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해체되어 지구상에서 사라진 나라 소련(Soviet Union)은 세계최초로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국가였다. 1917년 레닌의 사회주의 혁명을 통해 탄생한 소련은 1920년대 공업화를 거치며 강국으로 성장했고, 2차 세계대전에서는 파시즘을 물리쳤으며, 그 이후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 경쟁했다. 사회주의 혁명으로 탄생한 국가이기에 소련은 당연히 사회주의 국가였고,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체제였다. 따라서 소련은 개인의 이익과 사적영역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 국가와는 엄연히 다른 체제였으며, 실제로도 다르고자 했다.

 

반공주의적 산물이 사회전체를 지배하는 대한민국의 경우 소련이라는 사회주의 국가가 도대체 어떠한 삶을 구가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 잘 아는 사람도 별로 없고, 알고자 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아마 한국의 반공주의자들이 생각하는 소련이란 스탈린주의적 폭압 체제, 대숙청으로 인한 2천만 명 학살, 한국전쟁의 주범, 굴라그와 같은 강제 노동이 존재하는 세상 그리고 세계를 적화시키려는 호전적인 국가 등의 이미지일 것이다. 즉 소련이라는 나라는 국방력에 지나치게 투자하여 인민들의 삶과 질적향상은 매우 등한시 한 국가로 착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반공주의로 점철된 우익과 서방의 날조된 왜곡이 반영되었다. 물론 소련이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와의 경쟁에서 재정의 많은 부분을 국방력 강화 및 개발에 투자한 것은 사실이었지만, 공공의 이익을 등한시한 미국처럼 공공분야에 있어 많은 부분을 개인에게 맡기고자 하지 않았다. 이게 바로 사회주의 국가 소련이 자본주의 국가 미국하고의 결정적인 차이였다.

 

실제로 소련은 헌법과 법률을 통해 사회주의적 권리를 실현하고자 했다. 여기서 소련이 추구한 권리는 심지어 20세기 말에도 수많은 발달한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조차 충분하게 실현되고 있지 못한 권리로 여성의 적극적인 경제활동 참여”. “동일노동에 대한 동일임금을 보증”, “근로의 권리”, “주거와 주택의 권리”, “무상의 의료와 교육의 권리”, “사회보장의 권리”, “사회주의 사회가 보장하는 다양한 문화적·예술적인 서비스를 무료로 즐길 수 있는 권리등이었다. 이것은 생산수단에 대한 사회주의적 소유를 확립함으로써 소련 인민이 구가하거나 얻을 수 있었던 권리와 자유였다.

 

실제로 소련은 공업화에 성공했던 1930년대부터 이러한 권리를 비록 양질은 아니더라도 시스템 적으로 설립했다. 소련은 이오시프 스탈린이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이른바 의료혁명과 교육혁명을 겪었다. 이 덕분에 소련인민들은 그 시기부터 무상의료의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즉 인민 AB가 병에 걸려 치료가 필요하다면, AB는 국가가 운영하는 병원에 가서 병의 종류와는 상관없이 하나의 권리로써 돈을 지불하지 않고 치료 받을 수 있었으며, 이런 무상의료는 단순히 감기치료만이 아닌 고도의 의료기술이 필요한 것에도 해당되었다. 즉 소련은 이러한 무상의료 서비스가 1920년대와 1930년대부터 체계적으로 틀이 만들어졌다는 얘기가 된다. 소련사회는 해체 이전까지 보건의료도 무상이었다. 약도 국가보조금이 나와서 매우 저렴했고, 약국뿐만 아니라 많은 부분에 대해서도 지급됐는데. 아이들 의복에 대한 보조, 대중교통에 대한 보조도 있었다.

 

소련의 교육혁명은 매우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사회주의 국가 소련은 교육은 인민이 차별없이 받아야 할 하나의 권리로써 자리매김하였고, 공업화 초기 교육율과 대학진학률은 매우 빠르게 상승했다. 이에따라 소련 전역에서 문맹퇴치운동이 일어났다. 문맹퇴치운동으로 인하여 90%가 넘던 소련의 문맹률은 1%때로 줄어들었으며, 인민들 대다수가 글을 읽고 쓸 수 있게 됐다. 이러한 교육혁명의 사회주의적 성과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1970,80년대 기준으로 소련의 교육시스템은 10년간 무상이었다. 대학교를 가더라도 대학 교육도 무상이었고 대학 다니는 동안에 일종의 수당같은 것을 국가로부터 지급 받는데 한 달에 40루블씩 지원받았다. 이 금액이 계산하면 소련 대학의 기숙사 비용이 1년에 24루블 내면 모두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었으며, 그만큼 많은 돈을 수당으로 지급받았던 셈이다.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와는 달리 노동시간을 비인간적으로 늘리는 사회가 아니었다. 물론 스탈린 시절 굴라그를 운운하는 반공주의자들의 얘기는 다르지만, 실제로 소련은 1930년대 스탈린시기에도 7~8시간 노동제를 공식적으로 표명했었다. 물론 이 노동제는 1930년대 후반 제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돌면서 폐지됐다. 하지만 이것은 파시즘에 맞서는 투쟁의 과정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둘 필요가 있다. 소련 시절의 노동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소련 사회는 노동에 대해 의무이자 권리라는 개념으로서 받아들였다. 소련 시절의 노동시간은 주5일 주40시간이었고. 모성보호도 있어서 임신 여성은 야간 노동이 안되었다. 아파서 일을 못하게 되는 경우도 항상 유급이었다.

