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빌 고다드의 삶과 가르침 - 상상력을 통한 자아긍정의 성공법칙
네빌 고다드 지음 / 블랙커피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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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성경 구절이 등장하는 책인데 각 구절마다 

네빌 고다르 스스로가 읽으며 느낀 성찰을 

대중에게 설파하는 책에 가깝다.

'아, 이런 구절이 이렇게 네빌 고다르를 거치면

이런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구나'를 

가장 먼저 느끼는 게 먼저 일텐데도,

왠지 읽는 내내 들던 생각은

이제 나 스스로 성경 자체를 정독해 보거나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단 마음이

성경 자체에 생겨야 하는 건가란

기독교와의 만남과 때에 관한 

스스로를 향한 질문이었다.

기독교 신자도 아닌데 미션스쿨은 다녔고

집안은 윗대부터 불교에 가까운데

살면서 관련되는 일들은 

성당과 관계된 것들이 많았던 시간들...

이런데 과연 어느 한 종교에만

깊이 심취해 알아간다는 것이

다른 어느 쪽은 버리는 느낌도 들어서 

계속 스스로 망설였는지도 모르겠다.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그동안

다이제스트식 성경이나 영어 성경을 

스터디 자료로 공부함으로써 

필요할 때만 그때그때 읽었던 게 나에게 성경이라면

이젠 정말 성경자체를 접해야 하는 걸까란 

생각이 먼저 들게하던 네빌 고다르의

옛날 이야기처럼 읊는 성경이야기들...


네빌 고다드의 책은 이 책으로 2번째 만남인데

자기계발서의 느낌은 전에 읽은 책이 

더 강했고 독창적이었다면,

이번 책은 전혀 다른 느낌의 저자로

네빌 고다르를 이해해 보게 해준다.


상당히 신비주의 철학자로 느껴졌던게 저번 책이라면

이 책은 성경위주의 정돈된 그의 생각을 접하게 해준다.

서술 자체의 느낌이 너무도 다르다.

성경 구절들이란게 그 자체가 직관적인게 많지만

그래도 음미하는 이들마다 달라지기도 한다는 건

자신이 처한 개별상황과 바라보는 관점의 차로 인한 걸거다.

그런 수많은 시각 중 결국 이 책으로는

네빌 고다르가 말하려는 성경적 시각을 접해봤다고 생각한다.


책의 중간쯤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에 대한

그만의 관점이 등장한다.

'자신도 모르는 무언가를 깨닫지 못했음에도

그것이 사실인 냥 자신에게 표현하고

정신적으로 일의 현실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 분을 마음의 눈앞에서 접했다 느끼며

그분이 자신에게 보이고 싶어하는 바 그대로

세상이 그분을 보고 싶어하는 그대로 

그 분을 바라보라.

그렇게 한 다음에 자신이 한 일의 실체를 믿으라.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내용은

사람들의 관계란 얽히고 설켜있음에

서로 간섭되고 재구성 된다는 의미로 좀더 이어지는 구절이었다.


리듬감이 느껴지기도 하는 건

발췌한 구절마다의 성경해석을

자신이 겪은 일들과 결합해 

한편의 이야기처럼 풀어놓기 때문일 듯.


이 책 때문에라도

다시 한번 기독교와 성경을 생각해 보게 된다. 깊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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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애쓰지 마라 - 인정중독에서 벗어나 삶의 주도권을 되찾는 14가지 심리 기술
오타 하지메 지음, 민경욱 옮김 / 윌마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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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쓴다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본 그 누군가가

이 책을 읽는 것은 행운일지 모른다.


한국에 심리학 열풍을 일으켰던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받을 용기'도 좋은 책이겠지만

이 책이 더 그 근본을 파고든다고 느끼기 때문에.


한사람이 들였을 애쓴다는 자체를 저자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정의한다.


