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방의 빛 : 시인이 말하는 호퍼 (리커버)
마크 스트랜드 지음, 박상미 옮김 / 한길사 / 2016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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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 전시를 함께 관람한 딸은 그림을 보면서 답답함을 느꼈다고 한다. 벽과 벽, 지붕과 지붕, 창문들, 단순화된 사각의 면들로 겹쳐진 화면들은 흡사 큐비즘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초기 프랑스에서의 풍경들에서는 보이지 않았지만 빛이 비치는 면과 그늘이 지는 반쪽 얼굴로 표현된 자화상에서 후기의 단순화된 입체들을 예감하게 된다. 큰 화폭에 공간감을 없앤 단순한 기하학적 면들의 겹침과 그 사이의 공간을 생략해버린다. 빛이 비치는 곳에는 공간감을 없애고 어두운 곳은 오히려 미지의 공간을 상상하게 한다. 아마도 이런 표현 때문에 답답함을 느꼈을지 모르겠다. 


<계단>1949


어두운 숲을 향해 오르거나 어두운 바깥으로 열려있는 문을 향해 내려가는 계단은 그 어둠 때문에 두려워 주저하게 되는 마음을 읽게 된다. 빛은 모서리 반대쪽에 어둠을 만들어내면서 입체를 이룬다. 그 명암이 만들어낸 벽체가 가둔 공간은 사람들의 외로움과 갈등과 지친 하루를 감추지만, 그것들은 무심히 던진 시선에 의해 포착된다. 한 공간 안에서 서로에게 타자가 된 두 사람, 서로에 대한 마음을 참고 각자의 일에 몰두하는 그들을 보며 짙은 외로움을 느낀다. 빛이 어둠을 만들 듯 도시화는 소외된 공간을 만든다. 수직으로 확장하는 다리와 철로는 원래 있던 주택을 제자리를 잃은 모습으로 고립시킨다.

 

호퍼는 시간이 만들어낸 빛을 그리고 있다. 아침과 낯의 태양 빛, 노을, 밤의 불빛 등. 그러나 그의 빛을 그리는 그림 안에는 반드시 짙은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공간이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공간은 두려움, 불안을 전한다. 빛이 비치는 공간 안에 있는 사람들은 고독하고 지쳐 보이고, 그들은 마음을 감추고 있어 긴장감이 흐른다. 따뜻한 빛 속의 나른함이 왜 그리 사무치게 외로운지. 화가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궁금하지만, 오히려 자세히 알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에 빠진다.


<호텔의 창>1956


이 책은 시인인 마크 스트랜드가 호퍼의 그림을 감상한 내용들로 이루어져있다. 호퍼의 대표적인 그림들과 그에 대한 해석과 감상들이다. 그는 호퍼의 방들은 욕망의 침울한 안식처(105p)”라고 표현한다. 벽에 가려진 방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알 수 없지만 관찰자의 눈에 포착된 사람들의 모습에서 추측만 할 뿐이다. 텅 빈 방안에 깊숙이 들어 온 빛은 그 시선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역시 텅 비어있는 방처럼 엄청난 무게의 침묵만을 전할 뿐이고, 불안과 고독은 커져간다.

 

밤의 레스토랑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나이트호크)과 철로 옆의 집(철로 변 집)을 바라보는 관찰자, 도로나 철로는 그가 지나가면서 그들을 보고 있음을 암시한다. 아마도 도시에서 우리의 관계는 이런 것이 아닐까? 그저 지나가면서 눈에 비친 아무 관계도 아닌 관계.

 

마크 스트랜드가 이 책을 나이트 호크에서 시작해서 빈방의 빛으로 끝내고 있는 이유를 짐작해본다. 지나가면서 언뜻 바라본 불 빛 속의 네 사람, 그들의 포즈와 표정이 자아낸 분위기 때문에 시선을 거둘 수 없다. 거기까지다. 들여다볼수록 텅 빈 방처럼 침묵하고 있어 알 수 없어 고독은 더욱 커져만 간다.


