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포 써니네 집에서 - 자이언 국립공원 1
남편의 마라톤 참가와 기부금 300달러 - 자이언 국립공원 2

남편이 마라톤을 마치고 자이언 탐방에 나섰다. 마라톤을 마치고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직접 근무했던 곳이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마냥 신나 있었다. 이렇게 노는 일에 열정적인 남편 덕분에  우리 가족이 미국까지 가게 된 것이지 싶다.  

전날 라스베가스에서 자이언으로 오는 길은 내내 황무지였다. 도로 주변엔 누런 빛깔밖에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어서 심심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런 길이 이어질 때는 남편이랑 자꾸 투닥거리곤 했는데 스프링데일 근처에서 버진 강(Vergin River) 줄기를 따라 자라난 초록빛 식물들을 보자 어느새 말다툼도 끝나버렸을 정도로 식생이 달랐다.

자이언(Zion)이란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시온을 말하는데 1860년대 이 지역에 처음 들어와 정착한 몰몬교도들이 '성스러운 안식처'란 의미로 붙였다고 한다. 종교적인 의미가 크다고 하지만 나야 뭐 종교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게 없으니 더이상 할 말도 없고.  


공원 입구를 알리는 랜드마크는 써니네 집에서 5분 정도 올라가니까 나왔다. 랜드마크는 물론 도로도 붉은 사암 가루로 포장을 해서 주변과 잘 어울렸다.   


입장료 25달러(차 한대당)를 내고 우회전하면 비지터 센터가 금방 나온다. 우리는 미리 끊은 연간 회원권을 보여주고 통과. 입장료를 내면 일 년에 두 번씩 나오는 국립공원 안내 신문을 주는데 공원에 대한 모든 정보가 들어 있어서 아주 유용하다.   


남편이 마라톤을 뛰러 간 후 아이들과 함께 비지터 센터를 구경했다. 이곳에서는 직원들에게 길안내도 받고 국립공원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서 여행자들의 필수 방문 코스.  


그리고 비지터 센터 안에 있는 서점을 꼭 구경해야만 한다. 서점이지만 책은 물론 온갖 기념품을 다 팔고 있어서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써니가 이곳 서점에서 근무하고 있어서 운이 좋으면 한국어 안내를 받을 수도 있다.


우리나라 월악산 국립공원 규모 정도 되는 자이언은 비지터 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친환경 셔틀 버스를 이용해야만 한다. 셔틀 버스는 무료지만 실제로는 공원 입장료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셔틀 버스가 없는 국립공원은 입장료가 좀 싸단다. 이 셔틀 버스를 타고 비지터 센터에서 계곡 끝까지 왕복하면 90분이 걸리지만 중간에 구경하고 싶은 코스가 나올 때 내리면 된다.   


버스를 타고 40분 정도 가서 사람들이 모두 내린 곳은 버스 종점. 우리도 여기서 내려 강변(Riverside Walk Trail)을 따라 걸어 올라갔다. 천천히 느긋하게 구경하면서 30분을 걸어가니 내로우(Narrow, 버진 강 상류 협곡 지대)라고 이름 붙은 곳이 나왔다.    

 강변을 따라 양쪽은 거대한 바위 절벽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이 더 눈이 부셨다. 평소에는 말라 있는데 눈이 녹으면서 작은 폭포를 만들었다고.


수천만 년 전부터 버진 강이 지층을 깎아내며 흘러간 흔적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저런 물길을 만들 수 있는 건지 백 년도 못 사는 인간은 가늠조차 하기 힘들었다. 오랜 세월만이 해낼 수 있는 저런 흔적을 만날 때마다 인간과 한번도 부딪힌 적이 없는 공룡이 불쑥 튀어나올 것 같은 상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여기로 계속 올라가면 내로우(Narrow)로 들어가 더 멋진 풍경을 만날 수도 있지만 지금은 초봄인지라 물도 차고 위험해서 통제중이었다. 간혹 한두 사람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기도 했지만 우리는 모범 여행자라서 가지 말라는 곳은 안 감. 강물이 흙탕물처럼 보이는 이유는 옆에 사암 절벽이 강물에 깎여 물에 섞여서 흐르기 때문이란다. 계곡의 침식이 지금 이 순간에도 진행중이라는 얘기.  


거대한 붉은 사암을 나바호 샌드스톤(Navajo Sandstone)이라고 부르는데 바위가 붉은색을 띠는 이유는 철분 성분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철분은 모래가 퇴적되어 사암이 형성될 때 모래 알갱이를 뭉치게 하는 접착제 역할을 했다는 남편의 말씀.


계곡을 걷다 보니 왠지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바위산과 나무와 물이 흐르는 계곡... 이건 바로 우리나라 산에도 있는 익숙한 풍경들이었다. 며칠 동안 삭막한 황무지(desert) 지역만 돌아다니다 만난 자이언은 꼭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산과 비슷했다. 문득 써니 부부가 은퇴 후 자이언으로 간 이유가 바로 이 고향 같은 느낌 때문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좋은 구경거리도 배가 고프면 눈에 들어오지 않는 법. 점심 먹을 곳을 찾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내려오니 도시락을 펼쳐놓은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나라는 어딜 가도 먹거리 걱정은 안 해도 될 정도로 식당도 많고 가게도 많다. 하지만 미국의 국립공원 지역에서 그런 풍성한 먹거리를 기대했다간 쫄쫄 굶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도시를 만나면 제일 먼저 마트에 들러 간단한 먹거리들을 사들고 다녔다. 오늘의 점심은 마늘빵과 사과와 물. 이렇게 간단하게 때우다 보니 늘 배고픔에 시달린 불쌍한 우리 가족이여!!!