그러나 이 책 나름대로 탁월한 건,

이런 욕구로 인한 접근을

기시미 이치로 방식의 심리학적 설명이나

아들러식 정리가 아니라

저자의 전문분야인 조직학과 경영학을 접목해

단순 심리학자가 보여줄 수 있는

인문학적 시각을 조금은 빗겨나 봄으로써,

굉장히 명쾌하게 

애씀의 오남용을 사회나 가정에서 

경험하게 될 어떤 당사자의 입장에서 

많은 걸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순히 인문학적인 깨달음을 넘어선

실용적인 그런 느낌이 좋을 수 밖에 없을 책.


뭐든 하면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이란 

일종의 자신감을 불러 일으키는 요인은 성공경험인데, 

실제로 부딪혀 보고 결국 성공한다면

자신감이 쌓이게 될테지만 

성공이란 거듭해도 스스로 모를 때도 있도 있는데

그건 상호간의 소통에 문제가 생겼을 때 가능하다.

그럴 때 만일 다른 사람이 

해낸 일을 칭찬하거나 인정해 준다면

전과 비교해 스스로 자신감을 얻게 되는게

쌓여가는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과정이 된다.

즉, 새로운 의욕을 만들어 나아가고 

불안을 줄이는 것까지 확장되게 해주는 구조란

누군가로 부터의 인정이 필수적이란 말도 되고.

그렇기에 주위사람으로 부터의 인정이란

일종의 '피드백'이라 정의할 수 있고

이런 자신감에는 인정이 절대적이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은 분명

이런 인정을 위해 애쓰는 행동이 불러일으키는

기대의 부작용을 이해시키려 설득하려는 책이다.


남을 위해 애쓰지 말라는 

단순 심리학적인 조언이 담긴 책도 아니다.


피드백이란 게 공적이던 사적이던 

결국 평가기준으로 받아들여 지는건데,

만일 기준이 불명확하고고 

그마저 시스템화 되버린 환경이라면 

결코 제대로 된 피드백을 얻는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바로 이게 저자의 우려섞인 관점 중 하나.


평가는 거의 인정과 이어진다.

그에 대한 처우는 만족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다.


자신의 임무를 다하고 공헌했는데

주위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면?

그로인해 기대했던 신뢰감과 안도감을 얻지 못한다면?


반대로,

보여준 결과에 대한 가시적인 댓가가 

본인 스스로도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인정받고 신뢰 받았다고 느끼고 있다면

불만족한 평가 또한 순수히 

받아들일 수 있다는 가정까지 도달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선 

그렇지 못한 상황을

오히려 더 많이 감내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극히 이상적이지 않은게 현실이라는 것.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실망받을 걸 감수하라? 


아니다.

애씀이란게 인정받기 위한 애씀만이 된다면

그렇지 못한 상황에서는

스스로의 기대가 덫으로 작용한다는

사회생활 속 현실을 우려하는 것이다.


즉, 

사회가 냉혹하다고 낙담할 게 아니라

사회가 가진 속성 자체가

훨씬 비논리적이고 비상식적일 때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해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다게 핵심인 것이고,

그렇기에 단순 애쓰지 말라는 게 아닌

타인으로부터 온 부정적 피드백으로 인해

실망을 경험하는 그 자체도 

필요이상으로 의미부여 하지 않는 내면의 단단함이

어떤 회복력 만큼 중요하다는 그게 핵심중의 핵심일 것이다.


잘 쓰여진 책이라고 보고

관점 또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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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초조한 당신을 위한 마음 치유 심리학 - 삶의 불안 속 평온한 길을 찾는 단단한 내면의 힘
판쥔쥐안 지음, 유연지 옮김 / 이든서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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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안전감이란 단어가 등장한다.

이 책에만 유일하게 등장하는 단어는 아니고.

다만, 이 단어에 유독 관심가는 이유라면

이것이 '중압감'과 연결되는 키워드이기 때문이다.


이 자기 안전감을 들여다 보기 위해

쉬운 말로 재해석 한다면,

'겁'이란 단어로써

쉬운 반응 위주로 설명하는게 더 유용해 보인다.


겁...

