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안에 대한 책은 넘쳐난다.

이런 현상을 보면 다들 어떤 생각부터 먼저 들까?

아마도 거부감일 것 같다.

하지만, 다들 서로 나도 그래를 외치기 보단

이 책이 말하는대로 다른 관점으로써

불안의 필요성을 이해하고 관점이 바뀐다면,

불안에 대한 그간의 고정관념이 바뀌게 됨으로써

어떤 면에서 큰 멍에를 벗을수 있을테니

이는 너무 큰 축복일 거 같다.


과연, 불안은 필요없는 감정인가?

이 자체는 고민할 화두일 필요없이

단번에 당연하단 생각을 갖는다면

이는 매우 드문 케이스 같고,

반대로 너무 혐오하는 감정만 느낀다면

불안에 대한 극도의 트라우마가

인생 중 1번이라도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마, 대다수는 정도의 차이지

난 불안한게 좋아요라고 답할 이는 없지 않을까.


하지만, 책에서 불안은 

너무도 필요한 감정임을 강조하고 이해시킨다.

하이데거가 남긴 짧은 문장 속

생존하기 위해서는 모두 불안해야 한다는 

이 명제같은 그 단순한 철학은,

삶 전체에서 불안이란 감정 자체는 

필요한 시그널임을 인지한 철학자의 사유였다.

불안이 불편한 건 너무나 맞다.

하지만, 불안 자체를 욕한다면,

도둑이 집 담을 넘어 들어오고 있는데

낮선 이의 침입에 미친 듯 짖어대는 자신의 개에게

너 때문에 시끄러워 못살겠다는 원망과 뭐가 다를까?

즉, 원망은 하나의 방어시스템처럼 작동되는 것이지

그 자체가 배척당해야 하는 

징그러운 존재로  취급대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도 맹점은 있다.

뇌 속에 이미 빨간 불이 켜져있는 사람은

모든 상황이 빨간 불이 윙윙 대는 상황일텐데,

구분없이 켜지는 모든 불안의 시그널마저 

옳다고 봐줄 순 없다는 예외는 있다.


불안으로 시작된 이 책은

결국 자신을 안정시키는 건,

최종 종착역을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내면의 평화로 귀결시킴으로써

불안으로 시작된 주제를 자연스레 이쪽으로 옮겨간다.

타인에게 잘하는 것 보다

자신에게 잘하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는

너무 슬픈 모순은, 결국 자신을 향한

자신의 애착도에 달린 듯 하단 생각도 해본다.

스스로에게 매몰찬 나머지

자신에게 필요한 애정을 타인에게만 의지하고자 한다면,

결국 자신에게 필요한 에너지는

타인에 의해 좌지우지된다는 결론도 가능하다.

매우 서글픈 일이다.

타인이 그 에너지를 결국엔 채워줄지 아닐지 모르는데

실상 자신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손놓고 있는 꼴이라니 매우 슬픈 일 같다.


자기 확신이 없는 사람은 불안하다.

불안해서 자기 확신이 없을 수 있지만,

확신이 없기에 불안을 반복하는 것이다.

밖에서 구하려 들수록

내면은 고갈될 우려도 크다.

하지만, 모든 양비론 느낌의 이론들처럼

지금 당장은 이 이야기에만 집중되지만,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던지

사람은 사람에게서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를 들을때면,

스스로 자신에게 힘을 줄 수 있어야 한다는

희미해져버리고 그냥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북돋는게 또 맞아 보일 수 있겠다.


만약 둘이 너무 대조되는 느낌이라면

나라면 일단은 스스로 자신에게 힘이 되야한다는

자조의 이야기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왜냐면, 가능만 하다면 이 접근법이

더 정확하고 가까운 방식이 될테니까.

매우 잘 정리된 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배움이 느린 아이들
김영훈 지음 / 시공사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을 읽기 전, 그냥 늦된 아이들을 위한

긍정적 내용일 주를 이룰거라 

추측하며 읽기 시작했던거 같다.

즉, 대기만성형의 경우를 다룬다 상상한 것이다.

Late bloomer란 영단어로 보면 

더 확 와닿을 대기만성의 해피엔딩식 방향성.

하지만, 그런 의미로 나아간 부분도 있긴 하지만

결국 학습적 성취를 이뤄낼 수 있는 체질개선이 목표지

어떤 결말에 뜻을 두고 있진 않았다.