점심을 먹은 후 다시 셔틀을 타고 위핑락 방향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순찰중인 공원 레인저가 우리를 보고 차를 세웠다. 남편이랑 같은 숙소를 사용했던 룩이라는 사람인데 두 사람이 어찌나 반가워하던지... 남편이 정말 고마운 사람이라며 한지 부채 하나를 꺼내 주자 룩 아저씨가 아들을 불러 총을 보여주고 쏘는 시늉을 해 보였다. 글쎄, 미국의 국립공원 레인저들은 실탄이 장전된 진짜 총을 가지고 다니더라구. 아이구, 무서워용!


자이언 국립공원은 사방이 암벽인데 룩이랑 헤어져 위핑락으로 올라가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저런 바위가 보였다. 꼭 붉은 바위 위에 흰색 페인트를 칠해놓은 것 같다. 칼슘 성분의 미네랄이 많이 포함되어 붉은색 사암과 달리 흰색을 띠게 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가 바로 위핑락(Wepping rock)이다. 눈물 흘리는 바위쯤 될랑가? 계곡 위 고원 지대에서 스며든 물이 틈이 많은 사암 지층을 쭉쭉 통과하다가 사암보다 더 치밀한 이암(진흙이 퇴적되어 만들어진 암석층)을 만나자 통과하지 못하고 물이 빠져 나오는 중이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이 꼭 바위가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아 위핑락이라고 부른다는데 이름 한 번 잘 지었다 싶다. 


바위의 눈물을 받아 먹는 아이들. 사암층을 통과하는 동안 정수가 되어 깨끗하긴 한데 검사 결과 약간의 세균이 발견되었다고 하니 먹는 건 각자 알아서...  그리고 아이들 뒤로 보이는 풀은 바위의 눈물이 준 뽀나스가 아닐까?" 아그들아, 바위가 흘리는 눈물 맛이 어떠 하더냐?" 


산을 내려와서 다시 셔틀버스를 타러 가는 중이다. 산이지만 완만한 경사여서 힘이 들지 않으니 콧노래 절로 나왔다.


휴먼 히스토리 뮤지엄(Human History Museum)은 이 지역에서 살던 고대 인디언부터 몰몬교 개척자들의 이야기를 테마로 만든 작은 박물관이다. 비지터 센터에서 셔틀로 한 정거장만 가면 있지만 우리는 트레일을 다 돌고 난 후 내려오다 들렀다.  

 자이언의 사암으로 만들어놓은 이 전시물을 지나치면 이쪽 동네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또 안쪽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우리가 다 둘러보지 못한 자이언의 아름다운 풍경을 영상으로나마 만날 수 있어서 흐뭇했다. 

 박물관에서 나와 차를 타고 자이언마운틴카멜 하이웨이(9번 지방 도로)를 가다 보면 터널을 하나 만나게 된다.


후버 대통령 시절 뉴딜 사업의 하나로 1927년에 공사를 시작해서 1930년에 완성된 이 터널은 1.8킬로로 당시 미국에서 가장 긴 터널이었다고 한다. 이 길이 생긴 덕분에 브라이스 캐년, 그랜드캐년 노스림과 자이언을 연결하는 관광이 가능해졌다고...  

터널을 지날 때는 공원 직원의 통제에 따라야 한다. 큰 차가 통과할 때는 일방통행로가 되기 때문에 버스나 대형 캠핑카는 특별 통과료를 지불하고 직원의 안내를 받아야 지나갈 수 있다네. 별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들려주는 남편.


터널 안에는 아치 모양의 큰 구멍이 몇 개 뚫려 있는데 조명 시설이 없기 때문에 빛과 환기를 시키는 창문 역할을 한다. 그래서 요것의 이름이 윈도우(Window)란다. 하지만 여기서 내려서 밖을 내다보는 건 위험하기 때문에 금지한다고 하니 궁금해도 참아야지. 
  터널 밖에서 올려다 본 창문의 모습. 거대한 바위산에 뻥 뚫린 구멍이 신기하다. 터널이 뚫린 후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게 되었다는데 바위산은 숨을 쉬게 되었을까? 아니면 숨이 더 막히게 되었을까?  


터널을 통과하면 나오는 작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캐년오버룩(Canyon Overlook) 트레일을 향했다. 올라가는 길에 발견한 인디언브러쉬라는 식물이다.


우리가 잘 아는 손바닥 손인장의 한 종류. 해발 2천 미터가 넘고 겨울도 길고 눈도 많이 내리는 이곳에서 선인장이 자랄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이 선인장은 황무지(desert) 지역에 가장 잘 적응한 식물 중 하나라서 아주 추운 날씨부터 더운 기후까지 다 견디고 자란다고. 집에서 키우는 이런 선인장이 잘 자라는 이유가 있었구나 싶다.


땀을 뻘뻘 흘리며 올라간 캐년오버룩 트레일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이 멋지다. 뒤로 보이는 철망 아래는 낭떠러지. 멀리 우리가 차로 올라온 길이 꼬불꼬불 보인다. 이 사진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올라온 한국인 교포 부부가 찍어주었다. 우리한테 말을 거는 걸 보니 한국말을 너무나 잘하더만 부부끼리는 영어로 말을 하데...


자유주의자 우리 아들. 언제 어디서나 거칠 것 없는 포즈. 맨눈으로는 도저히 눈을 뜰 수 없는 뜨거운 햇살 아래 잠을 청하고 있었다나. 바위가 상당히 부드럽고 손에 힘을 줘서 만지면 부서져서 모래가루가 되는 걸 보니 사암이 확실했다.


