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길 한반도는 냉전이 끝나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1948년 남한과 북한에 두 개의 국가와 두 개의 체제가 형성된 이후부터 한반도는 지금까지 대략 73년간 분단되어 있는 상태다. 1948년부터 현재까지 북한과 남한 국경선에서 크고 작은 교전부터 일촉즉발의 전쟁위기까지 간 적이 있었다. 1950년 6월 25일에 시작된 한국전쟁은 남한과 북한과의 전쟁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거대 진영이 맞붙는 국지전으로 발전했었다. 물론 한국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면전은 1953년 휴전 협정이 성사된 이래로 일어나지 않았지만, 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적은 적잖게 있었다.
실제로 전쟁이 일어날 뻔 했던 위기는 지금으로부터 11년 전에도 있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북한군이 대한민국 서해에 있는 섬 연평도에 170발의 포격을 가했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 2명과 한국군 2명이 전사했으며, 북한군의 포격을 받은 가옥과 시설이 파괴되었다. 이 사건에서 한국인들이 느낀 충격과 공포는 상당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 또한 전쟁이 날거라는 두려움을 느꼈다. 이와 더불어 이 사건으로 인해 “김정일 돼지를 죽여야 한다.” 혹은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적”이라는 반북 반공의식이 생겼을 정도였다. 거기다 당장이라도 전쟁이 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정부에서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 몇 시간 뒤 브리핑을 통해 “북한이 2차 도발을 할 시에 전쟁이 선포된다.”는 발표를 했었다.
이러한 분위기였기에 전쟁이 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이던 로버트 게이츠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대한 군사적인 보복을 계획했었다.”고 폭로했었고, 그것을 미국이 중지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한반도는 전쟁이 일어날 뻔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 외에도 1968년 김신조 청와대 습격사건과 울진 삼천 무장공비 사건,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1999년 제1차 연평해전과 2002년 제2차 연평해전, 2015년 서부전선 포격 사건 등 양측의 교전은 많았다. 양측의 긴장관계는 심각해져서, 2017년 여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북한을 겨냥하며 “화염과 분노”를 맛볼 것이라고 북한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도널드 트럼프의 이러한 발언들인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상대방에 대해 위협할 때 자주 보이는 모습이기도 하다.
양측의 긴장관계가 높아질 때, 북한 내부에서 드러나는 구호나 발언들이 있다. 바로 반미주의적인 발언이나 구호들이다. 그렇다면 왜 북한은 반미국가인 것이고, 그러한 반미주의적 구호나 행동들이 통상적으로 있을 수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러한 물음을 찾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서 이승만식 북진통일을 원하는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들은 “북한이 반미적 구호를 외치는 것과 그들이 그런 구호를 외치는 이유”에 대해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 이것은 대한민국에 대해 ‘자유’나 ‘민주주의’와 같은 용어들을 이용해가며, 친미 혹은 숭미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집단들 또한 마찬가지다.
내가 생각하기에 북한이 반미국가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반도의 근현대사와 국가가 존속해오면서 겪어야 했던 일련의 과정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북한이 자주 내세우는 명분 중 하나는 자신들의 항일투쟁 정통성에 있다.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은 1931년 만주사변부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는 시점까지 항일독립운동을 해온 인물이었다. 그랬기에 그가 평양에서 소련 군정사령관 치스차코프와 같이 연단에 섰을 때, 놀라움과 더불어 환영의 목소리도 들렸던 것이다. 즉 그런 김일성이 1950년에는 미국과 그 제국주의 군대까지 참전한 상황에서 북한이라는 나라를 지켰다. 이런 점에서 북한이 생각하는 한국전쟁은 이른바 조국해방전쟁인 것인데, 여기에는 1945년 해방 이후 남한에 미군정이 들어오면서 표출된 제국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모순점들이 폭발한 점들도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의 저명한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Bruce Cummings)는 한국전쟁을 ‘북한의 민족해방전쟁’이라는 점에서 해석하기도 했다. 즉 북한의 경우도 그런 맥락에서 한국전쟁을 해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한국전쟁의 경우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측 기밀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먼저 일으킨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지만, 어찌됐든 그 전쟁 자체는 브루스 커밍스가 지적한 모순점들이 분출하여 전쟁의 상태로 발전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한국전쟁이 전개된 3년이라는 기간 동안 북한은 미공군의 잔혹하고 야만적인 폭격을 경험했다. 이것은 사실상 일방적인 민간인 학살극에 가까웠다. 미공군이 타격하는 곳들 대다수가 군사시설이 아닌 민간시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유럽과 태평양에서 사용된 네이팜 폭탄도 북한에 대대적으로 투하했다.
