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나라의 불행한 사람들 - 복지국가 스웨덴은 왜 실패하고 있는가
박지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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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책제목이 많은 것을 담고 있는 책이다.

스웨덴이 정말 행복한 나라일까 부터 

한번쯤 진지하게 고민하고 바라보게 할 

그런 내용들이 이 책에 들었음을.

가끔 한국 내에서 나라와 나라끼리를 비교하는 

블루한 느낌의 기사들이 뜰때면,

언제부턴가 비슷하게 반복 인용돼오는 그 내용들에서

상식적으로 잘 납득되지 않는 것들이 보였다.

자살률, 실업률, 여성취업률 등

나쁜 많은 지표들만은 거의 모두가 

한국이 1등이라는 식의 공공연히 반복 생산되는 기사들을 보며,

이 땅에서 살고있는 서로서로에게 

우린 이런 나라에 살고 있음을 

마치 각인 시켜주듯 반복되는 듯한

자해적 느낌의 박제된 듯 계속돼 온 그런 기사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난 잘 모르겠다.

그 오랜기간 확고부동한 그런 지표에서만

1등으로 이뤄진 나라가 이 한국인지를.

그런데 정녕 다른 나라들은 확 차이나게

우리처럼은 안 그러하는 얘기인데,

진정 그러하다면 그런 지표를 보이는 

이 한국사정에 대해서 단순한 발표식의 나열이 아니라 

좀더 길게 일목요연한 데이터를 

비교해보고 숙고해 봐야 하는건 아닐까. 

오래되고 해묵은 이 반복되어 온 기사들이 

지적하는 여러 지표들의 진위여부부터 시작해서 

어느 정도인지까지 잘 검토하여, 맞다면

진작에 해결하려고 어떤 방향으로던 

머리를 싸맸어야 하는 문제들이니까.

그런 와중에, 미세먼지는 또 스스로 한국탓이 크다는 

이런 류의 자해같은 분석은 어찌 봐야 할지.


이 책을 읽으면서,

위와 같은 류의 생각들이 들지 않는다면

그또한 이상한거란 생각을 해보며 책을 읽었던거 같다.

우리보다 항시 나은 나라처럼 여겨지던 스웨덴은 보면 볼수록

오히려 한국이 더 괜찮고 잘 꾸려왔던 나라란 느낌이 짙다.

파랑새가 이곳에 있는데 파랑새를 찾아 여행을 떠나라고

계속 외쳐주는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온 거 같은.

 

게다가 현 상황에선,

스웨덴에 큰 기대를 가지고 건너가 살다온 저자가

자신의 경험담을 적었을 뿐인데,

난 왜 자꾸 스웨덴의 그 현실 속에서

지금의 한국, 앞으로 한국이 

나아갈거 같은 방향이 기시감처럼 어른거리는 것인가.


여러 얘기들이 많지만 저자의 경험 중엔,

스웨덴이 살기 좋은 나라라 하지만 

여러모로 그 실상은 생각보다 각박하다는 걸

수치나 사례로써 보여주는게 매우 많다.

마치 잘 갖춰진 무상복지체계 속 사회 같지만

모두 세금이라도 더 내야 운영되어 질 수 있는 

또 그래야 그나마 유지되는 제도가 많은 나라고,

공공시설 또한 한국보다도 불편함이 많은 선진국 스웨덴.

왠만한 범죄는 느슨한 공권력의 집행으로 

해결을 향한 진척이 어렵고 소요되는 그 시간도 매우 길다.

점점 나이들어 아프게 됐을 땐 

그냥 상황상황 속에서 편하게 늙어갈 수만은 없는

자신이 부담할 수 있는 보험금과 비례해 

기댈 정도가 갖춰진 의료복지 구조.

그와 동시에 한국보다 나은 장점처럼 이야기 되는 부분들에선

이건 또 어찌봐야 할런지 매우 의아해지 장점들이 넘쳐나는데,

자신의 육아나 기타 여러가지 일로 

공공생활과 직장에서 눈치 볼 일 없는 사회적 분위기,

차별과 편견 부당함이라 생각되면 맞설수 있는 분위기,

대학 진학이 자유로워 사교육비가 크게 염려되진 않고

원하는 진로를 위해 결정되는 코스들을 위해선

남다른 노력과 좁은 문이 존재한다는 현실.

