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닉슨, 1970년대 초 데탕트 시대를 열었던 그는 베트남 전쟁을 확전했고, 칠레에서 군부 쿠데타를 일으켰다.)

 

1972년 미국 대통령 최초로 중국의 수도 베이징을 방문하여 마오쩌둥 주석과 저우언라이 총리와 회담을 가졌던 리처드 닉슨(Richard Nixon)은 소련의 브레즈네프 총리와도 회담을 가지며 이른바 데탕트 시대를 열어갔다그러나 그의 전임자 린든 B. 존슨(Lindon B. Johnson)이 매듭짓지 못한 동남아시아의 전쟁은 지속되고 있었다물론 그는 전임자와는 다르게 이른바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이라 하여베트남에서 단계적인 철수를 게시했다그러나 그 과정에서 베트콩을 소탕한다는 목적으로 캄보디아와 라오스를 폭격하고 침략하여 베트남 전쟁(Vietnam War)을 확전하고수십만에 달하는 동남아시아 민간인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972년 닉슨은 이른바 데탕트(Détente)를 진행했지만그런 한편 북베트남에 대한 역대급 대규모 폭격을 감행했다이것이 바로 라인배커 작전이었다하노이와 하이퐁을 포함하여 북베트남 전역이 미국 B-52 폭격기의 폭탄세례를 받았다물론 이 최신식 기계가 공격한 곳 대부분은 군사시설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들이 대다수였다결국 이러한 폭격은 제2의 게르니카 폭격이라는 국제적인 비난에 시달리게 되었고미국에 대한 이미지가 악화되는 영향을 불러왔다특히나 미국의 침략에 맞서 저항하던 북베트남측은 이에대해 강도 높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닉슨은 결국 1973년 1월 프랑스의 수도 파리에서 북베트남과 평화협정을 맺고미군을 베트남에서 철수했다. 280만이 참전하고 최대 54만 9,000명이 주둔했던 미국의 베트남 전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닉슨의 제국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프랑스 좌익성향 단체가 만든 포스터)

 

닉슨이 베트남에서 대량의 학살극을 벌이고 있을 시기 남아메리카 국가중 하나인 칠레에선 세계최초로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그것은 바로 민주적인 선거 절차를 통해 칠레에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된 것이다그 정권이 바로 좌파들이 이끄는 살바도르 아옌데 정부였다. 1970년 9월 국민투표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된 아옌데는 곧바로 칠레를 변혁시키기 위한 정책을 수립하고실행했다과거 연합과일 회사(United Fruit Company)와 같은 미국의 제국주의적 착취 기업들에 대한 국유화와 각종 생산수단의 국유화가 칠레에서 실행됐다미국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구리광산 또한 국유화했다.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하가고 있던 닉슨 정부는 곧바로 아옌데 정부에 대한 정치공작을 게시했다사실 미국은 1959년 피델 카스트로와 체게바라가 쿠바에 사회주의 정권을 세웠을 때곧바로 극우파 망명자들을 모아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키려 했다여기에 기본적으로 경제제재도 당연히 단행했다마찬가지로 1970년 아옌데가 정권을 잡자 미국은 경제제재부터 단행했다그리고 CIA를 통해 칠레의 극우파들에게 막대한 정치자금과 흑색선전도 게시했다미국의 이러한 제국주의적 행위는 이들이 최소한의 도덕성도 무참히 어기면서 시행됐다칠레의 어린이들이 먹는 분유에 대한 경제제재를 시행하여칠레 아동들을 영양실조에 실리게 만들었으며이를 통해 아옌데 정권을 몰아내려했다.

(살바도르 아옌데, 1970년 선거를 통해 집권한 그는 칠레 민중을 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사회주의를 실현하고자 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로 비참한 최후를 맞았다.)

 

더 나아가 아옌데를 암살하기 위해 온갖 정치공작을 일삼았고칠레의 기득권 세력을 이용하여 사회주의 정권을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려 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옌데 정권은 좌파 포퓰리즘적 정책으로 대대적인 지지를 받았고민중들은 우익들의 공작에 맞서 자발적으로 공장의 생산을 증가하고생필품의 사재기를 차단하며우익들의 공작에 맞선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다즉 미국의 경제제재와 정치공작에도 아옌데 정권의 지지율이 상승한 것이다.

 

이러고 있는 사이 미국은 1973년 1월 베트남에서 철군하면서 베트남 전쟁에서 완벽히 패배했다뿐만 아니라 대니얼 엘스버그의 펜타곤 페이퍼 유출과 워터게이트 사건도 터져서 닉슨 정부는 국내외적으로 비난에 시달렸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었을 당시 우리는 중국을 잃었다.”라는 주장을 하며트루먼 정부를 맹비난했던 그는트루먼 못지않은 혹은 그 이상의 반공주의자였다따라서 그는 아옌데 정부를 전복시킬 계획에 착수했는데그것이 바로 군부 쿠데타였다닉슨 정부는 칠레의 군부 인사인 아우구스토 피노체트(Augusto Pinochet)에게 막대한 자금을 풀어쿠데타를 일으켰다그것이 1973년 9월 11일이었다.

(쿠데타군에게 포위당한 아옌데의 대통령궁)

 

닉슨이 주도한 칠레의 쿠데타는 성공적이었다아옌데는 수도 산티아고의 대통령궁에서 AK-47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가 자결했다이렇게 해서 미국의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 정권이 칠레에 등장했다이에 따라 좌파 인사들이 무차별적으로 대규모 학살당했고수십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고문과 감금 그리고 감옥생활을 해야 했다피노체트 정권은 집권 당일에 3,200명의 민간인을 학살하며 시작했고그의 집권 기간 동안 최소 3만 5,000에서 6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결국 닉슨 정부는 쿠데타라는 아주 부도덕하고 반인륜적인 방법을 통해 칠레에서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켰다그렇다면 왜 닉슨은 이런 짓까지 하며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을 전복시킨 것일까이것은 필자의 개인적인 생각이자 해석이지만얘기하자면 베트남 전쟁에서의 굴욕적인 패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이미 1959년 미국 아래에 있는 식민지 쿠바에서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됐고, 1960년대 중남미 국가들에서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 1970년 칠레도 마찬가지였다다른 중남미의 좌파정권들은 CIA의 가벼운 정치공작에 제법 손쉽게 전복시킬 수 있었지만칠레는 아니었다즉 칠레가 제2의 쿠바가 될 것이라는 판단이 닉슨에게 있었던 것이다거기다 국내외적으로 비난받고 규탄 받던 베트남 전쟁은 구정 공세를 기점으로 미국의 패배로 이어지고 있었다따라서 이러한 국제적인 맥락 속에서 닉슨은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쿠데타로 없애고우익 독재정권을 세운 것이다.

(쿠데타쿤과 교전 중이었던 아옌데 대통령)

 

이런 점에서 자칭 데탕트를 주도했던 미국의 닉슨 정부는 매우 폭력적이고 파시스트적인 수법으로 사회주의 정권을 짓밟았다또한 전임자가 일으킨 베트남 전쟁에서 B-52 폭격기와 같은 최신식 전쟁기계들을 이용하여 무수히 많은 민간인을 대량 학살했다이것이 바로 미국 닉슨 정부가 저지른 또 다른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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