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알라딘 상자에 억지로 구겨 넣은 루키의 몸, 루키는 한동안 저 곳에서 잠을 잤고 좋아했다. 

있는 것에 만족하는 여유를 배우고 싶다. 









한 달 동안 책을 멀리 하고 운동과 재활에 매진했다. 안 올라가던 팔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다. 훅 빠진 근육으로 물렁거렸던 팔 다리들이 조금씩 근육이 돌아오고 있는것 같다. 물론 그것이 근육인지 지방인지 모르겠지만....



6개월에 18만원인 헬스클럽을 끊었다. 여성 전용이라서 더 좋다. 재활을 위해 필라테스도 같이 하기에 문의 드렸더니 그날 접수 하셨던 분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씀해주셨다. 여기 말고 더 전문적인 곳에서 하라고...참 정직한 직원이시네. 이 얘기는 여기 사장님께는 얘기하지 않기로.


한 해가 넘어가기 전에 책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래서 버릴 책들과 팔 책들을 정리했다. 알라딘 중고로 많은 책들이 갔고, 알라딘 중고에서도 안 받아주는 책들은 내 중학교 동창에게 가기로 했다. 버리기엔 아까운 책들이라고 생각해서 책 좋아하는 동창이 가져갔음 했더니 동창이 차를 가지고 오기로 했다. 50권정도 가져가라고 했더니 친구가 신나했다. 그런데 문득 작년에 친구와 5년 만에 만났던 일들이 생각이 났다.



5년 만에 서로 연락도 안했던 내 중학교 동창 친구는 정말로 내게 소중한 친구였었다. 내 기억과 추억에는 없어서는 안 되는 친구였는데 5년 동안 서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이유는 없었다. 아니 이유는 있었다. 친구가 내게 연락을 하지 않으니 나도 안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5년이나 흘렀다. 핸드폰을 바꾸면서 연락 없는 친구들의 연락처를 모두 지웠고 카톡도 지웠다. 작년 봄 낯선 번호가 뜨기에 회원 번호인줄 알고 받았더니 중학교 동창이었다. 오랜만에 앉은 술자리에서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그동안 왜 연락을 안했니? 나는 네가 안 해서 나도 안했어. 너는 결혼한 유부남이니 네가 안하면 연락하기가 참 불편해지더라고...너는 왜 안했어? 친구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느 시기부터 자신은 뭔가 배울게 있는 사람을 만났었다고. 그런 부분에서 너는 배울게 없는 사람이라서 연락을 안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때 그렇게 형편없었구나? 라고 말하며 넘어갔는데, 집에 돌아와서 나는 그 해에 많이 괴로웠었다. 내게는 소중했던 친구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니....



그런 친구에게 책을 주기 위해 내일 만나기로 했는데, 배울게 없는 친구에게서 받아가는 책이 친구에게는 도움이 될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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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12-28 18: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진짜 불쾌하게 솔직하고 자기만 하는 남친이네요. 친구가 꼭 배울 게 있어야 하나 싶습니다. 저는 감정적으로 공감하고 가치관이 비슷하면 서로 위안 받으며서 스트레스 받는 매일 일상에 활력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며칠 전에 엄마들 모임에서 한 엄마가 윤 지지 하는 듯한 발언을 해서 기운이 쭈욱 빠지더라고요. 어느 정도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윤 지지할 정도의 막장은 아니겠지 했거든요. ㅠㅠ

오후님 내년에는 더 좋은 일 많이 생기시길 기원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2022-12-29 21: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은하수 2022-12-30 18: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진짜 할말없게 그걸 또 솔직함을 가장해 말하다니...
책값이 아깝다고 말해아겠어요!
친구가 배울게 있어야 만난다는 발상 자체가 잘못된거죠
친구는 그냥 친구인거지.. 그런 판단기준이 있었다니 세상 참 희안하게 사는분이네요!
아직 좋은 친구 만날기회는 무궁무진 남아있어요.
내년엔 좋은일 가득하시길!
 
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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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웃이 되는 일은 즐거운 것일까 [저만치 혼자서_ 김훈]

요즘은 교과서의 내용만으로 학교 시험을 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담당한 고등학교 세 곳은 모두 교과서 외의 최근 출판된 소설을 시험 범위로 정했다. 그래서 그 해당 작품을 읽고 아이들과 얘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아이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작품을 읽다가 보면 화자가 소설가 자신으로 읽히게 되는데 그게 잘못 된 것은 아니죠? 그것이 왜 잘못이니? 화자와 소설가는 별개로 이해해야 하지 않아요? 그렇지. 소설은 허구의 작품이니까. 

