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 전집 6 : 쏘련기행 중국기행 외 이태준 전집 시리즈 (소명출판) 6
이태준 지음, 상허학회 엮음 / 소명출판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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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러시아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했다. 히틀러 파시스트 도당의 침략을 받았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입었지만,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엄청난 전후재건의 속도를 보여줬다. 소련이 전 세계에 보여준 변화상은 놀라운 수준이었고, 이념적으로 대립하던 서방 제국주의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냉전시기 소위 반공 제국주의 진영에 섰던 나라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보여준 소련의 놀라운 변화상을 자랑할 이유가 전혀 없었으며, 오히려 소련을 경제적으로 고립시키고자 했다. 이는 당연히 1948년 정부수립부터 강력한 반공국가를 유지해왔던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1948년 반공주의자 이승만을 중심으로 탄생한 대한민국은 분명히 좌익이라는 존재와 가치를 파리나 벌레만도 못한 대상으로 취급하던 극단적 매카시즘 국가였지만, 정부가 탄생하기 이전까지 한반도의 민중 70%가 사회주의를 지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 남한에서 친일 경찰에 탄압을 받으면서 많은 좌익인사들이 월북의 길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또 많은 이들이 월북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월북을 선택했던 이들 중에는 20세기 한국 문학의 상징적 지표인 이태준이 있었다. 해방 이후 민주주의민족전선에서 문화부장으로 활동했던 이태준은 좌우대립이 남한 내에서 극명하게 나타나던 19468월 월북했다. 월북을 하게 된 이태준은 북한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다른 길에 오르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북한에서 만든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써 소련을 여행하고 오는 일이었다. 이 여행 과정에서 이태준은 자기가 직접 보고 체험하고 느낀 것을 기록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쏘련기행(The Trip of The Union of Socialist Republics)’이었다.

 

이태준 작가가 쓴 쏘련기행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는데, 첫 번째는 19468월부터 10월까지 방소문화사절단의 일행으로 경험했던 소련 기행문이고, 두 번째는 10월 혁명 32주년을 맞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쪽 일원으로 방문했을 당시의 소련 기행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946년 미군정의 탄압을 피해 월북하게 된 이태준은 월북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곳바로 소련여행을 떠나게 됐다. 소련에 가기 위해 평양에 있는 비행장에서 비행기를 타게 된 이태준은 비행기에 탑승하기 전 소련 제1극동전선군의 제25군 사령관이자, 소련군정 최고 사령관인 치스차코프로부터 자기 나라에 가면 무엇보다 그동안 일본의 대소선전이 옳았는가, 옳지 못하였는가를 보아 달라는 말을 듣게 된다.

 

이태준이 소련을 처음 방문하던 1946년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이 점차 가속화되고 있던 시기였다. 19463월 영국의 정치인이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시 지도자였던 윈스턴 처칠이 미국 미주리주 풀턴시에서 발트 해의 슈체친에서 아드리아 해의 트리에스테까지 유럽 대륙에 철의 장막이 드리워져 있다라는 이른바 철의장막(Iron Curtain) 발언을 하면서 미국과 소련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었다. 아직은 미국의 반소 반공정책인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Truman Doctrine)이 발표되진 않은 시점이었지만, 세계 곳곳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갈등은 심화됐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을 맞은 한반도 또한 마찬가지였고, 특히 한반도 이남을 점령한 미국은 자신들이 점령한 지역에 친미정권을 세우고자 했으며, 여기서 친일파들의 힘을 빌렸다.

 

35년간 조선을 식민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1917년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으로 탄생한 국가 소련을 매우 적대시했다. 1920년대 이른바 문화통치 시기에 접어들면서 식민지 조선에도 많은 사회주의 단체들과 학생운동들이 일어났고, 일제는 이들을 탄압하는데 온 힘을 다했다. 이들은 민족주의 계열보다 사회주의 운동을 탄압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왜냐하면 사회주의는 노동자·농민·프롤레타리아트의 단결을 주장하며, 대중과 민중속에 파고들어 일본 제국주의 체제의 근간을 흔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은 사회주의자들이 동경하는 소련을 당연히 악마화했다. 일본 제국주의에 부역하는 친일파 민족반역자세력도 그 당시 이 흐름을 따랐다.

