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의 뉴라이트 세력을 포함한 친미 극우세력들이 찬양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인물이 있다. 대표적인 인물 3명을 뽑자면, 3명은 각각 대한민국과 미국 그리고 영국출신이다. 한명은 건국의 아버지로 미화시키는 최악의 학살자 이승만이고, 다른 한명은 1980년대 미국 사회를 반공주의화 시킨 영화배우 출신의 대통령인 로널드 레이건이며, 또 다른 한명은 조선일보를 포함한 어용매체들이 영국병을 고친 위대한 여인으로 평가하는 마가렛 대처(Margaret Thatcher).

 

2013년 당시 영국 총리었던 데이비드 캐머런(David Cameron)은 마가렛 대처가 그냥 나라를 이끌기만 했던 것이 아니라, 나라를 구원했다라고 하며 찬양했다. 당시 박근혜 정권에 놓여있던 한국의 극우언론들 또한 대처를 찬양해대기 시작했다. 특히나 박근혜를 숭배하던 한국의 조중동(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영국병을 치유했다”, “영국을 구했다더나아가 노조를 파괴하고 운동을 탄압한 대처의 위대한 리더십을 배워야 한다는 망언을 일삼았다. 심지어 대통령 자리에 오른 박근혜는 예전부터 한국의 대처가 되겠다라고 자처해 왔었다. 그러나 영국의 극우보수주의자들과 한국의 극우보수주의자들이 찬양하는 인물인 마가렛 대처는 참으로 사악하고도 잔인한 통치자이자 제국주의자였다.

 

대처는 집권 기간 동안 영국 자본주의의 경쟁력을 높이려고 했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으로 매장되었던 자유시장주의를 다시 부활시키고자 했고, 임금을 낮추고, 노동 강도를 높이고, 공공지출을 줄이고, 노동조합을 탄압했다. 1980년대 영국에서 광원들의 파업이 일어났을 때, 이들을 고립시켜 이들의 투쟁을 패배하게 만들었다. 그 때문에 광산 마을 주민들은 1년 내내 고립된 싸움을 계속하다 패배했다. 대처는 아일랜드에서 더러운 전쟁을 계속했다. 아일랜드공화국군 수감자들이 양심수 지위 인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을 때, 양보는 전혀하지 않고 그들이 굶어 죽도록 내버려두었다. 대처는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과 더불어 1980년대 신자유주의을 개척했다. 대처는 노동자들의 투쟁과 파업을 강력한 물리적 힘과 고립을 통해 탄압하려 했고, 소수의 부유층들을 위한 정책을 선호했으며, 그 혜택은 결국 극소수의 상류층들에게만 돌아갔다.

 

또한 대처는 전쟁이라면 물불을 안가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1982년 식민지를 무력으로 되찾겠다는 터무니 없는 생각을 가지고, 포클랜드 전쟁(Falkland Islands War)을 일으켜 영국군 수백명 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인 수백 수천명을 죽게 만들었다. 또한 대처는 199011월 자신이 총리자리에서 쫓겨나게 됐을 때에도, 미국이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를 상대로 벌인 걸프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리를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이처럼 대처는 로널드 레이건처럼 침략전쟁이 필요하다면 마음껏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대처가 추구한 신자유주의는 극심한 빈부격차와 경제불황을 동반했다. 대처는 1989~1990년 인두세를 도입하여 백만장자와 빈민에게 세금을 똑같이 부과하려 했고, 신자유주의 시대 최초의 금융 거품 호황을 부추겼으며, 그게 결국 경제침체로 이어졌다. 대처는 자본주의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하지도 못했고, 이를 양극화시켰다. 대처는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키는 제국주의적인 침략전쟁을 자행했고, 미국 레이건 정부와 더불어 반공주의를 강화했다. 또한 걸프전쟁에서도 아주 큰 욕심을 부렸다. 한국의 극우세력들이 미화하는 대처는 제국주의자였다. 2013년 대처가 사망했을 때, 대다수의 영국인들은 이를 기뻐했다. 앞으로도 사회의 정의를 추구하는 이들에게 마가렛 대처는 리더십이 뛰어난 여인이 아닌 살인자이자 제국주의자로 기리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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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패스트푸드 회사 맥도날드에서 ‘1955 버거를 텔레비전과 유튜브 광고를 통해 홍보하기 시작했다. 광고를 보면 백인 남성이 1950년대 스타일의 클래식 카를 타고 가다가 맥도날드 드라이브 스루에 들려 1955년 버거를 주문한다. 남성이 주문을 하자 갑자기 정전현상이 일어나더니 강력한 전파에 맞아 2019년 대한민국 서울로 순간 이동하여 1955년 버거를 먹게 된다. 버거를 먹은 남성은 와우! 미래의 1955년 버거네라는 대사를 치며 광고는 햄버거 신메뉴를 홍보하며 끝난다.