이게 과연 마냥 칭찬이라 받아들여야만 할 

스웨덴의 바람직한 사회분위기일까.

바꿔말하면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상대는 침묵해야 하고

경쟁력없는 수준의 진학은 어느정도 보장되니 

좋은 교육이란 얘기인데 진짜 그런거라 인정되야 할까.


스웨덴 국가운영 자체에서 느껴지는 여러 나태함과 

동시에 역으로 늘어나는 수많은 권리주장 속에서도

계속 선진국이라 불리며 굴러가고 있는 스웨덴이지만,

가장 최근 이슈라면, 무방비 노출을 선택했던 

코로나에 대한 대응으로 여러 나라들에게 

잘못된 방역지침의 모델로 언급됐던 것과, 

계속된 무분별한 이민포용 정책으로 분란에 쌓여있는 

자국내 상황 또한 심도있게 느껴볼 내용들이다.

원래 자국 자체가 지닌 문제로 시작된 게 아닌 

이민자들로써 벌어지게 된 일들로 인해

불안해진 상황들과 맞물려 서로의 불신은 높아갔고,

자국민들에겐 주어지지 않는 복지혜택이지만

이민자들에겐 무한정 혜택이 돌아간단 느낌들로 인해

자국민 스스로가 느끼는 박탈감에서 비롯된 사회분위기는

그 나라의 정치지형마저 변화시키고 있다는 뉴스는 

한국에도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


스웨덴은 진정 선진국이고 

한국의 롤모델로써 바라봐야 할 그런 나라 중 하나일까.

난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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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 - 어느 책에도 쓴 적 없는 삶에 대한 마지막 대답
빅터 프랭클 지음, 박상미 옮김 / 특별한서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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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프랭클의 책으로써 이번 책은

나름 기존 스타일과 다른 매력을 품고 있는데,

스스로 밝히는 개인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과

그의 어떤 책보다도 부담없이 읽히는 내용으로써 

빅터 프랭클이란 인물에 대해 팬덤같은 독자층에겐

융의 그 유명한 자서전만큼이나

무조건 읽고 싶어지는 책일 수 있다는 부분들이 그러하다.

아마 본인이 아닌 그의 후학들이 그의 이야기를 썼다면

이보단 훨씬 중후하고 학문적으로는 멋스러운 책이 됐을지 모르지만

헌정의 느낌이 아닌 리얼의 느낌은 덜했으리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자신을 가감없이 담은 이 책은

한편한편 일기같은 기록이면서도 학자쪽 보단 

그간 몰랐던 인간미가 느껴지는 구성이라 말해주고 싶어진다.

어떤 척도 하지 않으면서 숨길것도 없을 인생의 끝자락이기에

가능했었을 듯한 그만의 문체와 사연들.

더이상 어떤 것도 부끄러움의 대상도 아니요

겸손하게 보이려 윤색하거나 눈치볼 것도 없다고 생각한 듯한

그저 살면서 신났던 건 신났던 것,

자랑스러운 건 자랑스럽다고 말하고 싶은

개인 발표의 장으로 삼은 열린 책 같다는 느낌들.


그의 유일한 낙처럼 표현한 취미로 암벽등반에 대한 열정도 기록됐는데

그 장면을 묘사하길 암벽과 어쩔수 없이 키스하며 오르는

자신을 표현한 짧은 농담같은 실제 현장묘사도 있다.

인간심리의 거장이 사랑했던 육체적 희열로써.

그가 지닌 천진난만함을 느낄 수도 있었던거 같고

치열하게 표현하지 않은 별거아닌 듯한 그 문장 안에서

그가 로고테러피 같은 삶을 귀중하게 여기는

그런 이론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뭔지모를 원동력 같은게 전달되는 듯도 했다.


사실 과거의 난 빅터 프랭클이 그리 대단하다 생각 못했다.

오히려 첫 인연은, 유명 정신과 의사였던 이시형 박사의 책들에 

관심이 가던 계기들을 접하면서, 그가 번역한

빅터 프랭클의 책들까지도 흥미가 생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몰입해 읽으려해도 

그렇게 많은 감명과 칭찬의 댓글이 붙어있는 책이라는데

내게는 전혀 그런 감흥이 와닿지 않았다.