소설 [완득이]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 김려령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많이 생각했었다. 한참을 웃으며 읽고 나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소설 주인공들의 모든 면모를 다 보여줬고 즐거웠다. 그것은 작가가 가진 심성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게 잘 그려낸 모습이라면 작가는 어떤 삶을 살며 사람들을 관찰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부분은 아주 오래전에 양귀자의 소설에서 먼저 느낀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감동 받는 책을 읽으면 저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는것 같다. 어떤 유명한 정치인이자 작가이신 분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면 작품에 녹아든 주인공 화자가 저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저자의 뛰어난 인물 서사일까. 김훈의 [저만치 혼자서]를 읽는 내내 늙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쓸쓸한 모습이 김훈의 뒷모습 같아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소설가 김훈의 뒷모습을 실제로 본적은 없다. 나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속 모습이다. 특히 [대장 내시경 검사]는 지금의 김훈의 모습을, [영자]에서는 젊은 날의 김훈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삼년에 한 번씩 받고 있는 대장 내시경 검사. 일흔이 넘은 사람들은 수면 내시경 검사에 꼭 보호자가 동반 되어야 한다는 문자를 받은 주인공은 고민에 빠진다.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이혼한 부인에게 부탁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 결국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분에게 일당 사만원을 주고 검사를 받기로 했다. 직장을 은퇴 후 명예 임원직에 이름을 올리며 처리해야 할 일들을 대장 내시경 검사 이후로 미뤄 뒀지만 사실 그에게 대장 내시경 검사의 보호자를 만들어 내는 일이 그의 인생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중 가장 쓸쓸한 일은 아니었을까. 제거 된 다섯 개의 용정은 몸의 걱정을 모두 사라지게 했지만, 아파트 매매 가격을 얼마나 내릴 것이며 그에게 청탁이 온 찰리 장에게 세련된 거절의 언어를 찾는 일은 또 다른 걱정이 남아 있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매우 단순했지만 내가 이 소설이 [저만치 혼자서]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혼자 남은 이의 쓸쓸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모든 이들이 혼자로 늙어가지는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혼자 늙어 간다면 모두 이런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될 것일까. 물론 위자료로 아파트 대출 10억을 받고 현금으로 2억으로 더 줄 정도의 경제력을 모두 가질 수 없겠지만. 

[영자]는 [대장 내시경 검사]속 나의 젊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에서 공부하며 영자와 동거를 하게 된 나는 나이를 먹어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어 대장 내시경 검사에 와 줄 보호자가 없어 집안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검사를 하게 될지도 모를, 그런 연결성을 늘어놓으니 이 또한 쓸쓸하다. 쓸쓸한 겨울에 맞는 김훈의 소설이다. 

김훈의 소설 속 여자들 이야기에 비판이 많다. 이번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영자]의 영자가 좋았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준비생이었던 나는 쉐어 룸 동기를 찾았고 그 대상이 영자였다. 때로는 잠자리도 같이 하는 영자와 동거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것이 빌미로 영자에게 자신이 인생이 빌미로 잡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영자는 때로는 소극적이면서 그렇지도 않은 여자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나는 지긋지긋한 컵밥 골목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합격한 영자도 쿨하게 그 좁은 원룸을 떠났다. 합격한 내는 불안했을지 모른다. 영자와의 동거가 결혼으로 가지는 않겠지 생각했지만, 여자의 한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영거 붙으면 어떡하나 걱정 했겠지만 영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했지만 남은 삶에 불합격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는 여자였다. 그런 부분이 나는 좋았다. 영자가 키우던 화초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더 좋았다. 미련한 모습이 없이 떠난 영자는 어디서든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영자와 같은 여자가 소설에 더 많이 녹아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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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3-01-06 23: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thkang1001 2023-01-07 11: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부작용의 시간들




먹는 약이 호르몬과 관련된 것이라 부작용이 많다고 한다. 약을 먹기 전까지는 그 부작용에 대한 현실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하나씩 나타나는 부작용에 요즘 힘들다.




매일 매일 피곤하다. 먹는 약보다 방사선 23회를 모두 마치고 피곤함이 밀려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방사선 치료를 하는 동안 몸에 표시한 선이 지워 지지 않기 위해 엄청 스트레스 받으면서 치료를 받았는데 그것과 함께 피곤함이 밀려오니 뭘 하기만 하면 계속 누워 있어야 한다. 그런 상태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무조건 잠을 자야 한다.




가슴 윗부분까지 방사선 치료가 된 상태라 목구멍까지 열기가 올라와 한동안 얼음물을 달고 살았다. 물을 많이 마시니 화장실을 자주가야 한다. 너무 귀찮다. 그것도 내 피곤의 한 몫에 들어간다.



