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 파랑새 그림책 93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 / 파랑새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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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한참을 걷던 여우가 까치를 돌아보며 말했어.
"이제 너와 개는 외로움이 뭔지 알게 될 거야."
여우는 까치를 혼자 남겨 두고 가 버렸어.
사방은 쥐 죽은 듯 고요했어. 한순간 아주 먼 곳에서날카로운 울음소리가 들려왔어. 승리의 소리인지절망의 소리인지는 알 수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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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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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지. 왜냐하면 이 사람."
자기 말에 귀 기울여줄 상대가 없으니까, 라는 말은 꾹 삼켰다.
이렇게 주목을 받고 지지해주는 이성이 있어도, 사실을 왜곡해서 계속 떠드는 한, 가지이는 영원히 외톨이일 것이다. 아무리 소리쳐봐야, 아무도 받아주지 않는 말을 홀로 배출하는 데 지나지않는다. 리카는 추하다고도 불쌍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당연한 사실로 인식했다. 나름대로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일 테고,
그런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가지이는 이쪽을 조용히 보고 있다. 거봉 같은 눈이 리카를 빤히 보고 있다. 마치 도전하는 것처럼.
무엇이 거짓이고 무엇이 진실인가. 둘 다 별 차이는 없어. 그렇다면 내가 맛있다고 느낀 쪽을 선택하는 게 뭐가 나빠? 씁쓸한 진실이 도대체 몸의 어디를 채워준다는 거야. 살벌하고 재미없는 현실에 녹인 버터를 듬뿍 발라 향신료와 조미료로 맛을 내는 게 뭐가 나쁘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게 뭐가 나빠. 그것이 나 나름의키스이고 사아오며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역사에 기초한 진 - P568

호랑이의 뼈는 어디로 갔을까?
『꼬마 삼보 이야기』의 호랑이들은 나무 주위를 계속 돌다 버터가 됐다. 그런데 나무 주변에 뼈는 없었을 터다. 뼈까지 버터 속에녹아들었을까? 아니, 그렇지 않다. 뼈가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 생물이 정말로 죽었는지 어쨌는지 모른다. 어쩌면 예상외로 호랑이들은 지금도 정글에서 건강하게 살고 있지 않을까??
가지이의 피해자들 역시 정말로 마음을 빼앗겼는지 어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녀에게 빠져 있다고 스스로 세뇌한 것은 아닐까? 만사 귀찮아서 먹는 것도 사는 것도 내팽개치고는, 가지이라는 격렬한 회전에 몸을 맡기고 일상을 방치한 데 불과하지 않을까? 가지이가 누군가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는 눈에 보이는증거, 이를테면 지금 리카의 눈앞에 보이는 사야를 바라보는 시노이 씨의 눈빛이나 료스케 씨에게 고기를 나눠주는 레이코의 행동같은, 확고한 애정의 증거를 아직 한번도 목격하지 못했다. 전부가지이 마나코의 말뿐이다. - P588

그래도 칠면조 세이로소바는 리카가 자신의 욕구와 취향과 몸상태와 마주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직접 고안한 자신만을 위한레시피였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독창적인 레시피를 아주 많이 만들고 싶다.
그중에서 괜찮은 것은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좋아하는 상대든 거북한 상대든, 만난 적 없는 상대든 상관없다. 그 사람도 리카의 레시피를 응용해서 자신만의 것으로 만들겠지. 자신이 느낀 마음의 흐름이나 기쁨을 누군가가 경험해준다면, 그것만으로 리카의 가슴은 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고안한 이름 없는 무언가가 색과 형태를 바꾸면서 세상에 파문처럼 번지면 좋겠다. 수프에 마지막으로 넣는 한 방울의 숨은 맛처럼, 그런 연쇄 작용을 마음 한편으로 희미하게 느끼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금 가지이를 만나고 싶다. 만나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이세상은 살아갈, 아니, 탐욕스럽게 맛볼 가치가 있어요, 라고, - P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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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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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친구도 주로 탄탄한 몸...
을 유지하기 위해 요가를 했다. 정신적 깨달음과는 전혀 관계없이, 뭐라고 주장들을 하건, 난 내가 아는 요가를 한다는 사람들 - 게다가 친구가 아는 사람 중 요가를 하는 사람은 엄청 많았다~ 누구에게서도, 어떤 정신적 성장도, 어떤 도덕성의 개선도 목격한 바가 전혀 없어. 친구가 말했다. 요가를 해서 더 나아진 인간이 됐다는 사람도 본 적이 없어. 더 나아진다는 것이 스스로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는 뜻이 아니라면 말이야. 오히려사람들이 갈수록 자기중심적이 되어가던데, 심리 치료를 받고있는 사람들에게서도 때때로 볼 수 있는 현상이지. - P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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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지내요
시그리드 누네즈 지음, 정소영 옮김 / 엘리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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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평가할 때는 그들이 겪고 있는 고난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디트리히 본회퍼의 말을 잊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이제 이 소설을 통해알게 된 시몬 베유의 말도 함께 기억할 것이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당신의 고통은 무엇인가요?(Quel est ton tourment?)"라고 묻는 일이라는 것. 이 작품은 저 물음의 소설적 실천이다. 말기 암 환자인 친구가 스스로 삶을 끝내는 일의 곁을 지키는 중인 서술자는 지금 세계의 존재자들이 자신의 고통과 ‘어떻게 지내는지‘를 묻기 시작한다. 지인들, 작품 속캐릭터, 동물, 심지어 지구 그 자체에게까지.