예전의 그랬던 느낌을 다시 떠올려 보니

내겐 그의 그 경험이 내것처럼 와닿지 않았기 때문에

그랬던거란 판단이 들었다.

단순 그런 경험이 없어서라기 보다는

아예 공감할 수 없는 역사이고 영역이다보니 동떨어진 말 같았던 거 같다.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가르치는 금언을

피상적으론 물론 이해할 수 있지만,

나에겐 순간 원수라 생각하는 자체가 없는데

그걸 사랑하라고 말하는 그 자체의 느낌도

체감할 수 없는 그런 것과 같았다.

비유상, 원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원수를 마음에 담고 않고 사는데

원수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라는 내겐 중간매개가 없는 막연한 표현.

그냥 증요한 인생의 황금률로써 소개되는 정도를 접하는 느낌 같았달까.

굳이 공감을 위해 더 노력하려했다면,

수용소의 고통과 그걸 공감하려 상상력을 발휘한다는 그 자체는

없는 고통을 깨달음으로 갖기 위해 애써야 하는

상상이고 모순관계 같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빅터 프랭클의 이론이 다르게 와닿은 건

수용소의 경험 등을 담은 책에서가 아닌

그가 창시한 그의 이론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책에서 

순서있게 학문적으로 접해보게 된 이후였던거 같다.

그냥 막연히 좋은 방향의 제시정도로만 느꼈던 그의 이론이

왜 오늘날 다른 정신이론들과 차별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빅터 프랭클은 직접 아들러에게 배우고 

프로이트도 직접 대면할 수 있었던 시대를 살았다.

책엔 그런 자신의 경험도 적어 놓았다.

마치 모짜르트에게 피아노를 배우고

바흐에게 화성악을 배우는 세대를 살았던거와 같았던

그 자신도 경이로워했고 남달랐음을 시인했던 경험들.

빅터 프랭클의 이 책에 이렇게 그가 경험한

시대 속 많은 것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자료들과,

그가 남긴 것들에 대해 가치를 느끼며 살고 있는

지금의 사람들에게 이론서가 아닌,

그의 팬으로써 분명 읽고 싶었을 살아있는 내용들이 많이 담겨있다.

어떤 부분도 막힘없이 술술 읽히는 

빅터 프랭클이라는 사람 그 자체를 담은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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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잘 알고 있다는 착각 - 중국의 문화와 민족성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
스위즈 지음, 박지민 옮김 / 애플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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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좋은 책이건만 책 제목만으로 

오해나 선입견은 가지지 않기를 바람에도,

과연 이 책과의 인연이 닿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부터에서 사실 조금은 벌써 안타깝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의 그 깊은 내용들에

거부감 없이 닿아보고자 하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지도 벌써 부정적인 예상이 든다.


나에게 이 책은 개인적으로도 올해의 마지막 독서라

읽으면서 나름 뜻깊게 다가온다.

지금 동시에 읽고 있는 또다른 책도 너무도 좋지만

공식적으로 기록을 남기며 읽는 책은 분명 

이 책이 내 올해의 끝이 될거 같아서.

단순한 지식욕에서 시작한 이 책과의 인연은

책을 한장씩 읽으면서 많은 깨달음과 

지적희열로 바뀌는 경험을 주었다.

너무 쉽고 어쩌면 일반적인 문화비평서 구성같아 보여도

단지 한세대의 문화뿐만 아닌 본인이 쌓아온 

학자적 식견으로나 지리적 경험등을 통틀어

중국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방대한 시간 속 

중국인이라면 가진 공통적 모습을 압축시켜 놓았다.


제목만으로 먼저 책을 접한 사람들은 크게 2가지 부류일 수 있다.

첫째는, 평소 이미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를 연구한 이의 설명 그 자체에 대한 공감대나 호기심으로써,

둘째는, 정반대로 본인은 전혀 그렇게 동의나 생각을 안 하지만

어떤 내용을 썼을가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궁금증의 차원에서 접해봤을 부류. 

그렇다면, 이 책은 중국인을 단순 부정적으로 보게 할 

소스로 작용하려 만들어진 그리 단순한 책일까.


내가 볼 땐 전혀 아니다.

