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가 - 불안한 인생에 해답을 주는 칸트의 루틴 철학
강지은 지음 / 북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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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는 사실 은근히 유명하고 대중적인 철학자다.


그가 살았던 동네에선 매일 일정한 시간 산책하던 

칸트가 만들어 놓은 매일의 루틴이 동네 주민들에겐 

정각을 가늠하는 시계추 같은 역할을 했었단 얘기는

한편의 우화처럼 너무도 유명한 소설스토리 같은 팩트다.

이 이야기가 설령 칸트의 일화인지도 몰랐거나

그가 철학자로써의 남긴 업적 또한 모르더라도,

산책하는 칸트와 그 동네 사람들간의 이 이야기 정도는

한번쯤 들어봤던 기억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테니까.


이 책의 내용은 어려운 칸트의 철학얘기가 아닌

칸트를 전공한 한국의 한 철학자가 

그가 소개해 보고 싶은 방향으로

일반인들이 소화한 쉬운 언어로 

이 시대에 맞는 칸트 철학 일부를 

대화의 소재처럼 말해주려는 책이라 할 수 있는데,

편안한 에세이를 읽는 듯한 흐름 안에

칸트의 일상이 주는 긍정성을 소개하기에 

칸트란 유명한 철학가의 메세지를 담고 있는 내용이라고는

의식하지 않는다면 크게 의식하지 못할 내용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시대의 화두를 어쩌면 불안이라고 보는듯 하다.


쇼펜하우어나 니체의 위버맨쉬(초인)란 철학 등도

결국 서로 대치하는 보여도 자신의 이론들 안에서

불안의 대처법을 각자 언급했던 것이라 할 수 있지만,

저자 강지은은 이들의 이런 직접적인 철학적 메세지란게

현실에선 괴리감이 있음을 은연중에 칸트를 부각시킴으로써 

대중에게 부드럽게 이해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칸트는 이들이 주지 못한 무엇을 말한단 말인가?


정확히 구분해 놓은 답은 아쉽지만 없다.

하지만 정답 대신

칸트철학의 정수를 전공자로써 정밀하게 보여주는 대신 

칸트의 삶 자체를 같이 짚어 봄으로써

그가 살아간 자신만의 방식이 뭐였는지 관찰자가 되어 본다.


칸트가 보여준 일상이 철학이 될 수 있고 

철학자 칸트 자체를 하나의 모범사례로 

쉽게 알려주고 싶었다는 느낌을 주는 책.


이 책 전에 쇼펜하우어, 니체를 읽었고

그 바로 전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읽은 건

그냥 우연이라기엔 책들간 묘한 연결성을 느꼈다.

최소한 철학자이기 전에 한 인간으로써 살아간 이들의 모습 속엔

그 자체로 정반합 논리의 예시가 되어주는 듯 하다.

이사람의 모습이 저사람의 모습과 

합쳐지거나 또는 나뉘기도 하면서.


저자는 칸트의 삶을 굉장히 모범적으로 소개하는데

죽는 순간조차 평소의 루틴대로 

좋아했던 와인을 물에 묽게 희석해 마시고는

좋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떠난 칸트.

신체적으로 장애에 가까운 체형을 가진 그였음에도

의학이 지금보다 뒤떨어졌던 그 시절에

왠만한 건장한 남성보다 훨씬 장수한 삶은

모든 면에서 칸트를 이 시대에 소개할 만한 

사례로 봄은 계속 느껴지고.


불안을 루틴으로 이겨낸 칸트의 실천적 삶을

쇼펜하우어와 니체에 견주어 보여줬다면,

한 사람의 인생면에선 애덤 스미스와 비교해봐도 좋겠다.


11명이 넘는 형제 중 4째였던 칸트는 

건강상의 문제와 더불어 집안적으로 넉넉지 못했다.

다만 운이 좋았던 건 그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게

일찍부터 도움이나 환경은 주어졌다는 점.

