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공산당 측의 신사군)


2차 세계대전이 한참이던 1941년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행위가 한참이던 중국대륙에서는 제2차 국공합작에 치명타를 입힌 사건이 일어났었다. 그 사건이 바로 신사군 사건(新四軍事件, New Fourth Army incident)이다. 일본은 1931918일 만주사변을 시작으로 중국 대륙에 대한 침략을 가속화했다. 그러나 당시 장제스의 국민당과 마오쩌둥의 공산당은 치열한 내전을 치르고 있었다. 이들이 치르고 있던 내전은 1927년 국민당의 장제스가 공산주의자들을 일방적으로 대대적인 학살을 전개하면서 일어났다. 그러나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대대적인 침략을 개시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장제스는 침략자 일본을 저지하기 보단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당을 축출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던 1936년 군벌 장작림의 아들이었던 장학량이 이른바 시안사건을 일으키면서, 부하에게 구금당했던 장제스 또한 일본군과의 교전과 제2차 국공합작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이렇게 해서 1937년 제2차 국공합작이 성사되었다. 19377월 베이징에서 이른바 노구교 사건이 일어나면서 중일전쟁이 일어났다. 중일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중국 국민당 정부의 수도였던 난징을 점령했고, 거기서 대대적인 무차별 민간인 학살을 벌여 20~30만이나 되는 중국 민간인을 학살했다. 일본군들은 이런 학살을 비단 난징에서만 저지르지 않고 중국전역으로 확대시켰으며, 중국인민들을 제2차 국공합작으로 단결시키는 계기를 형성했다.

 

2차 국공합작이 성사되던 시절 마오쩌둥은 연안에서 철학강의를 하며 실천론모순론같은 사회주의적 철학 서적도 남겼지만, 세력 확장과 현실에서의 투쟁적 실천을 등한시 하지 않았다. 마오쩌둥의 홍군은 1934년 장제스군의 제5차 포위전 끝에 이른바 대장정의 길에 올랐었고, 이들의 병력은 대장정 과정에서 대폭 감소하였다. 실제로 대장정에 참가했던 병력은 10만 명 중에 8천 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그 외의 분산된 병력까지 합친다면 2만 명 안팎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대장정에서 얻었던 것은 한 가지 확실했다. 바로 민심이었다.

 

마오쩌둥을 중심으로 뭉친 홍군은 중일전쟁의 시작과 제2차 국공합작을 계기로 세력이 확장됐다. 중일전쟁이 발발할 당시 팔로군 3만 명, 신사군 12천 명이었던 홍군은 1938년 말에는 팔로군 156천 명, 신사군 25천명으로 증가되었고, 1940년말에는 팔로군 40만 명, 신사군 10만 명으로 총병력 50만 대군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은 당건설도 급진적으로 진행하여 19374만 명이었던 당원이 1940년에는 80만 명으로 증가했다.

 

공산당 세력의 급하급수적인 증가는 장제스와 국민당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에 따라 중일전쟁이 대치국면으로 전환하면서 국민당 정부는 홍군의 활동을 억제하려고 노력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공산당을 습격, 점령, 제한, 대항하라19391월 국민당 지도부의 비밀지령에서 드러난다. 국민당 정부가 마오쩌둥 세력의 확장을 걱정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홍군이 국민당군보다 세력이 강했던 것은 절대 아니었다. 이후 일어나게될 제2차 국공내전에서 중국 국민당군의 총병력이 대략 430만이었던 반면 공산당군은 120만 명 안팎이라는 사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병력 규모면에서 국민당군은 홍군을 압도했었다. 또한 공산당군에 새로 편입된 대원들이 모두 총기를 소유하거나 공산당군이 충분한 탄환을 보유했던 것도 아니었다. 거기다 마오의 공산당측은 근거지에서 충분한 식량을 생산할 수 없었기에 병사들이 늘어나면서 이것을 감당하기 버거워 했다. 즉 이점에 있어서 국민당군과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장제스는 이에 대해 무척 불길한 느낌을 받았고, 중일전쟁이 일본의 패배로 끝이나면 다시 국공내전이 치열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따라서 장제스는 공산당군을 사전에 짓누르고 싶어 했다. 그들 입장에서 공산당을 성장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은일본을 물리치는 것 보다 결코 덜 중요하지 않았다. 1939년 봄 장제스의 군대는 서북 지방과 산시성에서 공산당의 확산을 저지하는 공세를 시작했었다. 그 다음해인 1940년 장제스는 병력 40만 명을 항일 전선에서 분리하여 홍군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옌안 지역을 봉쇄하는 작전에 투입시켰으며, 2차 국공합작으로 매월 공산당에 지급하던 18만 달러의 정부 보조금을 중단했다. 또한 1940년 여름 국민당 군대는 안후이성과 장쑤성에서 공산당 측의 신사군과 교전을 벌였다가 쓰라린 패배를 맛보기도 했었다.

