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부르는 이름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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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진에게는 그녀만의 방식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당기는 힘이 있었다. 총명한 빛을 머금은 쌍꺼풀 없는 눈매, 작고 오...
뚝한 코, 윗입술보다 아랫입술이 더 두터운, 굳게 다문 입술, 부드럽게 각진 턱선이 군더더기 없는 짧은 커트 머리와잘 어우러져 단아하면서도 똑 부러지는 분위기를 풍겼다.
만약 누군가의 얼굴이 한없이 밝거나 한없이 어둡기만 하다면, 그것은 비현실적이기 전에 매력이라는 측면에서 아쉬웠을 텐데, 수진에겐 나무가 드리우는 그늘만큼의 차분한 어둠과, 손쉬운 자기연민으로부터 자유로울 만큼의 힘찬 밝음이 함께 머물렀다..-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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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의 타락에 대한 묵시록적인 선고는 되도록 피하고 싶지만, 그래도 할 말이 있다. 현대적인 매체와 오랜 인고를 요하는 책 사이의가장 큰 차이점은, 텔레비전과 인터넷이 여유 시간 속으로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서 자투리 시간을 단숨에 삼켜 버리는 방식에 있다. 나라고 해서 플라톤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가 한두 시간 후 문득 고개를 들어 보니이메일에 답해 주기로 했던 시간이 어느덧 사라져 버렸다는 식으로 말할위인은 아니지만, 나도 종종 독서에 바치기로 했던 시간을 스팸 메일 처리와 링크 확인, 더 형편없게는 컴퓨터 게임을 하느라고 날려 버리곤 한다.
정신적 삶에 관한 고차원적인 언어는 어떤 점에서, 자기 계발을 위한 실용적인 계획에 특권을 넘겨줘야 한다. 문법과 글쓰기, 논리와 분석,

추론에 정통하려면 이것들이 살아 나갈 여분의 정신적 공간을 깎아 내는일을 해야 한다. 고전을 혼자 공부하는 것의 첫 번째 과제는 플라톤식 독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를 활동이 아닌 사상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해줄 30분의 자투리 시간을 찾아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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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회랑 : 국가, 사회 그리고 자유의 운명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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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친구 한 명이 자기 여자친구에게 전화해서 말했어요.

"자기야, 내 전화로는 잠깐 통화가 안 될 거야. 내가 아민 전화로 연락할게. "
얼마 후 그녀가 제게 전화해 그 친구에 관해 묻기에 저는 그가 살해됐다고 말해줬지요. 그녀는 울었고친구들은 제게 ‘왜 그걸 말했냐‘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지요. 왜냐면 그게사실이니까. 이게 일상이야. 그는 죽었다고.‘
제가 휴대폰을 열어서 연락처를봤더니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은 한두 명뿐이었어요. 사람들이 그랬지요. ‘누가 죽으면 연락처를 지우지 말고 그냥 그 사람 이름을 순교자라고 바꿔 놓으라고.‘ …그래서 내 연락처를 쭉 봤더니 전부 순교자, 순교자, 순교자였어요."

시리아의 국가 붕괴는 엄청난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했다. 전쟁전 약 1,800만 명이던 시리아 인구 중 목숨을 잃은 이들이 50만 명에 이르는것으로 추정된다. 600만 명 이상이 국내에서 살던 곳을 떠나야 했고 500만명은 국외로 도망쳐 현재 난민으로 살고 있다.- P25

시리아의 국가 붕괴는 엄청난 규모의 인도주의적 재앙을 초래했다. 전쟁전 약 1,800만 명이던 시리아 인구 중 목숨을 잃은 이들이 50만 명에 이르는것으로 추정된다. 600만 명 이상이 국내에서 살던 곳을 떠나야 했고 500만명은 국외로 도망쳐 현재 난민으로 살고 있다.-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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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은 회랑 : 국가, 사회 그리고 자유의 운명
대런 애쓰모글루 외 지음, 장경덕 옮김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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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데믹의 상황이 이렇게 오래 ,그리고 많은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될지 몰랐다.

모두가 칭찬하던 한국의 코로나 대응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 각자의 개인적 상황때문에 조금씩 다른 양상과 대립을 보이고 있다.