산에서 내려와 작은 터널을 하나 통과한 후에 만난 봉우리다. 층층이 결을 이룬 모습이 예뻐서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었다. 


이건 동쪽 관문 근처에 있는 사암 봉우리인데 차를 타고 가다 보면 멀리서부터 보여 차를 안 세울 수가 없다. 정식 명칭은 체커보드 메사(Checkerboard Mesa). 하얀 바위산에 규칙적으로 가로 세로 체크 무늬의 균열이 나 있는데, 거참 신기하더라. 체커보드 메사는 이 지역의 랜드마크가 되었을 정도로 유명하단다. 이 봉우리 하나 보겠다고 지질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미국 전역에서 온다나 어쩐다나.     

그랜드캐년의 거대함 앞에서는 잔뜩 주눅이 들어 주변만 빙빙 돌면서 시선을 계곡 아래로만 떨구어야 했다. 하지만 자이언은 누구라도 계곡으로 들어오도록 허락해주었다. 그리고 길을 걷다가 고개를 들면 아름다운 풍경이 있어서 마냥 행복했다. 그래서 나는 작지만 사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자이언이 거대한 그랜드캐년보다 더 마음에 들었음을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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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2009-07-22 2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우와~!부러 부럽~~~~~~~~~``
너무나 멋져요..

소나무집 2009-07-25 08:57   좋아요 0 | URL
정말 아름답기도 하고 오래전 지형을 눈으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자유자 2010-06-22 0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저는 배낭여행자인데..캐년자유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넉넉하게 캐년들을 돌아보고 싶어서 자유여행을 택했습니다. 자이언 캔년도 2~3일 돌아보고 그랜드-세도나등으로 옮길려하는데..주변숙박이 비싸 배냥족에겐 여의치가 않네요..혹 써니 부부께서 민박이 될수 있을까 해서..어렵게 문의 드려요..물론..PAY하죠..한국분이시라 ,,연락주세요..

소나무집 2010-06-24 11:56   좋아요 0 | URL
캐년 여행을 하고 계시군요. 제가 다녀온 곳을 여행하신다니 반갑네요.
그런데 써니랑은 메일로만 연락을 하는지라 쉽게 연락이 안 된답니다.
써니가 메일을 한 달에 한두 번만 열어 보시더라구요.
혹시 자이언에 가시면 히스토리 뮤지엄에 들러보세요.
저희 가족이 여행할 때 그곳에서 근무하고 계셨거든요.
비지터 센터에 가서 물어봐도 될 것 같구요.
 

써니네 집에서 아침 일찍 서둘러 나온 건 마라톤 때문이었다. 남편은 한국에서도 기회가 될 때마다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곤 했다. 그런데 자이언에서 근무할 때 100주년 기념 마라톤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미리 참가 신청을 해놓았단다. 마라톤 때문에 마누라 구박도 참 많이 받았건만 미국에 가서까지 자신의 취미 생활을 즐기는 남편이 왠~지 멋쟁이처럼 보였다.   


올해는 자이언 국립공원을 미국 정부에서 관리하기 시작한 지 100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자이언에서는 3년 전부터 기념 마라톤을 했는데 97주년에는 7킬로, 98주년에는 8킬로... 이런 식으로 해마다 1킬로씩 늘려가며 하는 펀(fun) 마라톤이었다. 그래서 100주년인 올해는 10킬로. 국립공원 홍보 겸 해서 하는 대회인데 멀리서 찾아오는 매니아도 꽤 된다고 했다.  

홈페이지 행사 안내문에 남편을 의식한 듯 '올해는 한국을 비롯한... '이라는 글귀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랑 다른 것은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하는 행사인데 홍보물이라고는 달랑 저 플랭카드 하나뿐이었다.


골인 지점 근처에서 아빠를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 자이언 국립공원에는 잘 닦아놓은 관광 도로가 있는데 그 길을 따라 돌아오는 10킬로가 오늘의 코스.  


한 무리의 선두 그룹이 지나가고 드디어 아빠가 나타났다. 


하지만 손만 한 번 흔들어준 아빠는 쌩하니 아이들을 앞서 달려갔다. "아빠, 같이 가요."  


카메라가 남편을 따라잡을 수가 없어서 골인 장면은 찍을 수가 없었다. 국립공원 직원들로부터 완주 메달을 받고 있는 남편. 메달을 받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10킬로가 아닌 42.195킬로를 완주한 것처럼 행복한 얼굴이었다. 


"완주 메달 하나 또 추가했구려. 하지만 요건 미국까지 와서 받은 거니까 아들에게 가보로 물려주구려. 아이들이 앞서서 들어간 사람들을 모두 세었는데 17등이랍니다." 5등 안에 들 수 있었는데 오랫동안 김치찌개랑 된장찌개를 못 먹어서 체력이  떨어진 탓이라나...


가족들이 다 함께 참여해서 격려해주고 축하해주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뚱보가 많은 미국이지만 달리는 사람들은 남녀 모두 늘~씬했다.
 
마라톤을 마친 남편은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서둘렀다. 이 사람이 누구냐? 자이언 국립공원에 들어오는 기부금을 총괄하는 사람이라고. 남편은 자이언에서의 근무를 마치고 공원에 300달러를 기부했다고 한다. 그런데 금액이 좀 되다 보니 국립공원 측에서 남편에게 감사를 표시한 것. 길에 서서 감사장과 기념 메달을 받았다. 그 돈 나한테 기부했으면 한 1년은 바가지 안 긁었을 텐데...
 
