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선생이 쓴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가 출간되던 1974년은 박정희가 유신헌법을 선포하고 계엄령을 선포하면서까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나가던 시절이었다. 1961년 5.16일 그가 단행한 군사 쿠데타는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삼을 정도로 1940,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매카시즘 그 이상의 반공주의 정신을 국민들에게 강요했다. 이에 따른 억압과 공포는 지식인들에게 말도 못했고, 리영희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적 사상적 암흑기에 가까웠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혁명적 농민 군대의 승리로 끝나고 난 뒤, 박정희는 이른바 긴급 조치 9호를 발동하여 민주화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가속화했다.
사상의 은사라고 불리는 리영희 또한 군사정권에 의해 감옥살이를 하게 됐다. 정부가 그를 구속시킨 수단은 바로 ‘반공법(Anti-Communist Law)’이었다. 특히나 그가 쓴 『전환시대의 논리』에는 베트남 전쟁에 대한 서술과 더불어 또 다른 서술이 문제가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당시 우리가 적으로 여기던 중공 그러니까 현대중국에 대한 서술이었다. 그는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당시 중공이라고 불리던 국가에서 단행된 일들과 그 나라의 근현대 역사를 민중혁명사적인 관점에서 해석했고, 당연히 반공을 강요하던 정부는 이것을 빌미로 반공법을 적용시켜 그를 감옥에 보냈다.
그 외에도 리영희는 『중국 8억인 과의 대화』에서 중국 일반인민들이 현재 미국 사람들 보다 보편적으로 더 많은 의료 혜택을 받는다고 서술했으며, 1960년대 마오쩌둥이 단행한 이른바 문화대혁명을 새로운 혁명 사회를 창조하는 것으로써 해석했었다. 물론 문화대혁명의 경우 여러 논란과 더불어 현재 중국 공산당에서도 그 과오를 인정하고 있기에, 균형적으로 보아야할 역사지만, 당시 리영희의 시각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제시라는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그의 저서 『전환시대의 논리』를 보면 마오쩌둥의 중국의 탄생과정을 생생히 알 수 있다. 그가 보기에 당시 한국 사람들이 싫어하던 중공의 역사는 민중혁명사였다. 1842년 아편전쟁과 같은 서구열강의 침략에서부터, 1850년대 태평천국운동, 1900년 의화단 운동, 1911년 손문의 신해혁명과 1912년 중화민국의 탄생과 같은 중국 근현대사의 일련의 사건들이 반봉건 반외세에 입각한 투쟁들이었던 것이다. 이후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중국 지역 점령과 1919년 5.4운동 그리고 1921년 중국 공산당의 탄생 또한 이런 민중혁명의 과정속에서 일어난 것이었으며, 손문 사망 이후 장제스가 일으킨 제1차 국공내전도 중국인민의 민중투쟁이었던 것이다.
1931년 일본의 만주사변과 1937년의 중일전쟁도 그러한 민중혁명적 성격을 띄고 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어난 제2차 국공내전도 민중투쟁이었고, 그 민중투쟁의 최종 결과물이 바로 1949년에 건국된 중화인민공화국 그러니까 중공이라는 것이 리영희의 주장이었다. 당시 이러한 관점은 중국을 단순히 북한 괴뢰의 협력자 혹은 빨갱이로만 배워왔던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리영희의 일방적인 주장만은 아니었다. 그는 상당히 많은 외국자료들을 출처로 삼아 중국의 이러한 민중투쟁사를 조명해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1980년대 학생운동권에게 사회주의와 마오쩌둥 그리고 중국혁명을 재해석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런 점을 생각해 보았을 때, 중국 혁명에 대한 리영희 선생의 시각은 상당히 충격적이었고, 새로운 전환점을 제시해준 위대한 흐름이었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