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군 - 디지털 리마스터링
정지영 감독, 안성기 외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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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보고 싶어 했던 영화를 오늘에서야 드디어 봤다. 그 영화가 바로 1990년에 개봉한 ‘남부군’이다. 지난번 안재성 작가가 쓴 이현상 평전을 읽으며 분단의 비극이라는 역사적 사실에서 슬픔과 분노의 감정을 느꼈었다. 이번에 정지영 감독이 제작한 영화 남부군 또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배우 안성기가 영화에서 연기한 주인공은 실제로 빨치산 투쟁을 했던 작가이자 정치인이기도 한 이태의 삶을 모티브로 했다.

 

영화는 1945년 8.15 해방부터 1950년 인천상륙작전까지의 내용을 사진과 자막을 통해서 개략적으로나마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개략적인 설명이 끝난 뒤 영화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전남 쪽에서 인민군측 기자로 근무하던 이태가 유격대에 합류한 뒤, 한국군에 맞서 전투를 치르며, 투쟁하는 과정을 생생히 보여준다. 실존 인물 이태가 겪은 투쟁기를 보여줌으로써 당시 빨치산들이 민중해방과 인민의 세상을 위해 어떻게 투쟁했는지 보여준다. 그뿐만 아니라 영화에선 빨치산들이 반공선전과는 달리 민중을 대하는 태도를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예를 들면 마을에 들어가 함부로 약탈하지 않는다든지, 대한민국 경찰인 남편을 둔 여자를 강간한 부대원을 총살하는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작중에선 한겨울에 지리산에서 빨치산 투쟁을 지휘하던 정치위원들끼리 얘기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들의 투쟁이 얼마나 고달팠는지 알 수 있다. 투쟁을 하다 사기가 빠진 한 정치위원은 동료들과의 대화에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한다. “지금 이순간 우리는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있소! 볼셰비키 혁명 당시 시베리아의 빨치산은 트럭으로부터 물자를 공급받으며 투쟁했고, 일제때 만주의 항일빨치산들은 농사까지 지어가며 투쟁했다지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남조선에서 지리산이 빨치산의 가장 좋은 근거지라지만 결국 반경 15km 공간에 갇혀 있을 뿐이고, 북측과의 통신은 단절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치위원의 얘기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지리산에서의 혁명 투쟁은 그만큼 가혹한 조건 속에서 전개되었다. 그들은 단순히 추위와 굶주림하고만 싸웠던 것이 아니다. 1951년에는 미군이 살포한 세균에 맞서 싸워야 했고, 휴전 회담 기간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도착한 백선엽의 토벌부대와도 맞서야 했으며, 미군이 투하하는 네이팜 폭탄에도 맞서 싸워야 했다. 훌륭하게도 영화 남부군은 이러한 것들을 일일이 다뤘다.

 

그들은 왜 지리산으로 갔을까? 암울한 현실이지만, 그 투쟁또한 고달프고 희망이 보이지 않는 투쟁인데도 왜 끝까지 악조건 속에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던 것일까? 그들이 인간을 사랑하고 민중을 사랑했던 휴머니스트이기 때문이기에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빨치산에 합류했던 대원 중에는 우익 청년단이나 군경에게 가족을 잃은 복수심 때문에 참전한 사람들도 많았지만, 그 이전에  그들은 민중의 해방과 프롤레타리아가 주인이 되는 세상을 원했기에 고달픈 투쟁속에서도 투쟁을 이어나갔던 것이라 생각한다. 일부는 전쟁 자체의 회의감을 가지기도 했지만, 그런데도 빨치산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건 그런 휴머니즘적 신념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국전쟁 시기부터 1980년대 대한민국이 민주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빨치산들의 투쟁에 대해 반공이 아닌 입장에서 목소리를 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힘든 일이었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이 국민에게 강요한 매카시즘적 반공 이데올로기는 사회 깊숙이 퍼져 있었고, 반공주의에 익숙해진 국민들 관점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1990년에 개봉한 영화 남부군은 국가가 강요한 반공주의에 대한 하나의 도전이자 새로운 패러다임의 시작을 알린 작품이다. 즉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반공주의가 강요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였다. 영화 남부군에 나온 빨치산 혁명가들은 이념을 떠나 휴머니스트들로 기억되는 건 무리한 일일까? 아직도 반공주의가 살아있는 시대에서 이를 생각할 때마다 필자는 가슴이 아프고 머리가 아프다. 영화에서 나온 휴머니스트들의 투쟁적인 삶을 통해 분단의 비극을 생각하게 되는 좋은 기회였고, 이런 훌륭한 영화를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제작해주신 정지영 감독에게 깊은 감사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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