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흥군에도 슬로시티가 있다. 슬로시티 청산도가 있는 완도에 살다 보니 장흥에 가서도 슬로시티에 관심이 갔다. 완도는 슬로시티에 관심도 많고 관광 유치를 위해 적극적인데 반해 장흥은 동네 사람들도 슬로시티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았다. 관광안내소에서조차 거기 가봐야 별로 볼 것도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장흥군 유치면 전체가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는데 읍내에서 찾아가는 안내판 하나 없었다. 그래서 슬로시티에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다 보면 파괴될까 봐 사람들이 덜 찾도록 했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나중에 알게 된 이야기로는 슬로시티를 홍보할 예산이 없어서라고 했다. 지방 자치 단체마다 관광 때문에 혈안이 되어 있고 알려졌다 하면 파괴되니 어찌 보면 덜 알려지는 게 슬로시티를 오래도록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탈리아 치타슬로에서 정한 슬로시티 상징 마크다. 슬로시티는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에 맥도날드가 들어오는 걸 막은 데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빨리 변하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것들이 등장하는 현대 사회에서 천천히 세상을 둘러보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자는 의미에서 시작되었는데 우리나라에는 현재 다섯 군데가 슬로시티로 지정되었다.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 장흥군 유치면, 담양군 창평면, 하동군 악양면.


길에서 만난 할머니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간 유치면 신덕리. 현재 한옥 마을을 조성하고 있었다. 저 한옥 마을이 완성되는 내년쯤에는 사람들로 부쩍거릴지도 모르겠다.


길이 이어진 곳으로 가면 유기농 농사를 체험해 볼 수 있는 마을이 있는데 우리가 갔던 날은 통제를 하고 있었다. 오른쪽 아래로 내려가면 천 년이 넘은 보림사라는 절과 계곡이 있다고 했지만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성화에 가지 못했다.


슬로시티를 알리는 마을 안내판.  

신덕리에서 나와 간 곳은 유치면 반월 마을이다. 마을 안내 지도에 장수풍뎅이 마을이라고 쓰여 있는 걸 보고는 아들이 가고 싶다고 졸라서 차를 돌렸는데 마침 장수풍뎅이 체험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친정 동네 같은 완전 시골 마을이다.


읍내를 벗어나니 식당을 찾을 수가 없어서 3시가 넘을 때까지 점심을 못 먹은 우리 딸 배 고프다며 내내 징징거리더니 대나무 물총을 보고는 얼굴이 환해졌다.   


마침 이곳에서는 동네 할머니들이 먹거리를 만들어 팔고 계셨다. 감사한 마음에 얼른 백반 4인분이랑 부침개를 주문.   


배도 고프긴 했지만 시원한 대나무 발이 깔린 정자에서 부침개를 먹으니 신선이 안 부러웠다. 


곧이어 나온 완전 시골 백반. 반찬 하나 안 남기고 정말 맛있게 먹었다. 심지어는 빨간 고추까지...  우리가 너무 맛있게 먹었나...  할머니 한 분이 밥이 부족한 것 같다며 한 공기 더 갖다 주시기도. 역시 좋은 시골 인심.


장수풍뎅이 체험 행사라고 해서 뭐 대단한 건 아니었다. 함평 나비 축제 할 때 다녀온 곤충관을 생각하면 정말 소박한 전시였지만 마을 사람들이 직접 뜻을 모아 이런 행사를 하면서 마을을 알리는 모습이 좋아 보였다. 한마디로 돈 많이 들여서 전국적으로 요란 떠는 행사보다 작은 것이 더 아름다웠다는 얘기. 표고버섯 농사를 짓고 나오는 참나무를 이용해서 키운 장수풍뎅이를 전시도 하고  판매도 하고 있었다. 


전원일기의 일용이처럼 편안한 마을 아저씨의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아들. 그 큰 애벌레도 유충도 징그럽다 안 하고 만져보고 들여다보고...  음, 역시 우리집 곤충 박사답다. 이 분은 우리에게 마을 이야기를 정말 열심히 해주셨다. 이런 분들이 있는 농촌 마을은 그래도 희망이 넘쳐날 것 같다.


표고버섯을 키우고 있는  모습.


