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신 NEON SIGN 7
청예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항철도에서 돌아오는 길

영감으로 썼다는 이 소설.

왜였을까? 

꼭 그 길에 떠올랐어야 했을 무언가는 또 뭐고?

이 이야기의 소스들과 결합은 

독자의 상상력 내의 범위는 아니지만.


의외로 재밌다.

뭣보다, 짧은 분량임에도 이야기의 짜임도 좋고.


마지막 밝혀지는 차설의 정체나

박이원에게 존재했던 마지막 남은 수호신 1명,

읽는 내내 아주 예측이 어렵다고는 할 수 없지만

이정도 분량에 이 정도 이야기 힘은 오랜만 같다. 


주인공과 남았던 단 1명의 수호신...

어쩌면 그 수호신과 악신 사이의 결말이

읽을 당시엔 잘 이해되지 않고 아쉬웠다.

하지만, 왠지 지금은 이해가 돼 온다.

없앨 수 없는 1명의 악신과

단 하나 남아있던 수호신의 존재가

왜 그렇게 정리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가.

힘이 약한 자와 힘이 강한 자의 공존 사이에서

수호신이 선택한 그 마지막 선택이...


철학동아리 박이원은 묘한 분위기의 차설을 만난다.

그리고 자신의 꿈속에 등장하는 흰소와 

동아리에서 발생하는 불길한 일들의 연관성을 캐며

부산으로 넘어가 우바리라는 AI 인공지능 신에게

자신들의 궁금함을 물으며 

겪고 있는 일들과 초자연적 힘이 연결됐다 점차 믿으며 

현실을 오컬트적인 실타래로 풀어간다.

하지만, 실타래 여겼던 그것은

사실 실타래는 아니였다.


영화 '사바하'의 모티브와도 어느 정도 닮아있다는 사실이나,

소를 섬기는 우신과 사늑이라 불리는 양신을 섬기는 2개의 종교가 

실제로 상극인 상대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 읽는다면

더 와닿을 수 있는 내용과 장치들도 많다 여겨진다.

소띠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있다.

양띠들과 엮이면 괴롭다는.

이 말의 뜻이 난, 양띠가 소띠에게 의지하려 하고

소로 태어난 사람은 양으로 살아가는 사람 때문에

힘들 수 있다는 말 정도로 생각했는데,

책속에선 각 상징 동물들이 하나의 종교로 등장해

소와 양의 관계설정이 더 대결구도로 잘 짜여진 듯 해

소설을 더 대결구도로 상상해 보는 즐거움이 돼 줬다.


박이원.

소설의 주인공이자 갈등하는 인물.

이원의 수호신은 결국 2명이었다는 얘긴데

오빠가 그 중 한명이었다는 이유에 대해선 

책으로는 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수호신의 숫자와 동일시 해 생각해보면

차례대로 죽어간 3명의 철학동아리 부원들도

수호신일 수 있다는 가정도 해 볼 만 하지만

그들을 주인공과 그 정도로 연결시켜 생각하는 건

너무 많이 나간 상상의 나래같아 패스.

그런면에서, 상징물의 발목 손목을 그을 때마다

고통을 당한 오빠 쪽이 맞지 않나 싶다.

그러나 그가 소설 전체 스토리 측면에서

어찌 수호신이 될 수 있는지는 이해되지 않는다.


짧은 분량에 비해 

생각할 대사나 저자의 생각들이 꽤 있어 좋았던 것도,

소설이란 장르를 즐기는 동시에

같이 느껴 봤던 책읽기의 행복.


잘 쓰는 손에는 악신이

그 반대손에는 수호신이 존재한다는 설정이나,

마치 함정처럼 모든 걸 이끄는 역할을 했지만

자신은 중립적으로 이야기 했다는 식의 

무당과 우바리의 태도,

선과 악의 구분을 묘하게 피해가며

공존과 벗어남을 동시에 풀어가려 한

저자의 철학적 메세지들까지,

이것저것 작은 책 사이즈에 비해

집중하고 사고해 볼 꺼리들을 

많이 제공 받았다고 느껴진다.