저자는 칸트를 흙수저라고 칭하였지만

이런 면에서 그는 결코 흙수저라고 볼 수 없겠다.

40대가 넘어서야 정식 교수가 되었고

그 전까지는 개인과외나 강사로 생업을 이어간 것이

한가로운 삶이라 보기 분명 어렵겠지만

흙수저라고 확정짓거나 낮춰 부르기엔 

어느정도 격이 유지됐던 삶이었기에...


앞서 저자는 철학자에 대한 한가지 오해로

생각이 많으면 생업은 소홀히 할 수 있을거 같으니

많은 철학자들이 굉장히 어렵게 살았으려니 싶겠지만

삶이 의외로 풍족했던 철학자들이 많았고,

반대로 생각을 많이 할 수 있는 환경이었단 걸 생각해보면

그들이 그리 살 수 있는 여건이 주어졌다는 반로일 수 있고

이미 생업 때문에 먹고살기 힘들만한

그런 사람들이 아닐 수 있었다는 반증으로 이해해 본다면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부분들이라 말은 건내기도 하는데,

칸트가 그 정도의 여유를 누렸던 철학자는 아니였을지라도

흙수저로 뭉뚱그려 그 삶 자체를 설명하기엔 

평균 이상의 삶이라 보여진다.


애덤 스미스를 칸트와 비교하고 싶었던 것은

크게 살아온 자신의 루틴을 가졌다는 면에서 비슷했고

죽을 때까지 그리 살다간 모습 자체도 비슷하지만

세세한 면에선 분명 구분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죽을 때까지 독신이었으면서

어머니와 살다 간 남자가 아닌 아들의 삶이었다.

교수였고 철학과 경제학에 큰 족적을 남긴 스승이 됐지만 

개인으로써는 아이었고 철저히 외로웠다고 봐야한다.


헌데 칸트는 요즘말로 해석하면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이 분명했던 남자이라서

그냥 간략한 삶의 겉모습이 루틴화란 면에서

애덤 스미스와 매우 유사하지만 다른 느낌이니까.


그렇기에 이 두 철학자 간의 유사성 비교는

저자가 말하는 루틴의 중요성을 따져보는데 유의미 하지만

인간적으로는 큰 차이를 가져서 나름 중요해 보인다.


불안을 누를 철학으로 루틴을 가진 삶이라...


그리 살아간 칸트 자체가 평생 실천한 그런 모습과 더불어

그만의 루틴은 자신만의 호불호가 덧대진 

일상성이었기에 의미있다고 봐야하진 않았까?


불안은 해법으로 다룰 수 없음을 단언하면서

저자는 해결이 아닌 일상의 루틴화로

많은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독자를 설득하는 책같다.


같은 하루를 비슷하게 매일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은

그 자체 하나로 보통의 사람들에겐 

불안이 아닌 자신감과 건강을 허락한다는 논리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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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궁창 찬가 -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은 ‘죄’
김학필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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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다.


의인화 시킨 그 실체를 확정짓기 어려운

여러 생명체들의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


바구중바구,

주인공인 '나'는 하쿠피루란 이름으로,

그리고 주인공 만큼이나 많이 언급되는 조우성우,

아누태큐,

노호중우,

배구상열우,

추서노우,

저누형우 기타 등등...


기억나는 이 이름들 이외에도 

좀더 되겠지만 그 이름들의 면면은 아주 중요한 요소는 아닌 듯.

그러나 여기서 먼저 흥미롭게 살펴볼 

저자의 등장인물들에게 부여한 작명법은 한번 돌아보면,


이 외국어 같은 이름들이 실제 다 한글들이고

실제 사람이름들을 외국명사인 듯 

혀를 굴리며 발음한 것 같은데,


이를테면,

저자인 이름과 동명이인인 듯한

책 속 주인공 하쿠피루는 저자 김학필의 이름 중

'학필'을 '하쿠피루'로 늘려 불렀음을 알수 있겠고,

조우성우 또한 비슷한 원리로 늘려 불렀을 이름이겠다.