타목시펜의 가장 큰 부작용은 살이 찌는 건데, 요즘 나는 방사선때도 빠지지 않았던 살이 지금 빠지고 있다. 그동안 나는 아픈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수술 얘기를 하지 않으면 잘 모른다. 이주동안 5키로가 쭉 빠지니 이제는 보는 사람마다 아프냐고 물어 본다. 아픈 사람처럼 보인다고 한다. 특히 아침에는 매우 심하게 힘든 얼굴이라서 주변에서 안쓰럽다고 하는데, 나도 얼굴을 보며 놀란다. 아.....나 아픈 사람 같아. 수술을 하고 회복 하는 동안도 살이 안 빠졌고 방사선 때문에도 안 빠졌는데 지금 쭉쭉 빠진다. 저녁에 금식을 하지 않고 일부러 많이 먹고 있는데도 빠진다. 이 부분은 주변에서 은근 부러워한다. 살이 건강하게 빠지는 것이 아니라 근육이 쭉쭉 빠진 상태라서 헐렁이는 바지에 나의 패피가 망쳐지고 있다. 그렇다고 다시 옷을 살 수 없다. 이제는 정말 미니멀로 넘어가야 할 상태다. 고양이 물품 빼고 내 물건은 버리기 시작했다. 그것이 언제까지 갈지 모르겠다만...




타목시펜의 부작용중 구내염도 있다. 그게 지금 나에게 왔다. 정말로 입안이 엉망이다. 그게 입술까지 와서 마스크를 쓰지 않았던 시절이라면 난 정말 밖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다. 입 안이 엉망이니 뭘 먹기가 힘들고 고통스럽다. 차가운 물을 마시며 이 시련의 시간이 언제 끝이 날지 생각한다.






이런 나와 다르게 우리 루키는 미모를 뽐내며 잘 지내고 있다. 루키라도 아프지 않고 잘 지내고 고마운 날들이다. 피로감이 좀 사그라지고 있어서 읽고 쓰지 못한 리뷰라고 쓰고 기록으로 남는 글들을 써 볼까 한다. 가을엔 부작용이 다 사라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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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2-10-20 08: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힘든시간 견디시고 계시는 군요 ㅠㅠ
항암 치료 많이 힘들어도 꼭 이겨내실겁니다 오후즈음님 빠른쾌유 바랍니다

오후즈음 2022-12-16 20:27   좋아요 1 | URL
한달이 지나고 나니 기운이 많이 나요~~ ^^

2022-10-2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후즈음 2022-12-16 20:27   좋아요 0 | URL
네, 요즘 구내염이 많이 좋아졌어요!

책읽는나무 2022-10-20 09: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견뎌오신만큼 남은 시간도 힘 내시기 바랍니다.
얼른 완쾌되었단 소식 듣고 싶네요^^

오후즈음 2022-12-16 20:28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많이 좋아졌어요

모나리자 2022-10-20 1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힘내세요. 그리고 어렵겠지만... 건강했던 때의 모습을 자주 떠올리시며 좋은 상상을 하는 시간 가져보시면 어떨까요. 점점 더 회복하시길 기원드릴게요.^^ 하루빨리 편안한 나날 되사면 좋겠습니다. ^^

오후즈음 2022-12-16 20:28   좋아요 1 | URL
넵 요즘 많이 건강해졌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10-20 21: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간 지나면 좋아지실거예요. 힘들지만 즐거운 일 생각하시고요. 빨리 건강해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오후즈음 2022-12-16 20:28   좋아요 2 | URL
네 한달 동안 회복에 애를 썼더니 많이 좋아졌어요.
 
쥘과의 하루
디아너 브룩호번 지음, 이진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평점 :
절판







고양이를 그리는 유명한 작가의 고양이가 몇 년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의 일이다. 반려인들은 키우던 고양이가 죽으면 대부분 무지개다리를 건넜다는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키웠던 고양이의 죽음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알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함께 지난 시간을 추억하며 아늑한 담요에 누워 있는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더 이상 빗질을 해 줄 수 없으니 고양이를 안아주고 빗질을 해 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반려 동물 장례식장으로 가서 화장을 하고 예쁜 구슬로 만들어 왔다. 그때 그 모습이 나에겐 너무 생소했다. 나에겐 죽음이란 장례식장으로 바로 연결되기 때문이었다. 함께 했던 이들의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과 그 태도,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가지고 가야 할 상실감을 어떻게 치유 할 것인지 생각이 많아지는 부분이었다. 

[쥘과의 하루]는 그 작가의 추모와 비슷한 경우였다. 매일 아침의 루틴으로 시작되는 하루 중 그 시작의 끝은 커피를 내리는 일이었다. 쥘은 마지막까지 자신의 일과를 마치고 창가에 앉아 있다가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쥘의 죽음이 믿어지지는 않고 당황스럽지만 알리스는 쥘이 향기 가득 내려놓은 커피로 하루를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 하루는 쥘과 함께 하기로 했다. 우선은 쥘의 죽음을 혼자 감당해 보기로 했지만 그녀의 계획에 큰 변수가 생겼다. 매일 아침 열시에 쥘은 다비드와 함께 체스를 두었다. 쥘이 죽은 그날도 다비드는 쥘을 찾아 왔다. 자폐증이 있는 다비드는 상황이 바뀌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결국 쥘이 잠이 들었다고 얘기하고 알리스가 체스를 두기로 했지만 다비드는 쥘이 죽었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그때부터 이야기의 흐름이 어떻게 변하게 될 것인가 궁금했다. 돌방 상황을 싫어하는 다비드와 알리스는 어떻게 그 시간을 지낼 것이며 다비드가 인지하게 되는 쥘의 죽음은 또 어떻게 다뤄질 것인가. 