겁을 먹게 하는 대상은 사람마다 다르겠고

안전감이란 말도 다양하게 인용될 수 있겠지만,

결국 이 둘이 같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는건

본질이 같고 그로인한 중압감이란 게

심리적 먹이가 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중압감이 심리적으로

부정적으로 작용됐을 시,

누군가에겐 과도한 책임감으로도 드러날 수 있지만,

책은 2가지 경우로 폭을 제한시켜 설명해준다.


안전감에 위해를 받는 느낌이 드러날 때

드러나는 공격성이란 밖으로만 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주목할 부분 되겠다.


일반적이라면 보통은 공격성이

타인을 향한 감정 분출로 드러나겠지만,

공격성의 모습은 수동적으로 발휘되기도 한다는 점이

매우 위험해 보였다.

이런 자신을 향한 공격으로써의 모습은

자기 비하의 모습을 띄고 나타날 수도 있겠고

어쩌면 수치심의 모습으로 각인될지도 모른다.

즉, 이런 현상 모두는

수동 공격성(passive aggresiveness)이란 외형을 갖춘 것.


남 안 괴롭히고 자기만 힘들테니 

주변사람이면 됐다고 방관할 것인가?

어쩌면 외부적인 감정폭발이 최선은 아니지만

자기 공격은 더욱 그 반대의

차선적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보여졌다.


실패를 선언하며 인생을 사는 이유가

어쩌면 자기에게 있다는 이런 류의 무의식을 이해하지 못한채

끊임없이 자신에게 채찍질 하듯 

중압감만을 느끼며 모든걸 자신안에 가두는 태도는

너무도 해답없는 자해로써 다가오는 바다.


이렇게 사는 모습을 책은 묘사함에 있어,

자신의 모든 신경을 곤두세운 채

어떻게 해서라도 자신에게 남은 에너지를 지키려는

몸부림을 치는 것까지 내다보고 있었고,

이유는 신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부족할 때

나타나는 반응으로 해석을 덧붙인다.


중압감의 이유로 이 이외에도 여러 키워드가 거론됐지만

자책감이라는 측면에서 돋보였던

자기 안전감 부분만을 발췌해 이야기해 봤다.


총체적으로 전개방식이나 내용이 굉장히 좋았음에도

내 이해력 탓인지 전체적으로 잘 머리에 남진 않았다.

내용은 좋은데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어쩌면 나 스스로 이어지는 내용들에서 

스스로 거부감이 드는 핵심들을 많이 만났던지,


이게 아니라면,

쭉 이어지는 내용들이 결코 어렵지만은 않으나

문장 가독성 측면에서 긴 측면이 있어서

그렇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봤다.


예로써, 중압감의 다른 이유로 등장한 

다른 주제 속 문장 중 하나를 인용해 본다.


"행복한 감정을 느꼈던 기억은

우리에게 긍정적인 에너지를 남긴다.

반면, 두려운 감정을 느꼈던 기억은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블랙홀처럼 

우리를 끊임없이 불안한 상태로 몰아 넣는다."가 있는데,


이를 가독성 좋게 이해되는 문장으로 바꿔 본다면

'행복은 긍정적 에너지를 남기고,

두려움은 블랙홀처럼 우리는 잠식한다'정도가 될 것 같다.


이렇듯 문장자체로 읽으면서 지나갈 땐

나 스스로 책 자체의 표현법들이 너무 좋았으나,

아래와 같이 매순간마다 요약해내고 기억하지 못한다면

원문의 많은 형용사가 붙고 길게 묘사된 

개념들의 행진을 간직하기에 내 능력이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 내용이 좋은 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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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니체
서희경 옮김, 토마스 아키나리 감수 / 소보랩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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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완전한 저작들을 읽은 적이 없다.

그 많은 철학책들과 심리학 책들을 봤으면서도

한번은 진작 선택해 봤었어야 할 니체의 책들은

스스로 선을 긋고 멀리했었다.


'신은 죽었다'는 등의 말을 궤변같은 말로만 받아들이고

이를 니체철학의 핵심이라 오해했었고

그의 불행한 결말까지 알고 있었기에

그런게 하나둘 쌓여 그의 업적 자체에

나 스스로가 선입견을 덧입혀 버렸다.


