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역사의 기원은 역사학자들에 따르면 B.C 1400~1000년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대 로마는 현재 이탈리아 반도에서 발생했고, 고대 로마 주민 대다수는 인도유럽인으로 가장 중요한부류는 이탈리아 중부의 라틴인이다. 이 라틴인들이 세운 국가가 바로 로마다. 기원전 8세기부터 로마에는 새로운 이민의 물결이 이탈리아를 향해 들어왔고, 이민을 오게된 이들은 문명을 발전시켰으며, 기원전 7세기쯤 이들은 도시 국가를 세웠다. 당시에는 왕권이 약해서 도시 국가들로 분열되었다가 이후 로마가 일어나면서 도시국가들이 차례대로 정복당한다.

 

기원전 753년에 로마가 건립되었으며, 왕정 시대를 열었다. 왕정시대를 연 이들은 에트루리아인들이었으며, 기원전 510년에 귀족들의 봉기로 에트루리아 왕조가 명말했다. 그 후 두 세기 동안 로마는 내부의 계급투쟁과 외부로의 영토 확장에 몰두 했다. 에트루리아 왕정 시대가 끝나면서 로마에서는 이른바 공화국 시대에 접어들었다. 이 시기 로마에는 왕이 존재하지 않았고, 대신 두 명의 집정관이 임기 1년간 국정을 살피는 식이었다. 하지만 계급적으로 정치적 권한을 가진 원로원의 구성원은 모두 귀족이었고, 이에 따른 내부의 계급적 갈등이 심각했다. 즉 로마의 공화정은 실질적으로 귀족 공화정이었다.


 

이 시기 로마는 정복 전쟁을 벌였으며 영토를 확장했다. 기원전 5세기와 4세기 동안 로마는 현재의 이탈리아 반도를 정복했고, 과거 자신들의 뿌리였던 그리스도 정복했다. 기원전 3세기에는 지중해 서부의 통제권을 놓고 카르타고 제국과 두 번의 큰 전쟁을 치렀다. 카르타고와의 전쟁은 바로 포에니 전쟁인데 100년에 걸쳐 모두 세 차례 일어났으며, 이 전쟁에서 우리가 아는 카르타고의 장수 한니발이 코끼리를 타고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기 까지 했다. 한니발에게 많은 영토를 정벌 당하자 로마인들은 명장 스키피오를 지도자로 선출했다.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는 기원전 202년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 군대에 맞서 승리했다. 이후 한니발은 패배의 굴욕을 참지 못하고, 1년 뒤에 자살한다.

 

100년간 전개된 포에니 전쟁은 기원전 146년 로마가 카르타고를 멸망시키며, 로마의 승리로 끝났다. 이로써 로마는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세 대륙을 장악한 지중해의 맹주로 성장했으며, 이에 따라 로마 제국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 로마제국 시대에는 반란이 끊이질 않았다. 노예들의 반란이 자주 일어났으며, 계층들의 갈등도 극심했고, 대표적으로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은 자유를 위한 투쟁으로 이후 후세대들에게 많이 알려진 바 있다. 이 반란은 실패했지만, 귀족 중심의 로마 지도층에게 막대한 충격을 주기엔 충분했다.


 

스파르타쿠스의 반란을 진압한 로마는 정계에 세 명의 인물을 등장시켰다. 스파르타쿠스 반란 진압에 공을 세운 크라수스, 해적 소탕에서 공을 세운 폼페이우스, 몰락 귀족 가문 출신의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이들이 바로 로마 제국의 3두 정치체제를 구축했다. 당시 로마는 내전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내전에서 갈리아를 정복했고, 이후 자신의 경쟁자인 폼페이우스의 군대를 무찌르고 수도 로마로 진군하여 기원전 48년에 종신호민관에 선출됐다. 그러나 그는 4년뒤에 자신의 심복인 브루투스에게 암살당함으로써 생을 마감했다.

 

카이사르 사망 이후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최초의 황제로 등극했고, 동시에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갔다. 로마는 형식적으로 공화정을 유지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전제군주정을 실시했다.다만 옥타비아누스가 선포한 원수라는 칭호는 세습이 되지는 않았다. 이 원수제는 기원전 27년 옥타비아누스가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은 시점부터 시작되어 기원후 284년에 끝났다. 그러나 옥타비아누스의 이런 체제는 스스로 부패와 궁극적인 붕괴의 씨앗을 내포했으며, 경제나 사회 체제도 점차 흔들리기 시작했다.

 

로마 제국의 확장은 기원후 1세기부터 급격히 둔화됐고, 2세기에는 완전히 정지됐다. 영토가 너무 넓어져서 지도층의 단합과 이들에게 바쳐지는 피호민들의 충성은 군대에서의 일반 사병의 희생이 있어야만 가능했고, 이런 시스템은 사치스런 소비와 국가의 후한 보조금이 있어야만 지속될 수 있었다. 당시 로마에는 콜로세움이나 대중 목욕탕, 경기장 등 온갖 오락 시설 및 유흥시설들이 로마 제국에 건설됐지만, 그에 따른 재정 부담이 경제적으로 위태로울 정도로 심각했다.

 

로마 제국의 군사적 하락은 378년 현 불가리아의 아드리아노플에서 동로마제국의 전체 야전군이 고트족에게 패배하면서 확실히 나타났다. 당시 로마는 동부는 비잔틴 제국이라 불렸고, 서부는 서로마 제국이라고 불렸는데, 로마는 이민족들의 끊임없는 침입 하에 있었다. 410년 서고트인들이 로마를 함락시켰고, 455년에는 반달족이 다시 로마를 함락시켰다. 이어서 476년 게르만족 오도아케르가 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를 내쫓으면서 서로마 제국이 몰락했다. 이렇게 해서 로마 제국은 역사 속에서 사라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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