다양한 원인으로 각자의 학습에서 부진한 아이들을 

원리적으로 이해시키고 서포트하기 위한 

어른의 역할론에 집중된 내용들이 주를 이뤘다.

아이가 직접 읽어야 할 내용은 당연히 아닌

아이를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의 

능력 향상을 위한 책이라고 보는게 더 맞았다.


배움이 느리다면 대게 무슨 문제에서 기인된걸까?

책으로 접하지 않는다면 막연한 문제이면서 

어느 가족에겐 절박한 문제일 수 있다.

 

책에선 우선, 아래 7가지의 경우 중 

어딘가엔 원인이 속해있으리라 본다.

다만, 마지막 7번째의 경우는 

앞선 6가지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원인이다.


기본 학습력이 부족한 아이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

느긋한 성격의 아이

공부습관이 형성되지 않은 아이

의욕이 없는 아이

재촉하는 부모의 아이

학습장애를 가진 아이


학습측면에서 느리다면 

공부머리와 공부정서 모두를 봐야하는데

이는 각각 결과와 과정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이다.  


여러 사례들이 실려있지만

가장 흥미를 끌었던 부분은 

수용성이 높은 아이를 다룬 부분이었다.

일단, 수용성이란 말 자체가 

학습에 있어 매우 장점이 될 성향 같았는데,

이 파트를 계속 읽다보면 수용성만큼 

학습에 장애가 될 요인은 많지 않을 듯 

매우 큰 문제점처럼 다가왔다.

내가 느낀 바대로 요약하자면

아이의 세상을 향한 선한 관심은

스스로 산만해 질 수 있게 만들고

결국 여러방면으로 손이 많이가는 아이이면서

보살핌과 관심이 극도로 요구되는 이유 같았다.


수용성으로 인해 타인의 의견을 중요시하고,

필요이상으로 재미있는 것에 집착하며,

공부를 멀리하는 경향 또한 심해질 수 있다.

주위가 산만하다 보니 다른 활동에 빠져들기 쉽상이요

되묻거나 반복설명을 요구함으로써 

어른의 인내심과 가이드를 더 필요로 한다.

섬세함과 격렬함을 동시에 소유한 걸로 봐야하기에

어리더라도 앞으로 경험하게 될 인생의 과정 중에

이게 왜 도움이 되는지 이해시켜 주면서 이끌어줘야 한다.

칭찬을 좋아하는 것도 이용하면서 

혼낼때 마저도 칭찬을 먼저 해 가면서 훈육해야 한다.

시작하는 습관을 들여줘야 뭐든 일단

순조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될거고 

그런 다음에야 더 나아갈 수도 있다.

확인은 부모 몫인것은 당연한 귀결.

얼핏보면 손많이 가는 아이양육의

모든 것을 갖췄다고 봐도 무방할 거 같다.

한편으론 아이들이면 모두 해당될 이야기 같아도,

수용성이란 성향하에 정리된 내용들이다.

이는, 느린 학습 성향을 가진 아이들의 

극히 일부분이자 한 종류로 실려있다.


다른 내용 중엔, 

시설좋은 고아원과 아닌 고아원의 비유도 있는데,

열악한 고아원생이 시설좋은 곳 원생보다 

더 건강할 수도 있는 이유를 설명한 부분이다.

그게 가능할 수 있는 이유로 든 것은 

열악하다는 이유로 좀더 잦은 이웃들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경우란 역설을 전제로 한다.

이에 반해, 너무 붙어지는 경우의 양육도 예를 들면서

이는 자발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는 효과를 낳아

스스로 이뤄가는 창의성 발달면에서 

지연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실었다.

아이의 발달에서 한 요소만 진리거나 옳을순 없단 

복합적이고 중첩적인 사례들로 보였다.


자기 주도성과 자아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들을 다룬 부분도 

매우 간결하고 쉽게 와닿는데

일단 저지르게 하고

경계는 허물어 줌으로써 

경험하게 해주라는 것.

즉, 나아갈 방향의 옳고 그름이 아닌

용기와 관계된 주도성 경험을 

최우선으로 길러주란 조언 같다. 


배움이 느린 아이들의 여러 이유들 중

시대적 변화와 더불어 가장 관심있게 보였던 부분은

디지털매체와 관련된 챕터였다.