 

일제가 패망하고 나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해있던 친일파들이 미군정과 결탁하였던 친일파들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제국주의 국가 미국에 부역하며 반소선전과 반공선전을 일삼았다. 즉 해방 후 미군정을 등에 업고 반소선전을 했던 친일파들의 거짓말과 선전은 35년간 조선을 지배했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했던 반소선전과 일맥상통했다. 필자가 보기에 소련군정 최고사령관 치스차코프가 이태준 작가에게 자기 나라에 가면 무엇보다 그동안 일본의 대소선전이 옳았는가, 옳지 못하였는가를 보아 달라고 말했던 것은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해방 후 친미 제국주의자들이 하는 반소선전의 거짓말이 어떤 것인지를 소련에 가서 직접 알아보라는 얘기였던 것이다.

 

이태준이 소련을 처음 방문하던 1946년 소련의 상황은 솔직히 말하자면 아주 처참했다. 무엇보다 히틀러 파시스트 도당이 일으켰던 독소전쟁으로 모든 것이 초토화 된 상황이었고, 4년간의 반파시스트 항쟁에서 2700만이나 되는 소련인민이 죽었다. 나치가 소련을 침공하며 저지른 만행은 씻을 수 없는 인류 최악의 전쟁 범죄였다. 그러나 단결한 소련 인민들은 침략자 히틀러에 맞서 군대와 인민이 단결했고, 소련의 육··공군은 파시스트 침략자들을 영웅적으로 무찔렀다. 책의 저자 이태준은 10월 혁명 32주년에 맞춰 두 번째로 소련을 방문했을 때, 모스크바 붉은광장에서 소련군 퍼레이드를 보게 되었는데, 이들을 본 이태준은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단마다 선두에 말굽소리 달리며 사령관의 열병을 맞이하는 우라!” 소리가 성벽을 진동하며 일어났다. 뒤이어 역사박물관 쪽으로부터 자동차에 실린 낙하산부대와 대지를 뒤흔드는 탱크부대가 들어섰다. 탱크들은 앞에 내뻗은 포열마다 적의 비행기와 탱크를 쳐부순 수효대로 비행기와 탱크의 흰빛으로 그렸는데 하나같이 10여대씩 그린 영웅 탱크들이었다. 서구에서 10여 국가들을 침략하였고 이 위대한 10월에서 탄생했으며 레닌과 스탈린에게 영도되는 쏘련을 감히 유린해 들어오던 히틀러 야만들을 꺼꾸러뜨린 영용한 군대와 병기들이 바로 이 군대와 이 병기들이며 동양에서 반세기 동안 우리 조선을 비롯하여 여러 약소민족들에게 악독한 흡혈귀 노릇을 하던 일제를 쳐부순 것도 저 성스러운 군대와 병기들이었다.”

 

출처 : 쏘련기행 p.222

 

이태준 작가의 말대로 소련의 탱크와 비행기 대포는 히틀러 파시스트 도당을 멸망시킨 일등공신이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소련은 이 전쟁에서 수많은 산업기반이 전시 초기에 파괴되었고, 2700만이나 되는 인명이 이 전쟁에서 죽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났을 때, 소련은 경제적으로 다시 재건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당시 소련의 지도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이른바 전후재건을 위한 5개년 계획에 착수했고, 전쟁이 끝나기가 무섭게 소련인민들은 전후복구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태준이 방문했던 1946년 소련은 분명히 전후재건을 진행하는 중이었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생활을 구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즉 낙후성을 던져버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것을 이유로 들어 간악한 서방 제국주의자들은 반소선전의 목소리를 높였지만, 이들은 항상 편향된 자료와 관점을 가지고 거짓선전을 일삼았다. 그러나 이들은 항상 소련민중이 왜 스탈린과 소련사회를 적극적으로 지지하는지를 놓쳤다. 그것은 바로 소련 사회가 자본주의 국가가 책임지지 않는 의무를 책임지고자 했기 때문이며, 또한 진보적인 성과물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태준은 쏘련기행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민족들의 연맹에의 가맹과 탈퇴는 자유이며 민족들의 선진, 낙후의 차별이 없이 절대평등이 원칙으로, 자민족문화 중심으로의 발전의 자유, 그리고 이런 자유와 평등을 실제화 시키기 위해서는 낙후민족의 경제 상태를 비약시키지 않을 수 없으므로 농본지대를 농공지대화, 혹은 공농지대화의 중대한 과입이 생긴 것이라 한다. 전 연방 내에서 러시아공화국 같은 선진민족으로도 자기만 경공업에까지 손을 대어 인민의 일반 소비면을 윤택하게 해주지 못한 것은, 그래서 외부인들이, “소비에트 인민들의 생활이 무엇이 풍족하냐?”고 성급히 보아버릴 수도 있게 된 원인은, 실상은 16공화국이 다 잘살 수 있는 광범하고 평등한 공업기초에부터 전력을 집중해온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낙후된 민족들이 그동안 얼마나 자라고 있었는가는, 키르키스스탄 공화국이 혁명 전에는 제유공장 1, 치즈공장 1, 제혁공장 2 모두 수공업적인 4개 공장이던 것이 1945년에는 대소 5천 공장이 생기었고, 그중 4백여 공장은 전 연방적으로 유력한 공장들이라 한다. 이 낙후된 농본지대였던 키르키스는 지금 국민경제의 70%가 공업생산에 의존되는 것이라 했고 이런 부력의 비약은 모든 문화의 조건을 또한 비약시켰을 것은 필연의 사실이었다.”

