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광주의 대학살자 전두환이 죽었습니다. 전두환은 1979년 12.12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았고, 서울의 봄이 일어나자 광주에서 광적인 학살을 자행했습니다. 광주에서 수백 수천 명을 학살하고, 수많은 민주투사들을 박정희가 했듯이 잡아다 고문하고 반병신 만들고 죽인 그가 그리고 수만 명을 삼청 교육대로 보내 인권유린을 자행했던 그가 오늘 죽었습니다. 그는 끝끝내 반성하지 않았고, 마르지 않는 29만 원으로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야할 부분이 있습니다. 전두환의 신군부를 지원해준 세력은 누구인가요? 바로 미국이었습니다. 미국은 대한민국의 군사정권을 승인했고, 그 결과 광주 학살이 일어났습니다. 이 광주 학살은 사실상 미국의 직간접적인 지원없이는 일어나지 못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이 5.18에 미국이 책임이 크다는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나 당시 미국은 캄보디아의 학살자 폴포트를 지원했고, 니카라과의 대학살 세력인 콘트라 반군을 지원했으며, 대한민국 신군부를 지원했습니다. 광주에서 학살을 벌인 전두환이 죽은 오늘 우리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시의적절하게 제가 쓴 책의 내용의 일부를 아래에 인용합니다.

카터 정권 시기 미국의 지원을 받던 대한민국에선 아주 끔찍한 일이 일어났었다. 그것이 바로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이었다. 여기서 카터 정권이 방관한 대한민국의 군사 독재 정권에 대해 간략하게 얘기하겠다. 1948년에 수립된 대한민국에선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1961년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유신 독재 그리고 1979년 12.12 쿠데타로 이어지는 전두환 군사 독재 정권이 존재했다. 1979년 박정희가 부하 김재규에게 살해된 이후 전두환과 노태우를 중심으로 한 하나회 군부가 이른바 12.12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 정부를 수립했다. 이러자 전국적으로 대학생들의 시위가 이어졌는데, 이는 전라도 광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P216

전두환 정권은 1980년 5월 18일 광주에 대규모 군대를 보내, 이른바 폭도 내지는 빨갱이 사냥에 나섰다. 전두환이 보낸 군대의 잔혹함이 극에 달하자, 광주시민들은 총을 들고 무장하여 계엄군에 맞서 싸웠다. 1871년 당시 파리코뮌에서 압제자에 맞서 봉기했던 파리의 시민들처럼 말이다. 광주민주화운동은 전두환이 대규모의 군대와 탱크까지 동원하면서 아주 잔혹하게 진압되었고, 그 과정에서 최소 수백 명이(많게는 수천 명)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여기서 미국의 카터 정부는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 미국은 전두환이 광주에서 시위가 확산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들이 시민군을 진압하기를 원했으며, 신군부 세력의 진압 작전을 지원했다. 우선적으로 미국은 한미연합사의 작전통제권하에 있는 20사단의 광주 투입을 승인해주었다. 또한 미국은 신군부가 광주의 진압 작전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오키나와 기지에서 조기경보기 2대와 필리핀 수빅 만에 정박 중이던 항공모함 코럴시호를 한국 근해에 출동시켰다. - P216

미국에게는 한국의 민주화보다 북한으로부터의 안보를 지키는 것이 더 중요했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이런 시각은 2005년 MBC에서 방영했던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도 잘 드러난다. 드라마에서 나온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미국의 보인 반응을 다음과 같았다.

❝글라이스틴(주한 미국대사): 광주 미문화원으로부터 군인들이 착검한 소총을 사용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이미 많은 희생자가 생겼다고 하네요.

브루스터(CIA 한국지부장): 저도 광주에서의 군인들의 진압이 무자비하다는 정보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광주 사태가 더 이상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군대 투입에 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글라이스틴(주한 미국대사): 만약 한국 국민이 전국적으로 군부를 반대하게 되면 일이 커지는데...

브루스터(CIA 한국지부장): 군부에 대한 저항이 생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계엄군이 사태를 진정시킬 겁니다.


브루스터(CIA 한국지부장): 좀 더 지켜보도록 하죠.❞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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