헌데, 바구중바구란 이름은?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 등장하는 중요이름 중 하나이고

전개상 상상되는 이 역할의 느낌도 

개인적으론 와 닿은건 있었으나

약간은 미완의 또다른 주인공처럼 느껴진다.


왜냐면, 처음에 난 

이 소설 속 의인화 된 존재들이

쥐나 바퀴벌레가 아닐까 상상을 하며 읽었고,

굳이 더 추측을 해봤을 때 쥐나 바퀴 중

쥐보단 바퀴벌레쪽이 더 가깝지 않을까 싶었던 건

많은 등장인물 이름들 중 바구중바구 때문이었다.


책에선 왕처럼 등장하는 이 캐릭터가

혹여나 영어로 '바퀴벌레 중에 바퀴벌레'란 뜻으로

마치 '킹 오브 더 킹'이나 '베스트 오브 더 베스트'같은 느낌을 주려고

그런 느낌으로 다른 작명법이 발휘된 이름은 아닐까 싶었서였다.

그러니 당연히 쥐는 아닌 일종에 바퀴벌레의 의인화 아닐까 싶었던 거고.

하지만, 다른 이름들처럼 이 바구중바구 또한

'박OO'이란 누군가의 이름일 수도 있겠으니 이쯤에서 상상은 접는다.


그러다 스포일러라면 스포일러일 수 있겠으나

146페이지 정도를 지날 때면 

스스로 자신들이 쥐가 아니라는 설명이

무심코 지나가듯 언급되는 부분이 등장하고,

또다시 책의 말미쯤 도달하면 

쥐와 자신의 종족 설명을 한번 더 하면서

과연 이 의인화 된 생물들이 무엇일지

좀더 명확하게 와닿는 나레이션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책의 주제와 맞닿은 최종결말 같아 이정도에서 생략한다.


이 이외에 쉽게 이해되는 배경설명 또한 많다.


협곡이라 불리는 곳이 아마 하수구나 배수로일거란 느낌이나,

푹풍이 몰아치고 물이 차오르는 것이 

단순 진짜 폭풍우 치는 날씨나 비의 묘사라기 보단

일종에 몰려 살아가는 약한 생물들이 눈과 피부로 느끼는

인간으로부터 부여받은 환경일 수 있겠단 생각도 충분히 가능했다.

물이 들이치는 푹풍 또한 

철거 현장에서 먼지를 안 날리게 뿌려대는

살수효과일 수도 있겠고,

어쩌면 식당 물청소시 쥐나 바퀴벌레들에겐 

통로로 쓰일 하수구에 물이 쏟아져오는 느낌을 

이리 표현했을수도 있다는 상상도 해보게 되니까.


어쨌건 이 책은 독자의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다.


쥐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간세상이란 느낌 또한

실제 인간이 쥐들과 비슷하게 느끼고 사는

생존과 사투현장으로써 더 극적으로 보이려 만든 

몰입과 이입으로 느껴지기도.


웃는다는 표현마저 겅상도 사투리로 뱉어대는 대사와

전우애 같은 우정, 걱정, 죄책감 등을 언급하는 모습에서도,

사람으로써 최소한의 목숨연명은 하면서 살아야하는

어떤 지점에서 스스로를 인간인지 쥐인지 모르고 사는

쥐가 아닌 듯 쥐같은 나를 그래도 다른 존재로 믿고 살아온 

세월 속 최면을 어느 순간 스스로 깨고 

억지로 인지해야 하는게 아닌가도 싶기 때문이다.


책에서 쥐는 '이방인'으로 묘사된다.


주인공과 그 친구들이 식량확보를 위해 쓰레기통을 뒤져야 할 때

쥐들 또한 살아가기 위해 여러 생명체들이 뒤섞인 

환경의 어디 쯤에서 서로 비슷한 활동을 해나가며 

경쟁자처럼 존재하는게 '쥐'들이기도 하면서.