메달을 걸고 계신 걸 보니 이 분도 마라톤 완주를 하신 모양. 사진은 저 양반의 부인이 찍어주었다. 워낙 기부 문화가 일반화된 미국이지만 동양의 아주 쬐끄만 나라에서 온 남자가 박물관 복원 비용에 쓰라며 돈을 내놓은 게 기특해 보였는지 내내 칭찬을 해댔다.   

남편에게 들은 말인데 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잘 알 거라는 생각은 우리의 착각이란다. 대도시에 사는 미국인들이나 우리나라에 대해 좀 알지 이런 시골에서는 코리아 하면 제일 먼저 북한을 떠올리고 다음이 올림픽 정도라고 했다. 한국은 미국인들에게 동양의 많은 나라 중 하나일 뿐이라고...


감사를 전하는 내용과 어디에 쓰일지를 설명하는 내용인 듯.  


자이언 국립공원 100주년 기념 메달.  

아무튼 영어도 제대로 못 하면서 별 일을 다 했습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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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대자연 - 자이언 국립공원 3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7-19 17:57 
    남편이 마라톤을 마치고 자이언 탐방에 나섰다. 마라톤을 마치고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직접 근무했던 곳이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마냥 신나 있었다. 이렇게 노는 일에 열정적인 남편 덕분에  우리 가족이 미국까지 가게 된 것이지 싶다.   전날 라스베가스에서 자이언으로 오는 길은 내내 황무지였다. 도로 주변엔 누런 빛깔밖에
  2. 비지터 센터 안에 있는 서점 구경 - 자이언 국립공원 4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7-19 17:58 
    미국은 아무리 오지에 있는 국립공원이라 해도 서점이 꼭 있었다. 규모의 차이는 좀 있었지만 오지에 있는 서점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랑 관련된 책을 분야별로 다양하게 갖추고 있었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기에 소개한다. 우리나라 국립공원에도 이런 서점들이 있다면 정말 너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사진들은 모두 남편이 그곳에 있는 동안 찍어놓
 
 
BRINY 2009-07-15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이, 영어를 제대로 못하시는 게 아니신가봐요? 그리고 무엇보다 의지와 용기 아니겠어요? 대단하십니다. 짝짝짝!

소나무집 2009-07-16 15:09   좋아요 0 | URL
영어는 진짜 못해요. 옆에서 듣고 있으면 민망할 정도로 더듬는 실력인데 자기는 외국인이기 때문에 영어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주의예요.

무스탕 2009-07-15 1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남편님 멋지세요!! 취미생활엔 국경도 언어의 장벽도 없었습니다. ㅎㅎ
저 완주메달은 정말 가보로 오래오래 남기셔야 겠습니다 ^^

소나무집 2009-07-16 15:10   좋아요 0 | URL
영어가 필요없는 취미 생활 저도 마음에 드는데 몸이 안 따라줍니다.
모아놓은 마라톤 완주 메달이 한 보따리인데 저건 따로 보관중이에요. ^*^

순오기 2009-07-17 23: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남편도 한동안 전국 마라톤 다 쫒아다녔는데... 메달만 수두룩~~
한국을 알린 민간홍보대사였네요~ 영어 못하면 어때요~ 그래도 할 건 다 하잖아요.짝짝짝~

소나무집 2009-07-19 18:38   좋아요 0 | URL
우리도 정말 메달만 수두룩이에요.
음, 민간 홍보 대사 역할을 한 건 맞아요.
그래서 저도 이번엔 박수를 쳐주긴 했어요.

꿈꾸는섬 2009-07-1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멋지세요. 마라톤 참가도 그렇고 기부도 그렇고.

소나무집 2009-07-19 18:39   좋아요 0 | URL
기부에는 사연이 좀 많은데 구구절절 이야기하기가 그래서 생략했어요.
 

그랜드캐년을 나와 라스베가스에서 하룻밤을 자고 우리가 향한 곳은 유타 주에 있는 자이언 캐년 국립공원이었다. 이곳은 남편이 한 달 반 동안 근무를 한 곳이라서 더 특별한 곳이기도 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세 시간 정도 가니까 자이언이 있는 스프링데일이라는 작은 동네에 도착했다. 라스베가스가 있는 네바다 주와 유타 주는 한 시간의 차이가 있어서 우리 시계로는 여섯시인데 유타 주 시계로는 일곱시여서 좀 억울했다.  


인구가 500명밖에 안 되는 마을이지만 도서관, 은행, 여러 개의 갤러리까지 갖추고 있는 멋진 동네였다.  


자이언에서의 하룻밤은 남편이 그곳에 근무하는 동안 신세를 진 교포 써니와 존 선생님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도착하니 이미 저녁 준비를 다 끝내놓고 우리 가족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계셨다. 시차 계산을 못한 우리가 약속보다 한 시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써니 선생님은 현재 자이언 국립공원 비지터센터 안에 있는 서점에서 일을 하고 계시는데 한국에서 직원이 근무하러 온다는 말을 듣고 정말 좋았다고 한다. 오지라고 할 수 있는 곳에서 관광객이 아닌 한국 사람을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더 반가웠다고... 더구나 혼자서 숙식을 해결하는 애처로운 모습에 수시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하면서 친해진 것 같았다. 남편의 붙임성 좋은 성격도 한몫 했고...


