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공-마카르 전집을 시작하기 전에 썼던 실험소설과 같은 『테레즈 라캥』 서문에서 에밀 졸라는
“『테레즈 라캥』에서, 나는 사람의 성격이 아니라 기질을 연구하기를 원했다. 이 책 전체는 바로 그것을 담고 있다. 나는 자유의지를 박탈당하고 육체의 필연에 의해 자신의 행위를 이끌어가는, 신경과 피에 극단적으로 지배받는 인물들을 선택했다. 테레즈와 로랑은 인간이라는 동물들이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이들의 동물성 속에서 열정의 어렴풋한 작용을, 본능의 충동을, 신경질적인 위기에 뒤따르는 돌발적인 두뇌의 혼란을 조금씩 좇아가려고 노력했다. 나의 두 주인공들에게 있어 사랑은 필요의 만족이다. 살인은 그들이 저지른 간통의 결과이며, 그들은 마치 늑대가 양을 하듯 살인을 한다. 내가 그들의 회환을 촉구해야 했던 부분은, 단순한 생체조직 내의 무질서, 파괴를 지향하는 신경체계의 반란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 영혼은 완벽하게 부재한다.” (『테레즈 라캥』 서문 중, 에밀 졸라)
라고 말했다.
나나는 영혼이 부재한 욕망에 의해 움직이는 인물로서 사람들 가운데 던져진 것이다. 그녀로 인해 그 주변 사람들이 어떤 자극을 받고 어떻게 추락하는가를 보여준다. 나나의 생각을 알 수가 없다. 오히려 그녀 주변인들의 생각, 감정, 동기들이 더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나나와 달리 그 주변인들이 보여준 반응과 삶의 진행 방향은 예측이 가능한 보편성을 띄고 있다.
그녀가 파리의 한 극장 19세기 비너스로 등장함으로, 무대 뒤 여배우들의 불행한 삶과 그들을 찾는 파렴치한 귀족들의 모습이 함께 조명된다. 그녀의 소문이 파리 귀족들의 사교계에 퍼져감에 따라 이미 파괴되고 해체된 그 가정의 폐부가 드러난다. 그녀를 좋아했던 스타이너, 라 팔루아즈, 뮈파, 조르주, 필리프, 슈아르, 방되브르 등 남성들은 파산과 불명예를 면치 못한다. 그들의 은밀했던 욕망이 발각되고 노골화 되며, 스스로를 구별했던 사회적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나나』의 주인공은 나나가 아니다.(『안나 카레니나』의 주인공도 안나 카레니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스만 대로에 있는 나나의 3층 집 모습-금칠을 한 의자나 탁자 같은 요란스러운 사치품이, 조그만 마호가니 원탁과 피렌체의 청동을 흉내 낸 아연 촛대 등 중고 상점에서 산 중고품들과 극심한 대조-은 “성실했던 첫 남자로부터 너무 일찍 버림받고 수상한 남자들의 손에 넘어간 여자임을 짐작”하게 한다. 나나는 “출발이 어려워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신용 추락과 추방 위협으로 발에 족쇄가 채워진 여자”(48p)다.
나나의 집에 초대되어 온 여인들도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 조르주에게 그 여인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다그네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그녀들의 삶은 대부분 환경과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카롤린 에케는 보르도에서 하급 사무원의 딸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그런 딸을 버렸다가 일 년 동안 생각한 끝에 재산을 보전해주려고 다시 그녀와 함께 살고 있다. ……클라리스 베스뉘는 생토뱅쉬르메르에 살던 어느 부인의 하녀로 일했는데, 그 부인의 남편이 그녀를 이런 길로 진출시켰다. 시몬 카비로슈는 가구 상인의 딸로, 교사가 되고자 생탕투안 교외에서 기숙학교를 다녔다. 마리아 블롱, 루이즈 미올렌, 레아 드오른 등은 모두 파리 거리에 버려진 여자들이었다. 스무 살까지 샹파뉴의 황무지에서 소를 지켰던 타탕 네네도 그런 여자였다.”(131p)
여배우의 분장실에 노크도 없이 들이닥쳐 나체나 다름없는 그녀를 바라보는 세 남자(보르드나브, 왕세자, 뮈파 백작)의 파렴치한 시선과 무대 뒤쪽 구멍을 통해서 훔쳐보는 관음증의 시선은 권력이다.
“백작과 왕세자는 놀라서 서 있었다. 거대한 침묵 속에서 깊은 한숨 소리, 관객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매일 저녁 여신 비너스가 나체로 등장할 때마다 같은 반응이 일어났다. 뮈파 백작은 그 광경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휘장의 구멍에 눈을 갖다 댔다. 각광이 무지개처럼 둥글게 눈부시고, 극장 안은 갈색 연기가 가득 찬 것처럼 침침했다. 줄지어 앉은 관객들의 얼굴이 흐릿한 배경을 이루는 가운데, 나나의 흰 몸이 발코니 좌석에서 꼭대기 좌석까지 가리면서 크고 뚜렷하게 솟아났다. 그녀의 등과 팽팽한 허리와 활짝 편 두 팔이 보였다.”(199p)
드가의 <스타>라는 작품에서 발레리나가 춤을 추고 있는 무대 막 뒤의 남성을 연상하게 한다.