집회를 강행하고 , 집단 파업을 하고 그리고 곧 시작될 추석 명절에 정부는 고향및 성묘를 자제해달라는 당부속에서 사람들은 과연 어떤 선택들을 할 것인가 ?

이런 시기를 내다본 것인지 , 상황이 어지러울때 국가의 권력은 어디까지 주어져야 하고 , 그 국가의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생각과 기준이 필요한지에 대한 책이다.

"좁은 회랑" 뜻은 국가와 사회가 힘의 균형을 이루는 공간

 

라는 설명과 함께 책속에서 주어진 그래프를 통해서 더욱더 확연한 설명이 된다.

 

책에서는 문이 아닌 회랑인 이유는 회랑의 뜻에서 찾아볼수 있다.

회랑 : 사원이나 궁전건축에서 주요부분을 둘러싼 지붕이 있는 긴 복도로

두산 백과사전

개방된 공간이면서 길고 좁다란 회랑의 특성처럼 , 시민이 자유를 잃지않으면서 국가가 번영하고 권력을 유지하기위해서는 국가와 사회의 적절한 견제와 균형이 상충되어야 함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조금만 한쪽의 힘이 세어지면 저 그래프에서 좁은 회랑에서 밖으로 튕겨져 나가 버린다 .

국가를 리바이어던 이라고 할때 , 독재적 리바이던 , 족쇄를 찬 리바이어던이 되느냐의 기준도 결국 좁은 회랑의 역할이다. 여기서 말하는 족쇄는 안좋은 뜻이 아닌 회랑의 역할이 제대로 기능이 되어 회랑에 안에서 국민에게 올바른 역할을 하는 국가의 형태를 말한다 .

이책에서는 전반적으로 리바이어던이 제대로 기능하기위해서 좁은 회랑의 역할이 왜 중요한지 , 그리고 그 역할을 못한 사회구성원들로 인해 독재적이던 관습이 더중요해져버린 국가들의 피해상을 보여준다.

인도의 만연해 있는 카스트제도가 국가의 법보다 더 우위에 있어서 불가촉천민이라는 신분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 미국의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인종무차별 원칙과 달리 옛날 남북시대부터 이어져 오는 백인들사회와 연방정부의 잘못된 관습과 사고들로 인해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인종차별과 그 피해양상들.

최근 독재적 리바이던과 족쇄찬 리바이던의 양상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코로나 사태.

우리에게 좁은 회랑의 역할과 함께 국가의 권력이 개인의 자유와 경제를 어디까지 제한해야 하나를 두고 깊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 할 수 있을까 ?

 

얼마전 광화문 집회에서 보인 무문별한 마스크 미착용과 대면 접촉으로 인해 , 코로나 2.5단계까지 극상되면서 당장 그집회에 나온 사람들보다 , 나가지 않고 집에 머물렀던 사람들이 피해를 보는 양상을 보인다.

정부가 원하는대로 적극 참여하고 행동했으나 , 지키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경제적 손실을 받는 자영업자들은 더 복잡하고 억울한 심정일것 같다.

그래서 결국 모든 화살은 정부에게 원망이 돌아가게 된다. 그방역을 어떻게든 , 아니 강경한 대응을 해서 지키지 않았다는 원망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지키지 않는 자들의 원망이 한계에 다다르면 국가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지는 마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 집회 당사자들 또한 이나라의 국민이기에 그들이 하려는 것을 무조건 막을 수는 없다.

지금, 코로나는 생명과 함께 누군가의 생계에 위협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는 먹고 사는 일에 지장이 없는 업이라서 광화문 집회랑은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나도 잠깐 가져었다. 솔직히 그들이 하는 집회에 관심도 없었고 " 아이구 왜 맨날 저러냐" 정도였지 , 그 이후에 일어날 후 폭풍은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코로나 2.5단계가 되면서 나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의 생계에 타격이 오기 시작했다 . "먹고 사는 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그일이 타격을 준다면 우선 집회의 자유보다 생계의 위협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가의 시장 경제 개입은 경제적으로 득일까 실일까 ?