써니네 마당에서 바라본 풍경. 멋진 풍경 덕분인지 써니를 비롯해 은퇴한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 사는 것 같았다. 써니 부부는 70년대 초 캘리포니아로 이민 가서 사업에 성공한 교포다. 두 분은 도시 생활을 접고 50대 초반에 은퇴를 하고 7년 전 이 동네로 들어오셨다고 한다. 여행중 이 동네가 마음에 들어서 은퇴지로 결정하고 땅을 구입해놓은 게 30대 후반의 일이라고... 너무 늙어서 은퇴하면 기운도 없고 의욕도 없어서 새로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른 은퇴를 결심했다고 했다. 40대에 접어든 내게 은퇴는 먼 남의 나라 이야기 같은데...  아니 그런 시기가 올까 싶은데... 두 분을 보니 후반기 인생을 멋지게 살려면 은퇴도 일찍 준비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 앞에 있는 포도밭과 창고다. 와인을 만들 생각이라며 직접 지어놓은 와인 숙성 창고까지 보여주셨다. 은퇴를 한 두 분은 도시에서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사는 듯했다. 농사를 짓고 동네 사람들과 어울려 여유를 즐기는 걸 보며 은퇴란 이런 거로구나 싶었다. 우리는 회사에서 퇴직하면 큰일나는 줄 알고 새로운 일자리 찾기에 급급한데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180도 다른 인생을 산다면 한 번 태어나 두 가지 인생을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써니의 남편인 존 선생님이 직접 지은 와인 창고다. 위쪽에 보이는 곳은 손님이 왔을 때 가든 파티를 하는 곳이란다. 직접 농사 지은 채소를 곁들여 숯불구이를~   


하지만 우리의 저녁식사는 미국식 스파게티였다. 나는 남편과 달리 처음 만난 두 분이 너무 어려워서 조심조심... 집안도 정말 멋지게, 그러면서도 약간은 한국식으로 꾸며놓았는데 사진은 못 찍겠더라.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내가 써니를 위해 준비해 간 선물을 풀어놓았다. 박완서 책 세 권과 제주 걷기 여행 책, 그리고 남편이 특별히 부탁했던 고춧가루와 한지 부채까지... 선물 하나하나에 모두 애정을 보이며 좋아하셔서 무겁게 들고 간 보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써니 부부는 우리 아이들을 정말 예뻐라 하셨다. 한국말을 하는 아이들을 본 지가 너무 오래 되어서 신기하다고 했다. 처음 방문한 집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우리 아들은 온 집안을 들락거리며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존 선생님을 귀찮게 했는데도 친할아버지처럼 정성껏 대답을 해주시곤 했다. 당신의 자식들은 미국에서 낳아 미국의 아이로 키웠으니 우리 아이들을 보며 떠나온 조국을 생각한 건 아닌지... 그래서 어쩌면 써니 부부에게 가장 큰 선물은 우리 아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우리 아이들이 눈앞에 어른거린다며 메일을 주시곤 한다. 


집 안팎을 참 예쁘게 꾸며놓았는데 대부분의 시설이 존 선생님이 직접 만든 거라고 해서 더 놀랐다. 마당 한켠엔 작은 연못도 있고, 심지어는 집 한쪽에 작은 찜질방까지 만들어놓았더라는... 

 써니네 포도밭 옆에 있는 캠핑카. 써니 선생님은 여기에 집을 지을 때(2년 걸렸다고) 캘리포니아에서 왔다갔다하며 호텔에서 자는 게 불편해서 캠핑카를 구입했다고 한다. 써니는 우리보고 캠핑카랑 집 중 어디에서 자겠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캠핑카지요. 여행하면서 수도 없이 보아온 캠핑카에서 잘 수 있다며 아이들이 더 좋아했다. 캠핑카 안에는 2층 침대랑 부부 침대가 있고, 소파도 펼치면 침대가 되어서 6~7명은 거뜬히 잘 수 있었다. 하지만 이불을 많이 준비해주셨는데도 새벽엔 추웠고 여관방만큼은 편안하지 않아서 난 밤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은 일곱시도 되기 전에 먹었다. 써니는 출근하고 남편은 자이언 국립공원 100주년 기념 마라톤 참가 예정이었기 때문에 모두 일찍 서둘렀다.  

남편이 무사히 마라톤도 뛰고 하루 종일 자이언 국립공원을 구경한 후 바로 브라이스 국립공원으로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인사를 하러 집에 들리니 써니가 저녁 먹고 하룻밤 더 자고 가라고 했다. 남편은 그래도 된다고 했지만 난 여전히 어려운 분들이었기에 하루 더 머물면서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만 먹고 떠나기로 했다. 

 써니네 집을  떠나기 전에 기념 사진을 찍었다. 우리야 남편 덕에 미국 여행 한 번 하게 된 운이 겁나게 좋은 가족이지만 이 분들은 세상에 아쉬울 게 없는 미국의 중산층이었다. 가진 것 많지 않은 우리에게 베풀면서도 늘 기분 좋게 해주셨던 두 분에게 정말 감사를 드리고 싶다. 사진을 찍고 두 분이 한 번씩 안아주셨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사람을 진정으로 아껴주고 관심을 가져주시는 데 감사를 넘어 감동을 받았다. 특히 남편에게 베풀어준 호의에 감사 드릴 때마다 하셨던 말씀은 평생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나에게 되돌려주려고 하지 마라. 너의 도움이 필요한 다음 사람을 위해 베풀어라!"    