아이를 스마트폰과 뽀로로에 맡겨두는게 당연히 된 시대에서

이런 매체들의 장기적 영향력은 

어찌보면 기존 이론 너머에 있는 듯 해서.


저자는 자극적이고 과도한 자극이 될

디지털 매체로 인한 아이들의 학습이란 이름하의 노출은

큰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게임방식이 주인 디지털 매체 속 컨텐츠들은

눈과 손가락만 움직이는 식이라

두뇌발달에 한계를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어쨌거나, 여러 방향과 여러 결론 중

가장 간단하면서 핵심인 부분은

영구적인 바른 독서습관 같았다.

스스로 학습이 가능케 하는 

읽기능력의 바른 습득이 결국 결론은 아닐지.

결국 모든게 읽기 능력에 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최소 저항의 법칙 - 인생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드는 방법
로버트 프리츠 지음, 박은영 옮김 / 라이팅하우스 / 202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어디쯤에서 이런 예가 나온다.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고자

술을 끊는 도구로써 명상을 시작한 사람.

그 사람은 기어코 알코올 중독자란 굴레에서 벗어났고

그건 다 명상 덕이었다.

근데 그 명상이라는 방법을 통해

이 사람에겐 다른 중독이 생겨났는데,

명상을 안하는 날이면 

알코올 중독 때 느꼈던 그런 

금단증상을 경험한다는 것이었다.

술을 못 먹었을 때 느끼는 그런 괴로운 심정을.

누군가는 아이러니라 할 터이다.

하지만, 책은 단순이 이런 

반론적으로 말장난스런 깨달음 정도를 주려고

이 사례를 하나의 예로 든 것도 아니거니와,

책 전체를 바라볼 때

최종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큰 틀도

이 예시로 느껴질 수 있을

어떤 즉각적인 반응과는 좀 거리가 있다.


위의 얘기를 좀더 정리해 볼 때

알코올이란 부정적 중독에서

명상이란 긍정적 중독으로 바뀐 게

과연 중독이란 큰 틀에서 

어떤 걸 의미하는지 정도만

위의 예로써 한번 이야기 꺼내 본 정도이고,

실제 말하고 싶었던 중독에 관한 

짧은 결론부터 일단 마무리 지어보자면,

중독의 가장 궁극적인 해소는 전문적 소견에선 

그게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상관없이

무조건적 '멈춤'에 있음을 얘기해주고 싶었던데 있다.

아마 알코올 중독을 옹호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거의 동의를 얻기 어려울테니 차치될거 같고,

명상을 굳이 중독의 개념으로 한데 묶어 

중독이란 카테고리 안에서 논의해 봤던 것에

유익한 명상이란 걸 중독의 대상으로도

취급됐던데 반감이 생기는 사람들은 있을 것도 같다.

누군가에겐 명상이 인생일 수도 있을테고

알코올 중독과 어떤 식으로던 비유한 게

과한 극단의 비유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테니까.


알코올 중독이 인생이라 우긴다면

그건 쉽게 꺼내기도 동의받기도 어려운

반론대상일 테니 굳이 재논의는 필요 없겠고,

명상으로 좁혀 다시 위 문제를 이야기해 보자면, 

이 책은 중독성이란 자체로

좁은 틀 안에서 뭔가를 논하는게 아닌,

각자의 초자아를 스스로 울타리에 가두는 듯한

행동을 자초함으로써 생길 수 있을 

어떤 모습들을 가감없이 

좋고 나쁨의 구분없이

증명된 예로 들어 설명해보는 과정에서 나온

그저 영감을 부여할 만한 예로써 

사용됐다고 받아들여 졌으면 좋겠다.


저자는 젊은 시절,

클래식 작곡을 배워가던 과정에 있어서

어느날 이 책의 모티브가 된

구조의 본질에 관해 눈을 떴다. 

그게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고

그냥 이론으로 접근해 왔고 

이론적으로 공부하던 것들의 

원론적인 시작과 간극에 존재하는 걸 느낀다.

저자가 자신의 본업에서 느낀 통찰로

많은 것의 원리가 될 수 있는

구조적 공통점을 발견했고,

이를 삶 전체에 적용할 수도 있다는

묘한 구조적 공통점을 적용해 본 게 핵심같다.


이 후, 몇몇 마음맞는 사람들과

자신의 발견을 이론화했고 세미나화 했다.