 

194010월 장제스는 홍군에게 한 달 내로 양쯔강 이북으로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당시 신사군 본부는 안후이성 남부에 위치했고, 이들은 부대 이동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부대를 이동하게 될 경우 일본군 통제 지역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기에 마오쩌둥은 장제스의 심리변화를 주시하면서 가능한 시간을 끄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결국 194114일 홍군은 마오쩌둥이 승인한 경로를 따라 이동했다. 그러나 2일 뒤 국민당군의 매복지로 들어가고 말았으며, 국민당군과 홍군 사이에 전투가 일어났다. 이 전투는 1주일 동안 계속되었으며, 이 기간 동안 국민당군의 비행기뿐만 아니라 일본군의 비행기도 공격에 참여했다. 신사군 포위 작전에 투입된 국민당측 비행기는 사정없이 폭탄을 퍼부었고, 홍군이 피해 들어간 마을에도 기총소사를 했다. 결국 신사군 사건은 포위된 신사군이 궤멸되는 것으로 끝이 났다. 이 과정에서 전사하거나 생포된 신사군 인원은 9천 명이나 됐다. 여기에는 군인뿐 아니라 간호사, 의사, 장교 가족, 짐꾼, 들것 운반인 등 비전투원도 포함되어 있었다. 포위되었던 이들 중 약 1천 명 정도는 탈출에 성공했으며 소규모 집단으로 분산하여 양쯔강 이북의 안전지대까지 도망칠 수 있었다.

 

신사군 사건 이후 마오쩌둥의 중국공산당은 노골적인 반공정책을 펼친 장제스에게 강력한 항의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중국공산당은 국민참정회의 참여를 거부하고 국민당의 반공정책을 맹렬하게 비난하였으며, 신사군의 해산명령을 거부했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은 진의를 총사령관으로 류샤오치를 정치위원으로 임명하고 신사군의 재건을 추진하는 방향으로 나갔다. 이처럼 장제스군이 개시한 신사군 포위 사건으로 국민당에 대한 이미지는 나빠졌다. 그리고 제2차 국공합작에도 불구하고 양측의 사이는 더 악화되었고, 불신의 감정이 더 쌓이게 됐다. 리영희 선생은 책 전환시대의 논리에서 신사군 사건에 대해 헐리 대사 보고서를 인용하며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미국대사관을 찾아와서 정세를 논의한 손과 입법원장은 중국군의 전쟁능력이 급속히 회복돼야 한다는 심각한 정세평가를 했다. 손과는 중국군의 대일전쟁능력 상실의 가장 큰 원인은 장총통이 정부군 30만을 공산당지역 봉쇄를 위해서 고정 배치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개탄했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군 30만의 손실일 뿐 아니라 그에 포위되고 있는 공산당군대, 일본군에 대항해서 그토록 잘 싸운 수십만의 공산당군대를 무장해제한 것이나 다름없는 처사라고 말했다.”

 

출처 : 전환시대의 논리 p.139

 

이와 같은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마찰은 변론할 여지없이 장제스가 홍군의 규모와 활동구역을 가능하다면 국공합작 당시의 수준으로 제한하려는 정책의 일환이었다. 물론 공산당도 국민당 정부가 철수한 지역과 일본군이 점령한 배후지역에서 항일전을 전개하고 혁명근거지를 확장하고 싶어 했다. 다시 말하자면 양측 모두 전쟁에서 보다 더 유리한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싶었을 것이다.. 즉 이러한 양측의 긴장관계 속에서 19411월 이른바 신사군 사건이 일어났고, 국민당군은 공산당 측의 신사군을 궤멸시켰다. 확실한건 신사군 사건에서 이들을 속여서 먼저 공격한 것은 국민당군이었고, 방법도 상당히 비열했다는 사실이다. 국민당군이 저지른 신사군 사건은 그들에게 있어 돌이킬 수 없는 실책이 되었으며, 그 화살은 결국 자신들에게로 왔다. 어쨌든 중일전쟁에서 민심을 바로 잡았던 것은 마오쩌둥이 이끄는 홍군이었고, 공산당에 대한 민중의 지지가 국민당에 대한 지지보다 높았기 때문이다.

 

참고자료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창비, 1999

 

중국혁명사, 서진영, 한울 아카데미, 2002

 

마오쩌둥 2, 필립 쇼트, 교양인,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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