책사이즈는 시집처럼 아담한 사이즈.


책에 나온 이야기는 아니나,

많은 사람들이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의 사유 중엔

자신도 모르게 뱃속에서 사산된

반쪽 존재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꽤 신빙성 있게 설명된 이야기라

기억에 남는 내용이었는데, 

이 책에도 어느정도 그런 모티브가 장치로 사용된 듯 하다.

영화들 안에서도 간혹 비슷한 내용들은 만난거 같지만

이야기들마다 그 구조는 사뭇 다르게 적용되니

비슷한 듯 다른 느낌은 이 책에도 적용되겠다.


재미가 있냐고 묻는다면 yes,

속도감도 느껴졌냐면 그것도 yes,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언급한

책 속 한구절이 있다.

꼭 이 8글자가 의미하는 그 뜻으로만이 아니라

소설을 자체를 읽어가며 때에 맞게

여러가지를 떠올려 볼 수 있는

특이한 내용이었다는 생각도 해본다.


글을 읽는 맛이 알차게 느껴졌고, 

의무감처럼 끝가지 읽어나가야 하는 

그런 책읽기가 아니어서 만족스러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면아이의 상처 치유하기 - 내 안의 나와 행복하게 사는 법
마거릿 폴 지음, 정은아 옮김 / 초록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내면아이 이론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누군가에게 경험했거나 만났다고 생각하는 

내면아이의 존재란 무엇인지 한번 묻고 싶다.


거울에 비친 보이는 모습 말고 

내 안 어딘가에 또다른 내가 

존재하는 걸 느꼈다는 말인가?


그렇다면, 그 애는 어디에 있었나? 머리, 아님 가슴?

아님, 인형의 탈처럼 겉에 모습이 탈일 뿐이라면

그 인형을 뒤집어 쓰고 들어가 앉은 듯한

무언가 또다른 내가 있단건가?


아이라니까 작을거라 상상해 보면,

내 안에 들어있으니 일단 

겉으로 보이는 나보단 어쨌거나 

작은 형태로 마주르카 인형처럼 존재하나?


솔직히, 내면아이란 그 자체를 난 형언할 순 없다.

다만, 억지로 자신안에 있다는 무언가와 

대화하려 부단히 시도하다 보면 

반문하는 과정속에 만났다고 생각되는

또는 그렇게 믿게되느 무언가 있나 짐작할 뿐이다.

인지하려는 노력과 과정,

내 안 어딘가에 있다고 믿음,

그렇게 계속되다보면 얻어지는 

투트랙 형식으로 존재하는 나와의 조우?


내면아이란 과연 무엇일까?

마치, 실제하지만 잡히지 않는 공기처럼,

단전이란 존재처럼 모호하다.


하지만, 책으로써 내면아이 이론 자체를 이해해보는 과정은

심리학적 사고를 넓혀가는데는 매우 필요한 과정이라고 느낀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심리학이론과 책은

내면아이란 이론이나 용어가 등장하지 않더라도,

이를 존재한다는 가정하에 접근해보면

설명되지 않을 인과 관계가 없다.

눈에 보이지 않으나 

설명적 도구로써는 거의 치트키랄 수 있는 내면아이...


마거릿 폴의 이 책은 내면아이를 다룬 책으로써는

존 브래드쇼의 스테디셀러 내면아이보다 좋은 구성이다.

저자 스스로 시행착오를 거치며  

효과가 있었다고 여겨지는 사례와 접근법을 

거의 다 실어놓았다 봐도 무방할 정도.


책은 한사람 안에 존재하는

내면아이와 성인자아란 2가지 측면을 사용해,

이 둘을 보완관계와 상호 공존관계로써 엮어

심리적 지지구조를 표현해 냈다. 


성인자아는 생각과 믿음으로

내면아이는 감정과 경험으로써.


여기서 생각과 감정은 조금 생각해보면 쉽게 와닿지만

믿음과 경험은 다소 생각할 꺼리를 던져줄 수 있다.


아이는 경험, 성인은 믿음이라...