 

참으로 흥미로운 광고였다. 햄버거 이름에 1955년이라는 연도가 붙은 것이 개인적으로 흥미로웠다. 1955년이라는 이름이 붙은 데에는 맥도날드의 역사하고 크게 연관이 있는 것 같았다. 지난학기 미국 역사를 공부하면서 왜 맥도날드가 홍보한 1955 버거에 1955라는 연도가 붙는지 생각해보니 참으로 흥미로운 결론을 도출해볼 수 있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선 미국의 현대사를 알 필요가 있다. 우선 1955년은 미국이 가장 큰 호황을 누리던 1950년대다. 1950년대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겪으며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대호황을 누렸고, 1920년대 미국을 능가하는 풍요와 번영을 누렸다. 영화 플레전트 빌(Pleasantville)’을 보면 당시의 풍요로움과 번영을 잘 알 수 있다.

 

1950년대 미국의 풍요로움은 당시의 중산층 계급에서 나타났다. 미국의 중산층들은 넓은 마당을 가진 주택에서 살며 자동차를 최소 2~3대 이상이나 보유할 수 있었고, 대형마트에서 쇼핑을 마음껏 즐겼으며, 미국의 상징과도 같은 음식인 햄버거와 감자튀김 그리고 음료수 콜라를 즐겼다. 또한 텔레비전의 보급도 늘어 1957년에는 대략 4000만 대의 텔레비전이 미국인들에게 보급되었고, 그러한 풍요로움은 텔레비전을 통해 홍보됐다. 당시 미국 사람들이 즐겨먹던 햄버거는 어떻게 보면 자본주의적 풍요로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패스트푸드가 미국 부의 상징처럼 비쳐졌고, 특히나 한국전쟁 이후 가난에 허덕이던 한국이나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게는 이상적인 미국으로 비쳐줬기 때문이다.

 

따라서 1955버거는 과거 미국이 풍요로웠던 시기를 단편적으로 나마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국내에서 만든 맥도날드 광고에선 미국 중산층들이 타는 클래식 자동차를 탄 백인 남성이 햄버거를 주문하는 장면이 나왔고, 이를 통해 미국이 번영했을 시기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나마 보여줬다. 어떻게 보면 맥도날드의 광고는 그 시기의 풍요로움이 다시 한 번 왔으면 좋겠다는 희망적인 메시지가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1950년대가 미국 보수층에게는 매우 이상적인 사회로 비춰지는 시기이기에 이런 유추방법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라 생각한다. 햄버거를 통해 시대적인 의미를 생각해보니 참으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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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dvs117 2023-06-29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지금은 단종되었지만, 맥도날드(McDonald‘s)가 2019년에 출시한 이 ‘1955 버거‘를 통해 그 속에 숨은 미국의 1950년대 생활사를 탐구해 보는 것도 쏠쏠한 재미가 있겠네요!
 

