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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의 탄생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4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봉준호 감독이 만든 영화 중에 "괴물"이라는 영화가 있다. 천만이 넘는 인원을 동원한 영화 중의 하나인데 한 때 괴물을 보지 않으면 친구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했었다. 내 나라 땅이 아니기에 내 알바 아니라는 미8군은 오폐수를 무단으로 방류하였고, 이 때문에 한강에 괴물이 단생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작은 돌연변이였던 이 생물은 몇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을 잡아 먹는 Monster로 성장하였다. 어느날 한강 둔치를 습격한 괴물에 의하여 사랑하는 딸이자 손녀요, 조카인 현서를 빼앗긴 가족은 현서를 찾기 위하여 하나의 가족으로 뭉쳤다. 사랑하는 손녀를 찾기 위해 희생하는 할아버지, 온갖 어려움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드는 아버지, 삼촌과 고모 이들의 사랑의 힘은 괴물을 물리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사랑하는 현서를 잃어버린 가족은 현서와 함께 붙잡혔던 남자 아이를 현서 대신 아들을 삼아 기르게 된다. 그러나 여전히 한강을 떠나지 못하고 매점을 하는 아버지는 항상 총을 가지고 있으며 괴물의 재등장에 긴장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온 세상을 하얗게 덮는 눈이 내리는 가운데에도 괴물에 대한 두려움은 이 가족을 떠나지 않는다.
가족의 사랑과 상당한 볼거리가 적절하게 뒤섞여 있는 영화는 한국에서 성공한 괴물 영화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보면서 화려한 볼거리에 마음을 빼았겼었는데 괴물의 탄생이라는 책을 보고 난 후 새로운 시각으로 영화에 접근하게 되었다. 괴물의 탄생은 누구의 책임인가? 미 8군인가? 아니면 미 8군의 불법 행위를 제지하지 못한 행정당국의 책임인가? 그것도 아니면 미 8군에게 기지를 제공하고 눈치를 보기만 하는 정부의 책임인가? 그것도 아니면 상사의 명령에 의해 오폐수를 무단방류하는 이름없는 군무원의 책임인가? 분명한 것은 괴물이라는 영화 그 어디에도 괴물의 탄생에 대한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감독이 괴물의 탄생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불분명하게 해 둔 것은 모두의 책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결국 괴물의 탄생은 일부 사람들의 욕심과 대다수의 무관심으로 인해 탄생한 것이며 괴물에 의한 피해는 무관심했던 다수의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것이 괴물이라는 영화가 이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가 아닐까?
한국에는 괴물이 탄생했다. 미군의 비호를 받아 반공을 부르짖는 이들, 이들의 이데올로기에 넘어가 정치와 사회에 무관심한 사람들, 정치와 교묘하게 야합한 경제인들, 언론인들, 상위 1%의 사람들, 이들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한국이라는 괴물일 것이다. 이 괴물의 탄생에 대한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한국이라는 괴물의 단물을 다 차지하고 있는 상위 1%의 사람들인가, 아니면 정치에 무관심하고 학연과 지연에 따라 표를 던지는 이해하지 못할 대다수의 사람들인가, 그것도 아니면 이리붙었다 저리붙었다 하면서 자기 이익을 챙기기위해 온갖 불법과 불의도 서슴치 않는 이들의 것인가? 괴물의 탄생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한국이라는 괴물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승자 독식이 극도로 발생한 모양일 것이다. 원래 일본에서 시작된 서열화의 모습이 한국에 수입되었고, 그것이 극도로 발전하고 세련된 곳, 그리고 그러한 서열화를 부추기고 정책화 하는 것이 괴물의 척추일 것이다. 이 척추에 SKY라는 학연을 오른팔로, TK라는 지역 감정을 왼팔로 삼아 앞을 향해 전진한다. 여기에 반공이라는 굳건한 다리를 가지고 있고, 부동산이라는 먹이를 포식하는 것이 한국이라는 괴물이다. 언론은 이런 모습을 당연하다는 듯이 정당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박정희라는 망령과 한나라당이라는 수구꼴통 세력들은 자기들이 괴물의 주인인양 행세하고 있다. 여기에 더하여 괴물의 주인 자리를 빼앗긴 민주당(열우당인지 무너지 도무지 모르겠다.), 주인이 되기를 꿈꾸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칭 진보세력(그러나 전세계적인 모습으로 볼 때 중도 우파에 속하는) 민노당, 아 옛날이여를 외치는 자유선진당, 한발 살짝 걸쳤다가 벼랑끝으로 몰린 창조한국당은 괴물의 주인 자리를 놓고 아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냉랭한 눈빛으로 그놈이 그놈이라는 식으로 관전하고 있으며 내 알바 아니라는 듯 무관심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이라는 괴물의 현 상태이다. 게다가 이 괴물은 아주 잘 큰다. 북핵과 간첩, 미국을 계기로 매일매일 쑥쑥 크고 있다. 이 괴물이 이대로 자라면 세계의 돌연변이가 국민을 잡아 먹는 MONSTER로 성장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다. 아니 이미 한국이라는 돌연변이는 IMF를 기점으로 국민을 잡아 먹는 MONSTER로 탈피하였다.
누구의 책임인가? 이것을 묻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은 편가르기와 학연, 혈연, 지연에 집착했으며 정치에 실망하고 무관심했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지금 책임 소재를 묻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괴물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괴물을 다시 돌연변이로 돌려 보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성장을 제어하고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떻게 하면 이것이 가능한가? 이게 한국이라는 괴물을 바라보는 나의 근본적인 질문이요, 이 책이 던지는 화두이다. 이 책은 하나의 방법으로 3부문을 이야기한다. 시민의 견제와 기업과 정부 사이의 민간부분을 괴물을 길들이는 하나의 현실적인 방법으로 제시하고 있다. 물론 상당히 거칠기는 하지만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정부와 기업이 키워 놓은 한국이라는 괴물은 정부와 기업만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미 지난 역사에서 경험하지 않았는가? 이들은 괴물을 길들이기보다는 괴물을 키우는데 집중한다. 괴물을 키워 괴물의 힘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결국 괴물을 길들일 수 있는 것은, 그리고 길들일 필요를 느끼는 것은 괴물에 의해 피해를 보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할 수 밖에 없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 머리를 맞대야 한다. 만약 이대로 방치한다면 괴물은 더 커질 것이고 더이상 잡아 먹을 것이 없는 불가사리같은 존재가 되어 스스로 소멸하고 말 것이다. 자기만이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것을 소멸시킨 다음에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그 결과가 어떨지는 남미와 아프리카를 관찰하면 대략적이나마 예측할 수 있게 된다.
2008년 책을 30권 읽겠노라는 결단으로 시작했다. 참 열심히 읽으려고 했지만 때때로 무너지는 결심 때문에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일으켜 준것은 이명박 대통령이다. 내 의지가 약해질 때마다 한건식 해주시는 바람에 독서에 대한 열정을 불태울 수 있었다. 도대체 이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 때문에 시작한 일이 오늘 나를 50권이 넘는 책을 읽는 상황으로 이끌었다. 이런 내가 마지막을 괴물의 탄생으로 장식했다는 것은 참 공교로운 일임과 동시에 의미심장한 일이다. 내 앞에는 SERI2009가 놓여 있다. 괴물이 2009년에는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괴물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내가 괴물의 힘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으로 변질될지, 아니면 어찌할 수 없는 괴물의 힘 앞에 절망할지, 아니면 용기를 가지고 괴물을 제어하기 위하여 덤벼들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무관심한 것보다는 나을 것이라 믿기에 다시 새해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