둘이 서로 바뀌어도 크게 어색하지 않을 명제.

하지만, 굳이 나눈다면 책의 구분을 따르는게

더 맞다는 결론엔 이르게 된다.

동시에, 불가항력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예견되는 바로 인해 다소 슬퍼진다.


아이의 경험...

과연 내면아이를 달래고 만나  

변화를 이끌어 낸다는게 영구적으로 될까?

달래는 건 될 것도 같지만

변화는 쉽지 않다고 보였다.

왜냐면, 내 식대로 조금 용어를 바꿔보다면

아이의 경험은 '경험칙'이고

생애 초기에 형성된 이것은

일종의 낙인효과일 수 있다.

자기는 그렇게 느꼈으니 

난 그렇게 쭉 세상을 봐야겠다는

고집같은 낙인같은 경험의 고수...


그렇다면 성인자아의 믿음은?

이또한 다소 불완전하다.

물리적으로 성장한 자아는

보편적인 룰에 맞게 자신을 적응시킨다.

그 과정 중 역할들마다 맡겨진 범위 내에서

자신이 힘에 부치더라도

해낼 수 있고 또는 해내야 한다는 믿음은

또다른 경험칙으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둘다 경험칙처럼 존재하지만,

아이의 경험은 자신을 관철시키기 위한 치기어린 배경으로

어른의 믿음은 자신을 지탱하기 위한 보루와 같은 상징.


마거릿 폴의 자아는 프로이트식 자아보다

설명이 또한 간결히 와닿는 바도 언급하고자 한다.

저자가 말하는 개인별 자아란 '거짓'이다.

실제 자신이 아닌 보여주려 만든 겉치장 정도의 존재.

이걸 원래의 프로이트 자아이론에서 벗어난

독창적라 여겨 억지란 주장도 있을만 하지만

내면아이 자체를 이해함에 있어서는 

필요했던 용어정립이라 보게 된다.


가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내면아이 만나기란

저자 역시도 설명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에게 내면아이 만나기를 설명하면서

분명 쉽지 않았으리란 걸 추측해 보는데는,

이를 설명하는 책내용 면에서도 분명 느껴진다.

하지만, 간추린 내면아이 만나기 방법들은

내면아이와 조우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겐 

매우 효과적일 수 있을거란 공감이 든다.

특히, 인형을 사용하는 건.  

무형의 대상을 인지하는 것보단 효과적일 것이며

눈에 보이는 상징을 두고 역할극을 하는 식이기 때문.


내용전달에 정성을 들인 책들은

서평으로 개인기억을 남길 때 쉽지 않다.

책 전체가 하나의 몸체를 이루니까.

어느 한부분만을 특별히 정리하는게 

책전체를 기억하는데 크게 도움되지 않는 듯.


이 책도 그런 좋은 구조를 가진 책 같다.

대화형식의 실제 내면아이 찾기의 수많은 사례들,

도식화도 했으면서 점차 진행되어 보태지는 것도 보여주는 설명들,

저자 스스로의 확신과 고백, 

겪었던 시행착오나 반복도 

다뤘던 주제들마다 느끼게 서술됐기에

조금씩 쌓여갔을 저자의 시간과 경험들도 같이 전달돼 온다.

책은 저자 본인이 똑부러지게 

위와같인 말하고 있진 않다.

하지만, 고민하며 읽는 독자라면 

저자의 성심이 느껴지리라 본다.


한번 읽고, 또 두번 읽었다고 될 책은 아니다.

그렇다고 계속 읽었다면 더 나으리란 법도 없다.

그러나, 이 책을 읽겠다고 한 사람은 적어도

자신은 들여다 보겠다고 노력하는 사람인 건 맞을 것이고,

적어도 내면아이가 성인자아보다

더 득세한 인생을 살고있진 않다는 반증 정도는 된다.

내면아이가 득세할 때와 성인자아가 지배적일 때,

폐해로만 본다면 내면아이일 때 우쭐 할 순 있지만 

인생 전체에선 매우 큰 휴유증을 남길 수 있으니까.