아마, 세미나 또는 이론화는

너무 많은 분야에서 이뤄지고 있고 

상업화 된 도구이기도 하지만,

이 책에서 등장하는 단계들은

그 과정의 당위성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았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여러 소재와 전개들은

무엇이 바람직한지 스스로 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자기점검의 역할도 경험해보게 도와주면서,

어떤 루트로던 뭔가 기존과는 다른

생각의 가지뻗음도 느껴보게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비슷한 듯 다른 이름으로 행했던 

수많은 잘못된 의사결정을 이끌었던게

어떤 본능과 구조적 오류인지

기억을 소환해 복기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매우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책 내에서는 절대 기존의 어떤 

심리적 이론이나 내용들이 주축은 아닌데,

결론적으로 어떤 심리학 전문가보다

더욱 심리학적으로 다가오는 부분들도 많고,

정통 심리학이 주는 한계 또한 

상대적으로 강하게 느끼게 해준다는 것이다. 

심리학이 드러나게 사용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설명을 위해 일반적인 예들 안에서 

심리학 용어 같은게 사용되긴 하지만,

궁극적으로 여지껏 보편적으로 보이던 

여러 사고방식의 틀을 깨고

진짜 틀을 보여주는게 이 책의 본질이다.


영성적이거나,

뉴에이지 스럽다거나

자기만의 궤변을 늘어놓는 책이 아니다.


단지 하나!

생각의 반전, 익숙함의 탈피,

기존 상식만으로는 혼자 

구조화 하기 힘든 저자가 불러 일으키는 

독특한 발상전환을 선사한다.


좋은 책, 좋은 인연은 

소리없이 다가옴을 다시 한번 경험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빈치 코딩 - 당신의 미래를 바꾸는 실전 코딩 전략
이철기.최찬경 지음 / 성안당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C언어나 자바 등 컴언어 자체가 아닌 

코딩원리 자체를 다룬다는 

이 책의 등장을 처음 들었을 때, 

사실 궁금함과 동시에 이해가 완벽히는 안 됐었다.

이렇게 코딩을 담는다는게 가능한가 싶어서.

그리고 더욱 놀라웠던 건, 실제 이 책을 펼쳤을 때다.

정말, 책 안에는 코딩에 관련된 C언어 같은 

어떤 기술적인 부분도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본론적으로, 이 책은 

메타인지에 관한 책으로 보는게 좋을거 같다.

왜냐면, 코딩을 구성해 낸다는 핵심은 

단지 기술을 컴언어로 표현하는게 중요한게 아닌

담긴 아이디어가 더 중요함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꼭 코딩능력이 뛰어난

인간 엔지니어가 필요한 시대가 아닌,

아이디어만 부여해줘도

스트럭처 구성 자체는 컴퓨터 스스로 

작성 가능해진 시대가 됐기 때문에,

인간으로써 가장 필요한 역할분담은

자판을 직접 두들기며 컴퓨터 언어를 

직접 구사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아이디어를 코드로 만들지

그 기반이 되는 생각을 창출하는데

저자는 핵심이 있다고 보고있다.


사실, 맞는 이야기이면서도 조금은 모호했다.

큰 틀에서 코딩교육의 목적을 인지하고

교육을 해나가고 받아야한다는 

그 생각이 분명 맞는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 잘 살자가 주제일 때

어떻게 잘 살지가 대부분의 사람에겐

궁금한 주제가 되는 거니까.

그런데, 이 책에서 

코딩에 대해 크게 논의되는 부분은

바로 어떻게 잘 살지 보다는

모두 잘 살기 위한 생각의 시작을

메타인지라는 개념에서 뽑고 있다는

그 부분을 강조하려는 책이다보니,

코딩이 바로 이 책이 설명하는 

이것이라고 느낄 사람이 

많이 있겠느냐는 넌센스도 다가와서.


하지만, 메타인지와 상품성의 연계측면에서

책이 예를 든 맥북으로 이야기 해보자면,

여러가지 시사하는 점도 있고

메타인지의 필요성엔 쉽게 이해될 부분도 있겠다 싶었다.

거기에, 맥북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부분이었고 의아했던 부분이라 

좀더 쉽게 메타인지의 예로써 이해되기도 했다.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가장 갖고싶은 노트북이 뭐냐 묻는다면

맥북일거라고 이야기한다.

