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왜? - 분쟁의 역사를 넘어선 평화로의 희망
권희석 지음 / 청아출판사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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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역사에 있어 대략 40년간이나 전쟁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나라가 있다. 그 나라는 중동과 서남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인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다. 아프가니스탄은 오랜 세월 전쟁을 치러온 나라이고, 2019년인 현재도 미국과의 전쟁을 지속 중이다. 현재도 진행중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주제로 다룬 대중 매체는 매우 적지만, 찾아보면 있긴 하다. 영화로는 2014년 당시 국내에도 개봉했던 ‘론 서바이버(Lone Survivor)’와 12명의 미국 그린베레(Green Beret)의 활약을 그린 ‘12 솔져스(12 Strong)’가 있다. 흥미롭게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 있는데, 메달오브아너 시리즈 중 하나인 ‘메달오브아너(Medal of Honor 2010)’이 있다. 또한 전세계인들에게 열광적인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마블 시리즈의 시작인 아이언맨(Iron Man2008)의 영화 도입부와 전반부는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소재로 하고 있다. 물론 이런 매체들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미군의 활약을 대중매체화 한 것이기에 소위 미국식 애국주의가 강조되기에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야 하지만 말이다.

 

아직 끝나지도 않은 전쟁이다 보니 이 전쟁 관련한 자료는 그리 많지 않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한국의 경우는 더더욱 그러하다. 기존에 베트남 전쟁에 대해 꾸준히 공부해오던 필자로선 아프가니스탄에 대해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프가니스탄 전쟁 관련한 자료들을 짧게나마 뉴스 기사 형식으로라도 접했다. 그러던 중 집 근처에 있는 롯데피트인 서점에서 책을 보던 중 한국 사람이 집필한 아프가니스탄 관련 책을 찾았다. 그 책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왜?’다.

 

1. 아프가니스탄은 어떠한 나라인가?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이라는 나라는 중동과 서남아시아 그리고 중앙아시아 사이에 있는 국가다.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많이 받았던 아프가니스탄은 히말라야 산맥에 가로막혀 고대부터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과 인도하고 직접 소통하지 못했는데, 어떤점에선 처음부터 여러 문명의 교차로이자, 정복자의 침략 루트이기도 했다. 쉽게 말해 임진왜란 당시나 구한말의 조선 상황을 놓고 비교하면 대략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아프가니스탄은 영토가 꽤 큰 나라다. 대한민국 영토의 6배 이상이나 되는 영토를 자랑하는 아프가니스탄은 유럽에서는 러시아 다음으로 영토가 큰 우크라이나보다도 영토가 조금 더 넓다. 그런 영토를 가졌지만, 인구는 대략 3600만 명으로 대한민국보다 1400만 명이 적다. 아프가니스탄은 어떤 점에서 보면 여러 부족 내지는 소수민족들이 사는 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전체 인구에 45% 정도를 차지하는 파슈툰 족이 주류다. 그 다음으로 인구의 30%를 차지하는 타자크인, 하자라인, 튀르크인 그리고 우즈벡인 등 다양한 소수민족들이 존재한다.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은 고원과 황량한 사막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힌두쿠시 산맥이 아프가니스탄 국토의 중심부를 가로지르고 있고, 해발 1797m에 수도 카불이 있으며 인근 파르완주나 바미얀주는 산맥 속의 평탄한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파미르 고원 또한 아프가니스탄을 연결하고 있다. 아프가니스탄 하면 당연히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바로 종교인데, 국교 자체가 이슬람이며 많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이 무슬림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은 전쟁 중이기에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2. 아프가니스탄의 역사

 

 

위에서 상술했듯이 아프가니스탄은 고대부터 근대까지 외세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던 나라다. 아프가니스탄은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 강대국이던 페르시아 제국의 지배를 받았었다. 기원전 4세기 마케도니아의 왕 알렉산더 대제 또한 인도를 침략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했었으며, 기원전 2세기에는 파르티아인들이 유프라테스강 서쪽의 로마인을 물리치고 아프간을 침략하기도 했었다.

 

 

물론 이런 침략과 지배에 아프간인들은 저항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스키타이-파르티아 연합군을 물리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기원전 100년대에는 인도와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았고, 불교와 인도의 간다라 미술이 꽃피었었다. 4세기 중엽 아프가니스탄은 북쪽에서 훈족의 침략을 받았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국교인 이슬람이 아프가니스탄에 퍼진 것은 7세기부터다. 이시기 중동에서 이슬람이 태동해 아랍의 팽창이 시작되면서 아랍군이 아프가니스탄이 점령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아프가니스탄에는 이슬람교가 확산되었다.