<나이트호크> 1942

<빈방의 빛> 1963

 


작가의 감상을 가끔 펼쳐보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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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01 0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레이스 2023-05-01 07:39   좋아요 3 | URL
큰 화폭에 공간감을 없앤 단순한 기하학적 벽들의 겹침? 빛이 있는곳에는 공간감을 줄이고 어둠이 있는곳에는 미지의 공간을 남겨둔것 같은 표현에서 저도 그런 느낌을 느낀것 같아요.
그란데 오히려 작가의 삶에서 그 절절한 고독을 발견하지 못하면 감상을 깨뜨릴것 같고, 또 발견한다면 그것도 이입이 되어서 방해가 될것 같은? 생각요
아이러니 하네요^^
전시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희선 2023-05-01 0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워드 호퍼 이야기 나오면 꼭 부인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이름은 잊어버려서 찾아보니 조세핀이군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보니 조세핀도 그림을 그렸지만, 자기 그림보다 남편이 그림을 그리게 도와줬다는 이야기였어요 두 사람이 다 그림을 그렸다면 둘 다 잘 안 됐을지... 그건 모르는 이야기겠습니다


희선

그레이스 2023-05-01 07:42   좋아요 0 | URL
조세핀의 영향에 대해서도 알죠!
그의 작업 중에 수채화는 그녀의 영향이라고 하더라구요.
그리고 많은 포즈와 장면 연구에 직접 모델이 되기도 하고, 조언을 했다는 얘기도 읽었습니다.
그려도 재능있는 화가였다고는 하더군요^^
감사합니다 ~♡

거리의화가 2023-05-01 07: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호퍼의 그림은 주체가 없고 객체들만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고독과 우울, 불안감이 느껴지는데 호퍼가 누구인지 궁금하면서도 깊은 내막은 알고 싶지 않은 생각도 들고…^^ 전시 좋으셨겠습니다!

그레이스 2023-05-01 08:04   좋아요 1 | URL
저랑 비슷한 감상을 하시네요! 감동! 좋았어요. 감사합니다.

DYDADDY 2023-05-01 08: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미술에 대해 잘 모르지만 호퍼의 그림은 단편수상집의 표지에 있는 것을 처음 보았어요. 밖을 바라보는 여인의 모습에 담담한 그리움이나 고독이 느껴져 인상이 깊었던 그림이었어요 그 이후에 몇몇 작품을 보았는데 자연을 배경으로 하든 도시를 배경으로 하든 피사체를 객관적으로 표현하지만 그 안에 깃든 쓸쓸함이 느껴져 종종 보게 됩니다. 따님은 아직 그런 감정을 받아들이실 나이가 아니라서 답답하다고 느끼셨는지도 모르겠어요.
전시에 가보고 싶지만 여건상 힘들어 그레이스님의 감상으로 대신해봅니다.

그레이스 2023-05-01 08:55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런 감상까지 하기에는 어리죠^^
‘어려서 그래!‘ 라고 말은 안했지만요!
나름 답답함이란 표현도 나름 잘 본 거라 생각했구요. ㅎㅎ

이 전시는 특히나 날짜랑 시간 예약을 하고 꼭 그 시간에 들어가야 해서 조금 까다롭긴 했어요.
줄서고 기다리느라 감기 들 뻔 했어요 ㅠ

DYDADDY 2023-05-01 0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식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이성으로 획득이 가능하지만 문학이나 예술은 감정으로 획득해야하는 부분이기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따님이 ‘어려서‘라는 부정적 의미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조금 부러운‘의 느낌이랄까요. ㅎㅎㅎ 많은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그만큼 쓴 경험을 했다는 것이니까요.
전시관에 많은 사람이 북적이면 차분하게 감상하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요즘처럼 변덕스러운 날씨에 웨이팅룸이라도 있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드네요. 생각보다 봄이 너무 길어집니다. 요즘 마스크 해제 후에 병원이 성시이니 그 줄에 서지 않으시도록 건강 유의하시기 바라요.

