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유인선 교수의 저서 베트남의 역사에 나온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베트남의 역사는 거의 수천 년의 역사다. 이들 역사의 시초는 어디일까. 한국에는 고조선부터 시작하는 단군신화가 있다. BC 2333부터 시작한 것으로 표현되는 고조선의 역사를 통틀어 한국에서는 4~5천년의 역사라고 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BC 660년 초대 진무 천황부터 잡아서 2,600년 혹은 3,000년의 역사라 표현하기도 한다. 실제로 진주만 기습 공격 이후 히틀러가 미국에 선전포고 하면서 일본은 3천 년간 패배하지 않은 나라다.”라는 얘기를 했을 정도로 그 연대기는 나름 유명하다.

 

물론 한국의 단군신화도 일본의 진무천황 신화도 어디까지나 신화에 기반을 둔 이야기일 뿐이고, 실질적인 사료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고대역사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실질적인 연대는 그거보다 더 낮은 편이며, 박노자 교수나 이문영 작가의 주장처럼 고조선의 실질적 연대는 BC 1500년 전이다. 일본의 진무천황 신화 역시 그러하다. 일본의 다이쇼 덴노의 4남 미카사노미야 다카히토 친왕(1915~2016) 또한 진무 덴노는 신화이지 실존 인물이 이니다라고 주장했다가 공산주의자 왕자님이라는 비난을 듣기도 했었다. 비록 사료적인 부분에선 미약한 근거를 가질지라도 어쨌든 한국도 일본도 고대역사의 기원을 찾는다.

 

그렇다면 한국과 비슷한 역사를 가진 베트남은 어떠할까? 베트남 또한 자신들만의 건국설화를 가지고 있다. 베트남 건국설화에 따르면 중국신화에 나타나는 신농씨의 3대 후손인 제명이 제의를 낳고 얼마 후 남방으로 순행하여 오령에 이르렀는데, 거기서 제명은 부 띠엔(Vu Tien)의 딸을 만나 록 뚝(Loc Tuc)을 낳았다. 한편 제명은 제의에게 북방을 다스리게 하는 한편, 록 둑을 낀 즈엉 브엉(Kinh Duong Vuong)’에 봉하여 그에게 남방을 다스리게 했는데, 이 나라가 바로 씩 꾸이 꾸옥(Xich Quy Quoc)이라 불렸다.

 

낀 즈엉 브엉이 왕이 된 연대는 BC 2879년이다. 이것은 한국의 단군신화보다 500년이나 빠르다. 예외적인 얘기로 북한에서는 고조선의 역사를 BC 3000년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것 역시 근거가 없는 이야기이며 과장된 역사다. 마찬가지로 베트남의 BC 2879년 역시 민족주의를 고취시키려는 차원에서 과장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낀 즈엉 브엉은 동 딘 꿘(Dong Ding Quan)의 딸을 아내로 맞아 후일의 락 롱 꿘(Lac Long Quan)을 낳았는데, 락 롱 꿘은 여러 제도를 완비하고 얼마 후 바다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가 없는 공백기를 틈타 제의의 아들 제래가 아내 어우 꺼(Au Co)를 데리고 남방으로 침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락 롱 꿘이 돌아와 어우 꺼를 보고 유혹하여 아내로 삼았다고 한다. 이후 어우 꺼는 커다란 알을 하나 낳았고, 그 알에서 100명의 아들이 태어났다. 이후 어느날 락 롱 꿘이 어우 꺼에게 본인은 물이 종족이고 어우 꺼는 산이 종족이니 헤어지자고 했는데, 아들 100명은 두 집단으로 나뉘어 50명은 어우 꺼를 따라 산으로 가고, 다른 50명은 락 롱 꿘을 따라 바다로 갔다.

 

어우 꺼를 따라 산으로 간 50명의 아들 중 가장 강했던 훙 브엉(Hung Vuong)이 나라 하나를 세웠는데, 그 나라 이름이 바로 반 랑(Van Lang)이라고 불렸다. 오늘 날 베트남 사람들은 락 롱 꿘과 어우 꺼를 그들의 시조로 생각하고, 훙 브엉을 건국의 아버지로 여긴다. 마치 우리가 단군신화에서 환웅이 곰에서 사람으로 변한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왕검을 낳았다는 믿기 힘든 내용을 우리 역사의 시초로 받아들이듯이 말이다.

 

이렇게 건국되었다고 알려진 반 랑은 기원전 세기 중반에 멸망할 때까지 18명의 왕이 있었다고 한다. 반 랑의 역대 왕은 모두 훙 브엉으로 불렸고, 락장과 락후의 도움을 받아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며, 피지배층은 락민으로 그들의 생업은 초보적인 수준의 농업과 어로였다. 베트남의 역사서에 따르면 반 랑 왕국은 BC 257년에 멸망했는데, 안 즈엉 브엉(AN Duong Vuong)이 어우 락 왕국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 연구에 의하면 반 랑의 멸망이 BC 221년 진시황의 중국 통일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반 랑의 연대기에 대해 더 이야기하겠다. 반 랑의 전설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배하던 19세기 말 베트남 북부의 타인호아(Thanh Hoa) 성의 동 선(Dong Son) 지방에서 발견된 BC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정교한 청동기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입증되었다. 따라서 반 랑은 구전되어서 내려져온다는 설화도 신화적인 성격이 강한데다가 각 왕들의 재위기간이 너무 길다는 점 때문에 베트남 학계에서는 반 랑이 대체적으로 기원전 7세기경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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