대나무로 만들어놓은 그네. 네 식구가 번갈아가며 타보았는데 제법 그네 타는 맛이 났다. 유치면 반월마을은 아들 덕분에 들렀지만 정말 즐겁게 놀다 왔다. 유명한 곳 근처에 있어서 사람들이 발길이 비껴가는 곳, 그런 곳에도 한 번쯤은 들러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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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락 2011-10-02 14: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감사합니다 슬로시티장흥을 소개하여 주셔서 사진을 매우 잘찍으시네요
장흥슬로시티 한승락
 

방학이라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도 많고 수목원이다 자원봉사다 돌아다니다 보니 집중이 안 되어 방학하자마자 다녀온 장흥 이야기를 이제야 하고 있다. 장흥은 완도에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동네로 강진 옆에 길게 붙어 있다.  

장흥은 완도에서 가까운 데도 못 가봤고, 아무래도 올해 안에 완도를 떠날 것 같아 미루던 숙제를 하는 심정으로 다녀왔다. 남편은 작년 언제부터 정남진 토요시장 이야기를 하면서 장흥 대한 기억을 심어주려 했지만 내게 장흥은 이청준과 한승원 같은 문학인들을 키운 동네였다. 

게으른 우리 가족이 남편이 쉬는 날 9시 무렵에 집을 나선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지만 들러보고 싶은 곳이 많았기 때문에 부산을 떨어서 일찍 나섰다. 정동진은 서울에서 똑바르게 선을 그었을 때 가장 동쪽에 있는 동네다. 그렇다면 정남진은 서울에서 똑바로 선을 그었을 때 가장 남쪽 동네라는 얘기겠지.  

장흥 정남진 토요시장은 한우 때문에 유명해졌다. 토요일에 찾아가면 그 지역에서 키운 한우를 싸게 살 수 있다. 그리고 직접 골라 산 한우 고기를 주변 식당에 들고 가면 밑반찬 서비스해주는 값만 내면 고기를 먹고 올 수 있어서 식당마다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듯했다.  


네비가 알려주는 대로 달려갔더니 완도에서 토요시장까지 가는 데 한 시간 20분이 걸렸다. 탐진강(강진의 옛 이름은 탐진이다) 옆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웠더니 아이들이 바로 강으로 달려갔다. 며칠째 내린 비로 강물이 물어나 있어서 돌다리를 건너는 게 좀 위험해 보였는데 겁이 많은 딸은 아빠 손을 잡고도 무서워 덜덜덜~



하지만 우리 아들은 언제나  혼자서 쌩쌩 달려 다닌다. 무서움보다 아슬아슬한 데서 더 스릴을 느끼는 모양이다. 나중엔 물속에 들어가서 첨벙첨벙 노는 바람에 바지가 반은 젖어버렸다.


시장 입구에 떡 버티고 있는 관광안내소다. 궁금해서 안에 들어가 보았다.   

 관광안내소의 역할보다는 특산물을 판매하는 일로 바빠 보였다. 표고버섯, 약초, 도자기, 호두, 산나물 등 장흥의 특산물을 골고루 갖춰놓고 있어서 빈 손으로 나가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관광안내소 앞에는 이런 돔 모양의 무대가 마련되어 있다. 시골 장에서 노래 자랑이나 공연이 빠지면 심심하니까. 


할머니 장꾼들이 모여 앉아 점심을 드시는 모습.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니 장흥 토요 시장은 외지에서 들어오는 전문 장돌뱅이들이 없었다. 직접 키운 가지나 마늘, 깻잎, 고구마순 등의 채소를 파는 순박한 동네 할머니 장꾼들이 대부분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번데기가 반갑다. 한 번도 먹어본 적은 없지만 시장에서 이런 걸 만나면 왠지 즐겁다.  


짚신을 팔고 계신 할아버지. 우리가 가서 들여다봐도 사던지 말던지 관심도 없다. 아무래도 졸고 계신 듯. 

 짚신 할아버지 뒤쪽에 있는 가게에서는 또 다른 할아버지 가 짚으로 멍석 같은 걸 만들고 계셨다. 그 모습을 보니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나의 할아버지가 떠오른다. 우리 할아버지도 항상 짚으로 저런 걸 만들곤 하셨는데...

짚신가게 옆에 있는 황토 염색 가게. 


시장 끄트머리다. 완도 오일장이랑 비교하면 정말 소박한 규모의 장이다. 바다가 가까운데도 해산물이 별로 없는 게 특이했다.   


시장의 뒷골목으로 가니 장흥으로 시집온 다문화 가족 처자들이 음식을 만들어 팔고 있었다. 각 나라의 전통 복장을 한 처자들과 낯선 음식 이름 때문에 꼭 외국에 여행 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 이런 행사를 통해 다문화 가족을 이해하고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참 좋아 보였다.


먹는 걸 그냥 지나칠 우리 아이들이 아니지... 몽골만두다. 한 접시 먹어본 우리 아이들 맛있다며 한 접시 추가요~   가격은 한 접시에 무조건 2천원.