그렇게 채집한 이야기들 - 웰다잉‘에서 ‘기후위기에 이르는 을 분방한 구조와 리드미컬한 어조로 들려준다. 통찰과 공감이 어우러진 그의 이야기를 딴짓을 해가며 듣는 일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나는 근래 드문 집중력을 발휘해 이 소설을 두 번 연달아 읽었고 그러고도 성에 차지않아 이 작가가 쓴 수전 손택 회상기까지 내처 읽었다. 뉴욕 지식인 사회한복판에서 성장한 작가다운 날카로운 지성이 내가 동경하는 미덕인 ‘다.
정한 예리함‘ 혹은 관대한 명석함‘에까지 도달해 있으니 이제 시그리드누네즈가 쓴 모든 글이 나에게 중요해졌다.
신형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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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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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이 마나코가 악인이란 것은 틀림없고, 구제불능의 인격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만은 말할 수 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여자.
리카는 들이켜듯 소리 내어 면을 먹었다.
섹스가 끝난 뒤 훌쩍 밖으로 나와서 맛보는 라면, 그것은 상상했던 관능의 연장이 아니었다. 오로지 혼자서만 얻을 수 있는 자유의 맛이었다. 방에 남겨두고 온 마코토를 생각하고, 그가 자신에게 남긴 체취와 손가락 자국을 음미하면서 부지런히 면을 입으로 날랐다.
욕망을 끝없이 추구할 수 있는 이유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아서다. 고향이라는 장소를 버리고, 제대로 된 직업도 친구도 없는 그녀가 이 도시에 가진 인식을 비로소 깨달았다. 도쿄에서 태어나서 자란 자신은 이 지역의 관습이나 가족이나 역사에서 좋든싫든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가지이에게 이곳은 언제까지나 나들이 장소이고, 화려한 무대이고, 멋대로 돌아다니다 창피함은 버리고 가는 이국이다. 여행중‘이라는 표현은 주제 파악도 못하고 오드리 헵번에 빙의해서 했던 소리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결혼 상대를 찾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소속될 생각이 없었다. 그건 확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시간에 남자를 남겨놓고 나와서혼자 라면을 먹고 싶어질 리 없다.
1 ㅇ ㄱ하이 아 - P189

맛있는 것 먹으러 다니기 좋아하고, 요리 좋아하는 풍만한 체형. 그것만 들으면 대부분 남자는 ‘가정적‘이고 점잖은 여자라고,
멋대로 부풀려 상상한다. 자신들을 능가하는 감춰진 내면은 없겠지, 하고 방심한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

리카는 어렴풋이 깨닫기 시작했다. 식은 원래 개인적이고 자기 본위의 욕망이다. 미식가란 기본적으로는 구도자라고 생각한다. 우아한 말로 아무리 포장해도, 도전과 발견을 되풀이하면서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날마다 정면으로 맞서고 있다. 직접 요리를만들게 되면 점점 바깥 세계를 차단하고, 정신에 성채를 쌓게 된다. 불꽃과 칼을 사용하여 몸소 식재료에 도전하고, 제압하고, 마음대로 만든다. 가지이의 블로그를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사실이 떠오른다. 지나친 고지식함. 먹고 싶은 것만 먹는다. 맛있다고생각하는 것만 먹는다. 욕망에 항상 충실하려는 일종의 고지식함이다.


세상의 엄마들이 매일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하느라 고생하는것은 자신이 먹고 싶어서라기보다 가족을 위해서일 것이다. 가지이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먹고 싶은 것을 먹고 싶은 타이밍에자신을 위해 만들었다. 남자들의 컨디션이나 취향 따윈 상관없었다. 그래서 그녀의 요리는 악마적으로 맛있다. 계속하더라도 힘들지 않을 만큼, 요리라는 행위 자체를 즐겼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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