 

출처 : 쏘련기행 p.55~56

 

그의 언급에서 알 수 있듯이 소련은 1930년대 공업화를 통해 이른바 중앙아시아에 있는 연방과 그 약소민족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했고, 자본주의가 하지 않는 사회적 의무를 책임지고자 했다. 의료와 보건은 무상이었으며,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국가가 전액을 지원하는 무상교육을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이러한 무상교육의 혜택은 소련에서 유학하는 외국인들에게도 적용되었고, 이태준이 만났던 소련서 유학하고 있던 조선인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현재까지도 천문학적인 학비를 유학생들뿐만 아니라 자국민에게 요구하는 천박한 자본주의 국가 미국하고는 매우 다른 모습이다. 또한 책에서 나온 소련은 원주민과 유색인종에게 인종차별을 마음껏 발산하던 제국주의 국가 미국하고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인종차별은 철폐되었고, 소련에 사는 소수민족의 권리가 증진되었으며 이들의 교육율도 매우 높았다. 이것이 바로 지금까지도 외면당하는 사회주의 국가 소련의 진실이다. 쏘련기행에선 당시 미국에 살던 아메리카 원주민과 소련의 소수민족들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아주 정확하게 얘기하고 있다.

 

아르메니아의 예레반에서도 보았지만 25(인구)밖에 안 되는 도시에 전문대학이 아홉, 중학교가 60, 영화관과 극장이 열, 이런 고도의 문화시설은 그만한 경제력의 배경 없이는 불가능할 것으로 아르메니아의 단독실력으로는 이런 비약적 건설을 도저히 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장이라고는 넷밖에 없던 키르키스스탄공화국이 공장 5천을 가진 것이나, 이것은 1940년에 미국 '트라이셀'이란 평론가가 지적한 것이지만, 1913년대에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소비에트의 타자키스탄공화국이 문맹비율이 동일했었는데, 17년 후 1930년에 이르러, 아메리칸 인디언은 문맹이 2%가 줄었고 소비에트의 타지크는 문맹이 60% 가 줄었다는 것이 우리는 어떤 감상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출처 : 쏘련기행 p.114

 

19468월부터 10월까지 이태준을 포함한 방소문화사절단은 격리촌부터 시작하여, 이르쿠츠크, 치타, 모스크바, 아르메니아공화국, 그루지야공화국 그리고 스탈린그라드(현재 볼고그라드)와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까지 돌아보고 왔다. 2달 동안의 여행과정에서 이들이 보게 된 소련의 모습은 비록 전후재건 중이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않지만, 적어도 인민의 당연한 권리가 적어도 자본주의 국가보다 훨씬 인정되고, 인식되는 국가였다. 무엇보다 히틀러 침략으로 인한 상상을 초월하는 타격을 입고도 전후재건에 나서는 소련사람들의 모습은 그들에게 매우 감동적으로 다가왔으며, 그런 감동적인 감정들이 책에 묻어나 있다. 그로부터 3년 뒤인 1949년 이태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조선 문화 활동가 대표의 한 사람으로 소련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가 보게 된 소련의 모습은 불과 3년전 하고도 매우 달랐으며, 더 많은 방면에서 발전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처음 방문하던 1946년까지만 해도 소련은 물자가 풍족하지 않아 배급제를 실시했지만, 1949년 시점에는 소비재 부분도 많이 성장하여 배급제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국영상점들이 늘었으며, 소련 자체생산 기술로 조립된 자동차들이 많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태준은 이런사실들을 책에서 묘사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3가지 내용들을 인용하고자 한다.

 

호텔 건너편에는 큰 식료품점이 있어 마주 건너다 보였다. 김 서린 진열창에 포장 화려한 식료품들은 온실 속의 화초 같았고 자정 가까울 때까지 문이 열려 있는데 자동차를 세우고 들어가는 사람도 많았다. 우선 나의 시야는 호텔 주변에 국한된 것이나 왕래하는 시민들의 의복이나 신발이 3년 전에 볼 때와는 월등히 우수해졌고 식료품 상점 앞에서도 배급을 타러 줄지어선 광경은 다시 볼 수 없는 옛말이 되고 말았다.”