<The Star, L’Etoille>, 에드가 드가, 파스텔, 1976년경, 오르세미술관
“에투알은 프랑스어로 프리마돈나 또는 프리마 발레리나를 뜻한다. 이 그림에서 눈에 띄는 점은 드가가 정면이 아닌 위에서 발레리나를 내려다보는 듯이 연출했다는 것과 그녀 뒤쪽에 정체 모를 남자의 존재를 그려 넣었다는 것이다. 드가는 파스텔을 써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면서도 당시 타락한 발레계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충격을 배가하는 효과를 만들어냈다. 20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발레리나들은 최하층 계급 출신이 대부분이었기에 이들은 부유한 후원자와의 은밀한 만남을 통해 생계를 이어나갔다.”(14p, 『드가』, 이연식, 아르떼)
시점과 익명의 남성의 모습으로 이 그림 안에 존재하는 귀족 남성들의 권력을 보여주고 있다. 왕세자와 포주 라 트리콩이 함께 무대 뒤에 들어와 있는 것은 라 트리콩의 저택에 찾아오는 귀족들과 차이가 없다. 극장의 단장 보르드나브는 하필 왕세자가 연극을 보러 온 날, 라 트리콩을 들여보낸 사실에 화를 낸다. 극장의 모든 여배우들과 거래를 하고 있는 라 트리콩과 보르드나브가 하려는 일이 다르지 않다.
나나가 파리 근교 퐁데트로 이사 오자, 그곳 저택에 살고 있는 귀부인들은 일종의 강박관념을 표출한다. 화가 났고 저녁때면 마치 “동물원에서 도망쳐 나온 짐승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것처럼 막연한 불안감”(238p)을 느꼈다. 자신들의 경계 안으로 들어온 하위계층 여인에 대한 배타적 감정이다.
그녀를 사랑하는 뮈파 백작은 포슈리가 쓴 나나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내용을 읽고 괴로워한다. 그럼에도 나나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계속 빠져든다. 반대로 자신의 부인의 사생활을 알게 되고 살의를 느낄 정도로 분노하는 것은 그가 이제껏 자신의 정체성으로 여겼던 신앙과 명예 모두가 위선이었음을 보여준다.
나나의 사랑을 받고 그녀를 소유하려는 남자들의 시도는 매번 실패한다. 나나의 욕구는 채워도 끝이 없고 예측을 할 수 없다. 이런 사람 앞에서 사람들은 당혹스럽다. 그런데 그녀가 자신의 마음을 밑바닥까지 드러내는 상황은 퐁탕과의 관계에서다. 폭력을 휘두르는 퐁탕에게 매달리고, 그 폭력에서 사랑을 확인하는 왜곡된 단계까지 나아가는 그녀에게서 보편적 고통을 읽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다.
“그는 그녀가 돈을 지불하고 산 악습이 되었고, 따귀를 얻어맞으면서도 떠날 수 없는 필요가 되었다.”(343p)
나나를 좋아했던 남자들은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다. 마치 “깊은 구렁 속에 세워진”(520p)것 같은 그녀의 저택을 찾아온 무수한 남자들이 바친 재산과 육체와 이름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에밀 졸라는 그것을 “모든 사람들 위에서 두려움과 복종심을 불러일으키며 군림하고 있는 준엄한 튀일리 궁전의 심장 한가운데에 질러대는 발길질”이라고, 그것이 바로 “피를 통해 물려받은 그녀 집안의 무의식적인 원한과 보복심”(564p)이었다고 말한다.
갑자기 사라졌던 나나는 천연두에 걸려 돌아왔고, 파리 한 호텔에서 죽는다. 그녀에게서 전염되어 민중을 망쳐놓았던 효소가 그녀 자신에게 옮겨갔고 비너스는 썩었다. 그녀를 주인공으로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는 에밀 졸라의 평가다. 단지 사람들의 위선을 드러내는 욕망덩어리, 빌런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생각일까? 그녀가 죽어가고 있을 때 거리에서는 군중이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 베를린으로!”라고 외치며 몰려가고 있다. 보불전쟁이 터졌고 그들은 승리를 장담한다. 그러나 나나에 의해 파헤쳐진 프랑스 제3제정 사회는 전쟁에 의해 다시 한 번 패망으로 나아갈 것이다.
에밀 졸라의 작품에는 당대 회화 작품을 연상케 하는 장면들이 많다. 『목로주점』과 『나나』에는 드가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여러 번 등장한다. 세탁부, 발레리나, 무대 뒤의 남성들, 경주마를 소재로 한 그림들이다. 실제로 에밀 졸라는 『목로주점』을 쓸 때 그의 세탁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카페 테라스의 여인들>, ,에드가 드가,1877
“경관의 모습이 눈에 띄면 혼비백산하여 군중 사이로 달아나는 겁먹은 여인들의 행렬을 헤치고 얼른 자리를 떴다. 법률과 경찰의 힘이 하도 공포스러워서 어떤 여자들은 경관이 거리를 쓸다시피 하며 다가와도 정신나간 사람처럼 카페 문 앞에 그냥 붙박여 있었다.”(339p 『나나』)
<목욕통The Tub>, 에드가 드가, 1886, 파스텔, 60×83㎝, 오르세 미술관
"화장대 밑에는 찌그러진 양철 주전자와 더러운 물이 가득 담긴 양동이와 거칠게 만든 노란 도자기 물병들이 놓여 있었다. 또한 주위에는 금간 대야며 이 빠진 뿔빗을 위시해 뒤틀리고 닳아빠진 값싼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재빠르게 옷을 벗어던지고 세수하는 것이 생활화된 두 여자에게는 잠깐 들르기만 하면 되는 그 방의 더러움이 마음에 걸리지 않는 듯 했다."(202p,『나나』)
수잔 발라동을 모델로 그렸던 르누와르와 로트렉의 그림들도 나나와 주변 여성들의 삶에서 보인다. 수잔 발라동에게서 그녀들의 삶을 보기도 한다. 모델, 세탁부, 발레리나, 여배우…. 가난하고 고단했던 19세기 여성들을 바라보는 예술가의 그 시선을 우리 시대의 여성들에게서도 거둘 수가 없다는 생각이다. 더 화려해지고, 위장되고, 은폐된 그녀들의 삶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