 

 

그 이후에는 9세기와 10세기경에는 튀르크족의 침략을 받았었고, 투르크멘족은 흐와레즘 왕국으로 진화해 1205년 고르 왕국을 붕괴시키고 1215년 모하메드 2세 통치 시 아프간을 점령했다. 이 시기 동방에선 칭기스칸을 중심으로 하여 몽골족들이 영토를 확장해 나갔는데, 칭기스칸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여 이 지역을 통치하게 했었다.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몽골 군대에 저항했었다. 그 이후에는 이란의 사파비 왕조와 인도의 무굴 제국에게 점령받기도 했었다. 그나마 아프가니스탄이 외세의 지배를 들받고 국위를 떨치던 시기는 18세기 두라니 제국 때였다.

 

 

그러나 19세기부터 아프가니스탄 또한 러시아 제국의 남하를 경험했고, 러시아 제국과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었으며, 그 과정에서 19세기 산업혁명으로 부강해진 영국이 그 게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19세기부터 초중반부터 영국의 간섭과 지배를 받은 아프가니스탄은 3차에 걸쳐 영국과의 전쟁을 전개해 나갔고, 1901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9년까지 대략 18년간 3차 독립전쟁을 전개하여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3.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

 

 

영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난 아프가니스탄은 1973년까지 대략 54년간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과 냉전, 파키스탄과의 국경 충돌 그리고 여러 사건들이 있었지만 말이다. 1965년에는 아프가니스탄 인민민주당이 창설되었고, 이슬람 국가인 아프가니스탄에서 그들은 당연히 탄압받았다. 이러한 탄압이 공산주의자들을 목표로한 아프간 정부의 학살로 이어지기도 했는데, 1978년 4월 혁명을 통해 아프간의 공산주의자들은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그들은 당연히 남녀평등이나 토지 소유 제한 및 재분배와 같은 진보적인 정책들을 주장했고, 극보수적인 아프간 민중의 극심한 반발을 샀으며, 이게 결국 아프간 내부의 유혈사태로 번졌다가, 소련의 개입으로 이어졌다.

 

아무튼 공산주의 세력을 보호한다는 명분을 들어 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1979년에 침공하여 들어갔다.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 초기 아프가니스탄에 들어온 소련은 승승장구 했지만, 소위 무자헤딘이라는 저항 세력의 게릴라전에 고전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의 무자헤딘들은 1980년 3월 동부 쿠나르주에서 소련군과의 큰 전투를 벌였고, 6월 팍티야주에선 소련군 1개 대대를 섬멸하기도 했다. 아무튼 무자헤딘 들은 이런식으로 소련군에 맞서 시골과 산악을 주 무대로 게릴라전을 전개하며 싸웠다.

 

 

1980년대 등장한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정권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소련군에 맞서 싸우고 있는 무자헤딘들을 지원했고, 당시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인 오사마 빈라덴도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하여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소련군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다. 당시 파키스탄 또한 소련군에 맞서 무자헤딘에게 정기적으로 무기 공급을 했다. 로널드 레이건 같은 반공주의자들에게 있어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반공정책을 강화할 수 있는 참으로 좋은 기회였고, 소련에 맞서 그들에게 무기를 지원할 수 있었다. 심지어 당시 개봉한 영화 람보3에는 무자헤딘을 기리기까지 했었다.

 

이러한 상황으로 소련군은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고전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고전했으며, 이 전쟁이 소련 붕괴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소련군은 MI-24와 같은 하인드 건십을 도입하여 산악 지형에 유용한 헬리콥터와 수많은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웠다. 그러나 1980년대 전쟁이 길어질수록 소련군의 사상자도 적잖게 나왔다. 1987년 한 해 동안 소련 항공기 270대가 격추되었다. 전쟁 과정에서 소련군은 15000명 이상의 전사자를 냈고, 항공기와 헬기, 탱크 그리고 장갑차 수백 대를 잃었으며, 1989년에 철수했다.

 

 

4.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

 

소련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에는 소련의 지원을 받던 공산주의자들이 적게나마 남아 있었고, 1990년부터 민족 갈등이 대두되었으며, 이는 결국 아프가니스탄 내전으로 이어졌다. 이러한 내전으로 1990년대의 아프가니스탄은 전쟁을 계속 해나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무자헤딘은 탈레반으로 발전했고. 내전에서 싸우던 양측 모두 적잖은 학살이 있었다.