일본의 문어빵.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기다리다 지쳤다.  

 이름은 잊어버린 태국 과자.   




시장을 떠나기 전에 집에 가서 구어 먹자며 정육점에 들러 등심 1킬로를 샀다. 한우가 질 좋은 삼겹살 한 근 값 정도니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시장 골목에 저런 정육점이 수십 군데다.


토요 시장 맞은편에 있는 생태 공원. 그냥 지나치려다가 장승이랑 솟대가 눈에 들어와서 차를 세웠다. 장승을 하나씩 차지하라고 했더니 남편은 돈지킴이를, 아이들은 마음에 드는 표정을 찾아서...


가지각색의 솟대가 이렇게 많이 세워져 있는 것도 처음 보아서 자꾸만 눈길이 갔다. 나중에 마당이 있는 집에 살게 되면 마당가에 한두 개 세워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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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 2009-08-18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남진 물축제에 언니가 한번 다녀가라는데도 못 가고 말았네요.
덕분에 장흥 저도 구경 잘했어요.
생태공원에는 담에 가면 꼭 들러봐야겠어요.

소나무집 2009-08-20 23:42   좋아요 0 | URL
저희는 물축제 하기 전에 다녀왔어요.
아이들이 논 탐진강에서 물축제를 한다고 그래요.
다음에 기회 되면 꼭 가보세요. 싼값에 한우고기도 먹을 수 있고...

한승락 2011-10-0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구경하고 갑니다.
 

지금 김남주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도 남편이 해남에 김남주 시인 생가가 있다며 가 보자고 했을 때 머릿속에서 김남주? 이름 끝에 물음표가 따라붙으며 그가 누군지 금방 떠오르지 않았다. 해남 출신 시인이라고 했을 때도 고정희가 먼저 떠올랐는데 남편은 김남주를 먼저 떠올렸다.  

남편이 <조국은 하나다>라는 시를 쓴 시인이라고 했을 때에야 아~ 했다. 조국은 하나다/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라고 시작되는 아주 긴 시. 그 이야기를 듣고 책장을 들여다보니 남편의 사인이 있는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라는 시집이 누렇게 변한 채 꽂혀 있었다. 남편은 학교 다닐 때 나름 운동(?)깨나 하면서 어머니 속을 뒤집어놓았으니 이런 시집도 끼고 다니며 애송을 한 모양이다.  

큰길을 사이에 두고 같은 마을에 있는 두 시인의 생가 중 난 고정희 시인의 생가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이 운전대를 잡고 있으니 고정희 생가는 나중으로 미루게 되었다. 사실 이곳은 녹우당 다녀오던 날 저녁 무렵에 잠깐 들렀는데 이제야...  

김남주 시인의 생가는 원래 양철 지붕으로 된 허름한 집이었는데 얼마 전 해남군에서 복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엔 복원이 아니라 번듯하게 새로 지은 것처럼 보였다. 가난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농민 운동을 하고 오랫동안 옥살이를 했던 시인의 집으로 보이지 않았다. 예전 집을 그대로 유지했으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건 복원된 문학인들의 생가에 가면 늘 드는 생각이기도 하다.


생가를 들어서면서 왼쪽으로는 작은 기념 공원을 꾸며놓았다. 앞에 보이는 건 뭘까? 조그마한 게 꼭 화장실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김남주 시인이 옥살이를 했던 독방을 재현해놓은 곳이다. 누구라도 빗장을 열고 들어가 감옥 체험을 해볼 수 있다. 들어가 보았는데 한 사람이 들어가면 머리는 천장에 닿아 허리를 구부려야 하고 팔도 벌릴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 공간이었다. 한 평도 안 될 듯한 아주 작은 공간에서 김남주 시인은 유우곽에 못으로 시를 썼다고 한다.


김남주 시인의 모습. 시골 출신답지 않게 아주 샤프하게 생기셨다.

유신 시대 감옥에 투옥되었던 정치범 중 가장 늦게까지 감옥에 남아 있었던 시인은 감옥에서 나와 결혼도 하고 해남으로 내려와 농민 운동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좀 살만 해지니까 병에 걸려 돌아가셨고...




그의 대표작인 <조국은 하나다>를 붉게 녹슨 철판에 새겨놓았다. 시인의 생각대로 빨리 통일이 되어야 할 텐데 어째 요즘 세상 돌아가는 걸 보면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으니 세상 떠난 시인이 얼마나 기가 막힐까...

