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존 톨랜드의 저서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2에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작성되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전개양상은 엄밀히 따지자면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중심이 된 추축국과 미국·영국·소련·중국·프랑스 등이 중심이 된 연합국의 전쟁이었다추축국 안에도 헝가리나 루마니아 그리고 불가리아 등에서 차출된 그 나라 병력들이 있었지만그래도 역사적인 맥락에서 독일의 동맹세력으로써 알려진 이는 바로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일 것이다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추축국(Axis Power)은 독일·이탈리아·일본이 중심적인 나라들이었다그러나 일본은 지구반대편에 있었고지정학적인 부분에서 나치독일의 동맹국은 사실상 이탈리아 밖에 없었다.

(무솔리니와 히틀러, 무솔리니는 히틀러의 파시스트 선배다. 물론 1930년대 히틀러의 독일이 성장하고 군사력을 발휘하면서 그 위치는 히틀러가 더 앞서게 됐다.)

 

그러나 독일의 동맹국인 이탈리아는 군사적인 측면에서 매우 무능력한 군대였다2차 세계대전에서 이탈리아의 침략은 거의 다 실패를 맞보아서 독일군의 지원을 받아 유지하는 신세였다대표적으로 이탈리아의 알바니아와 그리스 침공은 이탈리아군의 무능력을 너무나도 잘 보여주는 사례였다또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군은 게릴라전을 전개하던 티토의 빨치산에게도 연전연패를 맞보았다북아프리카전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이탈리아군은 영국군에게도 계속 패배를 맞보았다.

(오토 슈코르체니, 히틀러가 아끼던 군인으로 ss친위대 소속이었다. ss에 있으면서 여러 특수작전을 전개했었다.)

 

이처럼 이탈리아군은 제2차 세계대전 와중에서 독일군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독일군의 지원에 의존하고 있던 형편이었다북아프리카 전투가 지속되고 있던 1942년과 1943년 이탈리아는 영미 연합군의 대대적인 폭격을 받고 있었다거기다 독일의 롬멜 장군이 투입됐던 북아프리카 전투도 1943년 5월에 연합군의 승리로 끝났다그로부터 2개월 뒤인 7월 연합군은 이른바 허스키 작전(Operation Huskey)을 감행하여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1943년 7월 24일 연합군이 이탈리아 본토에 위협을 가하자 이탈리아의 국왕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를 포함한 국가 파시스트당 내부에서도 무솔리니를 축출하려고 했다결국 왕에게 사임 요청을 받은 무솔리니는 실각했고피에트로 바돌리오 원수를 행정수반으로 임명됐다이탈리아의 지도자가 된 바돌리오는 두 달 뒤인 1943년 9월 8일 연합국과 휴전협정을 맺었다.

(무솔리니를 구출하기 위해 투입된 특공대, 여기에는 독일 공수부대인 팔슈름 야거도 투입됐다.)

 

당연히 무솔리니는 체포되었다체포된 무솔리니는 로마에서 161km 떨어진 아펜니노 산맥의 높은 봉우리인 그란사소 꼭대기 부근의 한 호텔에 감금되어 있었다거기다 연합군은 이탈리아 수도 로마를 향해 진격해 나갔다따라서 히틀러는 비록 도움은 안 되는 인물 무솔리니를 구출하기로 결심한다이것은 아돌프 히틀러 입장에서도 이 선택지 밖에 없었기 때문이었고그렇게 해서라도 연합군의 진격을 막아야 했다.

(무솔리니가 감금되어 있던 호텔과 인근 지역 위치)

 

무솔리니 구출작전을 위해 히틀러는 SS친위대 대위인 오토 슈코르체니(Otto Skorzeny)를 불렀다그는 키 190cm인 인물로 특수작전에 매우 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오토 슈코르체니 휘하의 특공대가 편성되었다이 특공대는 독일 공수부대인 팔슈름 야거 출신들이었다히틀러의 명령을 받은 오토 슈코르체니와 107명의 특공대는 9월 12일 일요일 오후 1시 글라이더에 오라 이륙했고무솔리니가 감금되어 있던 곳에 착륙했다글라이더에서 나온 독일 군인 4~5명이 기관총을 설치하였고슈코르체니의 글라이더는 호텔에서 18m도 안 되는 거리에 착륙했다슈코르체니의 부대원들은 저항하는 경비병력을 쓰러뜨리고 무솔리니가 있는 방문을 열고 그를 구출했다.

(호텔 근처에 착륙했던 독일 특공대의 글라이더)

 

무솔리니를 만난 오토 슈코르체니는 다음과 같이 말했는데그것은 지도자가 나를 보냈다당신은 이제 자유다였다이를 들은 무솔리니는 슈코르체니를 껴안았다고 한다또한 무솔리니는 나의 친구 아돌프 히틀러가 나를 버리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특공대원들에게 엄청난 감사의 표시를 했다고 한다무솔리니를 구출한 특공대원들은 목초지 경사면에서 겨우 안전하게 착륙한 피젤러슈토르히 소형 비행기에 올랐고이륙 과정에서 불가피할 추락의 위험이 있었지만비행기는 이륙했다.

(교전을 치르며 호텔 진입을 시도하는 독일 특공대)

 

구출된 무솔리니는 9월 14일 아침 일찍 동프로이센으로 향하여 히틀러를 만났고매우 고맙다는 표시를 히틀러에게 했다이 작전을 성공시킨 오토 슈코르체니는 영원히 히틀러가 아끼는 군인이 되었다거기다 무솔리니가 구출되자 독일인의 사기가 올랐다물론 히틀러가 그를 구출한 것은 연합군의 진격을 막기 위한 목적이 강했다따라서 구출된 무솔리니는 이탈리아 북부를 중심으로 이탈리아 사회 공화국 즉 살로 공화국을 수립했다.

(구출되어 비행기에 오른 무솔리니, 오토 슈코르체니와 함께 찍었다.)

 

그러나 살로 공화국은 군대가 그리 많지 않았다따라서 이탈리아 전선에서 연합군에 맞서 싸웠던 대부분의 군대는 독일군이었다거기다 1941년에 점령되었던 유고슬라비아에선 티토가 이끄는 빨치산이 무솔리니의 권력 공백기를 틈타서 유고슬라비아 내에 있던 이탈리아군 거점 지역들을 단숨에 접수해버렸다따라서 거기서도 나치 독일은 이탈리아군을 버려야 하는 상황에 놓였었다결국 살로 공화국은 제대로 된 싸움 한번 해보지 못하고 독일 꼭두각시 노릇(그 이전부터도 사실상 꼭두각시였지만)을 하다가 1945년 4월 25일 공식적으로 사라졌다그리고 무솔리니도 이탈리아 빨치산 유격대에 체포되어 총살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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