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911일 비행기 두 대가 세계금융의 도시 뉴욕에 있는 WTO 쌍둥이 빌딩에 자폭했다. 이 자폭테러로 최소 3000명 이상이 사망했고, 비슷한 시각 미국 펜타곤에도 비행기 자폭 테러가 감행됐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은 충격에 휩싸였다. 그 충격은 미국을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게 만든 기폭제였던 진주만 기습 공격만큼이나 파급적이었고, 이것은 부시 정부가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War on Terror)’을 선포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북한, 이란, 이라크를 가리켜 악의 축(Axis of Evil)’이라고 하며 제국주의적 언성을 높였다. 또한 미국은 9.11 테러에서 받은 충격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2001년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2003년 이라크 침공을 통해 해결하고자 했다. 9.11 테러하고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테러리즘(Terrorism)을 선보인 것이다.

 

과거에도 미국은 이와 같은 테러리즘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이들이 자행했던 악랄한 테러리즘 중에는 911일에 했던 것도 있는데 그게 바로 1973칠레 쿠데타(The Coup in Chile)’였다. 1973911일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한 닉슨 정부는 칠레의 아옌데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노체트 군부세력을 이용하여 쿠데타를 일으켰다. 닉슨 정부의 지원과 사주를 받은 피노체트의 군부세력은 아옌데가 있던 궁전을 탱크로 포위하고 시가전을 벌였으며, 궁극적으로 아옌데를 죽이는데 성공했다. 미국이 칠레에서 반동 쿠데타를 일으켰던 이유는 명백했다. 왜냐하면 칠레의 아옌데 정부가 사회주의 정권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의 제국주의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중남미 국가들을 사실상 자신들의 경제적 지배하에 놓고 싶어했다. 연합과일과 같은 미국의 독점자본들은 남미인민을 착취함으로써 부를 축적했고, 남미의 부르주아 세력들은 미제국주의와 결탁하여 동포들을 착취했다. 다른 중남미국가와 마찬가지로 칠레의 상황도 비슷했다. 칠레의 부르주아지들과 지배계급은 미제국주의의 이익에 복무했고, 국민들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 세계 최대의 구리 생산국인 칠레는 그 구리 생산이 미국계 양대 기업 케니코트구리와 아나콘다 구리가 장악하고 있었으며, 미국은 수백만 달러를 칠레의 반공 그룹에게 지원했을 정도였다.

 

그러던 19709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사회주의자 후보인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가 민주적인 선거에서 반대세력을 꺾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칠레에는 세계 최초로 민주적 선거를 통해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탄생하게 됐다. 아옌데가 선거를 통해 집권하게 되자, 베트남 전쟁으로 골머리를 앓던 닉슨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새로 출범한 아옌데 정권을 존중한다.”는 말을 했지만, 이는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이미 미국은 1970년 칠레 대선에서 아옌데의 인민연합을 겨냥하여 흑색선전에 100만 달러가량의 자금을 쏟아 부었으며, 미국에 부역하는 반공세력들을 이용하여 칠레에서 테러 공격을 감행했다.

 

또한 미국은 아옌데 정부가 칠레 산업의 핵심인 구리기업을 국유화 하자, 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당시 극심한 유아 사망률과 분유 부족에 시달리던 아옌데 정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주의적 정책에 착수하자 미국은 칠레의 분유수입도 끊어버렸다. 또한 칠레의 중요산업 중 하나인 운수산업을 망가뜨리기 위해 요원들으 위장취업 시켜 어용단체를 만들고 파업을 주도하였으며, 경제를 붕괴시키고 물가를 급상승시켰다. 쉽게 말해 미국은 아옌데 정부가 경제적으로 망하게 하여 정권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것이다. 경제가 더 어려워지면 민중들이 아옌데를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과 CIA의 계산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닉슨 정부와 칠레 부르주아지들의 예상과는 달리 경제적 위기에도 불구하고 1972년 아옌데의 지지율은 전보다 더 올랐고, 그에 대한 민중들의 신뢰 또한 높았다. 칠레 민중이 아옌데를 지지했던 이유는 확실했다. 바로 그가 민중을 위한 정치를 했기 때문이다. 아옌데는 대통령으로 당선되자마자 빈부격차가 극에 달했던 칠레을 변화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사회주의적 개혁 및 정책을 실행했다. 당시 폭등하던 물가인상률을 30%대에서 15% 이하로 감소시켰고, 전 정부에서 3%도 이루지 못했던 국내총생산 성장률을 약 8% 이상까지 치솟게 했다.