 어딘지 모르게 어색해 보이는 초가집. 방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벽에 김남주 시인을 기억할 만한 기념 사진 몇 장이 걸려 있었다.


동지였다가 아내가 된 박광숙 씨와 결혼하는 모습. 


옥중에서 엽서에 쓴 편지.  





생가 마당에 서면 보이는 풍경이다. 집 앞에 있는 호박밭에는 저녁 비를 맞은 호박꽃이 시인의 생가 쪽으로 환하게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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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8-14 23:07 
    조국은 하나다  -  김남주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꿈속에서가 아니라 이제는 생시에 남 모르게가 아니라 이제는 공공연하게 "조국은 하나다" 권력의 눈앞에서 양키 점령군의 총구 앞에서 자본가 개들의 이빨 앞에서 "조국은 하나다" 이것이 나의 슬로건이다 나는 이제 쓰리라 사람들이 오가는 모든 길 위에 조국은 하나다라고 오르막길 위에도 내리막길 위에도
 
 
꿈꾸는섬 2009-08-15 0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겐 김남주평전이 있어요.^^
해남에 김남주 생가와 고정희 생가가 있군요. 모두 가보고 싶어요. 다음에 고정희 생가에도 다녀오시면 글 남겨 주세요.^^ 바로 달려올게요.^^

소나무집 2009-08-15 09:50   좋아요 0 | URL
김남주를 기억하는 분이 계셔서 정말 반가워요.
해남은 문인들이 참 많아요.
황지우 시인도 해남 출신이랍니다.
아마 윤선도를 비롯해 예전부터 물이 다른 듯...

날아오르라 2009-08-16 0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오늘 그것이 알고 싶다-윤동주-님 편을 보면서 김남주 시인도 생각이 났었는데, 이렇게 상면하게 되네요. 학교 다닐 때 해남으로 MT을 갔던 적이 있었죠..
다시 한번 집에 있는 시집을 열게 되네요. 감사해요~

소나무집 2009-08-17 07:10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저도 고마워요.
 

친정집 마당에서 승용차로 10분만 더 들어가면 되는 천리포 수목원, 그동안은 일반인의 출입을 허용하지 않아서 못 가봤다. 국립공원 지역이라서 언제든 남편 빽으로 들어갈 수도 있었지만 내가 누구한테 신세 지는 걸 싫어하는지라... 이번에 가서도 입장료(성수기 어른 8천원, 동반 어린이는 무료) 다 내고 들어갔다. 동네 사람은 무료라고 했더니 친정엄마께서 자주 와야겠단다.

요즘 완도 수목원에서 숲해설 강의를 듣다 보니 관심도 더 생겼지만 천리포 수목원에 대한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서 꼭 가 보고 싶었다. 수목원이 아니라 수목원을 만든 칼 밀러(한국 이름은 민병갈) 이야기라고 해야 맞으려나. 

외국인을 보기 힘들었던 당시 그 외진 시골에 정착해서 사는 외국인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화제 거리였다. 주한 미군이었던 밀러는 1962년 만리포 해수욕장에 놀러왔다가 인연을 맺어 천리포에 땅을 사고 수목원을 꾸리게 되었다고 한다. 남자로서는 우리나라 최초로 귀화한 사람이기도 하고. 결혼도 하지 않고 수목원 꾸미는 일에 인생을 바치다 2002년에 돌아가셨다.  

또 그에 관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그 동네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 하나를 양자삼아 서울대를 보내고 변호사를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늘 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더라는...


늦은 아침을 먹고 친정엄마랑 아버지도 함께 나섰다. 가까운데 있어도 두 분 역시 누가 모시고 가지 않았으니 초행길이었다. 엄마는 좋아라 하셨지만 친정아버지는 할 일도 많은데 그런 데는 왜 가느냐고 핀잔을 하면서도 따라나서고...  살짝 등이 굽은 엄마의 뒷모습이 안쓰러워 가슴이 찡해진다.


나무가 꼭 텐트를 쳐놓은 것처럼 가지가 아래로 축축 늘어져 있다. 나무 그늘 아래 앉을 수 있도록 해놓아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정겹다. 


우리 아들은 실잠자리 한 마리를 잡아서 외할아버지랑 이야기중이다. 할아버지는 밑도 끝도 없이 질문을 해대는 아들 녀석의 말에 귀를 귀울여주고 정성껏 대답을 해주셨다.


딸아이가 찍은 사진인데 나무 그늘 아래에서 올려다 본 모습이 멋진 것을 넘어 화려하기까지 하다.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게 드는 니샤나무란다. 나무 이름 표기를 영어로 해놓은 게 많아서 우리나라 이름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더라. 그리고 주인이 외국인이라서 그런지 외국에서 들여온 수종도 상당히 많았다.