이곳은 스프링데일에 있는 도서관이다. 이 도서관은 동네 사람들이 기부금을 모아서 만들었다는데 써니 부부도 이 도서관을 짓는 데 기부를 했다고 한다. 입구 길쭉한 담벼락에 기부한 사람들의 이름을 새겨놓았는데 거기에 써니 부부도 있었다. 남편에게 그 말을 듣고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돈을 많이 낸 사람일수록 위에 이름을 새겨놓는데 써니 부부의 이름은 자랑스럽게도 맨 위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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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간을 따뜻하게 감싸주던 대자연 - 자이언 국립공원 3
    from 소나무집에서 2009-07-19 18:03 
    남편이 마라톤을 마치고 자이언 탐방에 나섰다. 마라톤을 마치고 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직접 근무했던 곳이라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곳도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아서 마냥 신나 있었다. 이렇게 노는 일에 열정적인 남편 덕분에  우리 가족이 미국까지 가게 된 것이지 싶다.   전날 라스베가스에서 자이언으로 오는 길은 내내 황무지였다. 도로 주변엔 누런 빛깔밖에
 
 
무스탕 2009-07-14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있습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성공한 이민'의 샘플을 보는듯 싶어요. 그렇다고, 나 성공한 사람이야~ 하는 거만함이 느껴지는것도 아닌 성공한 사람의 여유가 느껴져서 더욱 좋아요.
주민수에 비해 편의시설이 저렇게 갖추어져 있다니 놀랍네요. 우리나라 시골 가보세요. 병원이 어디있고 은행이 어디었어요 ㅠ.ㅠ
맨 위에 적혀있는 이름, 대한민국을 대표해 주시는듯싶어 자랑스럽습니다 ^^

소나무집 2009-07-15 11:26   좋아요 0 | URL
맞아요. 성공한 이민자. 정말 좋은 분들이었어요. 젊은 시절엔 조국을 잊고 살았는데 나이 들어가면서 자꾸 생각하게 되나 봐요. 5월엔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국 노병들을 데리고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어요. 그들의 이야기가 6월 24일 KBS 스페셜에서 <헬로우 가평, 굿바이 세미>라는 제목으로 방영되더군요.

순오기 2009-07-17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민들의 기부로 세워진 도서관~ 멋진데요!
맨 윗쪽에 자리한 써니 부부의 이름도 자랑스럽고...

소나무집 2009-07-19 18:41   좋아요 0 | URL
전 어딜 가도 도서관이 젤로 부러웠어요.
완도도 저런 도서관이 하나만 생기면 얼마나 좋을까 싶어요.
제가 여기서 계속 살아야 한다면 마을 도서관이라도 하나 만들고 싶은데 언젠가는 떠나야 할 입장이라서...

꿈꾸는섬 2009-07-18 08: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다른 재미가 있으셨겠어요. 캠핑카에서의 하룻밤ㅎㅎ
보면서 코끝이 찡하네요. 써니와 존 부부에게 아이들이 가장 큰 선물일거라는 님의 말씀에 공감이요.^^

소나무집 2009-07-19 18:42   좋아요 0 | URL
재미는 있었는데 전 넘 불편하더라구요.
써니 부부 덕분에 자이언 국립공원은 더 잊을 수 없는 여행지가 되었어요.
 

토요일 친정에 가려던 계획이 어그러지는 바람에 좀 심통이 나 있는데 남편이 나가자고 했다. 마침 오전 내내 세차게 내리던 비도 잠깐 멈춘 상태라서 얼른 따라나섰다. 그래서 가게 된 곳이 해남 윤씨 종가 녹우당이다. 녹우당은 원래 윤씨 종가의 사랑채 이름이었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지는 바람에 지금은 윤씨 종가 전체를 부르는 명칭이 되어버렸다. 

해남 윤씨가 500년 이상 부를 유지하고 명문가가 될 수 있었던 시초는 윤선도의 고조할아버지 어초은 윤효정이 갑부집 딸을 아내로 만난 덕이었다. 원래 삼산면은 해남 정씨 소유였다고 한다. 당시에는 재산을 큰아들에게 상속하는 집안도 있고 아들딸 구분 없이 나누어주는 집안도 있었는데 해남 정씨 집안은 시집간 딸에게 삼산면의 땅을 아낌없이 상속해준 것이다.  

하지만 해남 윤씨는 대대로 장자 상속을 해서 재산을 늘렸고, 부가 해남 정씨에서 해남 윤씨로 넘어가게 되었다고 하니 해남 정씨의 후손들은 좀 억울할 것 같다. 보잘것없던 해남 윤씨 집안은 이 재력을 바탕으로 대단한 인물들을 배출하기 시작했으니 우리가 잘 아는 고산 윤선도와 공재 윤두서가 바로 그들이다. 윤선도는 한양에서 태어났지만 대를 잇기 위해 여덟 살 때 큰집으로 양자로 들어갔다고 한다.


주차장에 내리니 아이들이 뒤쪽에 있는 연못으로 달려갔다. 늘씬한 소나무로 둘러싸인 작은 연못 안에는 연꽃이 소담스러운 흰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이곳은 집터를 잡은 윤씨 집안이 화기를 누르기 위해 일부러 조성한 연못이라고 한다. 연꽃 덕분에 동네 이름도 연동이 되었다.

멀리 덕음산 아래 녹우당이 보인다. 풍수지리는 잘 모르나 뒤에 산이 있고 앞에 물이 있는 것만으로도 좋아 보인다. 슬슬 올라가는데 멈추었던 비가 후두둑 떨어지는 바람에 오른쪽에 보이는 유물전시관으로 달려갔다.


전시관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은 풍경이다. 층층이 쌓여 있는 책들이 해남 윤씨를 명문가로 이끈 비결이 아닌가 싶다. 다산 정약용의 외증조부가 바로 공재 윤두서다. 옆 동네 강진 다산초당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정약용이 학문을 일구는 데도 이 외가의 장서들이 밑바탕을 이루었다고 한다.  