이 책은 특히 나처럼 

이런 식으로 니체를 몰랐던 사람들이나

그냥 지나쳐 왔을 사람들에게 

매우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 줄 텍스트다.

그냥 원문으로 니체철학을 읽었다면 

꽤 모호하거나 방대했을 내용들을

감수자 토마스 아키나리의 해석을 통해

훨씬 명료해져서 본질로 와닿게 됨으로써

오해의 소지를 훨씬 줄였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지금 현 시점에서 니체의 철학은

어느때보다 필요한 사상일 것이다.


모호한 세상, 

흔들리는 가치관, 

믿는 것과 믿으라는 것의 충돌...

이런 분위기에서 이 책만큼은 

오히려 모든 걸 냉정히 뚫어내고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본성"을 깨워줄 수 있는 살아있는 지식으로써 말이다.


노자도 '무'를 이야기하지만

니체의 무(無)로 무를 이해하는게

내겐 더 적합해 보인다.


'우상의 황혼' 중 일부 해석에서

힘에 의지하는 인간이 이를 향한 욕망으로

에너지를 얻고 본능적인 삶을 갈망한다고 보여

몸을 부풀려 가능한 크게 보이려는

복어나 고슴도치가 연상되는 구절이 있었다.


누군가의 자랑이 되고 싶거나

누구에게서 존경을 받고 싶다는 것 또한 욕망...


그러나 니체는 

이처럼 살아간다면 진정한 자아는 가려지게 되고 

스스의 힘으론 진짜 자신을 '인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힘의 의지가 인간의 본능적 삶을 추구함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되줄 수 있지만

이걸 최종목적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는 부분과,

이외는 반대로 

본능에만 충실하게 살려는 사람들에게

핑계거리를 주게 돼 역효과도 줄 수 있다는 부분까지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주체 스스로의 

'성숙함'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어쨌건,

자신에게 없는 걸 보여주려는 

힘을 소유하고자 하는 의지나

이를 향한 욕구라면

결국 허상에 의지하게 만들기 때문인데,

외적인 성취만을 몰두하게 되는 결과만을

낳게 될 수 있으므로 반드시 경계하라 가르친다.


니체는 사실 이같은 경계를 넘어 

허구적 가치에 얽매이는 것까지 경멸했다.

성과나 지위는 본질적 가치에 의미가 없으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과시하려거나

진실을 호도하려는 영향력을 발휘하려 할 수 있고

진정한 실력에 맞지 않은 태도 또한 보이게 될 것이기에

결국 보여지고 싶던 허상 때문에

스스로 자멸하고 도태된다고 보는 니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자신을 실제보다 더 크게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벗어나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이해" 해보려는 것일텐데,

자아가 아닌 그 "이해"가 

이 말의 핵심이란 걸 아는게 더 중요하다.


모든 중생이 부처라는 말도 결국 이와 같은 의미는 아닐까.


너와 내가 그냥 부처이고

인간이기에 무조건 존엄할 수 있음이 아닌,

본질은 같게 태어나지만 

그걸 볼 수 있는 본능이 깨어났을 때만

부처와 같고 인간일 수 있을

각자가 된다는 의미일 수 있을테니까.

여기서도 결국 주의할 점은

상대는 무지하고 자신만이 깨어나 있다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편협함을 아는게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신은 죽었다'라는 유명한 아포리즘을 완성한 니체...


아마, 그의 책 그대로를 읽었다면

이 책의 의미와는 다르게 해석하려 했거나

자의적으로 음미하려 애썼을거 같다. 


감수한 저자의 해석을 완전히 맞다고 공감만해주는 것도

니체철학의 정수에서 보자면 또 틀린 거지만,

그럼에도 이 책 정도의 해석이라면

난 온전히 감수자의 설명 그대로를

받아들여주고 싶다는 느낌을 받는다.