알라딘 페친 여러분, 여러분이 보기에 저는 어떤 사람입니까? 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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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5-25 16: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 글의 제목을 처음 본 순간 놀랄지도 모른다. 사회 개혁이냐 아니면 혁명이냐? 그렇다면 사회민주주의는 사회 개혁에 반대할 수 있단 말인가? 또는 사회민주주의는 사회혁명, 즉 자신이 최종 목적으로 설정한 현존하는 질서의 전복을 사회개혁에 대립시킬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사회 개혁을 위한, 또 기존의 기반 위에서 노동하는 대중의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그리고 민주적 제도를 위한 일상적인 실천 투쟁은 사회민주주의가 프롤레타리아 계급투쟁을 지도하며,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임금체계를 폐지한다는 최종 목표에 이를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사회민주주의를 위하여 사회 개혁과 사회혁명 사이에는 분리될 수 없는 연관이 존재한다. 왜냐하면 사회민주주의에서 사회 개혁을 위한 투쟁은 수단이며, 사회혁명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노동운동의 두 계기 간의 대립은 베른슈타인의 이론에서 처음 나타난다. 그는 1896/97년에 <새로운 시대>에 발표한 논문 <사회주의의 여러 문제 Probleme des Sozialismus>에서, 그리고 특히 <사회주의의 전제와 사회민주주의의 과제 Die Voraussetzungen des Sozialismus und die Aufgaben der Sozialdemokratie>라는 책에서 이러한 대립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전체 이론은 실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의 최종 목표인 사회변혁을 포기하고, 반대로 사회 개혁을 계급투쟁의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만들라는 충고로 귀결될 뿐이다. “최종 목표가 무엇이든 간에 나에게는 항상 무이며, 운동이 전부이다라는 베른슈타인의 말은 가장 적절하고 날카롭게 그의 견해를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즉 그것은 사회민주주의 운동을 부르주아 민주주의 및 부르주아 급진주의와 구별하고, 또 전체 노동운동이 자본주의 질서를 교정하는 한가로운 수선 작업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질서에 반대하여 이것을 지양하는 계급투쟁으로 나아가도록 만드는 유일한 결정적 요소이다. 따라서 베른슈타인이 제기하는 사회 개혁이냐 혁명이냐의 문제는 사회민주주의로서는 곧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이다. 베른슈타인 및 그의 추종자들과 벌이는 논쟁에서 [이에 대해 당에 있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입장을 결정해야만 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저러한 투쟁 방식이나 전술 사용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 운동의 전체 실존에 관한 것이다.

 

[베른슈타인의 이론을 피상적으로 고찰할 경우, 이러한 이야기는 과장된 것처럼 보일 수 있다. 베를슈타인은 가는 곳마다 사회민주주의와 그 목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 않은가? 그 스스로 여러 차례에 걸쳐 거듭 분명하게 자신은 사회주의의 최종 목표를 단지 다른 형태로 추구하고 있을 뿐이라고 되풀이하지 않는가? 또 현재 사회민주당의 실천을 거의 완전히 인정하고 있다고 확고하게 강조하지 않는가? 물론 이 모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옛날부터 이론과 정책의 발전에서 새로운 노선은 비록 내적인 핵심에 있어서 옛것과 완전히 반대될지라도, 옛것에 의지하여 만들어지고, 우선 기존의 형식에 적응하며, 기존의 언어로 말하는 법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비로소 새로운 핵심은 과거의 껍데기를 뚫고 나오며, 새로운 노선은 자신의 형식과 언어를 발견한다.

 

과학적 사회주의에 반대하는 입장이 처음부터 마지막 결론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본질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또 사회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명백하고 철저하게 부인하리라 기대하는 것은 과학적 사회주의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오늘날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도 금세기 인간 정신의 가장 거대한 산물인 마르크스 이론에 전쟁을 선포하려는 사람은 분명히 마르크스 이론에 무의식적으로 경의를 표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할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바로 마르크스 이론의 추종자임을 선언하고, 마르크스 이론 안에서 이 이론을 극복하기 위한 발판을 추구하며, 이러한 투쟁이 마르크스 이론의 발전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베른슈타인의 이론에 숨겨진 핵심을 밝혀내야 한다. 이것은 바로 우리 당의 광범위한 산업 프롤레타리아 계층을 위해 긴급하게 필요한 작업이다.

 

이론적 논쟁이 결국 학자들의 일이라는 주장은 노동자 계급에 대한 가장 저열한 모욕이며 악의에 찬 비방이다. 이미라살(Ferdinand Lassalle)이 말했듯이. 학문과 노동자라는 사회의 대립적 극단이 하나로 통합될 때 비로소 두 가지는 모든 문화적 장애를 자신의 무쇠 팔로 질식시켜버릴 것이다. 현대 노동운동의 전체 힘은 이론적 인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노동자에게 [이 경우] 이중적인 중요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운동에서 노동자와 이들의 영향력이기 때문이다. 즉 시장으로 운반되는 것은 바로 노동자 자신의 가죽이기 때문이다. 베른슈타인이 공식화한 당내의 기회주의 조류는 당에 침입한 소부르주아 요소에게 지배권을 주고 소부르주아 정신으로 당의 정책과 목표를 변형시키려는 무의식적인 노력일 뿐이다. 사회 개혁과 혁명의 문제, 최종 목표와 운동의 문제는 다른 측면에서 볼 때 노동운동의 소부르주아적 성격이냐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냐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기회주의와 벌리은 이론적 논쟁을 가장 생생하고 철저하게 파악하는 것이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의 관심사다. 이론적 인식이 단지 당에 있는 소수 학자들의 특권으로 머물러 있는 한, 당내 프롤레타리아 대중은 항상 길을 잘못 들 위험을 안고 있다. 다수의 노동자 대중 스스로 과학적 사회주의의 날카롭고 확실한 무기를 손에 넣을 때 비로소 모든 소부르주아 경향과 기회주의적 흐름은 사라지고 잊혀질 것이다. 그때 운동은 더 확실하고 굳건한 지반 위에 서게 된다.