전시관에는 윤선도와 윤두서를 비롯 윤씨 집안의 진품 유물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국보로 지정된 윤두서의 자화상을 비롯한 그림들은 모두 복제품이었다. 현재 주자창 바로 위에 제법 큰 규모의 새로운 유물 전시관을 짓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진품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녹우당 앞에 서 있는 500년 된 은행나무. 세 아들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간 일을 기념해서 어초은이 심은 나무라고 한다. 녹우당 뒤편에 붙어 있는 안채는 사생활을 위해 공개하지 않는 듯했다. 

녹우당은 효종이 세자 시절 스승이었던 윤선도에게 하사한 집이다. 당시 수원에 있던 집을 윤선도가 82세 되던 해에 해체해서 배로 실어온 후 원래 사랑채를 없애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의 녹우당은 집이 앞으로 기우는 바람에 5년 전에 완전히 해체해서 지반을 튼튼히 한 후 새로 지었다는데 해체해서 그대로 복원할 수 있는 한옥 기술이 대단하다 싶다.  


녹우당 현판이다. 집 뒤의 대나무숲에 바람이 스치면 봄비 내리는 소리처럼 들려서 녹우(綠雨)라는 이름을 지었다 하니 윤선도의 문학성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현판 글씨는 공재 윤두서의 친구이자 성호 이익의 이복 형이었던 이서가 썼다고 한다. 옥동 이서는 원교 이광사가 완성한 동국진체의 원조로 불리는 사람이다.


녹우당으로 들어서서 기웃대는데 방안에서 어르신 한 분이 나오셨다. 30대 초반부터 종가를 지키는 윤선도의 14대 종손 윤형식 할아버지다. 마루에 걸터앉아 녹우당에 얽힌 이야기, 윤씨 종가를 지키며 살아온 이야기, 후손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행운을 누렸다.   

윤선도의 후손들은 벼슬에 연연하지 말라는 고산의 유언에 따라 정치보다는 문학과 예술에 두각을 내타낸 분이 많았다고 한다. 현재도 대법원장을 지낸 윤관을 비롯해 정계보다는 법조계에 인물이 많은데 조상의 말을 듣지 않은 그의 부친은 자유당 시절 정치를 하느라 재산을 많이 축냈다고.   


며느리가 마흔이 되어 얻은 손자가 이제 다섯살이어서 절손의 위기를 면했다는 이야기까지 자랑이 끝없이 이어지는 걸 보니 영락없는 보통 할아버지였다. 현재 중학교 2학년인 손녀딸이 그린 할아버지의 초상화와 초등학교 2학년 때 낸 시집을 보여주며 자랑하셨다.


이중으로 된 지붕 구조가 특이해서 할아버지께 여쭤보았더니 차양 역할을 하기 위한 구조라고 한다. 차양 지붕을 세우기 위한 기둥 때문에 정원 감상을 하는 데도 방해가 되고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후손들이 20대에 걸쳐 살면서 내내 중건하고 보수한 때문인지 500년 된 집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덧대어진 양철 차양이나 한옥이랑은 어울리지 않는 가로등 같은 것도 자꾸만 눈에 거슬렸고...

고산 사당. 대문 틈으로 들여다보니 개망초를 비롯한 풀이 우거져 있었다. 수백 명의 하인과 소작인을 거느리고 살던 500년의 영화가 모두 덧없어 보인다.

사당을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어초은의 묘소가 나온다. 주변이 온통 적송으로 둘러싸여 있어 기품은 있어 보였지만 갑부 집안의 묘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검소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숲 올라가는 길. 이 비자나무숲은 윤씨 집안의 부를 일군 윤효정이 "뒷산에 바위가 보이면 마을이 가난해진다"는 말을 남기자 후손들이 열심히 나무를 심어 보호한 덕에 이렇게 무성한 숲을 이루게 되었다고 한다. 비자나무숲에 들어서면서 다시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이곳에도 초록색 비(綠雨)가 쏟아지는 것만 같았다.

 비자나무숲에서 내려와 추원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채 담 안에 윤선도가 <오우가>에서 칭송한 다섯의 벗 중 대나무숲이 보인다.


추원당은 1935년에 지은 건물로 후손들이 문중 회의를 하면서 숙식을 하던 곳이란다. 꽉 닫혀 있는 방문이 일 년에 몇 번이나 열릴까 궁금해진다. 삐져서 누워 있는 딸내미. 비자나무숲에 올라가기 싫다고 하는 걸 억지로 데려간 결과다.


다시 녹우당으로 내려가는 길. 카메라를 남편이 들고 다닌 덕분에 내가 계속 사진에 찍혔다. 우리 모자가 등지고 있는 쪽에는 현재 살고 계신 할아버지가 만들어놓은 녹차밭이 있었는데 정원도 숲도 너무 우거져 있어서 좀 답답해 보였다. 가을에 다시 찾아가 반쯤 비워놓은 여백의 녹우당을 만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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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9-07-1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할머니의 할머니가 해남 윤씨로 20세기초에 신교육도 받은 여성이었다는데, 바람기많은 한량 부자인 할아버지가 '해남 윤씨'라는 타이틀을 원해서 시집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첩을 여럿 둔데다가, 본인 소생의 아들은 하나만 남기고 다 일찍 죽어서 맘고생하셨을텐데도 꼿꼿한 여장부였다고 들었는데, 해남 윤씨의 자부심이란 대단했던 거 같습니다.