 

아옌데 정권은 노후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모든 60세 이상 인구에게 연금 지급을 약속했다. 그는 중소기업에게도 사회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시켰다. 가족 보호를 전담할 정부 부처도 신설하기로 했으며, 모든 어린이에게 무상으로 우유와 아침 식사 급식을 실시하기로 했다. 모든 동네마다 모자보건진료소와 법률상담센터를 마련하기로 하는 한편, 전기와 수돗물 공급을 칠레 전역으로 확대하고자 했다. 집권 초기에 아옌데가 보여준 단기간의 성과물은 더 많은 민중들이 지지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따라서 미국의 경제재제와 각종 방해공작에 의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아옌데를 선택했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미국이 내놓은 최종 해결책이 사회주의 정권에 반감을 품은 이들을 동원한 쿠데타였다. 이것은 미국이 직접 개입한 칠레에 대한 테러리즘이었으며, 대다수 민중들의 염원과는 거리가 아주 먼 일이었다. 쿠데타는 1973911일에 시작되었고, 피노체트의 쿠데타 계획에 따라 미 해군은 전날 밤 자국 전함들을 발파라이소항에 정박시켜 아옌데 정부와 칠레 인민을 향해 무력시위를 벌였다. 결국 미제국주의가 계획한 반동 쿠데타로 아옌데는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AK-47 소총을 들고 저항하다 결국 죽음의 길을 택했다.

 

아옌데가 쿠데타로 죽고나서 칠레는 또 다른 테러리즘에 시달렸다. 피노체트는 칠레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칠레 가수 빅토로 하라는 쿠데타 이틀 후 체포돼 고문 끝에 숨졌다. 군인들은 하라의 숨이 끊어졌는데도 총질를 가했으며, 몸에서 무려 44 발의 총탄이 발견됐을 정도였다. 또한 피노체트의 지휘 아래 검거 선풍이 시작된 이래 3개월 동안 좌파로 의심되는 시민 3,197명이 학살되고 1,197명이 실종됐으며 13만 명이 감옥에 갇혔다. 이것은 CIA가 지원했던 작업이었고, 미국이 칠레에게 저지른 또 다른 테러리즘이었다. 피노체트의 군사정부 기간 동안 총 35000명이 학살당했고, 위에서 상술한 초기 검거 당시 감옥에 갇힌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고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47년 전인 911일 미국은 칠레에서 테러 행위를 자행했고, 그 이후에도 CIA를 통해 테러 행위를 했다. 미국이 칠레에서 한 테러행위로 인해 수만 명이 학살당했고, 또 다른 수만 명은 고문 후유증으로 고통 받고 있다. 이것이 바로 빈라덴의 9.11에 의해 잊혀진 미제국주의의 9.11 테러의 역사다. 지금의 미국은 예전하고 전혀 다르지 않다. 미국의 트럼프 정권은 지난해 초 베네수엘라의 마두로 정권을 전복시키고자 했다. 작년에 미국이 베네수엘라에서 했던 방식은 칠레에서 했던 테러리즘과 매우 유사했다. 이들은 후안 과이도라는 제국주의 앞잡이를 내세우면서 베네수엘라 경제를 고립시켰다. 하지만 베네수엘라 민중은 미국이 내세운 과이도를 선택하지 않았고, 사회주의를 수호하고자 했다. 결국 미제국주의가 지원하는 세력은 반민중 반동이라는 사실을 입증해주는 사례일 것이다.

 

미국사람들은 9.11 테러하면 자신들이 더 많은 학살을 저질러 분노를 해소했던 2001년 사태를 쉽게 떠올린다. 그러나 9.11 테러가 일어나기 28년 전 미국은 칠레에서 저지른 9.11 테러는 전혀 기억하지 않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다. 현재도 미국은 반미국가들에게 테러행위를 저지르고 있다. 올해 1월엔 이란에 테러행위를 저질렀고, 코로나가 전세계적으로 강타하는 와중에도 베네수엘라의 사회주의 정권을 무너뜨리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다. 미국사람들은 빈라덴의 9.11을 기억하기 이전에 칠레에서 저지른 9.11테러, 즉 대학살극으로 이어진 테러리즘에 대해 알아야 하고 반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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