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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ㅣ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존 톨랜드 지음, 민국홍 옮김 / 페이퍼로드 / 2019년 4월
평점 :
절판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그는 전 세계적으로 지금까지도 무수히 많이 비판받고 있는 인물이다. 특히나 그가 일으킨 제2차 세계대전(World War 2)은 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재산피해와 인명피해를 불러왔고, 그런 살육의 현장 속에서 그는 어떠한 인종주의적 내지는 극우 민족주의적 선입견과 편견에 빠져 유대인 대학살(Holocaust)를 계획했고 실행했다. 그 결과 대략 600만 명의 유대인을 포함하여 집시와 반 나치 인사 그리고 전쟁포로와 타 인종들이 나치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학살당했다. 그가 저지른 전쟁범죄의 반인륜성과 비도덕성이 너무나 명백하기에 그와 동시대의 인물이었던 루스벨트나 처칠 그리고 스탈린과는 달리 당시 시대상과는 다르게 재평가 내지는 중립적으로 보려는 여지가 없다시피 한다.
따라서 히틀러는 그가 자살한지 75년이 지났음에도 아직까지도 인류최악의 범죄자로서 기록되고 언급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평가를 대변하듯이 미국 헐리우드 영화에선 외계인, 악마, 좀비, 로봇과 더불어 악역을 도맡는 5대 트로이카이다. 반일 불매운동이 번지던 작년에 많은 사람들을 읽게 했던 <일본 제국 패망사 : The Rising Sun: The Decline and Fall of the Japanese Empire, 1936-1945>의 저자이자 논픽션 작가인 존 톨랜드(John Tolland)는 1970년대 독일의 독재자이자 반인륜적 범죄자인 아돌프 히틀러의 전기를 집필하기도 했는데, 그게 작년에 와서 국내에 번역되어 출간된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2 : Adolf Hitler Definitive Biography>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 육군에서 근무했던 톨랜드는 이 책을 쓰면서, 소위 우리 기억 속에 악인의 이미지로서 각인된 아돌프 히틀러의 삶을 우리가 정치적인 관점을 배제하고 보는 100년 전 인물(1970년대 기준인 것 같다.)인 것처럼 쓰려고 노력했다. 또한 그는 아돌프 히틀러를 존경하거나 강하기 비난하는 사람들까지 포괄하여 인터뷰 했고, 국립문서보관소를 포괄한 수많은 자료들을 참고하였다. 비록 1970년대에 집필한 책이라 톨랜드의 책보다 비교적 최근에 출한된 요하임 페스트의 <히틀러 평전>이나 이언 커쇼의 <히틀러 1,2>보다는 히틀러에 대한 최신 자료나 연구를 담지 못하고 있는 한계점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한계점을 보완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일반인들이 읽기 쉬운 문체로 히틀러의 전기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존 톨랜드 특유의 문체는 책의 많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술술 읽힌다. 논픽션이 저작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존 톨랜드의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은 히틀러가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나던 1889년부터, 히틀러가 독일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으로 알려진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빌미로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하기까지의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 여기서 필자의 개인사에 대한 얘기를 하도록 하겠다. 필자가 역사라는 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입문하게 된 것은 중학교 1학년 시절 아돌프 히틀러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부터였다. 다른 독빠(독일빠) 밀리터리 덕후들이 그랬듯이 필자 또한 전쟁광 히틀러에게 일시적으로 매료되었으며(물론 이런점은 성장하면서 극복해냈다.), 긍정 부정의 의미를 떠나 이는 필자가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는 계기였다. 하지만 필자는 히틀러와 나치즘에 대해 딱히 읽어본 책이나 논문이 지금까지 거의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 히틀러에 대한 개인적인 증오를 내려놓고 존 톨랜드의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을 펼치게 되었다.
히틀러에 대해 공부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는 젊은 시절 화가 지망생이었다. 하지만 삶에서의 여러 우여곡절과 어머니의 죽음, 제1차 세계대전의 소용돌이 그리고 독일의 패배 등의 환경은 화가가 아닌 그가 나치당의 지도자로 부상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그는 연설을 매우 잘했고, 나치당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지지자들을 끌어 모았다.
