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루스
예브게니 보돌라스킨 지음, 승주연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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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제 제 삶이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저는 아르세니였고, 우스틴이었고, 암브로시우스였으며,이제는 라우루스가 되었습니다. 

서로 닮지도 않았고 서로 다른 이름과 서로 다른 몸을 가진 네 사람의 삶을 살았습니다. 

삶은 모자이크와 유사해서 여러 조각으로 흩어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페이지 494 


#라우루스 , 이름 안에 담긴 긴 생애에 대한 신비롭고 때론 슬프고 ,힘겨운 이야기들에 대한 증거이다.

15세기 중세 러시아를 배경으로 한 성인으로 또는 의사이거나 주술사로 살았던 한남자의 일생에 대한 이야기이다.

종교적 색채가 짙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종교가 아닌 지금 세상에서 우리가 믿는 것들 ,또는 내가 나로 살기 위해 믿어야 하는 그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같다.


전염병으로 인해 사랑하는 부모를 잃고 할아버지와 같이 살게 된 아르세니.

약초에 대한 지식이 깊은 할아버지를 통해 아르세니 또한 많은 지식과 약초의 효능을 알게 되고 그로인해  어느 순간 마을에서 약초의사로 성장해간다.

할아버지를 잃고 또다시 혼자가 된 아르세니 앞에 나타난 여자 우스틴 

병들고 지치고 굶주린 그녀를 치료해주면서 사랑이라는 감정에 눈뜨게 되지만 그녀를 잃을까봐 

현명하지 못한 선택을 하게 되고 그로 인해 그녀를 잃게 된다. 그로 인해 심한 자책감과 상실의 고통에서 헤어나오지 못한채 죽음을 선택하려던 그때 ,그를 살리려는 누군가 나타나고 그때부터 아르세니는 우스틴-암브로시우스- 라우루스 라는 이름을 가지는 네사람의 삶을 살기 위한 여정을 떠나기 시작한다.


그는 약초와 사람에게 손만 닿으면 그사람의 병과 죽음을 알아차리고 치유하는 능력을 통해 세상 부러울것 없는 칭송을 받기도 하지만 그것이 독이 되어 자신을 가두게 되는 경험도 하게 된다.

삶은 늘 하나를 가지면 하나를 내주어야 한다는 말처럼 , 대단한 능력을 가진 아르세니에게 평생의 사랑 우스틴을 앗아가고 명예를 주는 듯 하더니 갑작스런 상실과 고통도 안겨준다.


기억을 잃어버린채 마을에서 거지와 바보인채로 살기도 하고 , 때론 도둑을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 다시 치유능력을 통해 칭송받기도 하다가 , 거짓된 고백과 소문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기도 한다.

마지막 이름 라우루스- 약초이름이며 뜻은 사시사철 푸르며 영생을 상징한다.

많은 고난과 역경을 거치는 동안 언제나 자신의 삶에서 사랑하는 우스틴에 대한 생각을 놓치지 않고 아프고 가난한 자들을 위한 삶으로 되돌아오는 그를 대변하는 이름 같다.


아르세니가 라우루스가 되기까지 긴 여정의 시작은 연인 우스티나를 만나 평안을 얻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되었다. 자신의 아둔함으로 여인을 잃은 그가 남은 생을 바쳐 갖고 싶었던 평안, 사람들을 치유하고 멸시당하고 또다시 칭송받고 과정을 통해 그는 진정한 평안을 얻게 될까 ? 

죽지 않고 살아가면서 자신의 괴로움을 숨기기 위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선택할까 ? 

삶의 어느 순간 내 자신의 아둔함으로 인해 삶이 위기에 처한다면 우리의 삶이 다시 전처럼 회복될 수 있을까? 또한 종교에서 말하는 선과 악이 인간의 자유의지인지 아니면 창조주가 정해진 대로 행동하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 등등 


라우루스의 생애와 여행를 통해 그에게 우리는 수많은 질문과 답을 찾아내는 시간을 만나게 된다.

15세기의 러시아 이야기, 어렵지 않을까? 싶지만 읽는 순간 아르세니에 빠져서 우스틴을 만나 울고 암부로시우스의 탁월한 치료와 주술적 마력에 놀라워하다가 라우루스로서 살게 되는 마지막 삶에 애닮아 하다 보면 책의 마지막장을 만나게 된다. 


21세기에 만나는 15세기의 시대와 고대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관한 에피소드를 읽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적요소이다.

또한 신비로움을 묘사하는 아름다운 문장과 상상 그리고 그안에 담긴 러시아적 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종교적 색채로 인해 더욱더 라우루스에 빠지게 하는 것 같다.

우리는 비논리적이고 과학적이지 않은 거짓에 속지 않으려고 하는 반면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길 무한히 바라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과학적이지 않은 15세기 러시아의 신비한 삶을 살았던 라우루스를 통해 21세기 살고 우리에게도 똑같은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게 되지 않을까 싶다. 사랑과 종교 , 이두가지는 우리의 삶에 늘 붙어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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