그러나, 결코 아름답게 그려지진 않았다.

이 무슨 이율배반적인 이야기냐고?

본론적으로 이 책은, 저자 스스로 중국인인 동시에

자신이 속한 민족이 그 역량보다 부정적인 

공통적 결과물을 내놓을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관찰자적 입장으로써 분석한 측면이 강하다.

비유하자면, 경주마로 달릴 수 있는 

피지컬을 타고 난 말이더라도

단순히 육고기로써 유통되어 버리거나 

그럴 수 밖에 없게 만들 수 있을

어떤 분위기의 당위성에 문화적 해설을 단 꼴.

책속 여러 예들 중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아마 등장하는 다양한 문화컨텐츠들의 비교들 중에

가장 대중적이고 와닿기 쉬운 예일 수도 있겠다.

서양문화는 개성을 중시한다.

하지만, 중국문화로 대표되는 동양권의 문화는

같음이 미덕이요 진리일 경우가 많은데,

이 환경에서 중국인으로써 스티브 잡스와 같은 인물의 탄생은 

결코 바랄 수 없다는게 저자의 의견이자 식견.

인간적 자질이 근본적으로 동서양이 다른게 원인이 아닌

자라나는 그 풍토가 이미 마치 운명처럼

콩은 콩으로 또 팥도 콩으로 자랄 수 밖에 없다는 

마치 대대손손 이어가는 운명론 식의 결론 도달.


분명, 중국인을 설명하고 있는 책이건만

어느 순간부터 책을 읽는 내내 

그냥 한국의 이야기를 듣는 듯도 했다.

실려있는 예들은 순수 중국자체의 예들 뿐이고

정확하게 중국인의 습성만을 다루고 있는 책이건만,

중국인을 한국인으로 바꿔 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을 동질감과 공통점이 

마치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듣는거 같지 않게 만들었다.

잘못했을 때 잘못을 지적하는 이를 공격하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시켜 간다는 내용 즈음에선,

나 가지고 뭐라 그러는 너는 안그러냐며 

더 거센 공격하는데 익숙하다는 설명 즈음에선,

너무 많은 생각들이 스칠 수 밖에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책은 결코 

단순 비판이나 비하를 위해 쓰여진 책이 아니다.

'왜'를 들여다보며 '어떻게 그렇게 되어 온 거지'를 

이해해 볼 수 있는 거시안적 시각을 제공하는데 큰 뜻이 있다.


사실, 편하게 읽어나갈 수 있는

다소 쉬운 주제의 책이라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읽을수록 진국이란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던 책이다.

책 내용이 좋으면 읽기가 어려운 책들도 있는데

순수하게 흐름자체를 따라 잘 읽혀지기까지 했던 책.   

그냥 중국인을 알아본다는 식의 독서 보다는

타인을 이해하고 자신을 이해해 볼 수 있는

내용의 책으로써 이 책을 접해본다면

더 많은 내용을 호불호 없이 읽어 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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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 생의 마지막 도전 - 황혼이 깃든 예술가의 성 베드로 대성당 건축 분투기
윌리엄 E. 월리스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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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익숙한 이름 미켈란젤로.

사실 그리 알고 있는 것도 없었으면서

친숙한 예술가들의 이름은 너무도 많았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로댕, 미켈란젤로까지.

특히, 이탈리어적인 감성도 모른채

미켈란젤로의 이름은 어딘가 그냥 예술스럽기까지 하다.

그런 잘 몰랐던 미켈란젤로의 인생을 실제 들여다보게 된건

어쩌면 이 책이 처음인 듯 싶고 잘 정리된터라 읽기도 좋았다.

그동안, 그의 작품을 미술관에서 보거나

화보집 등에선 본 기억도 있지만

실제 난 그를 거의 몰랐던 것이 맞음을 분명 느끼면서.


우선, 책을 통해 짧지만 상상해 볼 수 있던 그의 실제 모습도

내가 생각한 미켈란젤로의 이미지와는 많이 달랐음도 신선했다.

활동이 왕성했던 젊었을 시절을 기준으로 본다면 

그의 장년 나이대까지의 외형적 모습은 쉽게 말하자면 

개그맨 김병만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외모였다.

다부진 체격에 크지 않은 키 등.