 

최근 부동산 시장의 정부 개입은 당장 그효과는 미미해 보인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매번 어떤 정책을 펼쳐서 그자유경제의 폐해를 막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은 족쇄의 역할로 보인다.

하지만 오랜 논리와 관습으로 엮여져 있는 부동산에 대한 사람의 심리에 국가의 개입이 바람직한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 어떤 부분을 막고자 어떤 부분에 너무 많은 규제는 과거의 사례들을 봤을때 역효과를 불러오는 것 같다.

근본적인 원인을 마련하지 못한 커진 구멍을 메우기 위해 급급한 대책은 결국 좁은 회랑에서 튕겨져 나가는 실수를 범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책에서도 독재적인 리바이어던 ,즉 사회주의 국가들이 경제부흥에 실패하는 것이 지나친 국가의 개입으로 인한 창조적 경제활동과 생산이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시민의 역할 - 좁은회랑의 역할

한국의 좁은 회랑의 기준은 어디에 있나 ?

 

한국은 부재의 리바이던을 지나 독재의리바이던 시대를 겪고 이제 막 좁은 회랑의 시작점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 이번 코로나 사태를 통해 어쩌면 우리는 좁은회랑 중간을 지나 상층의 단계까지 가지 않았나 하는 자랑스러움이 든다.

모두들 자신의 피해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정부의 시책에 잘 따랐고 , 방역에 가장 최하층에서 연일 불평없이 일하는 분들도 좁은회랑을 지켜주는 파수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파업 , 광화문집회 같은 각자의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어쩌면 우리사회가 그들의 목소리에도 귀기울일수 있는 의식의 다양성이 생겨났기 때문이라는 좋은 쪽으로의 생각도 든다 .

그러므로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쏟아내는 힘의 무게 만큼 , 좁은 회랑에서 밑으로 내려갈지 올라갈지가 정해지는 것 같다.

(너무 긍정적인 생각인가 !!!)

 

 

코로나의 위기속에서 정부의 역할과 시민의 역할 , 그둘의 힘의 균형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좋은 내용들이 가득한 책이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는 선진국, 또는 어느 요가 선생이 한달 다녀온 인도를 두고 " 살기 좋은 나라"라는 망상을 가진 인도의 계급-브라만이 사회에 끼치는 영향등에 대해서 제대로 알게 되었으며 , 좁은 회랑의 역할에 따라 독재와 부재 그리고 족쇄를 차게 되는 (좋은 뜻 ) 것임을 알게 된것 같다.

결국 모든 권력은 기본은 그 사회 구성원들의 가진 생각들로 인해 나타나는 것이며 , 그래서 우리의 역할의 제대로 나타내기 위해서는 정치와 사회에 관심을 꾸준히 가지고 표현해야 우리의 회랑은 좁고 길고 높게 갈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므로 이책은 지금 꼭 읽어야 한다. 팬데믹의 공포보다 그이후에 다가올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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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한강 지음 / 창비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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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기억은 아물지 않습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흐릿해지는게 아니라, 오히려 그 기억만 남기고 다른 모든 것이 서서히 마모됩니다. 색 전구가 하나씩 나가듯 세계가 어두워집니다. 나 역시 안전한 사람이 아니란 걸 알고 있습니다.
이제는 내가 선생에게 묻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은, 근본적으로 잔인한 존재인 것입니까? 우리들은 단지 보편적인 경험을 한 것뿐입니까? 우리는 존엄하다는 착각속에 살고 있을 뿐, 언제든 아무것도 아닌 것, 벌레, 짐승, 고름과 진물의 덩어리로 변할 수 있는 겁니까? 굴욕당하고 훼손되고 살해되는 것, 그것이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인간의 본질입니까?
부마항쟁에 공수부대로 투입됐던 사람을 우연히 만난 적이 있습니다. 내 이력을 듣고 자신의 이력을 고백하더군요. 가능한 한 과격하게 진압하라는 명령이 있었다고 그가 말했습니다. 특별히 잔인하게 행동한 군인들에게는 상부에서 몇십만원씩 포상금이 내려왔다고 했습니다. 동료 중 하나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뭐가 문제냐? 맷값을 주면서 사람을 패라는데, 안 팰 이유가 없지 않아?
베트남전에 파견됐던 어느 한국군 소대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들은 시골 마을회관에 여자들과 아이들, 노인들을 모아놓고 모두 불태워 죽였다지요. 그런 일들을 전시에 행한 뒤 포상을- P334