쥐들이 죽거나 회색털이 날리는 모습엔

제3자로써 다른 생명체의 생사여탈 여부를 바라보는 시점이나

어느 순간 모든게 깨지며 많은게 동일시 하는 부분 같기도 하다.


이방인은 결국 쥐이지만

그 이방인이 자신이자 종족일 수 있다는 흐름은

독자에게 던지는 결론짓지 않은 상상의 발로일 수 있고.


영도자란 단어...

한국에서 이 단어는 쓰이지 않는다.

북한쪽에서 쓰일만한 단어를 굳이 쓴 느낌이지만

저자가 그냥 구사했다고는 보기 어려울 듯.

영도자라...

이 생명체들이 사는 곳은 책 제목처럼 시궁창이니

시궁창이 결국 영도자와 이어지는 뉘앙스일까도 싶지만...


책 속 살아가는 배경을 꼭 집어 

시궁창이라 명명하는듯한 느낌은 사실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설명을 이해하려다 보면

당연 이들이 활동하는 그 곳은 시궁창일 것이란 추측만은 가능.

이야기의 결말로 들어서면 폐허가 시궁창인지 

시궁창 또한 폐허가 되어가고 

그 잔해가 또다른 시궁창이 됐는지도 나름 미지수.


협곡이란 이름으로 배수로였다면,

한 번 들어봤던 듯한 애킨스란 폭풍이름도 

살려고 도망치는 이방인이나 동료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포크도

은유하는 바가 다들 있었다고는 느낀다.

쓰다보니 포크는 '포크레인'인가도 싶은.


여하튼 상상력을 많이 자극하며 읽게 되는 책은 맞다.


어른을 위한 동화 같지만

쥐가 등장한다하여 아이들이 공감할

라따뚜이 같은 작품으로 상상한다면 그건 오해같다.

쥐란 등장요소로 충분히 어림짐작 할 수 있을만한 건

남들은 이미 버린, 

용도가 다 지난 쓸모없는 것들이라도

경쟁하며 정해진 시간 염두에 두고 확보해야 할 

존재들과 이를 둘러싼 삶인

쥐와 이방인을 떠올려야 할 거 같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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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해킹 - 심리검사 개발자가 집필한 인간관계 기본서
손상윤 지음 / 바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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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같은 심리검사방식을 개발한 저자가

직접 인간본성에 관한 성찰을 기록한 책이다.

단순히 개발된 검사법을 설명하는 책은 아니고.


인간해킹이란 책제목 속 '해킹'은 

상대에 대한 이해다.


내가 생각한 나에 대한 정의란 것도 불확실한 거고

내가 바라보는 상대에 대한 평가 또한 

불확실 할 수 있다 전제하에,

개인들 저마다가 가진 많은 인지오류를 

지적하고 설득해 가면서 이 책의 주제가 진행된다.


책에 등장한 여러 용어들은

하나의 카테고리들안에서 세분되어 가는데,


정서적 민감성 안에 포함된 것은

심약, 우울, 불안, 과잉행동, 공격성, 충동성이,


협조와 준거 안엔 

순응과 도전, 타협과 불변 등이 대비되어 엮여있다.


적응지향성과 결정지향성도

외향성 심리모델, 내향성 심리모델, 개방성 심리모델 이 3개가

협조와 준거 같은 관계성을 띄고

서로를 대비시키고 각 성격특성을 설명하기 위한 도구로 쓰인다.


그러다, 결정과 실행의 심리모델로 들어서서는

MBTI같은 일원화 된 설명으로 압축되어 가고,

인간해킹 메커니즘이란 챕터로 이어지고 마무리 되면서

사람 각자가 지닌 고유한 심리이해방식이 

하나의 정답이 아닌 분류로 평가되기 위해,

성격, 자극반응, 감정, 불안의 틀로써

압축된 심리검사 결과를 내놓는다. 