물론 수많은 브랜드가 존재하는데

딱집어 맥북만을 온리 원이라 얘기하는 것엔

조금 과한 일반화란 생각도 들수 있지만,

그 후에 따라오는 얘기를 들어보면

전달하려는 바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몇번 맥북을 사려 했을 때

끝끝내 못사게 됐던 그 이유랑도 겹쳐 설명됐고.


맥북 실물을 손으로 들어본 사람이라면

그 무거움에 놀라지 않을까 싶다.

많은 것들이 경량화 되는 추세에서

맥북의 그 무게감은 실로 이해가 안됐다

게다가 다음 버전이 나와도

그 불편한 무거움의 개선은 없이 요지부동이다.

들어본다면 무겁기가 이루 말하기 어렵다.

1kg미만의 노트북만을 선호하는 내 입장에선,

아무리 맥북의 유저가 되보고 싶더라도

결단코 사고싶지 않게 막은게 바로 이 무게감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저자가 책 속 하나의 예이자

맥북을 최고로 선호되는 노트북이자 동시에 

쓰레기로 불릴 수 있는 이유로 든 설명 안엔,

윈도우와 달리 대중적 호환성이 떨어진다는 점과

변치않는 무거운 무게를 예로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너무도 공감이 됐었다.

물론, 영상이나 그래픽 작업이

주된 업무인 많은 사람들에겐,

어떤 이유에서도 맥만이 주된 컴퓨터겠지만 말이다.

그러면서 이 무거운 노트북이 

왜 확실한 시장성이 있는지를 

메타인지의 한 예로써 설명한다.

그건 다름아닌 많은 이들이 선호하는 

그 맥북만의 디자인.

나야 사용 안하니 맥북의 애플로고에 

라이트가 들어오는게 멈춘 시기까지는 몰랐지만,

아무 소용없어 보일 수도 있고

전력낭비일 수 있는 애플로고의 라이트가 

맥북을 더 맥북스럽고 

최고라고 여기는 사람이 많다는 설명.

결국,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그 부분이 되려 

대중에게 더 어필 될 수 있는 

애플만의 시그니쳐가 될 수 있는 건

메타인지적 해석이 가능하게 해준단 말이었다.


즉, 코딩의 최종목적이란,

각자가 기술적으로 컴 언어에 대해

최대 능력치를 갖추는게 본질이 아닌,

대중에게 유니크하게 다가가거나

잘 팔릴 수 있는 아이디어를 해내는 게,

코딩 자체 작성보다 더 중요한 

선제조건이란 걸 전달해 보려는게 

이 책의 진정한 목적 같았다.


이후, 책은 3명의 인물도 보여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이순신, 스티브 잡스.

전혀 연관성 없는 그들의 삶에서

그들 각자가 벌였던 작업들에선,

어떻게 공통적으로 메타인지 관점의 

지식구성이 작동됐었지를 보여주면서,

컴으로 한 코딩은 아니지만 

그들의 보여준 작업 자체가 

하나의 메타인지적 코딩원류였음을 보여준다.


일례로, 너무 유명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예로 들면서,

그림 속 그 구도가 어떻게 

이 책의 예로 실릴 수 있었는지를 말해본다.

이 이전의 기존 작가들 그림 속에서도 

예수와 12제자는 등장했었지만,

그전까지 작품들이 이를 평면적으로 그렸던 반면

다빈치의 12제자의 모습 속엔,

제자 각자의 행적과 캐릭터가 분석적으로 녹아

한장의 그림 안에서 기존 그림들엔 없었던 느낌들까지 

핵심적으로 구현해냈다는 점을 예로써 들고있다.

  

어찌보면,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여러 부분들을, 

정리하며 읽어야 할 부분도 있고

저자의 이 발상만을 정답이라고 

완전 공감하기엔 쉽지 않을 부분들도 있을거 같다.

왜냐면, 큰 틀을 제공하는데 치중된 책이니까.


하지만, 뭣보다 컴언어로 짜는 코딩능력이란 건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을거란 점과,

메타인지 자체가 뭔지에 대한 개략적인 설명과

코딩 그 자체보단 메타인지가 왜 더 중요한지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이 할 역할은 다 했다고도 보여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학 - 2022 한경신춘문예 당선작
최설 지음 / 마시멜로 / 202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건수.

