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과 신뢰, 진실과 편견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소설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편견들에 익숙해져 있는 아이들의 모습 속에서 기성세대의 어두운 그림자를 발견한다.
고등학교 1학년 박서은이 학교 건물 뒤 옛 소각장에서 벽돌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되었다. 용의자는 절친 지주연이다. 주연이가 서은이랑 전날 그곳에서 만났다는 사실과 벽돌에서 나온 주연이의 지문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다. 주연이는 둘이 만나서 다퉜다는 사실은 시인하나, 그 이후의 일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방송국이나 신문 기자들의 취재와 경찰들의 수사가 진행되면서 친구들이나 선생님, 주변인들이 주연이와 서은이에 대한 평가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주연이가 따돌림을 받던 서은이와 절친이 되었던 의도에 대해서도 엇갈린다.
“주연이요?
주연이는 다들 친해지고 싶어 하는 그런 애죠. 예쁘고 공부 잘하고 집에 돈도 많고. 그런 애들은 그냥 가만히 있어도 친구가 모여드는 법이잖아요.……제가 아는 건 그게 다예요. 주연이가 서은이 구세주였다는 거.
저야 모르죠. 주연이 같은 애가 왜 서은이를 그렇게 챙겼는지. 가난한 애들 도와주고 싶은 동정심, 정의감, 뭐 그런 거 아니었을까요?”(19~20p)
“절친 좋아하네. 누가 절친을 그렇게 대해요? 지주연이랑 박서은은 절친이 아니라 계약 노예 같은 사이였다니까요.”(30p)
“주연이가 그렇게 잘해 줬는데, 아무리 말려도 남자한테 눈이 돌아서 소용 없었대요. 주연이가 서은이 정신 차리게 하려고 진짜 애 많이 썼다고 하던데요.”(58p)
친구들과 주변인들의 증언은 단편적 목격담과 소문에 의한 평가이다. 주연이가 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엄마와 아빠가 자신의 무죄를 믿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부모님이 고용한 유능하다는 김변호사 역시 주연의 무죄를 믿지 않고 단지 유리한 증거만을 수집하고 있다. 그 유리한 증거란 것이 서은이에 대한 나쁜 소문들이었다.
가장 어이없는 상황은 프로파일러의 질문이다. 서은이의 남자친구로 인해 둘 사이가 소원해지고 오해가 쌓이고 사건 당일 두 사람이 다퉜다는 이야기를 듣고, 프로파일러는 질문한다. “너 서은이 좋아했니?”라고 서은이를 사랑했냐고 묻는다. 결국 프로파일러도 무죄추정의 원칙 따윈 던져버리고 주연이를 연인사이 집착으로 인해 살인을 저지른 범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서로의 상처와 외로움을 알아보고 친구가 되었던 주연이와 서은이는 외부에서 보듯이 처음부터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공부 잘하고 부유한 주연이와 가난하고 왕따였던 서은이 두 사람 관계를 프레임 안에서 판단하고 있다. 사람들은 능력있는 아빠를 가진 주연이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판결이 날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죽은 서은이만 불쌍하다고. 한편 가난하고 아이들하고 잘 친해지지 못했던 서은이에 대한 친구들의 평가도 기울어 있다.
주연이는 서은이를 진짜 죽이고 싶었다고 말한다. 재판은 주연에게 불리해지고, 결정적으로 주연의 범행이었음을 증언하는 목격자가 나타난다. 하지만 진실은 달랐다. 목격자만 그 진실을 안다.
이 소설은 우리 아이들에게 우정에 관하여 생각해보게 한다. 친구와의 관계에서 소유하려는 태도는 건강하고 균형 있는 관계를 맺을 수 없음을 알려 준다. 결국 경제적으로 베풀기만 했던 주연이 역시 소유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이런 비극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정범기 추락사건』을 떠올렸다. 단지 사고로 옥상에서 떨어져 다리를 다친 정범기가 고등학생이고, 양궁선수로서 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것과 여자 친구와 헤어졌다는 이유로 비관 투신으로 추측하는 기자나 주변인들을 그린다. 다른 단편들 안에서도 역시 한 존재를 바라보는 프레임과 편견을 비판하는 메시지를 읽게 된다.
주연이와 서은이를 목격했던 사람들의 단편적인 기억들과 두 사람이 처한 환경을 근거로 판단하는 주변인과 검찰, 변호사 등을 보게 된다. 확증편향이다. 우리는 자신에게 씌워진 프레임을 벗으려 애쓰기도 하고 타인을 향해 프레임을 덧씌우면서 살아간다. 이런 프레임들이 많을수록 존재는 자유를 빼앗기고 억압당할 수밖에 없다. 왜곡된 기준들 안에서 판단을 내리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이 슬프다.
아이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였으면 하는 또한가지 대목은 목격자 증언이다. 이 결정적이 증언으로 인해 주연이는 살인자가 되었다. 성경의 십계명 중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이다. 그냥 거짓말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 대한 증언을 거짓으로 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한 사람의 증언이 타인의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치명적이다. 그러므로 거짓말이 아닌 거짓 증언에 방점을 찍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