난 미켈란젤로를 고뇌하는 예술가로 생각했었지

큰 돌을 만지며 씨름하듯 자신의 작품들을

조각하고 완성해 나갔기에 당연히 길러질 수 있었을

그런 완력이나 근력적인 외형적 모습은 인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듯, 이 책엔 그런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모습도

짧게나마 그려볼 수 있는 내용들도 있었고,  

어쨌건 말년에 해당하는 그의 마지막 20년을 주요내용로

성베드로 성당과 얽힌 시절을 그려내고 있다.

상당한 부분들이 저자의 상상으로 채워졌을 테지만

부드럽고 마치 당시 상황을 보고 적은 듯한 

과거의 상상적 복기들로 인해 실제 미켈란젤로가 

그리 생각했고 살았을거란 저자의 상상들을 

부담없이 따라가게 하는 필력을 담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교황이 미켈란젤로에게 미완의 성당건축 책임을 맡겼을 때

그는 분명 자신의 능력 밖임을 여러번 피력했다.

그 주된 이유는, 예술의 영역과 공학적 영역은

분명 다르다는 스스로의 판단에서였다.

이 부분도 어느정도 그를 다재다능했을거라 쉽게 보면

일반인들의 상상을 벗어난 것일 수도 있기에

매우 현실적인 감각적 대응을 그린 뜻밖의 설명이었다.

그냥 현세 기준에서만 본다면,

아무리 나이가 많고 은퇴했어도

보다 명예로운 자리나 보수가 따르는 자리,

혹은 그냥 은퇴자로써의 잊혀져가기 보단

어떤일이라도 주어진다면 함으로써 

삶의 가치를 증명하 듯 너무 당연한 듯 받아들이거나

오히려 찾고싶어하고 그리 보이려는 사람이 

지금은 얼마나 많은가.

하지만, 오래전 미켈란젤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해

먼저 고민했었음이 무엇보다 좋게 와닿기도 했다.


결국 그는 새로운 성당건축 책임자가 되었다.

그후 전개되는 건축관련 일들에선

매우 현실적인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음을 

다시 각인시키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기존 사망한 책임자를 따르는 많은 인원들 중

일부는 중용해야 했고 일부는 자신의 사람으로 바꿔야 했으며,

잘못 설계적용된 것이라 판단되는 회랑 같은 부분들은 

일부 없애기까지 책임자이지만 여러 단계를 거쳐야만 했다. 

그런 일들의 진척상, 반감을 줄이면서 효율적인 조건으로써

해체된 자재들은 다시 성당의 보강부분들로 재활용 하기도 하면서.

또한 독자로썬, 어떤 건축물이던 1인의 개인 창착품이 아닌 이상

아마 이처럼 미켈란젤로 같은 인물의 지휘하에

여러 예술적 일꾼들과 실무인력들이 일을 나누고 

합동해 완성해나간 것들이 오늘날 

미켈란젤로의 성베드로 성당처럼

단 1명의 이름으로만 불리게 된다는 과정도

다시 한번 깨달아 볼 수 있던 내용이기도 했다.


그가 성당감독이 되기 몇년전의 행적들도 담겨있고

이후 약20년 간의 행적들도 아주 상세하진 않지만

미켈란젤로 그의 마지막 생애를 어떠했었을지

알려주는 내용들로 이 책은 쭉 기록해주고 있다.

어렵지 않고 시간을 거슬러 가면서

뭔가를 체험케 해주는 내용들.

큰 심리묘사까지는 아니었지만,

전기작가로써 여러 상황들마다 다양한 인물들과 교류하며

그가 남긴 편지나 그림들이 등장해

독자로써 예측해 볼 수 있을 미켈란젤로의 심정이나 행동들 또한

이 책을 통해 알아볼 수 있는 그를 담은 귀중한 자료였다.


그의 직업적 산물들은 지금까지 남아있다, 그의 이름도.

그가 이런 것까지 모두 생각하며 살다 갔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영예로운 삶과 작업을 했었다고 느껴진다.

그의 마지막 20년으로써 그의 삶 전체를

한번쯤 바라볼 수 있는 독서를 해보기에 매우 좋았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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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괜찮냐고 시가 물었다 - 시 읽어주는 정신과 의사가 건네는 한 편의 위로
황인환 지음 / 웨일북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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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드러운 서술들이 특히 눈에 띄는 책이다.

