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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해하는 자기애 - 스스로를 상처 내는 사람을 위한 심리학
사이토 타마키 지음, 김지영 옮김 / 생각정거장 / 2024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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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초입에 '인셀'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이를 involuntary celibate(비자발적 금욕주의자)'로 설명한다.
처음엔 생소한 이 용어를 풀어가는게
이 책의 주된 내용인가 싶었다.
먼저, 여기서 말하는 비자발적 금욕주의자란
연애는 하고 싶지만 상대가 없어
피치 못하게 모쏠처럼 살아가는 삶을 말함.
하지만, 읽어보니 책이 담고자 한 바는
이런 단편적인 설명이나 단어가 가진 정의 자체보다
훨씬 깊었고 담고자 한 사고영역 또한 넓었다.
즉, 단순히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나 아싸 유형을
다루거나 지칭함 만이 아닌
'자해형 자기애'란 병리현상을
다각적으로 깊게 다루고자 한 책이다.
'자해형 자기애'란
단기적인 자책에 해당하는 '자기혐오'와 다른,
외형적으론 피터팬 증후군나
어덜트 차일드, 히키코모리, 아싸,
애착장애 등과 매우 유사하면서도
미세하게는 다른 익숙하지 않은 용어였다.
뭣보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자해형 자기애가 맞다면
유사해 보이는 다른 비슷한 증상들과 달리,
회복과 일상으로의 복귀가
좀더 용이할 수도 있다는 부분이다.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원초적인 문제점을 지닌 애착장애나 어덜트 차일드 등과 달리
자해형 자기애의 발생은
성인이 된 후 일상생활 중 입게 된
심리적 상처가 원인인 경우도 많아,
지난할 수 있는 치유과정은 비슷할 수 있으나
앞서 말한 애착장애와 같은
유아기 때부터 지속된 심리적 외상들과 달리
좀더 커서 얻은 트라우마가 원인일 수 있기에,
회복과정도 보다 짧거나
무난한 회복도 가능하다고 믿는 것.
논리적으론 저자도 이리 예측은 하지만,
앞서말한 다른 증상들과 매우 유사하고
증상적으로 겹치는 부분도 많아,
비슷한 여러 질환들을
완벽하게 선을 긋듯 나누진 못한단 설명도 덧붙이며
추가되는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거기에 책이 주목한 또다른 부분은,
긍정심리학, 회복, 깨달음, 치유 등에서 기대되는
완성적 관점의 치유가 아닌
불완전한 치유를 오히려 받아들일 수 있는지의 여부.
긍정적인 심리상태란 언제나 깨질 수 있으며
깨달음, 회복, 치유완결 등도
영원불변 하진 않을 수 있다는
불연속적이고 불안정한 인간심리의
불완결성을 인정하고 살아가란 현실적인 의견전달.
모든 책은 항상 결말을 둔다.
하지만 이 책은 오히려 열린 결말을 택한 소설처럼
불완전한 심리도 답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 노력했다.
그로인해 완벽한 답을 제시해주는 책보다 더
완성도를 높인 책이 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누군가의 심리적 고통을 관찰할 때,
당사자가 겪고 표현하는 미묘한 차이를
타자가 구분해 낼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를 현장에서 잡아내기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자상적 자기애를 인식하고 치유함에 있어
매우 섬세한 제3자의 조력적 능력은 매우 중요해 보인다.
정신과 의사로써의 저자가 캐치해 낸 이 발견은
의사로써의 세심함과 지적능력 또한 느껴 볼 수 있던 부분.
보통의 히키코모리나 사회와 단절되어
나이를 먹어가는 자상적 자기애 환자들을 볼 땐
자상적이란 단어가 뜻하는
스스로에게 상처를 입혀가며
점차 자신감을 상실했기에
고립돼 간 그 처지를 들여다 봐 주는 동시에,
집안의 골치덩이처럼 취급되다 감정이 터지듯
이해받지 못하는 여러 감정들이 표출 될 때
바람직하지 못한 분노로써만 취급하지 말고
처한 상황을 들여다 봐주라 권한다.
분노가 반드시 인정 받아야 할 감정은 아닐 수 있지만
이해 될만한 감정발산인 경우일 수도 있고,
화풀이가 아닌 실제 참작될 만한
가족내 사유를 지닌 경우도 많다는 것을 보라는 것.
얼핏 고립되고 생활 능력이 없는 것에만 집중하다 보면
영락없는 이기적 나르시시스트나 성격장애로 보일 수 있음에
저자는 그런 오판이 내려질 수 있음을 우려한다.
즉, 자상적 자기애란,
인지하지 못한 채 자책하듯 본인에게 상처를 주고
점차 대립하는 과정에서,
이해를 받을 만한 상황임에도 고립돼 가거나
인간관계 속 트러블 메이커처럼 취급될 수 있는 바,
세심한 공감과 관찰이 필요한
대인관계문제와 개인적 고립이 중첩된
복잡한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만일, 이런 딜레마적 상황 하에
오랜기간 방치된 사람이 맞다면,
본인과 같은 처지가 결코 본인 뿐만이 아니며
드문 경우 또한 아니란 점도 이해해,
이를 의지하고 재활해 나가는데 정보로써 활용할 걸 권하는 저자다.
기존의 많은 선입견적인 접근을 깨면서
진일보 된 정보와 지식을 전하고 있어,
해당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겐 치유적 용기를 전할 수 있는 책.
자기애란 단어가
주로 이기적인 잘못 지적에 애용되는
현대적인 심리 용어라는 점에선,
이 책을 읽어 갈수록 대중화 된 '자기애'에 관한
좁은 상식들도 매우 다방면으로 수정하며 재이해 했다.
올바른 의견들을 더해 식견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이 책을 매우 직관적이며 혜안을 담은
만나기 힘든 수작이라고 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