 

출처: 쏘련기행 p.201

 

이튿날 우리는 모스크바의 중요한 거리들을 자동차로 한 바퀴 돌았다. 네거리를 만날 때마다 앞을 가로 건너는 자동차의 떼로 한참씩 기다리게 되는데 3년 전과 비교하여 자동차는 10배 이상 많아 보였고 쏘련 차보다 외국차가 더 많던 것이 이번에는 바뀌되 외국차는 어쩌다 한대씩 볼 수 있는 정도다. 물론 국영들이나 상점이 부쩍 늘었고 길 가면서도 사기 쉽게 필수품들은 이동 점포들이 많았다. 전에는 사람즐이 표를 들고 물건을 따라가 줄지어 섰었으나 오늘은 물건들이 이동점포로 줄지어 다니며 사람들을 따르고 있었다.”

 

출처 : 쏘련기행 p.213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혈색이 좋고 명랑한 기분드로 일하였다. 그전 일제 때 조선서 전매국에 다니는 여공이라면 으레 담뱃독에 찌들은 것 처럼 얼굴빛 누르고 한참 학교 다닐 소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곳 담배공장에는 그런 과로와 빈혈의 여공들은 볼 수 없었다. 모두 흰 작업복들을 입고 먼지 없는 작업장에서 유쾌히들 일하고 있었다. 누가 누구에게 착취되는 노동이 아니라 자기들의 공장에서 자기들의 행복을 위햐 하는 노동이며 더욱 세계 전체를 착취 없는 사회로 개조하는 위업에 선두에 나선 쏘련 노동자다운 긍지들로 차 있었다. 2천 명 노동자중에 약 2백 명우 벌써(1110) 연간 계획량의 200프로를 초과완수하고 있었다. 노동임금은 최하 견습공이 5백 루블부터요 숙련공은 2천 루블까지 있었다. 모스크바서 승용차 한 대에 7천 루블이라 하니 숙련공의 석달 반 월급이면 자동차 한 대를 살 수 있는 것이다.

 

공장 안에는 식당이 있는데 빵고기우유맥주사이다케이크 등이 실비로 제공되고 있었고 식당은 김 서리는 접시들과 함께 따스하고 정갈하였다. 공장 곁에 있는 노동자 주택을 가보았는데 군데군데 자동 엘리베이터가 있고 부엌 식당 침실 목욕간 등과 스팀 전열 가스 수도의 완비와 가구들의 호화로움은 물질생활의 높은 수준을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라디오, 손풍금, 바이올린 등 악기들과 책상 위에는 문학 서적이 많을 것을 보아 이 공장 노동자들의 문화 정도의 높음도 엿볼 수 있었다 어떤 노동자의 집에는 사진기도 걸리었고 오토바이와 사냥총도 있었다.

 

이런 공동주택을 이웃하여 탁아소와 아동공원이 있었다. 탁아소는 조선에도 많이 있거니와 아동공원이란 세 살부터 일곱 살까지 학교에 들기 전 어린이들이 오는 유치원 셈이다. 여기는 아이들 놀기 좋고 자연과 친할 정원이 있고 집안에는 노래하는 방, 유희하는 방, 낮잠 자는 방, 밤에 자는 방, 식당 등이 있다. 아이들은 오면 똑같은 옷으로 갈아 입었고 집에서 다니는 아이와 여기서 자며 있는 아이들도 있었다.

 

출처: 쏘련기행 p.244~245

 

많은 사람들이 소련하면 오로지 군사력만 투자한 국가로 생각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하지만 문학가 이태준이 쓴 쏘련기행을 읽어보면 그것은 확실한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비록 자본주의 국가에 비해 풍요롭진 않더라도 미국보다 민중의 권리와 복지를 훨씬 더 많이 책임지고 있었으며, 전쟁의 폐허속에서도 그러한 가치들을 지키고 실천했다. 즉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당시 경쟁자였던 자본주의 국가 미국보다 인종차별, 교육, 의료, 주거면에서 훨씬 더 진보적이고 인민들에게 많은 부분을 챙겼다. 이것이 바로 반공주의자들이 항상 외면하는 소련의 진실이며, 소련의 어떤 사회였는지를 알려주는 아주 명확한 팩트다. 그런 점에서 이태준 작가의 쏘련기행은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었던 소련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알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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