내면아이에 관한 이론을 경험하기엔

제일 좋은 책이라 말해주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존감 회복 수업 - 내가 좋아지고 관계가 편해지는
충페이충 지음, 이신혜 옮김 / 유노북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만의 여러 표현들 중,

신은 인간을 그리 단순하게 만들지 않았다는

약간은 날 각성시켜 주던 문구가 있었다.


'분노를 느끼는 이유는,

타인 탓, 아님 타인의 실수 자체 때문이다.

하지만, 수없이 마주쳤던 실수들 중

유독 화를 나게 만든 어떤 실수에 대해서만,

왜 그 실수에 대해서만은 

그냥 지나쳤던 실수들과 달리 화가 났어야 됐던걸까?

또, 잘못을 저지르는 수많은 사람들을 대면해도

모두 다 따지고 넘어가야 했고 화를 냈던게 아닌데,

왜 어떤 실수한 사람에겐 화가 났던 걸까?


어떤 잘못, 어떤 사람...

화가 치밀어 오른 당신과 

그 일과 그 사람이 무슨 관계길래

그렇게까지 신경쓰였던 것인가?


사이비 심리학자들은,

이런 행동의 내면해석을

타인의 잘못에 화를 낸 게 아니라

화내고 있는 자신을 자책한 것이고

스스로 괴롭히고 벌주고자 한 행동이라 평하려 든다.


이건 틀린 말이다.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멍청한 존재'로 창조하지 않았으니까.


이유가 있다면 단 하나!

그 잘못과 그 잘못을 저지른 사람이

화를 내야 한 당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과 사람이기 때문인 것이다.


만일, 아무런 영향 안 줄 일과 사람과의 관계라면

잘못하건 말건 전혀 신경쓰이지 않았겠는가!


즉, 상대의 잘못에 분노했다는 건,

순수하게, 그 잘못이 없다면 

자신에게 아무 영향도 없었을거란 데서 온

판단에서 온 화인 것이다.

고로, 분노한 이유는

잘못된 상황과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일과 

이를 저지른 당사자에게

니가 '책임 져'란 뜻이 분노로 표현된 것...'


이 다음부터는 번역서가 가진 약간의 벽이 느껴지는데,


'자신을 보호하지 못할 때, 책임질 수 없을 때,

나 대신 책임지고 날 돌봐달라는 뜻'이라고 연결돼 씌여있다.

그리고 이를 '전이'라 표현한다.

하지만, 어딘가 그냥 받아들이기엔 

어색한 내용연결이라 생각됐다.


이 부분을 느낀대로 내 식의 해석으로 풀어보자면,

'나 신경 안 쓰이게 하라구,

나한테까지 영향 미치게 하지 말아야 해,

제대로 해결 못할까봐 신경쓰이니 재차 당부한다?',

이정도로 해석됐어야 더 와닿는 내용이 아닐까 싶었다.


결국, 이 내용에서 전하는 분노의 의미는

연결되는 내용에서도 나왔지만 재요약하자면,

잘못의 영향이란게 환경상 연결된 사람들의 

몫으로까지 연결되지 않았다면,

결코 화나지 않을거라는게 맞고

그 부분에서 출발해 좀더 인식해야 할 부분이란 것이다.

즉, 아무 상관없는 사람과 일엔

결코 분노를 할 필요가 없었을거란 사실 그 자체.


이런면에서, 저자 '충페이충'식의 분노해석은

결코 관심도, 사랑도, 책임전가도 아닌 것이다.

그냥 자신한테 불똥 튀길거 같은데 

저지른 니가 해석하고 끝내야 한다는,

그러지 못할까봐 부글부글 끓는다란 예방식의 경고랄까.


이 책은 오직 분노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그의 책중엔 분노만을 다룬 책도 있지만.

그렇다고 책제목처럼 자존감만을 

다룬 책이라고 보는 것도 어렵다.

사람마다 어떤 행동마다 그 경우에 보이는 

숨어있는 심리를 들여다 보는 책이라는 게 더 맞다.