미국이 한국전쟁 기간에 투하한 폭탄은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 본토에 투하한 폭탄량에 최소 3배 이상이었다. 총 63만 5,000톤이나 되는 폭탄이 북한에 투하됐다. 여기에 북한에 투하된 네이팜 폭탄 3만 톤을 추가하면 66만 5,000톤이 된다. 민간인 사망자도 극심했다. 이런 야만적인 전략 폭격을 계획했던 커티스 르메이의 말에 따르면 대략 100만 명 이상의 북한 민간인이 폭격으로 사망했다. 또한 미국은 한국전쟁 초기 마오쩌둥이 병력을 파견했을 때, 핵폭탄 사용도 고려했었다. 물론 이것은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이던 더글라스 맥아더의 독단적인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 전쟁의 구도는 국제적인 시각에서 제국주의 대 사회주의적인 구도를 분명히 가지고 있었다. 한국전쟁에 지원군을 보냈던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한반도에서 북진하는 유엔군이 만주에서 공격하고, 대만으로 피신한 장제스 군대가 미군과 연합하여 중국 영토에 상륙작전을 개시하며, 인도차이나에서 식민지 유지를 위해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제국주의 전쟁을 치르던 프랑스가 중국 남부지역을 위협할 것이라 우려했었다. 이러한 구도를 보았을 때, 당연히 북한이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 혹은 민족해방전쟁으로 볼 이유는 충분했던 것이다.
미군의 폭격은 극심했고, 이런 민간인 학살은 북한 사람들이 반미적인 정서를 불붙히는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이와 더불어 전쟁 초기 한국 우익 청년단이 저지른 신천 양민 학살사건과 각종 민간인 학살들도 북한사람들의 반미정서를 자극했었다. 이러한 반미정서는 전쟁이 끝난 이후 더 발전되었으며, 지금까지도 유지되어 온 것이다. 특히나 북한이 전후 재건 이후 군의 현대화에 있어 대공 방어망을 강화했던 이유에는 미군의 야만적인 무차별 폭격도 영향이 컸다. 거기다 한국전쟁 이후에도 미국은 북한을 압박하는 정책들을 펴왔으며, 베트남 전쟁이 한참이던 1968년 구정 공세로 맥이 빠져 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선제 핵공격’을 운운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후 대통령이 된 리처드 닉슨 또한 당연히 북한을 위협하는 모습을 보였다.
1990년대 북한은 참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GDP가 박정희 정권보다 앞섰던 북한은 1980년대부터 경제가 점차 흔들렸고, 동구권 몰락과 더불어 소련이 해체 되면서 경제적으로 위급해졌다. 거기다 홍수를 비롯한 자연재해가 겹치고, UN을 통한 미국의 경제제재가 지속되면서 결국 무수히 많은 사람이 굶어 죽는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겪어야 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 전역을 강타했고, 북한에서 삶의 질이 좋은 평양마저도 고난의 행군으로 고생을 했다. 일각에서는 고난의 행군 책임을 김일성과 그의 아들 김정일에게 돌리지만, 이러한 책임론은 매우 의미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북한 사람들의 생각과 전혀 맞아 떨어지지도 않으며 설득력도 매우 부족하다.
영화 강철비2에서 나온 것처럼 실제로 북한은 소련 해체 이후 미국과의 수교협정을 요구했다. 여기서 이를 완벽히 무시한 대상은 바로 미국이었다. 거기다 1994년 전쟁 위기에서 미국 클린턴 행정부는 소말리아 사태 개입이나 유고 내전 개입처럼 북한과 실질적인 전쟁을 치르려 했다. 아니 베트남 전쟁이나 걸프전쟁처럼 침략전쟁을 실행하고자 했었다. 그 시기 클린턴 정부는 팀스피리트 훈련을 재개했다. 팀스피리트 훈련엔 미군과 한국군 20만이 동원되었고, 평양에 대한 핵폭격 훈련, 원산과 흥남항에 대한 대규모 상륙훈련 등이 진행되었는데, 이러한 대북 도발은 예전부터 미국과 한국이 자주 해오던 것이었다. 따라서 이런 맥락에서 북한이 선택한 길이 바로 핵무장이었다.
이러한 역사적 맥락이 있기에 북한이 미국에게 적대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적으로 북한이 반미주의를 내세우는 것도 앞에서 설명한 역사적인 맥락과 더불어 정치적이고 국제적인 상황 속에서 알 수 있다. 사실 한국에서 이른바 대남도발로 알려진 사건들의 실질적인 원인을 판단해보면 미국의 제국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대급부에서 행해진 일련의 사건들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글을 본 아스팔트 태극기 부대나 수구세력들은 ‘이런 빨갱이 새끼’라고 하며 욕과 비난을 일삼겠지만, 그들이야 말로 이러한 역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몰역사적 시각을 가진 것이며,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제국주의자들이다. 지난 해 미국과 이란의 전쟁 상태에 갔을 때, 호르무즈 해협에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한국군을 파병해야 한다.” 주장하며, 반전시위를 하던 이들을 빨갱이 혹은 종북이라 운운했던 이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아제국주의의 위험성과 폭력성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한반도의 긴장관계와 평화수립을 위해선 북한이 왜 이러한 결정을 했고, 왜 이러한 상황에 놓였는지를 이해해야 한다. 그러한 이해가 없으면 상호존중과 이해관계 속에서의 평화체제 건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우리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