즉, 압축식킨 결과들을 다시 한번 

큰 틀로 세분화 하며 끝내는 3단계 성격해설.


이 책을 성격에 관한 포괄적인 인문학책처럼 읽어도 충분히 좋겠지만,

만일 자신의 성격자체나 누군가의 성격이 더 궁금해서라면

오히려 이 저자가 만들었다는 심리검사 자체를 받는 것도

좀더 효율적 선택일 수 있다는 판단이 든다.


책으로 이해하는 건 모든 사람들의 성격과 심리 메커니즘라

포괄적인 이해가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자신과 주변 몇몇 사람만을 이해하기 위한 궁금증 해소 정도라면 

검사결과로 주어지는 상세한 해석이 더 와닿을지 모르니까.


하지만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이 존재하는 이유를 자신이 만든 심리검사를 단순 설명하기 위함이 아닌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단서 제공으로 기획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 의미에 입각해 읽을 사람들이라면

심리해석을 다룬 인문서처럼 재밌게 읽기에 충분할 것이고,

잘 몰랐던 심리해석 툴을 접한다고 읽은 사람들에겐

MBTI와 다른 관점에서 와닿는 이 툴만의

장점이 더 와닿을 수도 있겠다.


MBTI나 많은 심리서적 들과는 다른 시각으로 

여러가지를 설명해 들어가면서도

기존상식을 벗어나지 않게 이해시키려는 부분들이 좋았던 책.


다시 한번 말하자면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해킹은.

몰래 훔치는 게 아닌 '이해'임을 또한번 언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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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딱 하나만 가르친다면, 자기 조절 - 7세부터 13세까지 성취하는 아이로 성장하게 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
김효원 지음 / 웨일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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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기른다고는 하지만

사람이 사람을 돌보는 일에 어찌 완벽이 있을까 싶다.

어머니의 양육법이란 것도 결국 

자신이 바랬던 아이 때의 감정을 대입해

자기아이의 능력을 키워주게 되지 않을까도 싶고.


그렇다면 가능한 물질적이나 정서적이냐를 따졌을 땐

둘 모두가 만족스러우면 좋겠으나,

어떤 엄마의 자식은 물질보다 정서를 더 돌봐주는 쪽으로 

본인의 경우에 비춰 흐를 가능성도 클 수도 있겠다 싶은데,

그렇다면 물질적으로 풍족한 집안만에 행복이 깃드는게 아니라

형편은 어렵더라도 행복한 자녀가 나올 수 있다는 거고

장기적으론 필요한 정서적 부분의 서포트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게

매우 큰 행복요소로도 느껴진다.


이 책에선 말하는 자기조절이란 

아이의 정신적 스펙을 키워주기 위한 방법이다.


학력위주의 스펙쌓기를 보통 스펙이라 부르는게 보통인데

굳이 자기조절을 스펙이라 부르고 싶은건

등장하는 5개의 요소이자 5각형 인재의 구성요소 중 

자기조절이 어린 시절 갖추어 져야

결국 홀로 달리는 인생이란 허허벌판 위를

어떤 조건 어떤 순간

홀로 살아가기 위해 최고로 필요한 스펙은 

취업을 위한 스펙이 아닌 자기조절력이란 스펙이 아닐런지.


자식이 정서적 결핍없이 한사람으로 살아내기 위한 첫걸음이자

단순 아이로써가 아닌 한 사람으로써

필요한 무언가를 지닐 수 있게 되는 것,

그래서 스펙이라 부르는게 과장된 표현은 아니라고 느낀다.

'인생의 스펙'으로써.


"감정, 행동, 인지, 관계, 즐거움과 동기"


이렇게 5가지가 조화롭게 균형을 이룰 때

총합적으로 자기조절 능력이 발휘되는데

이들 위한 각각의 요소들을 아는 것도 매우 중요할 것이다.