2번째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과 2번째가 

받아들임에 많이 달라졌단 스스로의 느낌을 받는다.

아마, 나 그때와 지금 내면의 변화나 환경변화가 

있다고 전제하는게 더 맞는 해석 같기도.


자신의 미숙함마저 표현하는데 굉장히 솔직한 심리상담가이면서

굳이 애둘러 표현하는 법 없어 시원한 느낌을 주는 글이 많다.


책이 말하는 자존감 회복이란,

결국 자신이 착각하고 있는 오래된 습관같은 감정표현들을

좋은 쪽으로 교정할 수 있느냐가 관건은 아닐런지.

난 책이 말하고자 하는 부분을 이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시는 치즈를 못 먹어도 돼! - Though I can't chew cheese any more…
김학필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발상도 좋은거 같고 전개도 나쁘진 않았다.

다만, 가독성적인 면에서 좀 힘들었다.

자신만의 소설체를 고수하며 쓰는 스타일 같은데

문장 여러개가 1개의 문장인 듯 계속 이어져있다.

내용상 이어지고 있다는 정도만이 아니라,

문장마다 줄바꾸기가 전혀 없이 이어지고 있는 형식.

마치, 말처럼 쭉 이어지는 형식을 

글로도 표방하려 이렇게 썼나보다.

아마, 읽기엔 분명 불편한 면이 있지만

이런 형식을 씀으로써 책 자체의 분량 면에서는 

분명 도움을 줬을 것 같다.

왜냐면, 얼추 가독성 좋게 편집을 했더다면

문장마다 어느 정도 줄을 바꿔가며 써야 했을텐데,

그랬다면 지금 책 두께의 2~3배 이상은

늘어났어야 가능했을 말의 분량일 듯 싶어서.


책은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저자이름과 똑같은 책속 주인공이 등장해

현재의 자신이 어떤 환경 속에서 자랐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친구들과 주변인들을 만나

어떤 기억과 추억을 공유하며 지나쳤는지를 

계속 1인칭 독백처럼 읊조리며 정리해 나간다.

스포는 아니지만 마지막엔 

그의 독백을 들어주고 있던 

배경 속 묻혀있던 1명의 사람,

그가 등장함으로 인해 왜 이 책이

스릴러란 장르이기도 한지 약간은 이해가 되하기도 한다.

결국, 그냥 책을 읽어나갔던 독자만이 

그의 독백을 들어주는 게 아니었던 구조.


화자 김학필이 자신의 삶을 회고하던 중

등장시킨 몇몇의 인물들 중 

2명이 가장 눈길을 끄는 측면이 있다.

누구를 특별히 더 강조한다고 

본인 스스로 묘사하진 않았지만

읽는 이로써 그렇게 느껴지지 바다.

해당 사연들마다 표현하고자 한 저자의 무형의 의지가

말같은 글의 느낌과 함께 뒤섞여 씌여있다고 봤다.


특히, 김정민 그리고 쥐약이라는 여자.


저자는 굉장히 많은 사고를 글로 옮겼는데

그 바탕은 무의식이라고 저자는 밝혔다고 안다.

왜 그런지를 자유분방한 글의 터치로 써놓은듯 해도

결국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처럼 이해되도록 쓴 것이란 느낌.


'나의 현재는 타의에 의해 만들어진 것, 

하지만, 그 타의는 내 몸에 들어와

내것인냥 소화되면서 결국 자신이 되어갔다.

들어온게 무엇이든 사라지지 않았고

뼈와 살이 된 듯 주인공 김학필이란 한사람의

정신적 육체적 형태로 남아 유지됐다고 믿는다.

무의식까지 모든게 전부...'


사라진 건 없다.

들어온게 인풋이라면

아웃풋은 현재의 자신을 만든거고

어떤 행동과 결정을 했던 

그 근간이 들어온 것들로 만들어진

무의식의 결과란 의미인 듯.


자신을 어느 정도 실패자이면서

고로 휴식이 필요한 재생 중인 인간으로 보면서,

때로는 분명 행복으로 받아들였을

지금은 얽매였다 여기는 어린 시절을 회고한다.