있었다. 그의 오른편과 왼편 무덤은 모두 고등학생들의 것이었다.
아마도 중학교 졸업 사진일 검은 동복 차림의 앳된 얼굴들을 나는들여다보았다. 어젯밤 그의 형은 계속해서 말했다. 동생이 운이 좋았다고, 총을 맞고 바로 숨이 끊어졌으니 얼마나 다행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이상하게 열기 띤 눈으로 내 동의를 구했다.
동생과 나란히 도청에서 총을 맞았으며 동생과 나란히 묻힌 고등학생 하나는 바로 안 죽고 살아 있다가 확인사살을 당했던 모양이라고, 이장하면서 보니 이마 중앙에 구멍이 뚫리고 두개골 뒤쪽은텅 비어 있었다고 말했다. 머리가 하얗게 센 그 학생의 아버지가입을 막고 소리 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놨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
가을비가 지나가서 하늘이 유난히 말간 날엔 잠바 속주머니에지갑을 넣고, 무릎을 짚음스로 절름절름 천변으로 내려간다이. 코스모스가 색색깔로 피어 있는 길,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죽은 지렁이들에 쇠파리가 꾀는 길을 싸묵싸묵 걷는다이.
네가 여섯살, 일곱살 묵었을 적에, 한시도 가만히 안 있을 적에,
느이 형들이 다 학교 가버리먼 너는 심심해서 어쩔 줄을 몰랐제.
너하고 나하고 둘이서, 느이 아부지가 있는 가게까지 날마다 천변길로 걸어갔제. 나무 그늘이 햇빛을 가리는 것을 너는 싫어했제. 조그만 것이 힘도 시고 고집도 시어서, 힘껏 내 손목을 밝은 쪽으로끌었제. 숱이 적고 가늘디가는 머리카락 속까장 땀이 나서 반짝반짝함스로, 아픈 것맨이로 쌕쌕 숨을 몰아쉼스로, 엄마, 저쪽으로 가아, 기왕이면 햇빛 있는 데로 못 이기는 척 나는 한없이 네 손에 끌려 걸어갔제. 엄마아, 저기 밝은 데는 꽃도 많이 폈네. 왜 캄캄한 데로 가아, 저쪽으로 가, 꽃 핀 쪽으로,

그렇게 끝까지 같이하기로 했는데, 이듬해 느이 아부지가 병을얻어 약속을 못 지켰어야. 겨울에 임종할 때엔 야속했다이. 이 지옥에 나만 남겨놓고 가는 것이..
허지만 죽은 다음의 세상을 나는 모른게. 거그서도 만나고 헤어지는지, 얼굴이 있고 목소리가 있는지, 반갑고 서러운 마음이 있는지 모른게, 느이 아부지 잃은 것을 가엾어해야 하는지, 부러워해야하는지 어떻게 내가 알었겠냐.
그저 겨울이 지나간게 봄이 오드마는, 봄이 오먼 늘 그랬드키 나는 다시 미치고, 여름이먼 지쳐서 시름시름 앓다가 가을에 겨우 숨을 쉬었다이. 그러다 겨울에는 삭신이 얼었다이. 아무리 무더운 여름이 다시 와도 땀이 안 나도록, 뼛속까지 심장까지 차가워졌다이..- P190

언할 수 있는가? 하혈이 멈추지 않아 쇼크를 일으킨 당신을 그들이 통합병원에 데려가 수혈받게 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이년 동안 그 하혈이 계속되었다고, 혈전이 나팔관을 막아 영구히 아이를가질 수 없게 되었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타인과, 특히 남자와 접촉하는 일을 견딜 수 없게 됐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짧은 입맞춤,
뺨을 어루만지는 손길, 여름에 팔과 종아리를 내놓아 누군가의 시선이 머무는 일조차 고통스러웠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살아남기 위하여.

