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목덜미의 침묵이 입 안의 침묵과는 다르다고 말할 때, 이말이 무슨 뜻인지 나는 안다. 수용소 시절 이전부터 그 이후에 이르는이십오 년 동안 나는 공포 속에 살았다. 나라와 가족들에 대한 공포..
나라가 나를 범죄자로 가두고, 가족들이 나를 치욕으로 여겨 내쫓의리라는 이중 추락의 공포였다. 혼잡한 거리에서 진열장 유리를, 전차와 주택 창문을, 분수와 물웅덩이를 들여다보았다. 혹시 내 속이 비치는 건 아닐까 미심쩍어하며.

12. 페이지

헛간과 구덩이를 오간 발자국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더는 남몰래 음식을 날라줄 수 없게 되었다. 온 정원에 발자국천지였다. 눈이 그녀를 밀고했다. 그녀는 숨어 있던 곳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했다.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절대 눈을 용서하지 않을거야, 그녀가 말했다. 방금 내린 눈을 내가 다시 그 모양 그대로 만들어놓을 수는 없어. 아무것도 닿지 않은 것처럼 꾸며놓을 수는 없는 거라고, 땅은 그렇게 할 수 있지, 그녀가 말했다. 모래도 그렇고 마음만먹으면 풀까지도. 물은 스스로 제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 물은 닥치는대로 삼키고, 또 삼킨 후에는 곧 닫히니까. 그리고 공기는 늘 모양이똑같지. 사람 눈에 보이지도 않으니까. 눈이 아닌 다른 것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을 거야, 트루디 펠리칸이 말했다. 이게 다 두껍게 쌓인눈 때문이었어. 눈은 마치 떠났던 고향을 찾아온 듯 반갑게 왔지만 알고 보니 러시아인들의 종노릇을 한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눈이 배신했기 때문이야,
트루디 펠리칸이 말했다.

페이지 21

시간이 갈수록 사람들은 서로 익숙해져갔다. 좁은 열차 안에서 사소한 일들이 일어났다. 자리에 앉고, 일어섰다. 짐가방을 헤집고, 쏟고 다시 꾸렸다. 용변 구멍에 일을 볼 때는 두 사람씩 담요를 들어 가려주었다.
소소한 일들이 사소한 일들에 딸려왔다. 가축운반용 열차 안에서 개인적인 것들의 부피는 줄어들었다. 누구나 개인으로서보다 여럿 가운데 누군가로 존재했다. 배려는 불필요했다. 한집에 사는 사람들처럼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했다. 말하다보니, 어쩌면 나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조차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다. 비좁은 열차 안에서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어차피 떠날 생각이었고 트렁크에 먹을 게 아직 넉넉해서였는지도 모른다. 머지않아 사나운 굶 주림이 덤벼들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이후 오 년 동안,

배고픈 천사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푸르스름한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 염소들을 애도하였 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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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이날 밤 급작스레 어른이 된 건 내가 아닌, 내 안의 공포였을 것이다. 진정한 유대란 이런 식으로만 가능한지도 모른다. 볼일을 보는 우리의 얼굴은 단 하나도 빠짐없이 철둑을 향하고 있었으니까.
모두 달을 등지고, 꼭 들어가야 할 방문을 쳐다보듯 열차 문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우리를 버려둔 채 문이 닫히고 열차가 떠날까봐 미칠 듯 이 두려웠다.

2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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