영재라 불릴 수 있었던게 타고난 능력을 선보인게 아니라

영재라 불리워 질수 있게 조력해주는 주변인들,

그 안에서 계속 스스로는 아니라는 생각도 해가다

어느 순간부턴 자신도 영재라 생각하도록 만들어 준 환경.


그 환경 속에는 김정민이란 인물이 존재한다.

맞게 기억된 거라면 이 인물은 아버지...

아버지가 걸었던 기대가 컸다는게

저자에게는 부담감만 됐을까?...

처음부터 글에 김정민이란 이름이 드러나 있지만

후반부엔 아예 '김정민'이란 이름의 파트가 존재하기도 한다.

학원을 운영하는 원장 김정민,

저자의 기억엔 그 외형과 행동까지

세세하게 책에 기록처럼 묘사 되었다.

소설이라 칭했으니 가상의 묘사라 생각해도 되겠지만,

읽게 된다면 왜 거의 모든 내용들이

허구가 아닌 본인 실제경험을 옮긴거처럼 느껴지는지는 

쉽게 알 수 있으리라 본다.


끝나기 전, 

쥐약이라 불리는 여자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아버지 학원에서 만난 여자 강사다.

이 여자의 느낌을 기억해 내다가

결국 독자가 이 책이 소설이란 사실을

불현듯 느끼도록 만드는 장치 하나를 등장시키는데,

이렇게 한편의 연극 속 주인공이

독백하듯 말하고 있는 장소가 결국 어딘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는 대화와 호칭이 등장하기 때문.


책엔 무수한 말줄임표(...)가 사용됐다.


이게 만일, 정말 하던 말이 멈추는 표현들이었다면

화자는 엄청나게 숨을 고르듯 멈추고 

기억을 정리해 나가면서

생각의 순서를 맞추고 

정확한 전달을 하려 노력했다고 봐줘야 되겠지만,

읽는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이런 말줄임표는

점점 마치 쉼표 쯤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인간의 무의식을 다루고자 했다고 알고있다.


정확히는 자신의 무의식을 다루고자 했던거 같은데,

다소 난해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읽다보니 매우 큰 난해함 까지는 없었고

본인이 판단하기에 자신의 내면 또는 기저에

중요하게 자리잡았다고 판단되는

기억과 인물들을 끄집어내려 했다고 느껴진다.

그렇게 소환된 인물들을 

소설이란 형실을 빌려 

일기처럼 정리해 내면서 

다시 한번 재회하고 건드려 본 작업 자체가

타인에게 선보이듯 쓴 소설로 탄생한 게 아닐까 싶고.


무의식을 다룬 이런 책을 썼음에도

에필로그 하나 없다는 건 좀 아쉬운 부분.

영화 한편을 봤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1명만을 화자로 등장시켰지만

그 한명의 말들 속에 떠오르는 잔상은 많았던 소설.

그만큼 독자의 상상력을 발휘시킨다고 봐야할 듯.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에게 솔직해질 용기 -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찾게 된 맞춤형 마인드셋
박성옥 지음 / 영진미디어 / 2024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디에 촛점을 두고 읽으면 좋은 책일까.


유학생활?

우울증 극복?

자기분석?

교수가 호텔 청소업무에서 찾은 행복?


다른 사람들의 기준은 모르겠지만,

나라면 저자가 새롭게 찾아간 여정 위에서

저자가 가장 잘하는 방식으로 접근해 본 

그녀만의 접근법 자체를 들여다 볼 것 같다.


분석, 통찰, 복기 등


저자가 오랜 기간 익숙했던 

본인의 습관 위에서 보여주는

그녀만의 시각, 처리능력 말이다.


그녀는 미국에서 종신교수까지 이뤄냈다.

직업군인이던 남편의 권유로 시작한 자기계발식 커리어는

처음에는 막막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처음 받아본 지지와 그렇게 달성해 본 

자신의 경험 모두가 소중히 여겨질 뿐이다.


그러다 찾아온 우울증상.