저자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답게

매우 부드럽고 모성애가 담긴 언어로 표현해 뒀지만,

단순설명 면에서는 아이의 관점을 의식한 그 방식 보다

성인에게도 와닿을 만한 상세 설명쪽이 좀더 기억에 남으리라 본다.

이는 차례를 색인처럼 인용해 정리하는게 가장 간략할 거 같았다.


1. 감정조절

다음 상황으로 넘어갈 수 있는 전환능력,

실패와 좌절을 견디는 능력,

특정사건에 대한 감정반응 정도,

감정을 말로 표현해 내는 능력.

 

2.행동조절

에너지와 각성수준의 조절,

말과 행동충동의 억제 및 조절,

욕구와 만족을 지연시킬 수 있는 능력.


3.인지조절

목표를 위한 문제해결능력과 실행능력,

인지에 대한 인지로써 메타인지,

걱정과 강박을 조절하는 능력.


4.관계조절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능력,

금지시킬 때 멈출 줄 아는 능력,

경쟁을 견디는 능력,

규칙과 차례를 지키는 능력,

갈등을 마주대하고 풀어낼 수 있는 능력,

싫은 걸 싫다고 말할 수 있는 능력.


5.즐거움과 동기조절

즐거움을 멈출 수 있는 능력,

동기부여 할 줄 알고 무기력에 빠지지 않을 능력


능력, 능력, 능력이 계속 이어지는 설명이라

각 능력들의 지칭을 하나로 압축해 볼 필요도 있겠다.


감정조절은 표현력,

행동조절은 참을성,

인지조절은 지각,

관계조절은 공감,

즐거움과 동기조절은 절제.


사실, 

참을성과 인내가 가진 느낌은 비슷하고

모든 조절 능력이 이들을 내포한다고 보지만

굳이 한단어로 나름의 정리를 해 봤다.


이런 능력들이 균형을 이룰 때

적절한 조절능력이 발휘 되는거라 하며,

발달심리 측면에서 이런 요소들의 발달과 조화는 

특정시기에 확립하지 않는다면

평생스펙으로 안착되고 유지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보고있다.


그런 측면에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다룬 부분 또한 부각된다.


보통,

스트레스가 너무 오랫동안 반복되거나 지속됐을 때,

또는 보통사람들의 능력치로는 

감당할 수 없는 강도로 이를 경험할 때

마음과 뇌에 상처를 남기게 되는데,

가족내 갈등, 폭력, 따돌림, 의지하던 이의 죽음,

사고 혹은 유사상황의 목격 등이 이에 속하며

아이의 뇌발달 시기에 영향을 주어 

자기 조절능력을 갖춰야 할 시점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를,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나

그냥 외상성 장애로 지칭해도 기억엔 요긴할 수 있겠고.


특정 사건과 상황이 충격으로 남아

이후 정서적으로 예민해지고 불편해진 상태를 조성해

판단의 정확성이 저하되면서

타인이 하는 말이나 행동, 

특정상황이나 분위기가

극히 주관적으로 불리하게 다가와서

필요이상 불편감을 느끼게 될 수 있기에,

점점 스트레스가 누적되어 일정수준 이상 동요됐을 땐 

압도됨으로써 각자의 조절능력치를 벗어나 

감정적 무너짐이 발생하는 수순으로 보인다.


또는 이런 상태의 누군가는,

자신에게 지적하거나 뭔가를 요구한다고 생각이 들면

과민해지고 분노감을 느낄 수도 있고

사소한 단서에도 비난 받았다고 오해할 수 있기에,

갑작스레 변덕스럽게 행동하거나 공격적으로 나옴으로써

오히려 그 상대로써는 이유없이 

몰아세워 졌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는데,

이는 잘못된 주관적 인식으로 인해 생겨나는

부정적 행동의 발현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양상이 벌여졌다면

대인관계나 가족관계 내에서 보일 수 있는

트라우마 현상 중 하나일 수 있다고 책은 기술한다.


