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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가혹했던 전쟁과 휴전
마거리트 히긴스 지음, 이현표 옮김 / 코러스(KORUS) / 2023년 4월
평점 :

생각해보면 6.25 한국전쟁이 있은지 채 80년이 안됐다.
까마득히 옛날일 같은 임진왜란 같은 전쟁마저도
채 500년도 안 지났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100년 단위 쯤으로 되집어 보는 시간계산이란게
어느 정도가 긴거고 짧은 것인지 가늠키 어렵다.
74년 정도 과거가 된 6.25 전쟁.
그때 일부러 한국을 찾아온 종군기자들 중에
이 책 저자 마가렛 히긴스도 있었다.
궁금해 찾아보니, 이후 베트남전 취재로 얻은 풍토병으로
50이 안된 나이로 안타깝게 사망한 기자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여기자 중 한명이면서
직접 보고 느낀 바들로만 남긴 이 한국전쟁의 기록.
그렇게 쓰여진 책이 바로 이 책이다.
기자로써 그녀 자체를 기리기 위해
이번에 이 책이 한국에 소개된 건 아닌거 같다.
지나간 역사를 타국민의 시선으로 균형있게 기록해 냈고
당시 주요인물들과 근접 거리에서 관찰하며 기록할 수 있었던
그녀의 기억을 한국역자가 발굴해
재소개하고자 노력한 귀한 의도의 책이라 보여진다.
역자는 말한다,
이 책은 맥아더로 시작되고 끝났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맥아더 장군 중심으로 기록된 것들이 많다고.
그런 사실도 결국 중요한 부분 중 하나겠지만
이 책으로 인해 사실을 사실로 접해볼 수 있게된 그 자체,
그 자체를 매우 소중히 간직해야 되지 않을까.
거기에 추가적으로, 맥아더 장군에 대해
가장 직접적이면서 진실에 더 가까운 기록들을
종군기자 히긴스의 기억으로 들어볼 수 있는 기회란 점이
과거를 바라보는 한국인들에겐 또다른 가치라 할만 하겠다.
책 내용은 크게 3가지다.
당시 전쟁기간 중 한국의 실제 모습,
미국참전을 중심으로 본 국제정세 속 한국,
중공으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본연의 심리전술.
거기에, 부록처럼 실린 전쟁당시
주요인물 7명과의 인터뷰 또한 너무 귀중한 사료다.
먼저, 맥아더에 대한 히긴스의 인물평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미 다른 책이나 매체에서 접했던 맥아더의 인물평들은
그의 전공이나 활약상에 비해 매우 반하는 것들이 많았다.
매우 나르시스트적이고 사관생도 시절부터 그랬다는 등의 얘기들.
심지어, 당시 대통령 중 1명인 트루먼 또한
맥아더 장군을 이런 식으로 평가하며 강등시켰고
부정적인 감정을 감추지 않았으니까.
군경력으론 후배격인 아이젠하워 대통령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히긴스가 대화해보고 지켜본
맥아더의 실제 모습은 세간에 알려진 평과는 확연히 달랐다.
매우 섬세하고 신중하며 자기 잘난맛에 사는
인물과의 행동과는 모든게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를 폄하하는 이들의 실상들이
맥아더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그 모습에 가까웠다.
그러나, 기자이기에 단순히 그를 팩트전달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하는데만 그치지 않고
왜 맥아더가 그런 평을 들었는지에 대한 견해를 실어놓았다.
기자들에겐 직업상 당사자를 만나 취재와 인터뷰를 해야하는데
맥아더를 만날 수 있는 기회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피하듯 느껴지고 직접적인 접촉이 없으니
추측에 의해 맥아더란 인물평을 하게 되고,
결국 그의 처신을 부정적으로 본 기자들을 양산하게 됐다는 것.
이런 앞뒤 상황은 이해당사자가 아니면 사실
전달하기도 이해해 보니도 어려울 내용들이다.
이런 기록이라도 남겨놨기에
다른 판단이 가능하단 사실도 귀했지만,
전쟁 지휘관의 특성상 브리핑하듯
자신을 드러내 보이고 정보를 공유한다는 그 자체가
전군을 통솔하는 맥아더의 위치에서
당연 불가능했을거란 쪽에 더 공감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헤아려주는 아군같은 지지자들 보다는
자신을 싫어하는 이들에 의해 끌어 내려지게 됐으니,
그의 운명을 결정한 사람들은 결국 반대쪽에 선 사람들이었고
그들과의 정치싸움에선 패장이 된 명장 맥아더의 뒤안길은
한마디로 형언하기 힘든 딜레마적인 부분들.