오로지 의사 자신만이 알 뿐이지

아마 이 책을 읽지 않는다면 

저자와 해당 대화를 나눈 환자들이라 할지라도

이해하기 어려웠을 전체적인 안목들을

책은 다양하게 실어놓은게 많다.

예를 들면, 많은 사람들이 정신과 의사인 저자에게

공통적으로 묻는 질문들 중엔 아마

매우 철학적인 질문들도 많은거 같은데,

사실 의사로써 그렇게 받는 질문들을 향해

답다운 답이 없음을 설명하고 

납득시켜 나가기란 쉽지 않아 보이는 부분일 것이다.

시대와 사람은 바뀌어도 비슷하게 공유되는

삶 속 본질적인 내용들이 주는 고민의 유사함을

진료실에선 매우 많이 있단걸

저자 특유의 방식으로 쉽게 설명하고 있는 책 같기도 했다.


예를 들면, 저마다의 인생고민을 

의사와 논하듯 물어올 때면, 

실제 자신이 내놓을 답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왜냐면, 오랜기간 다수의 철학자들도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했던 것들이나

이와 유사한 만고불변적인 인생사 속 

질문들을 물어온 셈이라면,

답을 안해주거나 귀찮아해서가 아닌

사람이라면 누구나 고민거리가 될만한 내용이고

대신해 답을 해줄 수 없는 그런 질문들이기에

고민하는 사람도 고민을 하는 것이고

질문을 받는 누구라도 용빼는 재주는 없다는 의미 같기도.


책은 내가 이렇게 느낀 내용을 정리한 것처럼

건조한 설명방식을 사용하고 있진 않으니 오해 없길.

책의 제목처럼 어떤 내용이던 

연상되는데 도움이 될 해당되는 시 1편과 엮어

부드럽고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어조로써

어려 심리적 기재들에 관해 상황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책에 소개된 사례 중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을 대상으로,

저자가 내원한 이와 나눴던 대화로써

받게됐던 대답도 실려있는데 짧고 임팩트가 있는 내용이었다.

그녀일지 그일지는 모르겠지만 이리 답했다고 하는데,

슬픔은 반이 되는게 아니라 

그저 슬픔을 아는 사람이 2명이 되는거 같다고.

이말을 또다른 누군가가 듣게 된다면

나누는 슬픔은 반이 된다고 말할지 아님 

이처럼 2명이 슬퍼하게 될 뿐이라 말할지도 궁금해진다.


책의 초반에 실린 이드와 자아 그리고 초자아의 이야기도

어쩌면 책 전체를 이해하기에 좋은 가이드라 생각을 해본다.

욕망을 관장하는 이드, 

해야할 것 말아야 할 것들을 관장하는 초자아,

그리고 이 둘을 오가며 조정하는 자아.

이 조절이 잘 안된다면 부정하는 태도가 우세할 것이고

성숙하게 잘 된다면 적어도 억압 아닌

억제 정도는 잘 쓰고 살 것이라고 하는데

다들 어떤 삶을 사는지 스스로 점검케 해보는 문장도 돼 줄듯 싶었다.

만약, 본능에 충실히 살라는 조언들은 

이드를 자극하는 말에 가까운 삶을 살 것도 같고,

성숙해 지라는 조언을 더 받아들인 사람이라면 

보다 억제의 능력쪽을 자극적으로 받아들일거라 느껴지는데,

수많은 조언자들과 책들은 저마다 위와 같은

완전 다른 솔루션과 답을 진리라 말하고 

누군가에게 권하고 있진 않은지 

고민해 볼 문제같다고도 생각됐다.


저자는 쉽게 건내고 시로써 응축적인 방법론을 채택했는데

그 좋은 내용을 좀더 명확히 간직하고 싶은 욕심이 일었는지,

말하려는 여러 의미와 방향들을

현실적으로 이해해 보려고 

다양하게 느끼며 읽게 되는 부분들이 많았다.

한편으론 시를 읽듯 읽었단 의미도 될 듯 싶다.

오랜만에 덕분에 시집들에 눈길이 한번이라도

더 갔던 한주를 보냈던 거 같다, 좋은 관점들을 담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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