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이승만 별장에 있는 이승만 흉상)

 

지난 2015년 박근혜 정권은 자신의 정체성에 맞는 역사관을 국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국정 교과서를 추진했었다. 국정 교과서를 추진한 박근혜 정권은 소위 좌파 역사관따위를 운운하며, 자신의 아버지인 박정희를 산업화와 근대화의 아버지로 떠받드는 동시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인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을 소위 건국의 아버지나 국부로 칭송했다. 박근혜 정권이 이승만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있자 2014년과 2015년 사이에는 이승만을 찬양하는 서적들이 마구잡이로 나오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라는 이름을 단 백년동안 출판사의 시리즈 책들은 이승만을 애국작 혹은 건국의 아버지로 치켜세웠고, 미국사 전공자이자 이승만 찬양론자인 이주영 교수는 이승만 평전이라는 책을 출판하여 이승만 찬양에 열을 올렸다. 그외에도 저자 안병훈의 건국 대통령 이승만의 생애’, 김용삼 저자의 이승만의 네이션 빌딩’, 권혁철 외 다수저자의 이승만 깨기등의 이승만 찬양론적 서적들이 서점에 나돌았다.

(2020년 이화장을 방문한 황교안)

 

더 나아가 2016년에는 저질 반공영화 인천상륙작전(Operation Chromite)’이 어용매체들의 홍보에 힘입어 인기를 끌었고, 이런 반공영화가 인기를 끌게 됨에 따라 소위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재조명 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게 일어났었다. 심지어 자신의 와이프를 폭행했던 인물인 서세원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재조명한 독립영화까지 제작했었다. 이러한 이승만 띄우기 움직임은 독재자 박정희를 띄우려는 움직임과 맥을 같이 했다. 이것은 박근혜 정권 이전인 기업 대통령이 통치하던 이명박 때도 마찬가지였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수구세력들은 이승만 찬양에 열을 올렸었다.

 

어떤 자치단체장은 광화문에 이승만 동상을 세우자는 주장을 했었고, 한 이승만 광신도 단체는 남산에 이승만 동상을 세웠다. 또한 친미적인 이명박 정권은 광화문에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만들어 이승만과 박정희 찬양 및 우상숭배에 열을 올리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었다. 이런 움직임들은 국가적이진 않더라도 정권이 교체된 현재도 뉴라이트 세력들이 그러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올해 2월 전 자유한국당 총리이자 미래통합당 출신의 국회의원 후보인 황교안은 과거 이승만이 살던 이화장을 찾아가 이승만의 연설 구호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를 인용하면서 대통합을 이뤄내겠다라고 말을 했다. 또한 그들은 이승만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세력과 인물들에게 좌파 용공, 공산주의, 종북이라는 딱지를 붙혀 수준낮은 이념공격을 하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이 이승만의 민낯을 폭로하는 단체는 좌파로 간주되고, 이승만에 대해 독재자라 욕하는 사람들은 종북 혹은 공산주의자가 된다. 이것만 보더라도 이승만 찬양은 현재 미래통합당과 같은 수구 세력들의 이데올로기적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승만이라는 인물은 과연 존경받을 만할까?

(12회 이승만애국상 시상식, 엄마부대 주옥순도 보인다.)

 

우리들에게 독립운동가로 알려져 있는 이승만은 사실 독립운동가였지만, 그의 미주망명시절의 행적은 독립운동보다는 오히려 친일적인 언행이 적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일본이 낡은 조선을 바꾸었다며 현재의 식민지 근대화론과 비슷한 주장을 하기도 했었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장인환 전명운 열사가 친일파이자 미제국주의자인 스티븐슨을 암살했을 때, 기독교 신자를 핑계로 변호를 거부했던 인물이 바로 이승만이었다. 1932년 임시정부의 주석 백범 김구가 이봉창 윤봉길 의거를 단행했을 때, 이것을 테러행위라고 하며 주제넘게 비난했었다. 또한 대힌민국 임시정부 초대 총령을 지냈던 그는 독립운동 진영을 분열시켰고, 그 결과 탄핵당한 인물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에도 그의 악행은 끊이지 않아, 친일파들을 이용하여 분단 정부를 수립했고, 제주4.3 항쟁과 여순 항쟁을 진압하여 무수히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했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최소 30만에서 많게는 100만 이상의 민간인이 국민보도연맹 사건으로 무차별 학살당했고, 방산비리로 자국 군인 10만 명을 아사시키기도 했다. 전쟁 이후에는 노욕에 찌들어 독재 권력을 확립했고, 진보당의 죽산 조봉암을 사법살인 했으며 3.15 부정선거에 저항하는 시민학생에게 발포하여 200명을 죽이고 6천 명 이상을 부상케 만든 독재자였다.

(대한민국 정체성 총서, 2015년 소위 대한민국 정체성을 찾겠다고 하며 일각에서는 이런 극우반공주의적 서적들을 대량으로 출판했었다.)

 

이승만은 사회의 정의를 반공이라는 이름하에 짓밟았다. 1949년 친일파 청산을 위해 만들어진 반민특위를 장경근 휘하의 경찰 병력을 동원하여 해체했고, 고문왕으로 유명한 친일파 노덕술과 같은 악질들을 반공애국투사로 치하하며 그들에게 기회를 주고 애국자로 둔갑시켰다. 그 결과 대한민국 사회는 친일파를 단 한 명도 처벌하지 못한 사회가 됐다. 이렇게 무수히 악행을 저지른 이승만을 소위 수구세력들이 건국의 아버지로 묘사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들의 뿌리가 바로 친일파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마치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아니 바로 이런 소리와 주장들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원론적으로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은 1919년 임시정부가 창설되던 해다. 이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임시정부를 계승한다고 명시되어있기 때문이다.

(한미동맹과 이승만을 홍보하는 어떤 유튜브 영상)

 

설사 1948년 건국설을 빈말로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민중의 염원이 아니었다. 해방 후 민중의 대다수는 미국식 자유주의가 아닌 사회주의나 적어도 자유주의보다 나은 체제를 원했다. 즉 이승만과 그의 지지자들은 이런 민중의 염원과 미군정에 반대하는 세력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동원하여 노동자 농민들을 패죽이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를 선포했다. 몽양 여운형 같은 독립운동가들은 남북의 통일을 이루기 위해 좌우합작 운동을 추진했었고, 비록 늦은 선택이었지만 임시정부의 주석인 백범 김구도 남북협상에 참가했었다. 따라서 뉴라이트들이 주장하는 1948년 건국은 민중의 염원도, 민중을 생각하는 체제도 절대 아니었다.

 

이렇게 무수히 많은 과오가 있는 인물임에도 한국에서는 이승만을 찬양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2020년인 현재도 계속되고 있으며, 특히나 미래통합당과 같은 수구 세력들이 주도하고 있다. 우리는 이승만의 악행에 대해 교육에서 깊게 가르치지 않는다. 그의 무수한 악행들을 보다 정확히 알아야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내가 이승만 악행사라는 이름으로 시리즈를 연재하기로 마음먹게 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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