맥아더 장군에게 가려지긴 했지만,
밴 플리트 장군같은 혁혁한 공로자의 활약과
당시 역할을 알게 된 것도 귀한 자료였다.
전쟁 막바지, 맥아더와 한국의 반대편에 선 듯한
트루먼 대통령과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모습들,
휴전에 반하는 본인 뜻의 강경함을 증명하기 위해
37000명의 반공포로 중 27000명을 석방해 버린 이승만의 판단,
이런 사실들에선 한마디로 옳고 그름을 되집어 보긴 어려웠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의 결정은 세계를 놀래키긴 했으나,
결과적으로 잡아들인 공산주의 브레인들을
3만명 가까이나 풀어놔준 꼴이 되버렸으니 말이다.
전쟁을 당시에 종식시켰어야 된다는 판단,
지속하기엔 변수가 많다는 판단.
이 둘은 이 책 후반부로 갈수록 큰 화두였다.
당시 미국 입장에선 휴전이 옳았을거다.
미국인 입장에서 자국의 희생을 당연시 하고
확전으로 인한 3차 세계대전의 가능성을 망상으로 치부하면서
한국을 위해 전쟁을 어떻게든 승리로 끝을 맺자고
움직여야 했던게 과연 가능했을까 싶어서.
그러나, 양비론이나 회색지대적인 생각 대신
책의 주요내용을 골자로 당시를 판단해 본다면
휴전 아닌 전쟁 종식이 힘들었겠지만 맞았을거라 본다.
첫째, 사상자를 줄였기 보다는 오히려 더 늘어나게 했고,
둘째, 소련과 중국을 대적하는 확전을 염려하기 보다는
스탈린의 사망을 호재로 평가하면서 확전되듯 보이더라도,
소련은 결국 전쟁상황을 가만히 관망하기만 했었을 거란 당시 판단,
셋째, 중공 내부의 나름 큰 규모였던 자유군과 연계,
넷째, 중공 해안봉쇄로 확전차단 등
확전이 아닌 종전이 가능했을 이유들에
더 인정되는 부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히긴스가 경험하고 기억하는 전쟁의 다양한 기억들 중엔,
죽음을 앞두고 공포보단 놀람의 표정이었다던 전쟁초기 죽은 자들,
왜 싸워야 하는지와 당연히 싸워야지로 말씨름 하던
2명의 부상명들이 차에서 내렸을 땐
둘다 사망해 실려 내려가더라는 기억,
인천상륙작전으로 들어가던 길목에서
의연하게 미군들을 위해 종을 울리던 4명의 한국인들,
지나치게 넘치는 자신감의 중간 지휘관이었지만
자신의 작전상 실수를 인정하더란 솔직한 모습,
대구 저지선이 인천상륙작전을 가능하게 했다는 기록 등
후대 역사가들이 전할 수 없는 당시의 생생함이
고맙게도 너무 많이 기록되어 있다.
사실, 책의 본문을 읽기 전 이미,
마가렛 히긴스의 짧은 머릿말을 읽으며
전율이 흐른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경험한거 같았다.
별거도 아닌 말들, 단순한 말들 뿐이었는데도 이미 그랬다.
짧은 글들이지만, 당시 히긴스가
자신의 글을 손보던 책상 불빛아래로 돌아간 느낌이랄까.
기록이라 표현했고, 배운게 무엇인지
생생하게 보여주려 썼다는 기록뿐이었는데 말이다.
솔직함과 사실이 주는 경고 그 자체...
또하나, 강만수 전 장관의 추천사도 있다.
이태극 시인의 시를 인용한 글에서,
은혜를 아는자 분이요, 은혜를 기억하는 자 사람,
은혜를 잊은자 놈이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자 새끼라 했는데,
은혜를 갚지는 못해도 잊지 않는 사람이 되자는 뜻이었다.
현재에 감사하자는 말을 자주 듣는다.
자신을 위해.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는데
히긴스의 전쟁기록을 보며는 느낀다.
그리고 미안하다. 역사를 자주 잊고 살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