위협인 것과 아닌 것의 정확한 구별이 어렵고

실제보다 훨씬 큰 위협으로 해석할 수 있다면,

위축되거나 감정기복이 심해지고 

감정둔마까지도 보일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장기간 노출되면

심한 불안, 우울감, 분노, 짜증, 절망, 감정기복이 이어질 것이고.


뭣보다 세상과 인간에 대한 기본적 신뢰를

아동시기에 형성하지 못하게 될 수 있겠는데 

이는 시기상 매우 안타까운

조절능력의 결핍으로 흘러가 버리는 게 된다.


꼭 큰 트라우마로 인정받을 만한 일이 아니더라도

마음의 상처로써 자기방어를 하게 됐던게

상대를 적대시하게 되거나 괴롭힘으로 나올 수도 있다.


그로인해 부적응적 아이가 되어가고,

참을성도 부족해지며,

말이나 행동이 공격적이 될 수 있는 상황.


사실, 이 모두가 

심적위축과 발달단계에서의 미성숙이 부른 결과겠지만

타인에게나 본인에게 큰 폐해로 남을 수 있음이다.


결국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에

가급적 예방적 차원의 적절한 발달시기의 구성은 매우 절실하다.

커서 이를 스스로 자각하고 

그 결핍을 채워야 됨을 느끼게 됐을 땐

많이 늦었을 가능성도 크겠고.

박명수의 '늦었을 때가 가장 늦은 때'라는

말장난 같은 뼈아픈 조언도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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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가 묻고 니체가 답하다 - 비관마저 낙관한 두 철학자의 인생론
크리스토퍼 재너웨이 지음, 이시은 옮김, 박찬국 감수 / 21세기북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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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가상대담집일 것만 같은 

책제목이 주는 느낌과는 달리, 

이 책은 이 두 사상가가 말한 

각자의 개념들에 대한 유사점과 차별점을 

구분해 보는 현존하는 영국철학자의 

슬기로운 해석으로 봐야 할 내용이 주를 이룬다.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전반적인 저작들과 사상을 

둘로 나눠 전개도 하지만 확실하게는

둘의 정확한 비교를 할 순 없다.


왜냐면, 둘의 사상끼리는 시기상 유사성이 존재하고

니체가 쇼펜하우어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자신의 영역이 구체화 된 이후의 니체를 보면

더욱 쇼펜하우어의 사상 일부는 인정하돼

같은 계보의 철학으로써 인정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쇼펜하우어의 철학에 대해서는

중요 반론과 비동의하는 바가 크게 비춰지는 바다.


이를 저자 크리스토퍼 제너웨이는

자신만의 시각으로 쓴 여러 에세이를 이 한권에 모았고,

그 구성으로 인해 누구를 더 옳고 

누가 좀더 모순된다고 결론까지 내진 않으나,

본인이 밝히길 니체의 사상에 

좀더 동조하고 있다고 정도는 밝히고 있다.


여러 주제들 중에 고통과 긍정에 관한 글들은

기독교를 중심으로 두 유명 철학자간의 

관점을 이해하기 좋은 키워드인 동시에

저자의 해석을 더한 일반적 시각을 위한 부분이 많았다.


읽은지 좀 된 책 중엔 '고통의 쓸모'란 책도 있었고

얼마 전 읽은 책의 한 대목에서 다룬 고통에선

일부러 받을 필요는 없다는 논리가 있었다는게 기억났다. 

왜냐면, 위의 책들을 읽으며 

좋은 지적이란 느낌들도 있었지만

조금은 겉도는 단편적 느낌의 지식으로도 다가와

이해는 됐지만 선뜻 

정언이나 명제처럼 기억하기엔 무리가 있어서.


이 책을 읽다보니 왜 이런 느낌을 받았었는지도

스스로 이해가 됐고 도움을 받았다.

이는 단순히 좀더 상위철학으로 정의됐던

고통에 대한 이론들을 몰랐던 내 무지의 소산이면서,

본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스스로 

인지하기도 했다는 생각도 해볼 수 있었기 때문에.