소나무집 2009-08-27 11:37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이젠 유학까지 다녀온 장손을 해남으로 내려오게 해서 종손집을 지키게 할 예정이라고 하셨어요.

나그네 2012-12-31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녹우당은 해남윤씨종가가 아니라 해남윤씨어초은파 종가입니다.
해남윤씨 8계파중 막내계파 종손이 사는 집을 해남윤씨종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위글을 수정해주기 바랍니다.
 

사회 시간에 세계자연 유산에 대해 배운 딸아이가 제주도에 만장굴이 있느냐고 물은 지 어~언 1년 만에 드디어 만장굴(홈페이지 바로가기 클릭)에 다녀왔다.

유네스코에서 탁월하게 아름다운 지역이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의 서식지 등을 자연유산으로 지정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 최초로 제주도의 화산섬과 용암 동굴이 세계자연 유산으로 등재되었다. 

한라산 천연 보호 구역과 거문오름용암동굴계(거문오름,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동굴, 당처물동굴), 성산일출봉 응회구 등 제주 면적의 10% 나 세계자연 유산으로 지정되었다네. 제주 며느리로 살면서도 난 딸랑 만장굴만 자연유산으로 지정된 줄 알았는데 이렇게나 여러 곳이었다니 놀라워라!   

만장굴은 거문오름 용문동굴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유일하게 공개된 동굴. 20~30만 년 전 거문오름에서 분출한 용암이 해안까지 이동하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폭이 5 미터, 높이가 5~10 미터, 길이는 7.4 킬로미터인데 입구에서 1킬로 지점까지만 개방하고 있었다.


아이들 또래도 비슷하고 마음이 맞는 형님 덕분에 제주에 가면 구경을 잘 하고 온다. 별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늘 감사한 마음이다. 주차를 하고 매표소 쪽으로 올라가고 있는 큰집 식구 다섯 명과 우리집 식구들.


매표소 옆에 붙어 있는 거문오름 용암동굴계 사진. 입장료가 어른 2천원, 아이들 천원이었지만 세계 자연유산 지정 2주년 기념으로 한 달간 무료라고 했다. 음, 무료라니 더 기분이 좋아~ 



동굴 입구에서 12살에서 7살까지 아이들이 차례로 줄을 서서 모두 점퍼 하나씩 더 입었다. 이유는 몇 발짝 옮기지 않아서 바로 알게 되었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고 한참 걷다 보니 너무 추워서 소름이 오싹오싹. 한여름 피서 가기에 딱 좋은 장소가 아닐까 싶다. 만장굴에 갈 계획이라면 겉옷 하나쯤은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하이힐을 신은 사람은 들어갈 수 없다는 사실.... 모르고 온 사람들을 위해 매표소에서 편한 신발을 빌려주는 듯했다.


굴 양쪽으로 작은 전등을 밝혀 놓았지만 그래도 엄청 컴컴한 걸 보니 동굴이 맞네!


만장굴의 명물 돌거북이다. 용암이 떨어져서 남은 흔적인데 제주도 모양을 닮았다고... 이 앞을 지나갈 때 자동 음성 안내기에서 나온 말씀이다. 



용암이 흐르면서 남긴 줄무늬 흔적. 자연만이 할 수 일이지 싶다.



용암이 흐른 흔적. 



상어 이빨처럼 생긴 용암 종유. 



거대한 용암 석주가 서 있는 곳이 1킬로 지점인데 더이상 들어갈 수 없다. 공개하지 않는 동굴에서는 현재도 계속 변화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보호가 필요하단다.  



사진을 찍어주신 아주버님만 빼고 모두 스마일!  


가족 사진 뒤로 보이는 거대한 용암 석주.  



돌아 나가는 길. 아들과 아빠가 오랜만에 다정하게.  



만장굴의 입구 모습. 만장굴은 근처 학교 선생님이 아이들을 데리고 체험 학습을 나왔다가 처음 발견했다고 한다. 아마 아이들이 뚫려 있는 구멍이 신기해서 우르르 들어가 본 건 아닐까? 



동굴 밖으로 나가느라 계단을 올라가는 아이들. 밖으로 나오니 따뜻하게 느껴질 정도로 동굴 안의 기온이 서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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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7-03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이 참 생생해요. 만장굴 가본거같은데도 아주 새롭네요

소나무집 2009-07-05 14:17   좋아요 0 | URL
저도 결혼 전에 갔는데 아이들이랑 가니까 또 새롭더라구요. 예전엔 카메라도 안 가져가서 사진 한 장 찍지도 못하고 그랬어요.

프레이야 2009-07-03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오래 전 가봤는데 아이들 데리고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다들 스마일! 즐거우셨죠? ^^ 꾹!

소나무집 2009-07-04 22:58   좋아요 0 | URL
시댁이 제주인 덕분에 갈 때마다 큰댁 식구들하고 놀러 나가게 되네요.
다들 놀기만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무스탕 2009-07-04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 여름에 다녀왔어요. 동굴 입구에 딱- 들어서면 서늘한 기운이 시작되는게 정말 신기해요.

소나무집 2009-07-05 14:17   좋아요 0 | URL
작년에 다녀오셨구나.
동굴 안이 어쩜 그렇게 서늘한지 진짜 신기했어요.

순오기 2009-07-05 1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여름 피서는 전국에 있는 동굴로~~ 충청도 단양 고수동굴도 좋더라고요.^^

소나무집 2009-07-06 10:56   좋아요 0 | URL
정말 시원했어요. 단양 고수동굴은 아직 못 가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