산책할 수 있는 많은 길들이 있었는데 개방한지 얼마 안 된 수목원이라서 그런지 길을 안내하는 표지판 같은 게 많지 않았다.  


숲 사이로 보이는 천리포 해변. 기름 유출로 몸살을 앓았던 해변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수목원 곳곳에 이런 한옥이 여섯 채가 있다. 미리 예약을 하면 숙박을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곳은 다정큼나무집.


가운데 부분은 원래 논이었다고 한다. 수목원을 꾸미고 나무에 필요한 물을 주기 위해 연못으로 만들었는데 아직 네 마지기의 논이 남아 있어 봄이면 수목원 직원들이 직접 모를 심는다고 한다. 


녹음이 너무 우거져서 온통 초록빛이었다. 특히 목련나무들이 많아 봄에 찾아가면 화사한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년 봄에 부모님 모시고 꼭 꽃구경을 가야겠다.


친정아버지와 엄마가 '나 찾아봐라' 놀이를 하고 계시는 중. 내년이면 칠순인 친정아버지의 장난끼가 난 너무 좋다. 친정에 자주 갈 형편이 못 되다 보니 부모님이랑 놀러 다녀본 기억도 없다. 어쩌다 집에 가도 항상 농사일에 바쁘시니 놀러 나갈 생각도 안 했는데 이번 천리포 수목원 나들이는 친정엄마랑 아버지랑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뿌듯했다. 50대 초반에 허리 수술을 하신 이후 약간 구부정해진 엄마의 허리가 자꾸만 눈에 밟히네그랴.


수련이 있는 작은 연못.   










봄만큼 꽃이 많지는 않았는데 가끔 눈에 띄는 꽃의 자태가 아주 화려했다.  

워낙 넓고 수종도 많은 완도 수목원에 자주 가다 보니 천리포 수목원은 아주 넓은 개인 정원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수목원 전체 면적이 2만 평이 넘는다는데 비공개하는 부분도 너무 많은 것 같고...   

완도 수목원이 더 좋은 걸 보니 자주 보고 애정을 줘야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맞나 보다. 친정에 갈 때마다 찾아가서 변화하는 천리포 수목원의 계절을 느껴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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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마라톤 참가와 기부금 300달러 - 자이언 국립공원 2

미국은 아무리 오지에 있는 국립공원이라 해도 서점이 꼭 있었다. 규모의 차이는 좀 있었지만 오지에 있는 서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랑 관련된 책을 분야별로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시골 구석구석까지 이런 서점이 있다는 게 정말 너무너무 부러웠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소개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도 이런 서점들이 있다면 정말 너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어떻게 안 될까요? 

이 사진들은 모두 남편이 찍어놓은 것이다. 서점 겸 기념품 판매 센터라고 하는 게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비지터 센터 안에 있는 서점 입구.


국립공원 트레일에 필요한 책들.  


자이언 국립공원 사진 자료집.  

 국립공원과 관련된 역사책.
   아메리카 원주민에 관한 책들.


어린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칠할 수 있는 책들.  


동화책. 아래 칸에 존 뮤어 책도 보인다.  


주니어 레인저북이랑 그림책들. 오른쪽엔 닥터 수스의 책이 보이고...  


식물에 관한 책.  


동물에 관한 책.  


국립공원의 모습을 담은 DVD.  

 포스터로 제작한 국립공원 사진이랑 아이들을 위한 퍼즐. 자세히 보니 퍼즐은 모두 인쇄를 대한민국에서 했다. 음, 인쇄 기술은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라는 얘기.
 
별자리를 관찰해 볼 수 있는 자료들.  


작은 인형이랑 책갈피 같은 기념품.  


다양한 엽서와 마그네틱, 뱃지, 마우스 패드 등의 소품.  


공원 소개를 직접 들어볼 수도 있다.  


기념 티셔츠와 환경을 생각하는 천가방. 

 자이언의 모습을 담은 컵과 물병들. 기념품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는데 저기 걸려 있는 티셔츠의 경우 50달러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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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7-22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물관수준이에요..와우~~!

소나무집 2009-07-25 08:56   좋아요 0 | URL
그렇죠?
정말 서점이 부러울 정도로 잘 갖춰져 있었어요.
저는 비지터 센터에만 들어가면 저 책들 둘러보다 시간 다 보냈어요.

노란우산 2009-12-09 1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국여행기도 좀 쓰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