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없는 예수 교회
한완상 지음 / 김영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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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가 국회의원들의 싸움으로 시끄러운 가운데 전 세계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때문에 시끄럽다. 오랜 세월을 이끌어온 증오심이 다시 불타오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마스의 로켓 공격과 이스라엘군의 공습은 당사자만의 행동이 아니라 이스라엘대 아랍권이라는 대형 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커져만 가고 있다. 여전히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랍권의 행동을 보면서 전쟁이 쉽사리 그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에 관한 기사를 검색하다가 옆에 있는 사진을 발견했다.  

  30일 이스라엘이 가자 접경 지구로 기갑부대를 배치하는 가운데 한 병사가 기도하고 있다. 그의 기도하는 모습 가운데 절박함과 독실함이 뭍어 나는데 과연 그는 무얼 위해 기도하는 것일까? 로켓포를 들고 공격하는 하마스에 대하여 공군의 폭격으로,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돌팔매에 탱크로 대응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하나님은 돠연 어떤 마음으로 그의 기도를 들으실까? 아니 듣기나 하실까? 오랜 세월 동안 박해를 받는 자신들과 함께 하는 하나님을 고백했던 이스라엘이 박해자가 되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것을 하나님을 어떻게 생각하실까? 과연 그들과 함께 계시기는 하는 것일까? 어쩌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고 기갑부대의 맞은 편에서 돌팔매를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함께 하시고 계실지도 모른다. 이스라엘 가운데 아무도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스라엘에서 전쟁이 벌어질 때면 미국은 물론 한국 교회에서도 이스라엘을 편드는 기독교인들이 많아진다. 로마서와 서신서를 설교하면서 그렇게도 이스라엘의 율법적인 모습들을 지적하고 비난하던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유대인과 아랍권의 대결이라는 구도에서는 이스라엘을 편드는 입장을 취한다. 내가 보기에 유태인이든, 아랍인이든 모두 기독교의 가르침에서 비켜나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마 구약 성경을 읽으면서 이스라엘이라는 단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어쩌면 교회 안에 성공주의가 들어오면서 일지도 모르겠다.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석학들, 기업가들 가운데 유태계가 많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교회가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이 축복해줘서라고 설교하면서 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을 받자는 메시지를 선포하는데 조근조근 따져보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알 것이다. 예수에 대한 고백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일진대 그 고백까지 포기하면서 유태인과 같이 축복을 받자는 말은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말이다. 

  이스라엘을 편드는 한국 교회의 모습이라는 단편적인 예를 들었지만 작금의 한국 교회는 무언가 상당히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덩치불리기에 어느 정도 성공해서 외형적인 모습은 거대하지만 그 기반은 아주 빈약한 이상한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예수 대신 맘몬을 섬기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선언한다. 죄인을 정죄하는 율법을 공격했던 예수님의 이름으로 또 다른 죄인을 양산해 내고 있다. 나누고 섬기고, 이웃을 사랑하기 보다는 더 높은 건물, 더 큰 건물을 바벨탑처럼 쌓아가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하나님의 축복이라 선전하면서 자신들이 최고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한다. 교회 가운데 중앙, 제일이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 있는지 살펴본다면 교회야 말로 가장 오만하고 독단적인 조직으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도대체 어느 조직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중앙과 제일이라는 말을 붙이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증발해 버리고 교리적이고 교조적인 십자가만 남아 있는 한국 교회에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한때 십자가를 지고 가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십자가 밑에 바퀴를 달아 구설수에 올랐던 한국 교횡가 십자가를 진다는 의미를 깊이 이해하기는 할까? 자기 부인과 자기 비움이라는 십자가의 의미를 실천할 수나 있을까? 만약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면 다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를 올라가려고 하지 않으실까? 이런 생각을 하면 답답하다. 내가 그렇게 사랑하는 교회인데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후배들에게 미안하고, 예수님 앞에서 죄송하고, 세상 앞에서 죄인이 되어가는 기분이다.  

  우리 안에 예수님이 없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 나오는 대목처럼 예수님이 없어도 사는 한국 교회가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가는 길에 걸리적 거리면 예수님마저 부정하는 교회가 되어가고 있다. 예수의 사랑과 희생의 정신이 없어지고 대신 십자군과 같은 승리 지상주의와 영광의 신학만 남아 있다. 낮아지고 겸손해지고 자신을 비우는 비천의 신학은 사라져 버렸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면서 왕관이 아니라 가시관을 쓰셨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광의 관이 아닌 가시관이요, 상위 1%와 친하다는 것을 자랑하는 태도가 아니라 하위 1%를 위하여 기꺼이 낮아지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모습이다. 예수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다. 예수의 사랑은 멈추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다. 이제 한국 교회가 예수없는 교회가 아니라 교회는 없어도 예수는 있는 집단이 되었으면 좋겠다. 교회의 원래 의미를 찾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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