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매일 글쓰기 [정화수는 필요 없다]
치사하지 않게 살기위해선 어떻게 살아야 할까 고민이 된다. 회원모에게 갑질을 당해보고 나니 나는 혹여 갑에 놓인 상황에서 이렇게 비열하게 행동한 적은 없었나 생각하게 된다. 갑과 을의 관계는 결국 다 돈과 관련이 있으니, 나는 갑의 영역에 많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물건을 사는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갑의 영역이었지만) 금수저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벌지도 못했고 그래선지 나는 을의 입장에만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분명 어떤 부분 갑의 영역에서는 그 여자같이 경박스러운 행동을 했을지 모른다. 잠을 자다가 분해서 벌떡 일어나 발바닥 밑에서부터 일어나는 깊은 빡침으로 쌍욕을 십분간 하다가 잠을 자야 하는 일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했을지 모른다.
<안녕, 프란체스카>에서 들었던 대사에 그런 말이 있었다. 나는 모두에게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 왜, 모두에게 친절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나의 화난 감정을 상대방에게 쏟아 놓고 싶지는 않다. 적당히 화난 감정을 다스리고 싶은데 나이 먹을수록 분노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동생이 상황을 다 듣더니 적당한 응수를 해줬다. 이럴 때는 상스러운 욕을 같이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세상 끝 나락에서 일자무식으로 태어나 오로지 쌍욕 말고는 할줄 아는 말이 없는 사람으로 잠시 빙의 할 때 같이 응수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분노를 못 참으며 바르르 떨고 있을 때 동생이 말했다. 언니 정화수를 떠 놓고 기도해. 마음을 다스려봐.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이 가슴이 답답하면 그렇게 한강을 뛰던데 (서울에 살았을 때도 나는 한강을 아침에 뛰어 본적이 없다) 그것도 아닌 물 떠 놓고 마음 다스리는 기도라니. AI가 판치는 세상에 이 신박한 무속 신앙은 무엇이란 말인가.
어쩌다 걸린 김광석의 1987년 동영상을 유투브로 보면서 가사를 노트에 적어 보았다. 어린 김광석의 목소리도 좋았고 저질 화질도 마음에 들었다. 그러면서 김광석이 또 얼마나 보고 싶어지던지. 그런 마음으로 가사를 보고 같이 노래도 불러보니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정화수는 필요 없다. 김광석의 목소리가 나의 힐링이고 위로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려 본다.
영상속 자막의 1997년이 아닌 1987년의 영상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