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멜 장군)

 

1940년 5월 히틀러의 군대는 전격전(Blitz Krieg)을 통해서 벨기에와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그리고 프랑스를 단기간에 함락시켰다. 1940년 여름 히틀러가 프랑스를 함락시키는 모습을 본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Benito Mussolini)는 과거 로마 제국의 영광을 생각하며 북아프리카의 이집트와 남유럽의 그리스를 침공했다. 무솔리니는 히틀러와는 달리 전략도, 계획도 없고 보잘것없는 군대로 서투를 공격을 했다가 도리어 연합국의 반격을 받아 곧 패배하고 있었다. 이에 당황한 히틀러는 1941년 유고슬라비아와 그리스를 침공하고, 다른 한편으로 에르빈 롬멜(Erwin Rommel) 장군 휘하의 1개 기갑군단 즉 아프리카 군단을 파견해 리비아에 주둔하던 이탈리아군을 지원하도록 했다.

(진격하는 영국군 병사)

 

194126일 소장으로 진급한 롬멜은 히틀러가 있는 베를린 총리 관저를 찾아갔고, 롬멜 장군은 히틀러로부터 북아프리카 사령관으로 발령받았으며, 212일에 북아프리카에 도착했다. 당시 북아프리카의 이탈리아 군영은 이미 짐을 싸 놓고 이탈리아로 돌아갈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북아프리카에 도착한 롬멜은 독일군의 사열식을 이탈리아군에게 보여줌으로써 이탈리아군의 사기를 높였고, 이를 바탕으로 331일 대대적인 반격을 시작했다. 독일군 1개 기갑사단과 이탈리아 1개 기갑사단이 한 팀을 이루어 영국군에게 공세를 퍼부었는데, 영국군은 제대로 방어도 해보지 못하고 1주일도 안 되어 300km를 후퇴했다. 또한 46일에는 영국군 제8잡단군 사령관 오코너가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  

  

투브루크(Tuburq) 항구를 제외한 넓은 지역을 독일군이 점령하자 영국군은 이를 지키기 위해 북아프리카에 대규모의 지원군을 보냈다. 1941615일 영국의 주력 기갑사단인 제7 기갑사단까지 동원한 영국군은 롬멜군대에게 대대적인 공격을 시도했는데, 역으로 롬멜장군은 기갑부대를 이용하여 영국군을 무너뜨렸다.

(아프리카 전선에서 활약했던 독일의 3호 전차)   

 

19411118일 영국군은 십자군 전사라는 작전명으로 독일군에게 선제공격을 가했다. 사막의 여우 롬멜을 잡기 위해 영국군은 1000대 이상의 전차를 투입했는데, 이는 롬멜 휘하의 독일군이 보유하고 있던 전차보다 4배나 많은 숫자였다. 결국 독일군은 많은 사상자를 낸 채 후퇴했고, 19421월에는 리비아의 브레가 항까지 밀려났다. 이곳에서 롬멜은 다시 반격에 나서 영국군의 전략적 요충지를 연달아 격파했다. 그리고 6월 초 독일군은 다시 투브루크 항 근처까지 치고 올라갔다. 620일 롬멜은 투브루크 항을 향한 총 공격을 명령했다. 그 다음날 새벽 독일군은 방어가 삼엄한 영국군 요새를 함락시키고, 영국군 35000명을 포로로 붙잡았다. 그 공로를 인정한 히틀러는 롬멜을 원수급으로 진급시켜주었고, 롬멜 장군의 승리 소식을 들은 독일 베를린은 온통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FPS 게임인 콜오브듀티 2에서 나온 북아프리카 전투. 사진속에 있는 인물은 프라이스 대위고, 전차는 영국의 크루세이더 전차다.)  

  

하지만 독일군은 전쟁을 치르는 동안 수많은 탱크와 탄약을 잃었고, 병사들은 지쳐만 갔다. 이 시점에선 독일군은 더 이상 진격하기엔 무리가 생긴 시작했다. 영국의 처칠도 이집트까지 밀리자 새 장군을 북아프리카 전선에 보내는데, 그 사람이 바로 버나드 로 몽고메리(Bernard Law Montgomery)였다. 몽고메리가 부임한 이후 독일과 영국은 전력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몽고메리 휘하의 영국군이 탱크 1400대 비행기 1300대 그리고 23만 명 이상의 병력을 보유하고 있었던 반면 롬멜은 9개 사단에도 못미치는 병력에 540대의 탱크와 350대의 비행기가 전부였다. 즉 수적인 면에서도 2.51로 독일군이 불리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결국 롬멜 장군은 194210월 알 알라메인 전투(Battle of Al Alamein)에서 참패하고 말았다. 거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드와이트 아이젠 하워(Dwight Eisenhower) 장군 휘하의 미군이 카사블랑카에 상륙했다. 즉 전세는 롬멜 장군에게 불리해졌다. 알 알레메인 전투에서 대패한 이후로부터 롬멜 휘하의 독일군은 이집트와 리비아 그리고 튀니지에서 미군과 영국군에게 밀렸고, 1943년 봄 쯤에는 튀니지에서 영미연합국을 상대로 방어만 하고 있었다. 결국 롬멜의 북아프리카 군대는 19435월 초 튀니지에서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섬으로 철군하면서 완벽히 철수한다. 1940년 이탈리아 무솔리니가 시작한 북아프리카 전투는 영미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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