책을 읽으면서 과거 히틀러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실들을 생각보다 많이 알게 되었다. 예를들면 오스트리아의 관리였던 히틀러의 아버지가 생각보다 많은 자식을 낳았고, 여러 명의 여자와 결혼한 사실이나, 히틀러의 일가친척 중 한명이 영국에서 레스토랑을 운영했다는 그런 내용들 말이다. 이런 사실들은 히틀러 일대기에 대한 필자의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놀라웠던 것은 히틀러에게 친한 유대인 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노숙자 시절 히틀러에게 노숙자 쉼터에서 방을 쓰게 해준 것도 유대인이었고, 매너하임에서 지낼 당시 그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2명은 유대인이었다. 또한 히틀러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을 당시 그의 상관 또한 유대인이었다. 히틀러가 유대인 친구를 두었다는 사실은 책에 다음과 같이 나온다.
“매너하임에서 히틀러가 친하게 지냈던 친구 중 2명은 유대인이었다. 1명은 애꾸눈 열쇠공 로빈손으로 그를 자주 도와주었고, 다른 1명은 요제프 노이만이라 불린 헝가리인 파트타임 미술품 거래인이었다. 노이만은 히틀러가 다 해진 옷을 입은 것을 보고 불쌍히 여겨 자신의 프록코트를 벗어주었다. 히틀러는 노이만을 매우 존경했는데 한번은 그에 대해 "예의 바른" 사람이라고 말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그림을 사준 다른 3명의 미술품 거래인에 대해서도 호의적인 말을 했다 히틀러의 대리인이었더 하니슈는 유대인들이 적극적으로 그의 작품에서 가능성을 찾았기 때문에 히틀러의 호감을 산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p.93
히틀러가 유대인을 혐오하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할 수 있지만, 사실 당시 반유대주의는 유럽 포퓰리즘이라 표현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에 입대해 참전했던 히틀러는 항상 애국심과 극단적 민족주의 성향이 강한 인물이었다. 물론 그 또한 동료들을 아끼고 전장터에서 발견하여 키운 ‘폭슬’이라는 강아지에게 매우 다정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소위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피하려는 사람들을 매우 혐오했다. 그 과정에서 히틀러는 전쟁을 방해하는 세력에는 유대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였고, 반유대주의적 감정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가스 공격을 받아 잠시 눈이 멀었던 이후 전쟁의 종결과 사회주의자들의 시위가 독일에 일어나면서 더 극심해졌다.
히틀러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전쟁을 지지하지 않았던 사회주의자들을 매우 싫어했다. 그는 군인으로 복무했을 당시 사회주의자 내지는 공산주의자에 대한 혐오감을 동료들에게 마음껏 드러냈으며, 전쟁을 회피하는 사회주의자들 중심에는 항상 유대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런 생각이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 혁명을 겪으면서 더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사회주의 혁명을 주도했던 로자 룩셈부르크나, 벨라 쿤, 트로츠키 등은 실제로 유대인이었고, 따라서 히틀러는 이들을 증오하고 혐오했다. 책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히틀러는 만연한 혁명 때문에 동요하고 혼란에 빠져 있었다. 자신이 선택한 조국에 대해 이처럼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최근 인종주의에 관한 팸클릿(아마도 에카르트가 발행한 것일)을 접하게 되었는데 비엔나에서 읽었던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인생에서 다시 진화하는 모습을 발견했다." 마음속에는 유대인에 대한 증오심이 들끓고 있었는데 뮌헨 거리에서 현장을 목격하고 가속화되었다. 처음에는 아이스너, 톨러 같은 무정부주의자, 마지막으로 러시아 출신의 빨갱이 레비네 등 유대인들이 어디서나 권력을 잡고 있었다. 베를린의 로자 룩셈부르크, 부다페스트의 벨라 쿤, 모스크바의 트로츠키, 지노비예프, 카메네프 모두가 다 유대인이었다. 히틀러가 이전에 의심을 품어온 음모 이론이 현실로 다가왔다.”