 

광산노동 등 힘든 노동을 하는 사람들은 퇴직을 좀 더 일찍 할 수 있었으며, 출산휴가도 보장되어 있는데 유급으로 18개월 보장됐고, 출산휴가 끝나면 당연히 원래 하던 일로 복귀가 가능했다. 임금도 노동자, 관리직, 기술직의 구별 없이 비슷하게 지급받았다. 야간, 휴일노동은 강제로 하는 경우가 없고, 하겠냐고 요청 받고 동의해야만 하고, 할 경우에는 정당한 대가를 받을 수 있었다. 야간은 50%, 휴일노동은 2배 임금을 받는 시스템이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 소련은 대중적인 노동자 연금제도를 설립했다. 연금 수급 연령은 여성 55세 남성 60세였다.

 

소련사회는 어떤 공장에 관리자나 청소노동자나 똑같이 존중 받고, 똑같은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형태였다. 큰 회사의 경우 사택 같은 걸 지어서 모든 노동자들에게 주택을 제공하는데, 노동자들은 임금의 3~4%를 지불하고 모든 것들을 무료로 이용했다. 중요한 건 회사에 일하는 동안 거주를 할 수 있는 곳이지 주택을 팔거나 타인에게 양도하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회사 안에는 스포츠시설도 있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고 자체적으로 농장을 운영해서 구내식당 식재료로 공급했다. 즉 소련사회는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자본주의 보다 더 나은 삶은 인민들에게 구가해줬고, 공식적으로 추구했다고 할 수 있다.

 

소련의 초기 경제성장은 괄목할 만한 성과였다. 소련은 1920년대후반부터 50년대까지 사회주의 경제 수치를 매우 낮게 잡으려고 했던 서방의 기준으로도 최소 연 12~14%의 성장률을 보였다. 1928년에서 1956년까지 30년이 채 안 되는 기간 동안에 쏘련의 공업 생산은 연평균 12.7%나 성장하였다. 국민총생산은 연율 15% 이상이나 성장했고, 그 기간 문맹은 일소되었으며 무상 의료와 무상 교육이 모든 사람들에게 제공되었다. 적어도 소련은 1972년까지 연평균 8%의 경제 성장률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소련사회에 대해 지적하는 것 중에 한가지를 뽑자면 소비재 부족과 일상적인 필수품의 부재일 것이다. 물론 소련 사회는 자본주의 국가 미국에 비하면 풍요로움에 있어서 많이 뒤쳐졌다. 그러나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2700만 명의 희생과 국부의 약 1/3이 사라졌음에도 빠른 전후복구와 회복을 보였다. 거기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의 동맹이었던 미국과 서방은 소련의 부흥을 절대 돕지 않았고, 오히려 지연시키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련은 서유럽 경제학제들의 예견을 무색케 했고 제45개년계획 마지막 연도인 1950년에는 공업 생산고가 전쟁 전인 1940년 수준을 73%나 상회할 만큼 빠른 경제회복과 성장을 보였다.

 

전후복구 2년차인 1947년 소련의 경제는 빠르게 회복되었고, 그 결과 외국에 거의 의존하지 않고도 자체생산을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으며, 다소 뒤진 소비재 부문도 꾸준히 성장하여 1947년 전시에 시행되던 배급제가 폐지됐다. 이것은 1953년에서 1954년 사이에 배급제를 폐지했던 자본주의 국가 영국보다 6년 내지는 7년이나 빠른 속도였다. 1951년에서 1955년까지 소련의 연평균 식량 생산량은 8859만 톤이었지만 불과 10년 후인 1961년에서 1965년 동안에는 50%가 증가한 13000만 톤을 달성했다. 같은 시기 육류와 유제품 역시 연평균 60%70%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따라서 소련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후복구를 하면서 굶주리지 않았다. 공업역시 1951년에서 1965년까지 연평균 10.7% 정도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당시 전력생산도 크게 늘었는데, 1954년에는 세계최초의 원자력 발전소가 세워지고, 세계 최대의 쿠이비셰프 수력발전소를 비롯해 수천 개의 발전소가 건설되어, 모든 산업에 충분한 전기를 제공해줄 수 있게 됐다.