 

다수의 대중이 그것을 실행할 것이다

 

1899418일 베를린에서 로자 룩셈부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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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유튜브에서 유명한 영화 유튜버인 ‘거의없다‘님의 4월 15일 투표독려 영상을 봤다. 거의없다의 투표독려 영상의 시작은 베트남 전쟁부터 시작한다. 수많은 영화들을 통해 베트남 전쟁을 설명하던 거의없다는 수백만의 민간인을 죽인 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를 설명하면서, 영화 ‘더 포스트(The Post)‘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영화 더 포스트는 1971년 베트남 전쟁 참전용사이자, 미국 국방부(펜타곤)에서 근무하던 양심적인 지식인 대니얼 엘스버그(Daniel Ellsberg)가 미국의 1급 기밀문서인 펜타곤 페이퍼(The Pentagon Papers)를 언론에 폭로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70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이 기밀문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미국내의 베트남전 반전여론은 더 격화되었고, 미국이 베트남에서 철군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은 펜타곤 페이퍼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펜타곤 페이퍼는 1960년대 초 미국의 존 F.케네디 대통령의 최고의 인재들 중 한 명이자, 베트남 전쟁의 주범인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가 주도하여 18개월에 걸쳐 작성됐다. 문서의 공식 명칭은 《미합중국-베트남 관계, 1945년~1967년》(United States–Vietnam Relations, 1945–1967)였다. 이 문서에서 미국이 한 짓거리를 대표적으로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1. 프랑스와 베트남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을 때 트루먼 정부가 프랑스에 군사 원조를 제공했으므로, 미국은 베트남 사태에 직접 개입했다.

2. 1954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북베트남의 공산주의 정권을 붕괴시키기로 결심했다.

3.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전임자에게서 인계받은 제한 전쟁 전략을 대대적인 전쟁 개입정책으로 전환했다.

4.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에서의 비밀 전쟁을 확대하는 한편, 미국의 개입 정책이 국민에게 공식적으로 알려지기 1년 전인 1964년에 공개적인 전쟁을 개시하기 위한 계획을 세웠다.

5. 존슨 대통령은 1965년 북베트남 폭격이 남베트남에서 베트콩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데 별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정보 조직의 판단을 무시하고 폭격 명령을 내렸다.

미국 대통령들은 1945년부터 베트남 문제에 지속적으로 개입해왔고, 필요하다면 국민들에게 거짓말까지 하는 대 사기극을 벌여왔다. 특히나 1964년 8월 북베트남의 어뢰정이 공격을 했다고 알려진 통킹만 사건도 미국의 조작이었다는 사실에서 이 전쟁이 미국에 의해 일어난 침략전쟁이라는 사실을 감출 수 없게 되었다.

진실을 폭로한 사실을 알게된 미국의 닉슨 대통령은 이를 용서하지 않으려 했다.이 문서를 처음 유출한 대니얼 엘스버그는 기밀 유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되었고 재판에서 징역 115년형을 구형받았었다. 그러나 전쟁을 끝내고자 했던 반전운동가들과 양심적인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미연방 대법원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아 풀려났다. 이 내용은 민주화 운동가 리영희 선생께서 집필한 ‘전환시대의 논리‘의 초반부분에도 나온다.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진실은 절대로 숨길 수 없다는 사실이다. 전쟁은 아주 강력한 선동과 선전을 동원한다. 미국의 침략전쟁인 베트남 전쟁도 그러했다. 그러나 진실은 매우 추악했다. 최근들어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많이 조용해졌지만, 한국 정부는 미국의 요구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파병을 감행했다. 잘못된 분쟁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전쟁 책동에 휘말려서도 안되고, 반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펜타곤 페이퍼를 통해 깨달아야 할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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