날마다 이 손의 흉터를 들여다봅니다. 뼈가 드러났던 이 자리, 날마다 희끗한 진물을 뱉으며 썩어들어갔던 자리를 쓸어봅니다. 평범한 모나미 검정 볼펜을 우연히 마주칠 때마다 숨을 죽이고 기다립니다. 흙탕물처럼 시간이 나를 쓸어가길 기다립니다. 내가 밤낮없이 짊어지고 있는 더러운 죽음의 기억이, 진짜 죽음을 만나 깨끗이 나를 놓아주기를 기다립니다.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옵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살아남은 자의

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나는 더 깊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재판장님이 곧 들어오신다. 끽소리만 내도 즉석 총살이다, 알겠나. 입 닥치고, 끝까지 고개 숙이고 있어야 한다. 최후변론은 일분을 초과하면 안된다, 알겠나.
그들은 장전한 소총을 들고 의자와 의자 사이를 다니며, 자세가바르지 않은 사람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쳤습니다. 재판소 밖에서 가을 풀벌레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날 아침 새로 받은, 세제 냄새가 풍기는 깨끗한 푸른색 수의를 입고서 나는 즉석 총살이란 말을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정말 닥쳐올 총살을 기다리듯 숨을 죽였습니다.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P122

각진 각목이 어깻죽지와 등허리 사이로 비집고 들어와, 자신의곧은 물성대로 활짝 펴지며 내 몸을 비틀 때,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헐떡이는 일초와 일초 사이, 손톱과 발톱 속으로 그들이 송곳을 꽂아넣을 때, 숨, 들이쉬고, 뱉고, 제발, 그만, 잘못했습니다, 신음, 일초와 일초 사이, 다시 비명, 몸이 사라져주기를, 지금 제발, 지금 내 몸이 지워지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묽은 진물과 진득한 고름, 냄새나는 침, 피, 눈물과 콧물, 속옷에지린 오줌과 똥. 그것들이 내가 가진 전부였습니다. 아니, 그것들자체가 바로 나였습니다. 그것들 속에서 썩어가는 살덩어리가 나였습니다.
지금도 나는 여름을 견디지 못합니다. 벌레 같은 땀이 스멀스멀- P120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가지고 있는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CAN

봄에 피는 꽃들 속에, 눈송이들 속에. 날마다 찾아오는 저녁들 속동호야.
그녀는 아랫입술 안쪽을 악문다. 색색의 만장들이 일제히 무대천장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다. 무대 아래 네발짐승처럼 모여 있던배우들이 별안간 꼿꼿이 허리를 편다. 노파가 걸음을 멈춘다. 업힌아이처럼 바싹 붙어 걷던 소년이 객석을 향해 몸을 돌린다. 그 얼굴을 바로 보지 않기 위해 그녀는 눈을 감는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네가 방수 모포에 싸여 청소차에 실려간 뒤에.
용서할 수 없는 물줄기가 번쩍이며 분수대에서 뿜어져나온 뒤에.
어디서나 사원의 불빛이 타고 있었다.
102- P102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Hind Mezi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고요한 낮과 밤들이 지나갔어. 새벽과 저녁의 푸른 어스름들이지나갔어. 자정마다 찾아오는 군용 트럭의 엔진 소리가, 날카로운전조등 불빛들이 지나갔어.
그들이 다녀갈 때마다 가마니에 덮인 몸들의 탑이 하나씩 늘어갔어. 총을 맞은 대신 머리가 움푹 으깨어지고 어깨가 탈골된 몸들.
그 사이 드문드문 섞인, 환자복에 흰 붕대를 감은 깨끗한 몸들.
한번은 그들이 쌓아놓고 간 열몇사람의 몸들에게서 얼굴을 찾을수 없었어. 목이 잘려나간 게 아니란 걸, 흰 페인트칠로 얼굴이 지워졌다는 걸 깨닫고 나는 어른어른 뒤로 물러났어. 새하얀 은박지같은 얼굴들이 고개를 뒤로 꺾은 채 덤불숲 어딘가를 향하고 있었어. 눈도 코도 입술도 없이 허공을 올려다보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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