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조직학자 오타 하지메가 인정욕구 강박의 문제점을 연구한 책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 어릴 때 공부로 늘 칭찬받다 보니 커서는 지시만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버린 사람, 그림을 잘 그려 선생님께 칭찬받다 보니 칭찬을 의식해 개성이 사라져버렸다는 사람 등의 사례가 나온다. 그게 바로 나였다. 그래서 야망이없었다. 기대하면 상처받으니까. 원하는 게 없으면 좌절할 일도 없으니까.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욕망이 없는 사람이니까. - P6
마음에 어는점을 만들지 말 것. 어떠한 고난이 닥쳐와도 밑바닥까지 추해지지 않을 것. 최대한 우아함과 품위를 유지할 것. 어릴 적 읽은책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 나는 이런 걸 배웠다. 양어머니에게 괴롭힘 당하면서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음이 비뚤어지지는 않을 거야. 그만한 일로 사람을 원망하여 내 마음을 더럽히고 싶지는 않아‘라고 결심하는 『빙점』의 요코와, 아버지가 파산하고 세상을 떠나 쥐가 우 - P7
대는 다락방으로 쫓겨나 부엌데기로 전락하고서도 ‘하늘이 두쪽나누더기를 걸쳤다고 해도 속마음은 공주처럼 될 수 있어‘라고 마음먹는도 이것 하나만은 바뀌지 않을 거야. 내가 만일 공주라면 너덜너덜한소공녀의 세라가 나의 롤 모델이었다. 사회생활하다 보면 종종 닥치는 모멸의 순간 - 여성이기 때문에, 어리기 때문에, 직급이 낮기 때문. 에, 금력이 없어서… 그럴 때마다 그들처럼 품위 있게 사고하고 그들처럼 우아하게 행동하고 싶었다. 유교 사회에서 대개 남성에게만 부여되던 수신이라는 덕목을 매끄럽게 수행하는 것, 그것이 나의 야20-망‘이라면 야망이겠다. - P8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한 여자아이에게는 책 몇 권이 인상의 선택을 좌우하는 일이 있다. 하지만 그 아이는 그런 것도 알지 못하그저 빨려들 듯이 책을 읽고 있다. 자신을 둘러싼 현실에 자신이 없는 만름 책에 빠져든다. 그 아이 안에는 책의 세계가 여름 하늘의 구름처럼 몇 층으로 겹쳐 솟아나고, 아이 자신이 거의 책이 되어버린다.
(먼 아침의 책들) 스가 아쓰코 지음 송태욱 옮김 - P20
독서는 어떻게 힘이 되는가, 세라에게서 배웠다. 나의 두 번째 책모든 기다림의 순간, 나는 책을 읽는다』에 이런 문장을 쓴 적이 있다. "외계가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강도로 압력을 가해올 때, 그 버거운삶의 순간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책을 읽는다."
오랫동안 내게 독서란 지식을 쌓기 위한 일도, 즐거움을 위한 것도아니었다. 도피였다. 책 속으로 도망치지 않고서는 현실을 감내할 수없기 때문에 은신처를 찾아가서 책을 읽었다. 힘겨운 일이 생기면 고통을 겪고 있는 책 속 누군가를 생각했다, 세라처럼, 친구 어먼가드가형편없는 세라의 다락방에 찾아와 "너 여기서 계속 지낼 수 있겠어?" 묻자 세라는 답한다.
"여기가 아주 다른 곳인 척하면 그럴 수 있을 거 같아. 아니면이야기에 나오는 장소인 척하거나. 이보다 더 끔찍한 곳에서 지낸 사람들도 있어. 디프 성 지하 감옥에 갇혀 지낸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생각해보면 알잖아. 바스티유 감옥에 갇혀 지낸 사람들은 또 어떻고!" - P25
언젠가 세라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에게는 어쩌다 우연히 생기는 일이 많아. 내게는 좋은 우연이 많이 따랐어. 어쩌다 보니 늘 공부하고 책 읽는 게 좋았고, 배우고 읽은 걸 잘 기억하게 되었지. 또 어쩌다 보니 잘생기고 다정하고 머리 좋고, 내가 좋아하면 무엇이든 다 해줄 수 있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난 거고, 난 본래 착한 아이가 아닐지도 몰라. 갖고 싶은 걸 다 가질 수 있고 모두들 잘해준다면, 누구라도 착해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거 아닐까?" (소공녀) 중에서 45쪽 펭귄클래식 코리아 - P27
동양의 언어로 다시 풀이하자면, 『소공녀』는 결국 주군 세라가 몰락해 가신들을 이끌고 다락방이라는 험지로 유배 갔다가 자신을 찾아 헤매던 아버지 친구의 조력을 받아 영토와 왕위를 회복하는 이야기다. 소년들은 무협지를 읽으며 제 안의 영웅과 만날 수 있었지만, 소녀들에게 허용되는 영웅 서사란 드물었던 1980년대에 세라를 동경했던어린 나는 ‘아무도 몰라줄 때에도 한결같이 진짜 공주처럼 행동하겠다‘는 그 결기를 배우고 싶었다.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의 민낯마저 아름다운 사람이 되겠다고, 『소공녀』를 읽으며 결심했다. . - P30
노라 에프론 감독의 영화 〈유브 갓 메일>에서 어린이책 서점을 운영하는 주인공 캐슬린(멕 라이언)은 말한다. "어릴 때 읽은 책은 자아의 일부분이되거든요. 살면서 나중에 읽는 책과는 전혀 다르죠." 그렇게 자아의 일부분이 된 『소공녀』를 한 해를 거의 마무리하는 시점, 고요하고 거룩한성탄 전야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며 다시읽어보았다.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원서와 대조해가며 읽는데 눈물이툭, 떨어졌다. 다이아몬드 광산 개발에 성공한 아버지 친구를 만나 부를 되찾은세라에게 민친 선생이 "이제 넌 다시 공주가 된 기분이겠구나"라고 빈정대자 세라는 낮은 목소리로 말한다.
"저는 다른 어떤 것이 되지 않으려고 애썼을 뿐이에요. 가장춥고 배고플 때조차도 다른게 되지 않으려 애썼다고요."" - P32
출판사에 전화를 걸어 "이 책 내용 중 사람들이 가장 공감하는 게뭔가요?" 하고 물어봤다. 빨강 머리 앤과 다이애너는 없다‘라는 챕터라는 답이 돌아왔다. ‘모태 친구에 대한 환상‘이라는 부가 설명이 붙은이 챕터에서 저자는 말한다.
오래 만나왔다고 해서, 많은 것을 공유해왔다고 해서 모두 친구인 건 아니다. 진짜 관계인 것도 아니다. (…) 빨강 머리 앤과 다이애너와 같은 운명의 친구, 영원히 함께하는 단짝이란 존재가 현실에 항상 존재하는 건 아니다. 친구 또한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존재일 뿐이다.
• 『이제껏 너를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성유미 지음, 인플루엔셜, 2019, 133~134쪽. - P100
"Kindred Spirits are not so scarce as I used to think. It‘ssplendid to find out that there are so many of them in the world." Kindred Spirits, 동류, 선생님과 나는 동류였던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서로를 알아본다. 앤은 말한다. "동류란 내가 생각해왔던 것만큼 드물지 않아요.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찾아내는 건 멋진 일이에요." 그러니까 선생님을 뵙고 알게 된 건정말 멋진 일…. 슬프고 허망하던 마음이 그나마 조금 정리되었다. "신은 하늘에 계시고, 모든 것이 평안하도다." - 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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