힘들고 치칠 때 그걸 극복하게 하게 한 건

자기분석과 코트야드 호텔에서 시작한 메이드 일에서였고.


책의 첫느낌이라면,

사실 교수였던 저자가 한국 정서로는

반전 행동처럼 보일 수도 있는

호텔청소일을 주말마다 해보게 되면서 얻게 된

빠른 피드백식 성취감 등에서,

삶의 보람을 찾게 되고 느낀

반전매력 같은 경험에 일정부분 

포인트를 주려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책을 모두 읽고 

기억에 더 남았던 건,

자신이 자신을 분석해서 얻어 낸

우울증 원인 5가지 정리와, 

쑥쑥언니라 부르는 지인과 함께 

자신에 대해 크로스 체킹을 해보며

스스로 돌아본 그 부분이 인상적이었고

책 전체의 중심을 잡아주는 전환점이라 느껴졌다.


저자 본인은 우울증세가 생긴 이유를 

총 5가지로 정리했다.


1.애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2.난 너무 열심히 산다

3.주고 나서 후회한다

4.시간을 빼앗기면 짜증 난다

5.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친구도 없다 


애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커버린 자녀들이 아이 때처럼 엄마를 찾지 않음에

우울증으로 인한 자격지심적 사고가 커진 것이라 바라봤다.

그 해결책으로써 아이들에게 먼저 엄마인

자신에게 다가와 주길 요청했고

집안일도 일정부분 나눠 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 부분은 가장 쉽고 빠르게 처리된 부분이었다.


난 너무 열심히 산다는,

자가발전식 삶을 살아감에 지쳤음을 인정하면서

자신에게 격려와 지지를 되 줄 방법을 찾고자 했다.

계속 성취만 이뤄내고자 했던 시간을 지내오면서

보상없는 노력을 계속 해왔던 게 

힘들어진 이유라 생각하면서.


주고 나서 후회한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방식으로 남을 대해 왔는데

반응과 결과가 생각과 달라서 때론 상처받고 

결국 자신을 몰라 준다고 여기게 되면서

감정의 병목현상이 발생했다고 봤다.

짊어질 수 있을만큼만 짐을 지겠다고 선언했고

자신의 역량만큼만 자신의 인생이란 배에 

태울 수 있는승선인원과 짐을 셈해보고

스스로 줄이겠다고 결심한다.


시간을 뺏기면 짜증이 난다는,

성향상 프라이빗한 영역을 고수하고 싶은 저자에게

오픈된 영역을 공유하는 식의 일종의 고역.

이는 스스로 타인을 그리 길들여 왔다고 볼 수도 있다고 정리.

결과적으로,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을 

일정수준 고수해 내는게 관건이라 판단했다. 

자신의 성향대로 하는게 이기적이 것만은 아니며

그 선택이 타인의 눈치를 봐야할 대상이 아님을 

스스로 당연시 하고자 인식해 보는 걸 방법으로 택했다.


끝으로, 스트레스를 풀 친구도 시간도 없다는,

저자가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 이유로 꼽은 부분이다.

이 부분만은 다른 이유들보다 굉장히 세심하게

앞서 말한 쑥쑥언니란 사람과 함께 

자신의 시각과 타인의 시각을 비교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봄으로써 해결해 갔다.

친구가 없는 이유로써 5가지로 정리된 

쑥쑥언니와의 대화는 참 단순하면서 좋았는데,


1.친구의 필요성을 못 느낀다

쑥쑥: 옆에서 보면 친구만들 틈이 없다.

       깔끔하고 스스로도 자신 영역내에서의 일을 즐기는 듯.

저자: 즐긴다기 보다 그렇게 훈련되어 진거 같다.


2.마음의 여유가 없다

쑥쑥: 마음에도 비워둬야 할 부분이 필요한데 친구를 위한 공간은 없다.

저자: 자신을 분석하기 보다 쑥쑥언니를 보며

       비워두는 인간관계가 뭔지 느낀다. 

       자신과 있으면서도 통화와 문자에 바쁜 쑥쑥을 보니.