고통이 필요하냐 필요하지 않느냐는

이 책의 내용만으로 추론하자면 

라이프니츠의 '신정론' 사상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고,

이를 책에선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각자 고민한 부분들을 결합하여

독자들마다의 철학적 결론으로 

갈무리 해야할 주제로 설명해 볼 수 있겠다.


신정론이라 함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으므로

살면서 겪는 모든 고통은 

신이 내려주신 부분이란 것.


즉, 좀더 깨우친 인간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전 설계됐거나 이미 정해진 과정이란 거다.


그러나 두 철학자 모두 

신과 고통을 부정하는 측면은 동일하지만 

동시에 모순적이게도 

자신들의 철학을 위해 어쨌거나 

이 신정론을 차용하는 듯한 스탠스도 있기에 

저자는 이를 이해하기 쉽게 비교설명해 놨다.


먼저, 쇼펜하우어가 묻는다.

고통을 설계하고 부여한게 신이라면

종교는 비관주의로 보는게 맞지 않겠느냐고.

고통을 겪는건 정해져 있으니

비극적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던 아니던간에

이미 비관론적 스토리는 디폴트로

받아들이라는 논리니까 종교는 비관론적 세계관이라는 거다.

이를 두고 쇼펜하우어 철학을

염세주의적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으나

엄밀히는 또 아니라는 저자.


여기에, 니체의 의견은 

분명하게 쇼펜하우어 어떤 사상자체를 

딱 꼬집어 자신의 사상을 반론으로 내놓은게 아니기에,

저자의 철학자적 지식 안에서

쇼펜하우어와 니체가 각자

이런저런 차이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니체는 오늘날 심리학에서 말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은 후 

성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외상 후 성장'을 고통과 묶어 설명했다.


하지만,

신은 죽었다고 말한 니체임은 모두가 알듯

'연민의 종교'라 부른 고통에 관한 그의 관점은,

모든 고통의 발생자체를 필요없다고 보고

고통받는 사람의 안녕을 위해서는

고통은 제거할 수 있으면 그래야 하고 

방지도 해야한다는 도덕관을 지녔다고 보는게 타당하다.


여기에, 

불행이 가져올 수 있는 내적성장이 있기 위해선

고통이 지닌 어떠한 순서나 상호연관성을 

소화해 낼 수 있는 각자의 차이는 존재할 수 있고 

이는 각자의 통찰 정도에 달렸다는 관점이다.


고통이 심리적 성장을 구성하는 요소가 될 수 있으려면

성장까지 이끌어 낼 수 있는 구성순서와 상호 연관성이란게

고통과 성장 사이에 필수적인 부분이 될 수 있을 때라야

보통사람들은 고통을 스스로 감내할 이유을 찾을 수 있다는 것.


단순 재미로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이해하고 음미하며 재해석도 필요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와 니체의 저작을 

따로 읽으며 들여야하는 수고보다는 한결 무난하리라 본다.


난 니체를 위주로 읽고 싶어 선택했고

쇼펜하우어가 니체에 영향을 줬음은 알았지만

구체적인 영향이 무엇이었지 궁금해서 읽었으나,

단편적으로 둘을 비교하는 책으로서는 아닌

큰 개념 위주의 비교를 단순요약이 아닌

서술적으로 해놓은 책이라 본다.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다가 지금과는 다른 표현방식이라

난해해 덮었던 적이 있었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을 줬다.


쇼펜하우어의 사상을 원전 자체로 접하는 것보다

이 책을 통해 먼저 예습하듯 접해 본다면 

분명 유용할 것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니체에 더 동조하는 저자이기에

어떤 면이 저자가 니체철학을 좀더 우선시 할 수 있었는가도

그만의 시각을 느끼며 읽어볼 수 있어 좋았다.

확실히 인문학 책이긴 하지만 

겁내지 않고 접해봐도 분명 좋을 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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