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엔비엔푸 전투 66주년 글
지금으로 부터 66년 전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의 마지막 보루인 디엔비엔푸 요새가 잡 장군이 지휘하는 군대의 공격으로 함락되었다. 1946년 프랑스가 함대로 하이퐁을 무차별 포격하여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을 시작했을때, 전쟁의 승자가 베트남이 될줄은 아무도 몰랐다.
기본적으로 장비와 무기면에서 프랑스군에 딸렸던 베트민은 프랑스군으로 부터 노획한 것과 일본군이 남기고 간 것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OSS가 지원했던 무기를 들고 싸웠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통일을 이룩하면서 그때부턴 중국에서 지원한 장비와 무기들이 들어왔지만, 미국의 지원을 받는 프랑스군을 고전하게 만든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한국전쟁이 휴전으로 끝난 뒤 프랑스의 앙리 나바르 장군은 라오스 국경지대에 있는 디엔비엔푸에 비행장을 세워 방어선을 구축했고, 16000명으로 구성된 프랑스 최정예부대를 투입했다. 보 응우옌 잡 장군은 5만 명의 병사와 이를 자발적으로 돕는 10만 명 이상의 민간인의 도움을 받아 디엔비엔푸 요새를 사방에서 포위할 수 있었다. 1954년 3월 13일 200대의 대포가 디엔비엔푸 요새에 포격을 가했고, 프랑스군의 포위망은 점점 좁아져 갔다.
5월 초 베트민군은 디엔비엔푸 방어선을 뚫는데 성공했고, 5월 7일 베트민은 카스트리 장군과 수십명의 장교를 포함한 11000명의 프랑스군 정예부대를 포로로 붙잡았다.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에서 프랑스가 진 것이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구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 지배를 종결 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다.
디엔비엔푸 전투는 식민주의에 맞서 싸웠던 대다수의 인민들에게는 영광스러운 승리였지만, 프랑스에 빌붙었던 반공주의적 민족반역자들에게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그들이 바로 남베트남의 지도부와 군관료들이다. 그들은 그저 자신들이 주인으로 섬기던 프랑스가 물러나자 섬기는 주인을 미국으로 바꿨을 뿐이다. 따라서 디엔비엔푸 전투는 이후에 있을 베트남 전쟁이 ‘민주주의 대 공산주의‘가 아닌 ‘제국주의 대 반식민주의‘의 대결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역사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