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이다.

중학생 나이에 다시금 들어와

불치의 시한부 진단을 받았지만,

운좋게 신약처방을 받고서 

희망없던 그는 결국 살아남는다.


대부분 소설로써 실려있다.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의 어떤 것들은

소설의 줄거리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다만, 저자의 자전적 소설이기에

자신의 일이지만 마치 제3자의 일인 듯

우회적으로 여러가지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독자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게 만든

마무리 소감을 실어 놓음으로써 이를 통한

전후 사정을 어렴풋이 알아볼 수 있게 했다.


책의 제목이 방학인 건,

중학교 나이에 시작된 주인공의 투병생활이 

어느새 거의 성인기에 접어들 때까지 이어지면서,

그의 동생이 그런 형의 기간들을 

방학이라 표현하는 그 부분에서 

책제목도 정확히 이해될 수 있다.


어찌보면 저자가 말했듯

이 책이 한권의 소설로 

좀더 다듬어져 재탄생 할 수 있었던 건,

저자가 어찌됐건 소멸이 아닌

소생으로 다시 이 자리에 섰고,

현재의 결과물로써가 아닌

이보다 더 좋은 글을 들고

독자들을 찾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장담을 해줄 수 있는

성인이 됐음이 바탕이 됐을 것이라 느꼈다.


줄거리 속 주인공은 어찌보면 꽤나 밉상이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하루하루를

그 나이 그 감성에 맞게 단순하게 보며,

호의도 마냥 반갑지만은 않고

실망은 보다 삐뚠 마음을 가져도 되는

유발점이나 되는 듯 분석되는

실망의 과정과 가정사를 거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 듯 보여주니까.   


그냥 책만의 분위기만 따르자면

예절이나 밝은 희망 같은 건,

건강한 신체였을 때나 가능한 정의다.

먼저 같은 병으로써 같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주인공 아버지는

명언은 아니지만 명언같기도 한

또는 유언같기도 한 이 말을 해줌으로써

이를 깊이 각인한 건수를 빌어 

밉상처럼 보이는 그 많은 그의 행동들이

누군가를 향한 솔직한 감정표현임을

부담스럽지 않게 인정해 볼 수 있게

책은 많은 부분 보여준다.


그러다, 종교적 인내심인지

아님 내추럴 본 인내심인지 모를

수녀님의 등장에서 부터,

조금씩 똑같은 반복같은 병원 속 생활에

다른 기대가 가능하게 된다.

순수한 듯 농담인 듯 다가서는 수녀의 모습은 

건수의 성장기 속 필요했을 어른의 모습이었다.

거기에 정말, 말 그대로 

동병상련의 또다른 등장인물인 

3살위 소녀 강희와의 관계 속에선,

그저 폐쇄병동 같은 한 곳에서의 생활을

좀더 입체적으로 느끼게 만들어주고

실제 주인공이 그런 경험을 했음도

이 소설이 가진 플롯 안에서 보여준다.

그러고보면 자판기 할머니도 그러했고.


2차 약도 듣지않는 슈퍼 보균자.

그런 이들에게 신약은 

어찌보면 하늘에서 내려준 동아줄.

게다가 그 약을 사먹을 수 있게

성당을 다니면 준다던 6만원의 보조도 

이를 도와줄 수 있을거 같아 희망인데,

6만원을 주냐 안주냐로만

의심하던 건수의 내면과 반하여,

1알에 6만원이라는 비보험의 현실이

자신의 상황을 정리하며 바라보는

건수의 공격성에 순간 스스로 

입을 다물게하는 멍함으로 다가선다.


책의 목차는 날짜다.

즉, 병원에서 머물렀던 날짜들.

일기같은 그 날의 기록이 아닌

일수들의 집합만이 지난 시간들을 모은다.

그 기간들은 건수와 최설에겐 방학이었다.


저자가 처음 이 책을 썼을 땐

김건수란 이름은 없는 책을 썼다 한다.

지금은 이렇게 그 소년의 이름을 지어줬지만.

아마 이름없는 그저 기록으로

남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남음으써

그 실존의 경험을 투영한 소설 속 소년에게

최설은 건수라는 이름을 주었다

자신이 투영된 무명씨에게

결국 김건수라는 이름을 선사해 준

저자의 다음 작품도 꼭 보고 싶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