출처: 아돌프 히틀러 결정판 1 p.154
1923년 11월 히틀러는 이탈리아의 무솔리니가 성공한 사례를 본받아 뮌헨에서 쿠데타를 시도했던 적이 있다. 쿠데타는 진압당했고, 히틀러는 체포되어 재판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당시 히틀러는 자신의 비서인 루돌프 헤스와 함께 책 한권을 썼는데, 그 책이 바로 <나의투쟁 : Mein Kampf>였다. 나의투쟁은 히틀러 개인이 가지고 있던 반유대주의를 이론화시킨 것이었다. 여기서 히틀러는 레벤스라움(Lebensraum)이라고 하여 ‘생활공간’이라는 개념을 실현해야 한다고 햇는데, 이것은 제국주의적 요소가 가미된 정복주의적 비젼이었다. 히틀러에 따르면 독일 민족이 더많은 생활공간을 확보하기 위해선 타국을 정복해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1939년 히틀러가 시작한 제2차 세계대전은 엄밀히 말해서 이 레벤스라움이라는 개념을 실현화 시킨 예시다.
히틀러가 독일의 지도자로 집권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경제에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1919년 베르사유 조약 이후 독일의 경제는 휘청거렸다. 1920년대 독일 경제는 휘청거렸다고 할 수 있다. 1920년대 독일 경제는 상상을 초월하는 인플레이션에 직면했었다. 전쟁 전 단 1마르크사 601만 4,300마르크로 평가절하되고, 달걀 1개의 값이 3천만 마르크가 됐고, 200조 마르크 지폐는 800달러 정도면 환전이 가능했다. 이렇게 독일 경제는 인플레이션을 직격타 맞았었다. 당시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은 이런 실업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해 나갔는데, 그런 노력은 1929년 미국발 경제 대공황을 맞이하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미국발 경제 대공황으로 실업률이 급증하자 독일의 나치당은 민중의 투표를 통해 지지받을 수 있었다. 그런 지지가 결국 1933년 히틀러를 독일 수상 자리에 올려놓았다. 히틀러와 나치당이 집권하면서 한 일은 바로 실업률 해소와 경제발전이었다. 사실 우리가 부르는 나치의 뜻을 번역하면 민족 사회주의가 된다. 일각에선 국가 사회주의라 번역하지만, 독일 파시즘이 추구하는 것이 민족 공동체라는 점에서 민족이라 번역하는 게 보다 정확하다. 소위 히틀러의 국가는 단기간에 실업률을 해소하고 노동자 복지 정책과 아우토반 건설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경제난을 해소했다. 히틀러 집권기에 이런 변화가 있자, 나치당 집권 초기 민중의 지지율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이것이 바로 히틀러가 독일인들에게 지지를 받았던 이유다. 하지만 히틀러의 계획에는 오직 독일민족만 포함되었지, 타인종에 대한 배려정책은 없었다. 특히나 유대인들은 더더욱 그랬다. 당시 독일에 있던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은행에 있던 재산이 동결되기 까지 했으며, 많은 유대인들이 사회에서 억압당하고 탄압당했다. 하지만 유대인 인구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기에 대다수 독일인들은 히틀러를 계속 지지했다. 이를 바탕으로 히틀러는 자신의 당 정적이었던 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제거할 수 있었고, 독일을 재무장 할 수 있었으며, 1936년에는 베를린 올림픽까지 개최하여 전 세계에 나치독일을 홍보했다. 그리고 히틀러는 베르사유 조약에서 빼앗겼던 라인란트 지방을 무력으로 되찾았고, 스페인 내전에 이탈리아와 더불어 군대를 파병했으며, 1938년에는 오스트리아와 체코슬로바키아를 합병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 책에서 무솔리니와 히틀러의 관계, SA 대장 룀의 동성애와 숙청 그리고 에바 브라운을 포함한 히틀러를 사랑했던 여인의 스토리를 흥미롭게 읽었다. 존 톨랜드 특유의 필체 덕분에 책이 술술 읽혔지만, 한 가지 불편한 점이 있었다. 공산주의자 내지는 사회주의자를 얘기할 때, 빨갱이라는 단어가 지속적으로 책에서 사용되었다는 점이다. 물론 시대적 배경에 맞는 번역에서 사용한 것이라면 문제가 없지만, 그런게 맞지 않는 상황에서 공산주의자 내지 사회주의자를 빨갱이라는 단어로 표기한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는 않았다고 본다. 히틀러의 초기 생애와 체코슬로바키아 합병까지의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이후의 내용은 조만간 2부를 읽고 올리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