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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평점 :
그의 이웃이 되는 일은 즐거운 것일까 [저만치 혼자서_ 김훈]
요즘은 교과서의 내용만으로 학교 시험을 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담당한 고등학교 세 곳은 모두 교과서 외의 최근 출판된 소설을 시험 범위로 정했다. 그래서 그 해당 작품을 읽고 아이들과 얘기 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아이가 이런 얘기를 했다. 작품을 읽다가 보면 화자가 소설가 자신으로 읽히게 되는데 그게 잘못 된 것은 아니죠? 그것이 왜 잘못이니? 화자와 소설가는 별개로 이해해야 하지 않아요? 그렇지. 소설은 허구의 작품이니까.
소설 [완득이]를 읽으면서 나는 작가 김려령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많이 생각했었다. 한참을 웃으며 읽고 나서 느껴지는 따뜻함은 소설 주인공들의 모든 면모를 다 보여줬고 즐거웠다. 그것은 작가가 가진 심성이라고 생각했다. 누구 하나 아프지 않게 잘 그려낸 모습이라면 작가는 어떤 삶을 살며 사람들을 관찰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부분은 아주 오래전에 양귀자의 소설에서 먼저 느낀 부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감동 받는 책을 읽으면 저자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는것 같다. 어떤 유명한 정치인이자 작가이신 분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으면 어떤 일을 해 왔는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 수 있다고 했었다.
그런데 읽다보면 작품에 녹아든 주인공 화자가 저자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 것, 그것이 어쩌면 저자의 뛰어난 인물 서사일까. 김훈의 [저만치 혼자서]를 읽는 내내 늙어가고 있는 한 남자의 쓸쓸한 모습이 김훈의 뒷모습 같아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나는 소설가 김훈의 뒷모습을 실제로 본적은 없다. 나의 머릿속에서 펼쳐지는 상상속 모습이다. 특히 [대장 내시경 검사]는 지금의 김훈의 모습을, [영자]에서는 젊은 날의 김훈이 녹아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대장 내시경 검사] 삼년에 한 번씩 받고 있는 대장 내시경 검사. 일흔이 넘은 사람들은 수면 내시경 검사에 꼭 보호자가 동반 되어야 한다는 문자를 받은 주인공은 고민에 빠진다. 혼자 살고 있는 나는 이혼한 부인에게 부탁을 할 수 없는 노릇이라 결국 집안일을 도와주는 도우미 분에게 일당 사만원을 주고 검사를 받기로 했다. 직장을 은퇴 후 명예 임원직에 이름을 올리며 처리해야 할 일들을 대장 내시경 검사 이후로 미뤄 뒀지만 사실 그에게 대장 내시경 검사의 보호자를 만들어 내는 일이 그의 인생에서 먼저 해결해야 할 일중 가장 쓸쓸한 일은 아니었을까. 제거 된 다섯 개의 용정은 몸의 걱정을 모두 사라지게 했지만, 아파트 매매 가격을 얼마나 내릴 것이며 그에게 청탁이 온 찰리 장에게 세련된 거절의 언어를 찾는 일은 또 다른 걱정이 남아 있게 되었다. 소설의 내용은 매우 단순했지만 내가 이 소설이 [저만치 혼자서]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혼자 남은 이의 쓸쓸한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모든 이들이 혼자로 늙어가지는 않겠지만 많은 이들이 혼자 늙어 간다면 모두 이런 비슷한 모습을 하게 될 것일까. 물론 위자료로 아파트 대출 10억을 받고 현금으로 2억으로 더 줄 정도의 경제력을 모두 가질 수 없겠지만.
[영자]는 [대장 내시경 검사]속 나의 젊은 버전으로 볼 수 있다.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에서 공부하며 영자와 동거를 하게 된 나는 나이를 먹어 이혼을 하고 혼자가 되어 대장 내시경 검사에 와 줄 보호자가 없어 집안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검사를 하게 될지도 모를, 그런 연결성을 늘어놓으니 이 또한 쓸쓸하다. 쓸쓸한 겨울에 맞는 김훈의 소설이다.
김훈의 소설 속 여자들 이야기에 비판이 많다. 이번 작품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그런 부분에서 나는 [영자]의 영자가 좋았다.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준비생이었던 나는 쉐어 룸 동기를 찾았고 그 대상이 영자였다. 때로는 잠자리도 같이 하는 영자와 동거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것이 빌미로 영자에게 자신이 인생이 빌미로 잡히지는 않을 것 같았다. 영자는 때로는 소극적이면서 그렇지도 않은 여자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나는 지긋지긋한 컵밥 골목을 떠날 수 있었다. 그런데 불합격한 영자도 쿨하게 그 좁은 원룸을 떠났다. 합격한 내는 불안했을지 모른다. 영자와의 동거가 결혼으로 가지는 않겠지 생각했지만, 여자의 한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영거 붙으면 어떡하나 걱정 했겠지만 영자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다. 공무원 시험에 불합격했지만 남은 삶에 불합격을 한 것이 아니었기에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것들을 해 나가는 여자였다. 그런 부분이 나는 좋았다. 영자가 키우던 화초를 가지고 가지 않아서 더 좋았다. 미련한 모습이 없이 떠난 영자는 어디서든 잘 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영자와 같은 여자가 소설에 더 많이 녹아 있었다면 참 좋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