신이 죽었다고 한 니체의 본 뜻은

종교적인 신을 부인하거나 죽었다고 인식하려고 한게 아닌

스스로의 추진력을 가로막고 족쇄를 채울수 있는

한계설정 자체를 가장 높은 차원의 대명사로써 

고정관념처럼 갖지 말게 하려는데

'신은 죽었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가 담겼다고 보이니까.


결국 니체의 말들은 다 맞는 말이었다.


너무 옳곧고 체계화 하려는 것까지

결국 스스로를 막게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음을

경계 또 경계하는 니체의 철학...

가장 큰 존재인 '신'을 일종의

자신을 한계를 결정하는 성벽처럼 

그냥 은유화 한 비유라 느낀다.


이 책이 니체의 원전 자체를 읽은건 아니지만

짧은 시간에 그 이상의 느낌은 

각자에게 줄 수 있으리라 본다.


지나가다 채찍질 당하는 말을 가로막아주며

눈물을 흘렸다는 말년의 니체.

정신이상으로 10년이상 고생하다 죽은 

그의 이런 이야기도 사실여부는 확인되지 않지만,

이렇게 스스로를 뛰어 넘으려는 생각을 계속 해 온

그의 인생 자체가 스스로를 과부하 상태로 

몰아서 생긴 결과인 듯도 싶다.

한 사람의 불행한 결과와 달리 그의 노고는

이렇게 후세 사람들이 또다른 영감을 얻는데 

귀한 자료가 되어주고 있는게 아이러니지만.


니체의 철학은 책상물림식 지식을 뛰어넘는

실천적 의지를 어느 사상보다 더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이 책은 

책이 가진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 줄 책이란

말장난 같은 사실이 가능함을 보여주고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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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태도 - 흔들림 없이 나아가는
반건호 지음 / 북플레저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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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치면서 가장 궁금했던 건

저자가 말하는 '시프트'의 정의란 

과연 무엇일까란 거였고,

단어 그 자체로도 어느정도 이해가 될 만한 용어지만

저자가 이야기하려는 설명자체로써 이해해보고 싶었다.


나름 모든 이야들마다 중간 중간에

시프트란 용어는 자주 등장하기에

문맥상 이해되는 부분들이 계속 쌓여갈 수 있었지만

속시원히 와닿는 개념설명은 못만나나 했는데

책의 중간쯤 그 설명을 만날 수 있었다.


[시프트]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태도.


나아가 이를 통해 삶의

보람, 재미, 행복을 느끼자는 것.


이렇게 정리된 이후로는

앞서서 다뤘던 방식보다는 

저자가 명명하고자 노력한 시프트로써의 이해를 위해

좀더 이론적으로 다가가 볼 수 있게 

서술돼 진행되기도 한다.


사실, 앞서 나온 시프트를 이해시키려는 친근한 예나 설명들 중엔

스티브 잡스의 터틀넥 티와 청바지에 관해서도 나오는데,

전체적인 이야기를 다 읽지 않고선 일정부분

그냥 단순한 에피소드 같기도 할 수 있던 부분일 거다.


프리젠테이션의 컨셉을 바꿔버린 그 때 그의 이러한 패션은

워낙 유명했었기에 무엇인지 가시적으로 쉽게 와닿지만,

이를 혁신이나 선구자정신 정도로 오해하거나

너무 과대포장해 버리면 

이 책에서 말하는 시프트와는 다소 거리가 있겠다.


일단 저자는 

이 사건이 격식과 의식의 변화를 주도한 것에

일차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고 있음을 설명도 했지만,

양복이나 구두, 반듯한 발표자의 복장코드가

스티브 잡스로 인해 이후 

굉장히 크게 깨질 수 있었다는 그 사실과 함께,

이 책 이외에도 많이 들어왔던 이 내용에 관해

왜 이 사례가 시프트의 예로써 실릴 수 있었는지

결합해 이해해봐야 할 핵심을 좀더 풀어가고 있다.