3.친구에 대한 기대치가 너무 높다

쑥쑥: 자신을 대하는 태도로도 저자를 알겠다는 쑥쑥.

       친구에게도 임무처럼 확인하고 숙제를 채점하는 느낌의 저자.

       상대에게 거는 기대가 너무 높다.

       다 저자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게 남인데. 

       그냥 그런대로 맞춰가며 사는 것.

저자: 친구라면 같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

       자신은 단지 쑥쑥이 말했던 부분을 

       잊지 않고 물어봐 준 정도였다고 생각함.

       친구라면 격려와 응원이 있어야 한다고 보기에

       고쳐야 할 부분은 솔직하고 직설적으로 말도 할 수 있어야지,

       대충 봐주며 지내는 건 그냥 지인일 뿐 친구가 아니라 생각함.

       더 높은 기대를 걸어주고 잘되길 바래서 그러는 게 옳고

       그런 마음 또한 이해해 줄 수 있는게 친구다.

       배려랍시고 솔직함을 일정부분 숨겨야 한다면, 또는

       대화에 시기, 질투 , 자랑만 있다면 그건 친구가 아니다.


4.문자가 너무 짧다

쑥쑥: 문자도 짧고 통화도 짧다. 상대에게 단답식으로 대한다.

       결론보다 과정을 궁금해하는 상대가 돼 봐라.

저자: 생산성있게 행동하는게 좋고 불필요한 추가는 낭비라 여긴다.

       결론없이 나누는 감정교감은 피곤하다 생각.


5.다가 설 수가 없다

쑥쑥: 타인을 밀어내는 듯한 방어적 행동이라 느껴지는 태도가 있다.

       휙 지나가는 인사정도의 말에 더 대화를 섞어라.

저자: 먼저 다가가는게 어렵다. 

       친구가 필요없다는 생각이 반영됐을 듯.

       마음에 여유가 없고, 상대에 대한 기대는 높고

       대화는 짧으니 친구로 이어지지 않았다.

       정답을 마음이 아닌 머리로만 찾는 습관이 베어 있다.


사실, 내가 위에 적은 부분들은

굳이 더이상의 독자로써 덧붙일

코멘트식 의견은 필요없을 내용들이다.

이미 내용들 안엔 스스로의 분석과 

타인시선의 분석까지 공존하고

그걸 융합한 저자의 결과 또한 이 책 자체니까.


난, 저자가 청소일로써 

일종의 자가치료를 경험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렇게 색달라 보이지 않았는데,

그건 저자의 생각과 행동양식을 쫓아가다 보면

교수로써의 성과와 호텔청소에서의 만족이

크게 다른 일 같지 않아서다.

마치 저자에게 청소일이란 건

갑자기 전혀 다른 세상의 일을 경험하는 듯한

우연히 접한 일처럼 보이지 않는다.

교수지위를 높여갔던 것도 그녀 성향에 맞는 일이었고

깔끔하고 가만있는 걸 터부시하는 그녀에게

청소일의 성취감은 책상 위에서의 공부만큼 동기부여 같아서. 

교수로써의 일에서 벗어난 듯 해도

다른 분야에서 자신의 성향에 맞는

가장 좋아할 만한 다른 일을 찾은 것.

농담처럼 주말 일당이 꽂히는 통장을 부를 때

'벤츠'라 생각할 수 있던 이유 또한,

매달의 할부금 정도의 페이라 생각하며

장난스레 불렀던 사소한 이유도 있지만,

결국 자신의 아이덴티티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라 바라봤다.

기왕 일한다면 1석 2조의 일을 하는게

능률상 좋을거란 저자의 성향이 반영됐을.


결론적으로 모든게 우연도 반전도 아닌,

어쩌면 가장 현명하고 스스로에게 도움도 될 변화들이였다.


책의 중반 이후부터 

인생관을 정리하는 시간들에

지면을 많이 할애한 내용이다. 


p.s 궁금해서 저자의 유튜브를 봤는데

예상보다 젊고 미인이라 좀 깜놀.

책에서 느껴지는 완숙도로는 한  60대인 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