그레이스 2023-05-01 11:18   좋아요 1 | URL

저도 부정적인 느낌으로 읽은건 아니었는데,,, 그 아이 나이 대로 감상했다는 걸로 알아들었어요^^
저도 딸이 부러웠어요 ㅋㅋ

아!
전시와 관련된 미술관의 진행에 아쉬움이 있긴 했습니다^^

새파랑 2023-05-01 14: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책 그레이스님 리뷰 보고 샀는데 ㅋ
호퍼 작품이 세계문학고전 표지로 많이 쓰여서 궁금하더라구요 ^^
저도 전시화가보고 싶습니다 ㅜㅜ

그레이스 2023-05-01 14:35   좋아요 1 | URL
아!
갑자기 책임감 확 느끼네요 ㅋㅋ
저는 좋으시리라 기대합니다~^^
아직 여유 있으니 기회가 있으시길 바래요 ~

가필드 2023-05-01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시회 다녀오신 분들이 다들 좋으셨다 하셔서 기대감이 있네요 그레이스님 리뷰 보고 저도 가기전 읽고 보고 싶군요 🤗

그레이스 2023-05-01 17:50   좋아요 1 | URL
가필드님 좋은 시간 되시길 바래요~~

초란공 2023-05-01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갖고 있는 책인데... 읽지 않았군요 ^^ 그림을 볼 때 느껴지는 마음 속 어딘가 휑한 느낌을 작가들은 어떻게 바라보았을지 기대가 됩니다~! 전시는 어떠셨나요?

그레이스 2023-05-01 21:41   좋아요 1 | URL
전시 좋았어요
다만 나이트호크는 스케치만 와서 그게 조금 안타까웠어요 ㅠ
그래도 호퍼의 유명작들과 초, 중, 후기 각 단계 작품들을 볼수 있어 좋았어요
그의 에칭을 감상한게 좀 특별했습니다.

초란공 2023-05-01 21:40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나이트호크가 안와서 좀 아쉽네요. 그러고보니 제 북플 대문 이미지도 나이트호크인게 생각났습니다^^ 여러 작가들이 호퍼의 책을 읽고 쓴 글을 모은 <빛 혹은 그림자>란 책도 있는데 저도 아직 읽어보진 못했어요. 아내는 이 책이 재미있었다고 해요.

그레이스 2023-05-01 21:45   좋아요 1 | URL
아!
북플 대문 이미지!~♡
저도 그 책 확인해봐야겠어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소재로 한 소설집이네요
재미있을듯요

yamoo 2023-05-04 06: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그림이.. 전시된 그림을 사진 찍은 것이 아니라 해당 그림 이미지를 가져 오신거 같아요. 사진을 절대 못찍게 하더라구요. 1층 제외하고는..

전 거의 모든 그림을 도록에서 봐서 사진을 찍지 않아도 뭐 괜찮았지만...1층 호퍼가 그린 일러스트들은 사진을 안찍을 수 없었습니다. 호퍼의 일러스트는 호퍼에 관한 책 중에서 도록에 실린 일러스트가 거의 없기에 이번 호퍼 전시는 무척 좋았던 기회였습니다~~

그레이스 님의 전시 후기를 보니 완전 색다른데요~~ 마크 스트랜드 책은 그냥 치나쳤었는데 꼭 사서 봐야 겠네요!!

그레이스 2023-05-04 09:49   좋아요 0 | URL

저도 1층에서만 찍었습니다.

위에 올린 그림은 제 책에서 직접 찍기도 하고 이미지를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보시면 차이를 아실듯요 ~^^

딸이 호퍼는 일러스트 작가로 더 좋다고 하네요.^^

레삭매냐 2023-05-05 08: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오 저도 마크 스트랜드 책
사둔 것 같은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호퍼의 그림 저도 마음에 들더
라구요.

그레이스 2023-05-05 08:41   좋아요 0 | URL
^^
찾으시길요~
휴일이니 여유있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