스티브 잡스의 당시 파격적인 의상은

단순히 시선을 잡으려는 쇼맨십 필요성으로써 뿐만 아니라

본인을 위해 의상결정에 낭비될 수 있는 

'결정 피로(Decision Fatigue)를 최소화 하려고 한 게 

주된 이유라는 설명까지가 한 셋트니까.


스티브 잡스는 짧은 내용의 예이고 

이 외에도 워낙 많은 사례들을 인용하고 살린 책이지만,

한 부분의 문화 변화를 주도한 것과 개인적 필요가 

사실상 다르게 작동한 사례같기도 해

재밌고 유익하게 들려졌다.


'변화'라는 측면 때문에 쓰인 예이건 분명하지만

누군가의 몸에 벤 특별한 효율적 습성이

다수에겐 창의적인 이벤트처럼 비춰져

혁신처럼 다가오고 널리 퍼진 걸 수도 있으니까.


어쨌건 용어정의를 한 이후부터는 

시프트에 대한 구체적인 정리와

정신과 의사다운 지식은 더 가미되어 진행된다.


우연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이전까지 읽어온 책들과 다른 느낌도

여러 곳에서 받았던 부분들이 많다.


사례로 쓰인 여러 생각지 못했던 이야기들과

저자가 지금은 사라진 예전 대학입시 중 체력장 봤던 이야기까지

재미도 있고 말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공감도 잘 됐다.


캐롤 드웩의 '마인드 셋'이나

KFC 창업자 샌더스의 이야기,

존 보울비의 애착이론,

프로이트의 딸, 

호밀밭의 파수꾼 이야기들까지.


읽었던 책들이나 이미 알고있던 다수의 이야기들,

일부러 챙겨봤던 샐린저의 다큐까지,

이 책을 좀더 저자의 이끔대로 이해하는데

우연히 예습한 효과처럼 누릴 수 있었다는 느낌들 때문 같다.


다른 관점에서, 저자의 학창시절 달리기실력에 관한 추억은

책의 많은 내용들을 기억하고 

일정부분 환기 시키며 읽는데도 참 좋았다.

저명한 정신과 의사의 학창시절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또다른 고정관념을 깨주는 느낌.


공부로 전교 2등을 하고 

운동으로 전교 2등이 불가능하다고 나왔어야

더 맞았을 거 같은 상상이 들겠지만

당시 저자는 자신이 공부로는 전교 등수가 못될지라도

달리기로는 전교에서 앞순위가 될 수 있었고

그로인해 공부를 더 잘 해보고 싶다는 의욕에까지

이르게 해줘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하는데,

후일, 이런 달리기 실력은 의사들의 운동회에서 조차

빛을 발휘한 순간도 있었다는 건

덤으로 들을 수 있는 좋은 추억 같았다.


이 기억을 시프트를 다룬 책에 

저자가 넣을 수 있었던 건,

자신이 몰랐던 운동능력을 통한 우연한 성취감이

공부에까지 좋은 영향을 줬다는 그 경험적 사실이

'시프트'가 되어 쓰였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를 잘해서 더 높은 수준의 공부로 나아가는 수순이 아니라

운동에서 얻은 기분좋음의 여파가 

다른 부분에까지 선한 영향력을 발휘한 셈이니까.


컴퓨터의 글자를 변환시키는 시프트 키의 역할이나

오전조 오후조의 교대근무를 시프트로 부르는 것처럼,

삶의 양면적 경험과 기억을 

시프트처럼 바꿔 생각해 볼 수 있는

긍정적인 '발상전환'을 할 수 있다면,

저자가 이해시키고자 한

시프트의 정수를 이해한게 아닐까 감히 상상해 본다.


개인적으론 약간 애덤 그랜트나 말콤 글래드웰의 책과 

비슷한 느낌의 글흐름이란 인상도 받았는데

이는 각자가 다를 수 있을거 같다.


오랜 기간 쌓였을 의료적인 명확함으로 다가오기 보다 

부드럽고 친숙함을 더 글에 불어넣고자 한듯한

저자의 친절함도 느껴볼 수 있는 

좋은 인문학 분위기의 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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