 

그러던 2001년 9월 11일 뉴욕에 있는 WTO 건물이 알카에다의 테러로 파괴되어 3000명 이상의 민간인이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9.11 테러가 일어나자 미국 사회는 분노했고, 당시 알카에다와 합세한 것으로 의심을 받은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은 한때 소련에 맞서 같이 싸웠던 미국의 적대세력이 되었다. 그리하여 미국은 2001년 9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초기는 승승장구했다. 당시 반 탈레반 소수민족 연합인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에 협력했고, 그린베레와 같은 미국 특수부대들은 그들과 같이 작전을 전개해 나갔다. 2002년 1월부터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군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했지만, 미국은 최초로 무인 항공기인 프레디터와 같은 신무기들을 마구잡이로 사용했다.

 

미군은 파키스탄 국경 지역의 호스트주에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를 섬멸하는 작전을 펼쳤고, 아프가니스탄의 여러 지역에서 전투를 전개해 나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아프가니스탄도 수렁에 빠지기 시작했고,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아프가니스탄 문제를 제대로 신경쓰지 못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미군은 베트남 전쟁에서 그랬듯이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숫자를 늘려나갔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NATO의 회원국들도 개별 국가 차원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전했고, 2007년에는 남부에서 다국적군의 공세를 지속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자살 공격은 2004년에 세 건이 발생하면서 시작되었는데 2005년에는 21건, 2006년에는 131건, 2007년에는 150건 2008년에는 142건이나 발생하며 점차 증가했다. 이 아프가니스탄 전쟁 문제는 오바마 행정부에서도 계속 논쟁거리가 되었는데, 아프간 철수를 공략으로 내세웠던 오바마 정부는 궁극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심지어 2010년에는 대략 10만 명 이상이나 되는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했고, 한 해에만 500명의 미군 전사자가 속출했다.

 

 

오바마 정부는 2011년과 2012년 단계적인 철수를 얘기했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지출한 전비는 오히려 과거 시작할 때 보다 더 높아졌다. 군대의 철수도 더 늦어져 예상보다 적은 숫자만 철수하게 되었고, 2016년 말에도 대략 8400명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시킨 채, 그 문제를 트럼프에게 넘겼다. 2017년 6월 트럼프는 오히려 4천 명의 병력을 증원하려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그러지 못하고,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

 

5. 글을 마치며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미국은 대략 2400명이 전사했고, 15000명 이상의 병사가 부상당했다. 최근 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과의 협상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왔지만, 협상은 결렬되었고,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2019년 12월인 현재도 대략 8600명의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다. 베트남 전쟁의 경험을 생각해 봤을 때, 미국이 쉽게 철수할 일은 없겠지만, 최근의 아프가니스탄에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전쟁이 끝날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아프가니스탄 문제에 대해 그리 주의 깊게 생각지 않아왔다는 개인적인 생각 및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그런 차원에서 이번에 읽게 된 책이 바로 권희석 씨가 집필한 ‘아프가니스탄 왜?’다. 사실 국내에 아프가니스탄 관련 서적이 사실상 없다시피 하니 필자가 아프가니스탄을 알 수 있는 통로는 이 책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아프가니스탄의 지리와 역사 그리고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울 수 있었지만,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들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 책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파견되어 재건 사업을 도왔던 저자가 쓴 책이기에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비판은 불필요할 정도로 하지만, 반면 미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은 없다시피 하다. 책 저자가 소련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소련을 대하는 태도와 미국과 미국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것이 매우 느껴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미국의 일방적인 침략으로 일어났음에도 그것을 침략이라 표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미군의 범죄에 관한 내용은 전혀없다. 사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미군 전쟁 범죄가 상당히 심각한 문제지만 그것을 언급 안 한 것은 실망스럽다. 특히나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공군 폭격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자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생각해보자면, 논외로 해서는 안되는 문제다. 심지어 책에는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다”라는 황당무계한 발언까지 있다. 이 부분은 정말 불편했다.

 

하지만 이 책은 국내에 출판된 아프가니스탄 역사를 포괄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거기다 2017년도에 출판된 책이기에 최근의 아프가니스탄 상황까지 다루고 있다. 첫술에는 배가 부를 수 없다는 말이 있듯이 그러한 점을 고려하며 이 책을 읽었다. 아무튼 필자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던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이 지금도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다. 확실한 건 아프가니스탄이 엄청난 저항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에도 평화가 정착되길 간절히 기원하며 서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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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waker 2019-12-2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지만 이 책은 국내에 출판된 아프가니스탄 관련한 유일무이한 책˝은 아닌데요. 알라딘 검색만 해도 27권이 뜹니다. 지나가다가 깜짝 놀라 댓글 남깁니다.

NamGiKim 2019-12-21 16:24   좋아요 0 | URL
아 그런 오해를 샀군요. 사실 아프간을 통괄적으로 다룬책은 많지 않죠. 그러면 근래에 나온 아프간 서적으로 바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