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잭슨의 원주민 추방
(앤드루 잭슨 대통령의 초상화)
1783년 전세계로부터 독립을 인정받은 국가 미국(United States)이 탄생했다. 1787년 헌법을 제정했고, 독립전쟁 시기 대륙군을 이끌었던 조지 워싱턴 장군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세운 그들은 서쪽으로 이동해 나갔고, 1800년 무렵엔 애팔래치아 산맥 서쪽의 백인 정착민은 대략 70만 명까지 증가했다. 거기다 1803년 미국의 토마스 제퍼슨 대통령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로부터 루이지애나를 매입하여 거대한 영토를 확보했다. 애팔래치아 산맥 서부, 즉 원주민의 영역에 정착한 미국인들은 애팔래치아 산맥과 미시시피 강 사이의 땅을 차지하기 위해 노력했고, 숲을 개간한 땅에 목화와 곡식을 심고 도로와 도시, 운하를 건설하고 싶어 했다. 그때부터 그들은 북아메리카와 태평양 해안에 이르는 전역을 다 차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미영전쟁 당시 잭슨에게 항복하는 크리크족 추장)
1812년 미영전쟁이 일어났다. 미영전쟁은 3년간 지속되었고,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한 채 1815년에 끝이 났다. 이 미영전쟁에서 유명해진 한 군인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다. 앤드루 잭슨은 원주민 크리크족을 상대로 전투를 전개해왔고, 그의 부대는 크리크족의 마을을 불태웠으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살해하는 것으로 대응하기도 했다. 앤드루 잭슨은 1814년 호스슈벤드 전투(Battle of Horseshoe Bend)에서 크리크족을 상대로 활약하면서 국민 영웅이 되었다. 당시 앤드루 잭슨은 크리크족과 싸우며 또 다른 부족인 체로키족(Cherokees)을 지원했었다. 어쨌든 전쟁이 끝나자 앤드루 잭슨과 그의 부하들은 크리크족의 땅을 매입했고, 그들의 영토를 절반으로 축소하는 조약을 맺었다. 이 조약이 특별한 것은 원래 토지의 개인 소유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던 원주민에게 ‘토지의 개인 소유’라는 개념을 원주민들에게 심어주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 원주민들 가운데 일부를 매수했지만, 나머지는 추방하는 과정에서 원주민들끼리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1818년 미국은 스페인령이던 플로리다까지 영토를 확장했다. 하지만 플로리다까지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앤드루 잭슨은 세미놀족의 마을에 불을 질렀고, 많은 원주민을 죽였다. 이후 앤드루 잭슨은 플로리다 준주의 지사가 됐다. 지사가 된 앤드루 잭슨은 군대 의무감이던 친구에게 노예가격이 곧 오를 것이므로 가능한 많은 노예를 사두라는 얘기를 해줬고, 친척들에겐 땅을 많이 사두라고 조언하기도 했었다. 이런 잭슨의 모습은 미국의 일반 교과서에는 나오지 않지만, 잭슨은 정말 그런 말을 했었다.
1828년 앤드루 잭슨은 미국의 제7대 대통령이 되었다. 잭슨과 그가 직접 후계자로 고른 마틴 밴 뷰런의 통치하에서 미시시피 강 동쪽에 살던 7만 명의 원주민이 강제적으로 서부로 내몰렸다. 검은매 전쟁(Black Hawk War)이 끝난 뒤 일리노이의 색족(Sacs)과 폭스족(Foxes) 원주민들은 이주해야 했다. 1832년 대통령에 재선된 후 앤드루 잭슨은 원주민 강제 이주에 박차를 가했다. 당시 앨라배마에 살던 크리크족 2만 2000명은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든 영역에서 지내고 있었음에도 연방정부의 약속을 믿고 떠났다. 그 약속은 “그들이 살던 땅 가운데 일부가 부족민들 개개인에게 주어질 것이며, 땅을 받은 사람들은 그 땅을 팔든 머무르든 연방정부가 보호해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결국 크리크족은 백인 정착민들을 몇 차례 공격했고, 이에 광분한 미국은 크리크족을 서부로 몰아내기 위해 군대를 동원했다. 미국 병사들은 크리크족의 마을에 침입하여 부족민을 3000명 단위로 묶어 서부로 몰았다. 그 과정에서 크리크족 사람들은 기아와 질병으로 수백 명씩 죽어갔고, 배 한 척이 침몰하면 300명 이상이 죽기도 했다.
(1838년 당시 체로키족의 눈물의 행로)
1835년 미국 정부는 500만 달러와 미시시피 강 서쪽 지역의 보호 거주지를 대가로 조지아 주에 있는 체로키 부족 땅을 조지아 주에 양도한다는 조약을 체로키 보죽의 소수 파벌과 체결했다. 1만 7000명의 체로키 족은 이 조약이 위법이라며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앤드루 잭슨은 윈필드 스콧 장군 지휘로 7000명의 연방군을 파견해 원주민을 포위한 뒤 서부로 내몰았다. 조지아 주는 체로키족을 추방하는 법을 통과시키고 체로키족의 정부, 집회 신문을 법으로 금지했다. 체로키 부족민들이 고향땅에 남아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백인 선교사들까지도 교도소에서 4년간 중노동을 하는 처벌을 받았다. 소수의 체로키 부족민들은 다른 부족민들 몰래 서명하고 연방정부와 다시 한 번 이주 조약을 체결했다. 정부는 이주를 강제로 실행시키기 위한 군대를 파견했고, 사로잡힌 1만 7000명의 체로키 부족민들은 감금되었다. 1838년 10월 1일 유명한 ‘눈물의 행로(The Trail of Tears)’를 떠날 첫 번째 집단이 출발했다. 감금과 굶주림, 갈증, 질병, 과도한 노출로 4000명의 체로키족이 눈물으, 행로 도중 목숨을 잃었다.
(현재 미국 사회에 남아있는 체로키 족들.)
미국의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앤드루 잭슨은 개척자이자 군인, 민주주의자 그리고 국민적 영웅인 잭슨만이 등장한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그는 수많은 원주민을 죽인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잭슨의 행적은 미국 국민들에게 잊혀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