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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 식민주의를 타도하라 ㅣ 레볼루션 시리즈 3
호치민 지음, 월든 벨로 서문, 배기현 옮김 / 프레시안북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68혁명 당시 서방의 젊은이들이 투쟁의 물결 속에서 외치던 구호가 있었다. 그 구호는 바로 “Ho! Ho! Ho Chi Minh!(호! 호! 호치민!)”이었다. 당시 미제국주의자들의 야만적인 침략전쟁에 맞서 독립투쟁을 전개하고 있던 노년의 혁명가는 중국에 가서 요양하는 것과 특별한 기념일에 연설하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그리고 북베트남 공산당에서의 그의 권력은 1960년대부터 제2인자 레주언(Le Duan)과 나눈 상태였다. 1968년 3월 구정 공세(Tet Offensive)로 인한 반전 운동으로 미국의 린든 B. 존슨 정부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호치민은 중국의 수도 베이징에서 구정 공세의 결과를 보고 받았고, 베트남 정치국 국원인 레둑토(Le Duc Tho)가 "구정 공세 이후의 상황을 평가하기 위해 곧 남부로 출장을 갈 것"이라고 얘기하자, 호치민 또한 함께 내려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냈었지만, 건강상의 문제로 남부로 내려가진 못했었다. 그러던 1969년 9월 2일 베트남 독립 선언 24주년에 그는 심장병으로 급사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았을 때, 베트남 전쟁 시기 그가 실질적으로 군대를 지휘하거나 남베트남 내부에서 조직을 창설했던 것은 아니었다. 또한, 그는 실질적으로 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전투에 참여했던 적은 없었다. 총과 수류탄을 든 건 그의 휘하에 있던 보응우옌잡(Vo Nguyen Giap)과 같은 지휘관들과 제국주의에 침략에 맞서 자발적으로 무기를 들고 정글속에서 침략자들을 상대로 전투를 치렀던 무명의 병사들이었다. 호치민 평전(Ho Chi Minh A Life)의 저자 윌리엄 J 듀이커(William J Duiker)는 책 서문에서 베트남 전쟁 승리의 공로자를 셋으로 나눴다. 윌리엄 J 듀이커에 따르면 첫째는 한 세대 이상 남베트남의 정글과 늪에서 혁명적 대의를 위하여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미군에 맞서 싸우다 죽어간 무명의 베트콩 전사들이고, 둘째는 뛰어난 결의에 노련한 능력까지 겸비한 베트남 노동당 지도자 레주언을 비롯한 그의 북베트남 공산당 동료들이며, 셋째는 베트남 공산당 창건자이자 혁명운동의 지도자였고 베트남민주공화국의 주석직을 종전 6년 전인 1969년까지 맡고 있다가 타계한 호치민이다.
위에서 상술했듯이 호치민은 전설적인 혁명가 체게바라와 달리 한평생 총을 든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그의 힘과 인민대중의 결집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 힘과 결집력은 바로 호치민의 독립운동 경력과 한평생 그가 집필한 글과 연설에서 나왔다. 사실 호치민은 레닌이나 마오쩌둥, 스탈린이나 트로츠키와는 달리 ‘주의(ism)’라는 말 앞에 자신의 이름이 붙은 적이 없었다. 사회주의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혁명가들이 그의 이름을 붙여 호치민주의라는 말로 결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사회주의자들 기준으로 보았을 때, 호치민이라는 인물이 자신만의 어떤 특별한 사상을 만들어낸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1960년 응오딘지엠 정권에 맞서 남베트남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창설된 베트콩(Viet Cong: NLF, National Liberation Front in South Vietnam)만 보더라도 마르크스-레닌주의(Marx-Leninism)과 같은 어떤 사회주의적인 이론을 철저하게 학습한 조직이었다기 보단 반제국주의적인 기치 아래 단결하고 결집한 세력이었다. 1941년 팍 보(Pac Bo) 동굴 호치민과 그의 동료들의 창설한 베트민(Viet Minh)도 베트콩과 마찬가지로 사회주의적 이론보단 반제국주의 기치 아래 결집한 세력이었다. 또한 호치민은 “왜 이데올로기적인 논문은 한번도 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이데올로기는 마오쩌둥에게 맡기고 싶다”라며 장난스럽게 대답할 정도로 마르크스-레닌주의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데올로기라는 거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던 인물이었다.