소설의 중심은 다비드와 쥘의 얘기도 아니고 오로지 알리스와 쥘과의 하루를 중심으로 다룬다. 불륜을 알게 된 후 쥘에게 갖게 된 분노를 감추며 살았던 알리스의 슬픔이 터져 나와 그동안 저 밑에 감춰 놓았던 서러움을 쥘에게 털어 놓았다. 그리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아이와의 이별에서는 감정이 고조되었다. 알리스가 쥘과의 이별하는 방식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고 스스로 위로 받는 것이었다. 알리스의 추모가 부러워졌다. 함께 한 가족이 세상을 떠나는 그때, 남겨진 말들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하면 남겨진 시간들이 많이 괴롭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아버지의 발인을 앞두고 있었던 새벽이었다. 해결하지 못한 법적인 문제로 장례식장이 하루 종일 시끄러웠었다. 모든 소음이 꺼지고 지친 몸을 벽에 기대 앉아 아버지의 사진을 보며 나는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있었다. 많이 울었지만 말은 나오지 않았다. 발인이 되기 몇 시간을 앞두고 깊은 원망으로 아버지와 얘기를 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남겨진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결 할 것인가 걱정하고 답답했고 화가 났다. 이제 생각해보니 아버지에게 많이 미안하다. 알리스처럼 가슴에 맺힌 일들이 많지는 않지만 먹고 사는 일을 막아 놓고 가신 아버지에게 화가 나서 원망으로 한 달을 보냈다. 알리스처럼 쥘이 차려진 아침을 맞을 루틴이 없었던 가족들은 아버지의 죽음이 그저 절망으로 망연자실 했다. 처음은 당황스러웠지만 차분하게 쥘의 죽음을 받아들였던 알리스와 나는 많이 달랐다. 알리스처럼 고백할 말이 없었다. 그냥 아버지가 떠난 그 시간이 절망만 있다고 생각했다. 떠난 이를 그리던 따뜻한 그 순간이 없었다는 것을 1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1년이 지나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하다가 아버지라는 단어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뚝뚝 흘렀다. 아, 우리 아버지는…….그렇게 말을 꺼내다가 그날 아무 말도 못하고 소개팅 남과 헤어졌었다. 그때 알았었다. 아버지와 나와의 헤어짐이 이제야 시작 되었다는 것을. 

내게도 알리스와 같은 시간이 필요했었다. 원망을 내려놓고 아버지와의 지난 시간을 기억하고 추억하며 추모할 있었다면 아버지와 헤어질 시간이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언젠가 지금의 이곳에서 떠나게 되고 또 친한 지인과 가족과 헤어질 수밖에 없다. 그럴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한 번의 경험이 있어도 아직 잘 모르겠다. 언젠가 그런 시간이 온다면 또 다른 추모의 방법이 생길 것 같다. 그렇지만 그런 시간이 너무 자주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살아가는 날들 서로가 후회 없는 얘기들을 자주 나누며 살다 가고 싶다. 죽음을 한번 생각했었던 어느 여름날, 두렵고 힘들었던 그 단어를 쓰다듬으며 걸어 나왔던 날들을 떠 올리니 매일이 참, 소중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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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0-20 10: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의 애도방식이 다르고 애도하고 추모하는 시간의 길이가 또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나 사랑하는 가족이나 반려동물을 애도하는 시간은 슬픔의 농도만 옅어질 뿐, 문득문득 떠올라 애도 시간은 영원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지가 7 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돌아가신 것 같지가 않네요. 계속 순간 순간 떠오르고, 그래서 그 순간순간 애도의 시간을 잠깐 가지곤 합니다. 슬픔의 농도는 확실히 옅어져가고 있구요^^
글 잘 읽었습니다. 덕분에 애도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서니데이 2022-11-09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모나리자 2022-11-09 15: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오후즈음님~^^

thkang1001 2022-11-09 18: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후즈음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시길 바랍니다.
 

구부려 그의 어깨를 움켜쥐자 그의 몸이 둔중하게 따라움직였다. 쥘은 죽었다. 그녀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 그 자궁 속 삼십 분을보내는 동안, 그는 죽었다. 여전히 자신의 할 일을 다해놓고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커피를 올려놓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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