 

1950년대 후반 소련에서는 연평균 농업성장률이 4%를 넘어섰고, 농업분야에서도 자립기반이 확보됐다. 1950년대 후반에는 '화학' 공업이 중점으로 육성되어, 합성물질, 석유화학제품, 화학비료 생산 기업이 대규모로 건설됐으며, 이런 전후복구와 경제 성장을 통해 1960년대 소련은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이 사라졌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비된 각종 연금 보험제도가 뿌리를 내렸으며 무료 진료체계가 효율적으로 재편되어 모든 국민이 유사시나 노후의 걱정을 덜 수 있었다. 도서관과 장서도 크게 늘어 소련인은 세계에서 가장 책을 많이 읽는 국민이 됐다. 예술창작과 체육활동에도 뜻만 있으면 자유롭게 참여 할 수 있었고, 적어도 1970년대 중엽까지 소련은 그럭저럭 경제 문제로 크게 고통 받지 않았다.

 

이처럼 소련의 사회주의는 지난 마지막 위기 역시 극복하고 공산주의 사회를 향한 계속적인 행군을 보증하기에 충분한, 전례가 없는 눈부신 역사적 성과를 집적했다. 사회주의는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군사적인 안전보장을 달성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로 하여금 여러 핵실험 금지조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 없게 했으며 핵무기 보유량을 삭감하지 않을 수 없도록 강제하는 데에도 성공했다. 사회주의는 경제·산업구조를 발전시켰고, 전 세계 공업생산에서 그 점유율을 1/3 이상으로 끌어올렸으며, 공업과 과학·기술의 많은 분야에서 자본주의를 앞질렀다. 사회주의는 근로인민의 생활수준을 놀라울 정도로 향상시켜 모든 국민에게 무상의 교육과 의료를 보장했고, 문맹과 실업을 근절했으며 고등교육을 받아 숙련기술을 가진 노동자계급을 육성했다.

 

하지만 반공주의적 이데올로기로 점철되어 있는 우리 사회는 이러한 진실을 알지도 못하고 알려 하지도 않는다. 그들에게 있어 사회주의 국가의 성공적인 업적은 탐욕, 경쟁, 제국주의에 기반을 둔 자본주의를 합리화시키기에는 너무나도 다른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독일의 혁명가 로자 룩셈부르크는 말했다. ‘사회주의냐 야만이냐라고 말이다. 여기서 로자가 말하는 야만은 바로 자본주의를 뜻한다. 지난 세기 소련해체 이후의 소위 승리했다는 자본주의가 어떠한 모습을 보였는지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안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자신들이 쓸 수 있는 모든 수단, 특히 사유화, 공공 부문의 폐지, 개방적 무역정책의 강요, 정부에 의한 모든 형태의 경제계획의 배제, 모든 형태의 국가 보조금·보상금과 사회적 보호의 폐지 등의 신자유주의적경제정책을 이용하여 3세계국가의 경제를 억지로 개방시켰고, 그려러고 한다. 국제자본과 다국적 기업의 전면적 진출을 위한 길을 닦고 있다. 세계은행이나 IMF와 같은 제국주의 국제기관에 의해서 강압적으로 수행되고 있는 이들 정책의 목적은 선진 자본주의 중심부로의 잉여가치의 유입을 강화·촉진하는 데에 있다. 의심의 여지없이, 그러한 정책의 논리적 귀결은 이들 국가의 천연자원 및 인적자원에 대한 수탈의 증대, 그들 국가 경제에서의 자본형성 과정의 봉쇄, 그들의 경제발전고정의 전면적인 정지 내지 심지어 퇴행, 그들의 생활수준의 급격한 저하, 그리고 일반적으로는 대다수 세계 인민의 빈곤·질병·궁핍·노숙자화의 계속적인 증대다.

 

따라서 이런 야만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해야하는 길은 사회주의라고 필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생각하고 있고, 또 그 가치를 믿고 있다. 사회주의는 실패하지 않았다. 1991년 소련의 해체를 빗대며 단순히 사회주의의 실패 자본주의의 승리로 단순도식화 하는 부르주아지들의 악랄하고 교묘한 선전선동에 놀아나서는 안된다. 앞에서 얘기한 바와 같이 소련은 비록 미국이라는 제국주의 국가에 비해 경제적으로 풍요롭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 지금도 업신여기고 있는 인간적인 가치들을 믿었고, 실천하고자 했으며 또 어느부분에선 달성하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소련 사회주의가 가지는 역사적 정치적 인류사적 의미다.

 

참고자료

 

영웅적 투쟁 쓰라린 패배, 노동사회과학연구소, 2009

 

러시아 역사 다이제스트 100, 가람기획, 2009

 

대국굴기, 크레듀, 2007

 

러시아 혁명사 강의, 나무연필, 2017

 

소비에트에 대한 진실 혹은 오해, 레디안, 2013.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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