분명 호치민은 마르크스-레닌주의적 이론의 기반은 좀 약한 인물이었지만, 그의 글과 연설은 그런 한계점을 보완할 정도로 베트남 인민 대중들에게 호소력이 강했고, 심지어 베트남에 존재하는 수많은 소수민족에게도 영향력이 미칠 정도였다. 윌든 벨로(Walden Bello)가 정리한 ‘호치민, 식민주의를 타도하라(Ho Chi Minh, Down With Colonialism)’는 베트남 인민대중에게 강력한 호소력과 결집력을 만들었던 그의 글과 연설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은 1920년에 개최되었던 투르 회의 연설부터 시작하여 그가 마지막으로 한 1969년 7월 20일의 공개적인 연설과 그의 유언장으로 끝을 맺는다.
이 책에 나온 호치민의 글과 편지 그리고 연설문들은 책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프랑스와 미국 그리고 일본 같은 제국주의 국가들의 침략과 야만적인 행위를 아주 일목요연하게 비판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식민지 시절 그가 해외에서 썻던 글들을 보면 베트남을 강제로 식민지화한 프랑스 제국주의자들이 내세웠던 ‘자유, 평등, 우애’ 정신과는 모순된는 현실을 아주 날카롭게 지적한다. 1940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베트남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야만성을 폭로함과 동시에 베트남 인민들에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단결하도록 호소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프랑스가 다시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 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베트남 인민들의 저항을 호소하는 글들이 대다수다. 그런 그들이 특히나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시기의 그의 연설과 글로 모여있다. 미국과의 전쟁에서 그가 했던 연설에서도 그런 반제국주의적 정서가 아주 잘 드러난다. 이와 같은 호치민의 글을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호치민이라는 인물의 위대함과 인민을 향한 순수한 마음 그리고 제국주의에 맞선 그의 저항정신이다. 1950년대 소련의 서기장을 지내며 베트남의 지도자 호치민을 만났던 니키다 흐루쇼프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정치 경력을 쌓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사실 누구도 나에게 그런 인상을 남긴 사람은 없었다. 종교를 믿는 사람들은 사도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호치민의 삶의 방식과 그가 동료들에게 미친 영향을 살펴본다면, 그는 확실히 ‘신성한 사도들’에 비견할 만한 인물이었다. 혁명의 사도 말이다. 그의 눈에서 번득이는 순수함과 진실함의 빛줄기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의 원칙과 행동에서 부패하지 않은 공산주의자의 진실함을 보았고, 대의에 헌신하는 자의 순수함을 느꼈다.”
니키다 흐루쇼프가 표현한 것처럼 이번에 ‘식민주의를 타도하라’를 읽으면서 호치민 주석의 따뜻한 마음과 애민정신 그리고 반제국주의 투쟁 정신을 감동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호치민 주석과 베트남 전쟁을 공부할 때 항상 느끼는 거지만, 이런 위대한 혁명적 지도자를 독립 영웅 혹은 국부로 모시는 베트남이 참으로 부러울 때가 많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는 이만큼 국제적으로 성공한 독립영웅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위대한 지도자의 지도아래 제국주의 국가들의 야만적인 침략을 무찌르고, 영웅적으로 투쟁하여 자주독립과 통일을 쟁취한 베트남은 당연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하면 저개발국가나 한국으로 결혼 오는 국가와 같은 편향된 인식을 가지고 있다. 물론 베트남이라는 국가가 제국주의자들의 수탈과 전쟁을 겪으며 경제적으로 초토화되어 아직은 저개발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그들의 역사와 국부 호치민의 삶을 보면 절대로 무시당하여야 할 나라가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우리가 해내지 못한 위대한 역사를 창조해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의 힘으로 강대국 프랑스와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을 차례로 무찌른 역사에서 우리의 역사와 확연히 차이가 난다.
이번에 읽은 ‘호치민, 식민주의를 타도하라’는 호치민 주석의 감동적인 글과 연설을 통해 그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글과 문장 하나하나에 인민에 대한 애민정신과 반제국주의 정신 그리고 베트남 독립을 향한 그의 열정이 다 담겨 있었다. 베트남의 위대한 지도자 호치민을 매우 존경하는 필자로선 이 책에 나온 호치민 주석의 글과 연설 하나하나가 구구절절 와 닿았고, 나도 모르게 감동하며 읽게 되었다. 호치민의 저항정신과 애민정신 그리고 반제국주의 정신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